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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관해/심리학 이야기

[스크랩] 교회안의 성인아이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교회안의 성인아이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정동섭 전 침례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

가정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공동체이다. 가정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가정이 되어가는 대로 모든 것이 되어간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와 국가도 건강하며, 가정이 병들게 되면 나라와 문명도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치료사 버지니아 싸티어(Satir)는 가정을 '사람을 만드는 공장'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순기능 가정에서 자존감이 높은 건강한 아이가 나오고, 역기능 가정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문제아를 양산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기초적인 사회의 삶의 단위는 곧 집단이나 확대가족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나 핵가족이 사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이다. 가족의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부부역할이 붕괴되고, 갈등과 혼란이 증가하고 있다. 600년 이상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윤리관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는 수평적인 가치관과 충돌하고 있다. 역기능적 가정은 계속 증가일로에 있으며 따라서 현대가정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

지금부터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교회는 인생의 냉혹한 현실에 대하여 마음을 열지 않았다. 성폭력이나 근친상간, 동성애, 배우자 학대, 자녀학대 같은 단어는 설교단상에서 언급되지 않았고 여간해서 소그룹에서도 거론되는 일이 없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혼을 당한 사람들이나 배우자 구타나 성적 학대의 대상자들은 침묵 속에 고통을 감수해야 했으며 소외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아픔을 감내해야만 했다. 알코올이나 도박과 같은 중독증으로 고통하는 교인들은 죄를 고백하고 문제를 주님께 맡기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복음주의적 교회 내에서도 문제를 직면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가정: 순기능과 역기능
역기능 가정이란 무엇인가? 성인아이는 누구인가? 교회는 성인아이의 내적 치유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목회자는 독서상담과 지원그룹이라는 집단상담모델을 이용해 교회내의 성인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이 글은 이상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정사역]의 저자 찰스 셀(Sell, 1997)은 "오늘날의 가정들이 가장 불안한 사실은, 무엇인가 조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오늘의 문제는 내일의 가정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순기능 가정은 순기능 가정을 낳고 역기능 가정은 역기능 가정을 낳는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문제가정을 불행한 가정, 병든 가정, 약한 가정, 비정상적 가정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가족치료와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들은 가정을 설명하고 기술하는데 정상적, 비정상적이라는 말 대신에 순기능적, 역기능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여기서 역기능이란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역기능가정은 역기능적 결혼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결국 역기능적 가정은 역기능적인 개인, 즉 성인아이들이 서로를 찾아 결혼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정상적 부부관계는 병적인 부모자녀관계로 나타난다.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역기능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이를 순기능으로 돌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역기능가정. 1995년 [위장된 분노의 치유]라는 한 권의 책이 반년 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씨맨즈 목사의 [상한 감정의 치유]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후로 수십판이 재판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상처받은 성인아기가 그만큼 많이 퍼져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앞의 책은 최현주라는 이름의 한 목회자가 8년동안 목회하면서 상습적으로 사모를 폭행하다가 독서요법을 통해 치유받은 과정을 털어놓은 자기고백서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문화권에서 목회자가 자기치부를 실명으로 드러낸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습적인 폭행의 피해자였던 이선애 사모는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는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알코올중독자 성인아이의 특성과 치유되어가는 회복과정을 기술한 책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두란노)를 읽고 남편을 새로운 안목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남편이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역기능가정출신의 성인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남편을 가해자가 아닌 역기능가정의 피해자로 이해하면서 치유의 과정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역기능가정이란 처음에는 최 목사의 경우와 같이 알코올중독자 가정에만 적용되었던 말인데, 이제는 도박꾼, 과식 및 거식으로 나타나는 섭식중독자, 이단이나 병적인 신앙생활에 심취하는 종교중독자, 분노중독자, 성중독자, 충동구매 중독자, 일중독자가 있는 가정에도 적용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 부모를 전문가들은 "폭군아이 부모"(King Baby parent)라고 부른다. 이들은 왕과 같이 가족 위에 군림하면서 그들의 원하는 것을 가족에게 강요함으로 폭군행세를 하며, 아이처럼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요구한다.

가정을 돌아보지 않고 목회에만 몰두하는 목회자의 가정도 이와 같은 역기능적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가장은 자녀에게 의식주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친밀감과 소속감과 같은 정서적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역기능가정은 결국 부부나 부모자녀간에 건강하지 않은 관계유형이 존재함으로 부모가 저녀의 정서적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역기능가정은 자녀에게 외상적 경험을 안겨주는 가정이다. 외상(trauma)이란 "개인의 심리적 발달에 심각하며 영속적인 피해를 주는 정서적 충격"으로 이러한 외상은 대개 신체적, 성적, 언어적, 경제적, 심리적 학대로 나타난다. 성인아이 치유교재를 쓴 [가족치유, 마음치유]의 저자 슬레지(Sledge) 목사는 역기능가정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①중독증세를 나타내는 가족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②감정표현을 제한한다, ③명백한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부인하고 공개적인 대화를 회피한다, ④어린이들에게 희생양, 영웅, 대리배우자, 말없는 아이, 마스코트 등 파괴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다, ⑤어린이의 성장발달에 필요한 적절한 양육을 제공하지 못한다, ⑥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우리사회에 역기능가정은 얼마나 퍼져 있을까? 알코올중독에서 회복되어 성인아이치유사역을 하고 있는 이 영국(1998)은 우리나라의 음주인구는 2천만명에 달하고 알코올중독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무려 350만명이 넘으며, 1천만명은 알코올로 인한 역기능가정에서 고통하고 있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상호복종적인 동반자 부부관계(엡 5:21)보다는 가부장적 가족문화에서 충효를 절대가치로 가르치며 남존여비를 근간으로 삼았던 수직윤리의 유교문화, 일제 36년간의 억압, 6.25 전쟁의 상흔, 그리고 고질적인 가난은 갖가지 역기능적 요인을 잉태하고 있어 가정과 사회 전체를 역기능적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현주, 1996).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나라의 가정은 거의 대부분이 역기능적 요인을 잉태하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성인아이(adult child). 중독자는 자신의 생활뿐 아니라 가족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성인아이란 역기능가정의 산물로서, 성인의 문제를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게 다루어야 하는 "성인화된 아이"(adultified child)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해소되지 않은 어린시절의 문제(unfinished business: 미완성과업)를 아직 처리하고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출신, 근원)가정을 떠나지만, 가정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성인이 여전히 아이상태에 있으며, 그의 감정과 행동중 많은 부분이 유년기의 흔적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성장과정에서 경험했던 충격으로 인한 정서적 찌꺼기가 아직까지 남아서 성인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기능가정에서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임금아이(폭군아이)역할을 하는 부모를 참아내며 돌아보아야 한다.  성인아이는 놀기보다는 계획을 해야 하고,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 보다는 부모를 보살펴야 하고, 생활 가운데 자신의 안전한 장소를 만든다. 너무 일찍 자신의 기본적인 필요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하고, 현실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점을 개발하고, 혼자서 두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어릴 때 뿌려진 씨는 성인이 되어 열매를 맺는다. 어린 시절의 부인(denial)은 성인기에 불신을 낳고, 투사는 자기정죄를, 고립은 소외감을, 되풀이된 분노행동은 긴장을 조성한다. 성인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소외감(alienation): 성인아이는 항상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며 무엇이 정상적인 행동인지에 대해 환란스러워 하고,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②자기정죄(self-condemnation): 자신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끊임없이 인정과 칭찬을 원하며,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충성한다. ③긴장감(tension): 재미있는 시간을 갖는데 어려움을 느끼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구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④불신(distrust): 병이나 퇴직과 같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화에 과민반응을 보이며. 아무런 대안이나 대책이 없이 결과를 고려해 보지도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한편 "느끼지 말라, 말하지 마라, 믿지 말라"가 성인아이를 지배하는 가족규칙이라고 지적한 학자도 있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해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끼며, 두려움, 우울증, 분노, 수치심과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며, 지나친 책임감이나 무책임한 성향,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체계의 약화로 두통, 위장병 등 정신신체질환으로 고생하는 것 등은 성인아이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성인아이들은 '지나침'과 친숙하다. 지나치게 성취하려 하고, 지나치게 먹고, 지나치게 일하고, 지나치게 운동하며, 지나치게 소비한다. 그들은 섹스, 고통, 음식, 신앙, 권력, 돈, 소비 등 무언가에 중독이 되려한다.

알코올중독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크리스찬 심리학자 샌드라 윌슨(Wilson)은 그의 박사학위논문에서 "복음주의적 신앙을 따르는 성인아이들은 건강한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에 비해 더 우울하고 지나친 죄책감을 보이며 불안하고 인정받기를 구하며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보고하고 있다.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성인아이들은 왜곡된 하나님상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인아이의 내적치유.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방해한다. 역기능가정에서의 성장경험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머리로는 은혜를 믿고 아는데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부모와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서, 성인들은 종종 그들이 인생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 불신과 자기정죄, 긴장, 소외라는 흐려진 안경을 통해서 - 하나님에게 반응한다. 여러해 동안 이와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계하다보니, 하나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에도 용서하기를 즐겨하신다는 성서적 진리를 믿기가 어렵게 된다"(Grayson & Johnson). [상한 감정의 치유]를 통해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는 데이빗 씨맨즈(Seamands) 목사도 과거의 상처받은 기억이 어떻게 우리의 하나님상을 흐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성인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순기능 가정에서처럼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며"(엡 4:15) 정서적 친밀감과 소속감을 경험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치유상담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내적치유(inner healing)라 하고, 성인아이치유사역을 하는 이들은 이를 회복(recovery)이라 부른다. 우리 부모가 아무리 역기능적이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내적 치유란 무엇인가? 내적치유는 내 속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다. 즉 마음과 감정, 고통스런 기억, 그리고 꿈을 치유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증오심과 거부감, 자기연민, 우울증, 죄책감, 두려움, 슬픔, 열등감, 정죄 또는 무가치감 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다. 내적치유와 성인아이의 회복은 그리스도안에서 온전케 되는 성장과 성화의 과정으로 사실상 동일한 경험을 일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양육과정에서 받았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는 과정을 회복이라 부른다.

교회내의 성인아이 회복운동. 일찍이 어거스틴은 교회를 아픈 사람으로 가득차 있는 병원에 비유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침을 받기 위해 의사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문제로부터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우리는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만 과거의 모든 정서적 고통이 일시에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 상처가 치유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치유전문가들은 회복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험중의 하나이며, 동시에 가장 힘든 경험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회복은 우리 생활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지만, 이것은 우리가 통과해야 할 고통스런 골짜기"임을 상기시키면서 대개 건강한 태도와 문제해결기술이 우리 삶 속에 통합되려면 2-3년이 걸린다고 충고하고 있다.

현대의 기독교는 오랫동안 알코올중독, 도박, 근친상간, 음식중독, 이혼, 종교중독과 같은 문제를 외면한 채 "성자들의 박물관"과 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교회는 마땅히 "아픈 사람들을 위한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는 죄인을 위한 병원이어야지, 성자들을 위한 박물관처럼 기능해서는 안된다.

성인아이는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는가? 신체적 질병이든 마음의 아픔이든 치유에 필요한 것은 우선 정확한 진단이다. 환자의 바람직한 태도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독서와 대화는 우리의 상태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책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책을 읽고 지원그룹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치유와 회복에 필수적이다(참고도서 참조할 것). 따라서 전문가들은 성인아이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요법과 지원그룹안에서의 집단상담경험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교회가 병원이라면, 지원그룹은 중환자실에 해당한다. 지원그룹에서 성인아이는 (책이나 테잎과 같은) 약품을 발견하게 되고, 적절한 시설(원형으로 둘러 앉음)을 발견하며, 잘 구비된 직원들(다른 성인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원그룹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성인아이들이 모인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한다. 감정과 경험을 나눔으로서 우리는 억압했던 고통에 직면하고 고통을 재경험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건강한 인격으로 회복될 수 있다. 성인아이의 치료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도덕적, 영적 차원을 모두 다루는 전인격적 접근이어야 한다.

제 3의 물결로 불리우는 성령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예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성인아이의 회복(치료)운동(recovery movement)은 또 다른 차원에서 교회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성인아이로서 회복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찰스 셀은 치유의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①자신의 배경을 검토하는 가운데 어린시절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한다; ②부모의 생존여부와 관계없이 부모와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원한, 죄책감 같은) 문제를 다룬다; ③아동기 경험에서 파생된 (수치심, 우울, 죄책감, 불안과 같은) 정서적 문제와 (충동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중독과 같은) 행동적 문제를 다룬다; ④과거의 상실을 애통해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한다; ⑤영적인 자원에 의지하게 한다.

회복과정은 전인격을 포함한다. 그리고 회복은 평생 지속되는 과정이다. 회복은 휠체어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고통스런 기억을 다루어야 하며, 우리의 강박충동적 성향과 싸워야 하며, 얼어붙은 분노를 해소하는 법을 평생 동안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 성인아이에게 있어서 회복은 성화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원그룹
지원그룹이란 무엇인가? 지원그룹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누가 지원그룹을 필요로 하는가? 지원그룹은 1980년대초 캘리포니아 풀러톤의 제일복음주의자유교회를 중심으로 Overcomers Outreach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는데, 역기능가정에서 자라난 어린이와 십대청소년, 그리고 성인을 위하여 개발한 기독교적 집단상담 프로그램이다. 지원그룹은 1920년대에 빌 윌슨(Bill Wilson)에 의해서 시작된 단주모임(Alcoholics Anonymous: AA)의 12단계원리를 기독교적으로 통합해 적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 45개주에서 매주 800개이상의 지원그룹이 모이고 있다.

또 하나의 지원그룹 운동은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성인아이로 자신을 소개하는 침례교 목사 슬레지를 중심으로 교단을 초월하여 벌어지고 있는데, 1992년에 출간된 그의 집단상담 교재 [가족치유, 마음치유](정동섭 역, 요단)는 4,000개 이상의 교회에서 소그룹 치유사역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성인아이 치유를 위한 지원그룹을 3개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인도하고 있는 곳은 인천가정문화원과 대전신성회상담정보실, 한남대학교 교목실 등이다. 서울 강서구에서는 목회자들끼리의 지원그룹이 별도로 모이고 있다.

목회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목회자는 먼저 설교나 세미나를 통해 사람들이 그들이 자라난 가정이 어떻게 자신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각성하게 도와줄 수 있다. 다음으로 교회는 독서지도와 지원그룹을 지원함으로 교회안의 성인아이의 치유와 회복을 도와줄 수 있다. 이 지원그룹은 목사나 상담치료사에 의해서 인도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만일 목사가 모임을 인도하면, 그것이 성경공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상담자가 인도하면, 그것이 집단상담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사역을 시작하거나 인도할 수 있는 진행자는 1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이다.

목회자들은 부부 단위로 [가족치유, 마음치유]와 같은 교재를 사용하여 치유과정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회자들만을 위한 지원그룹을 별도로 구성하여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도자는 흔히 진행자(facilitator)라 불리우는데 지원그룹에 참여한 경험 자체가 그의 자격요건이 된다. 다시 말해 진행자는 그룹 자체에서 나오게 되어 있으며, 참여자가 매주 돌아가면서 사회를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 아니고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정지향적 교제모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평신도가 평신도를 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갈 6:2)는 신약의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룹회원들은 전통적으로 전문가에 의해서 인도되는 모임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이른바 전문가에게 쏟아붓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태도는 '자 여기 문제를 가진 제가 있습니다. 저를 고쳐 주세요'이다. 그러나 지원그룹에서는 서로가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더 좋아질 책임이 각 회원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나는 당신의 처지와 고민을 이해합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모임에 임한다.

따라서 지원그룹은 비슷한 특성을 지니는 사람들이 참여할 때 더 효과적이다. 남편과 아내가 같은 그룹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비슷한 연배의 남성과 여성이 따로 모임을 갖은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 모임의 취지는 역기능가정에서 해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경험을 대신 해볼 수 있는 순기능가정의 분위기를 서로에게 제공하자는데 있다. 동질성이 지원그룹의 효과를 높이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겠다.

지원그룹을 통한 집단상담의 목표. 지원그룹은 억압되었던 고통스런 기억을 직면하여, 그와 관련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수치심과 분노와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과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성인아이에게는 과거의 고통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 고통을 재해석할 수 있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며, 그에게 고통을 안겨준 부모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목표는 기도와 성경읽기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제와 봉사와 성령충만한 예배가 병행되지 않으면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3단계 치유과정. 정서적 상처는 단시간에 치유되지 않는다. 지원그룹을 통해서 성인아이 참석자들은 어떤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가? 지원그룹은 어떻게 해서 참가자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집단상담 참여자들은 어떻게 자기패배적인 행동과 태도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행동과 태도로 대체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가족의 충격]의 저자 콜린스(Collins)는 여러 가족상담자들의 의견을 다음의 3가지 단계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로, 악순환의 고리를 깨려면 성인아이가 해묵은 고통을 재경험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서적 표현"(emotional expression)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동안 부인하거나 억압하고 은익하였던 분노와 수치심, 슬픔, 죄책감, 상처 등의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얽매인 희생자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경험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크리스찬 심리학자 베너(Benner)는 우리가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려면 먼저 신뢰와 수용의 분위기에서 고통스런 감정을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애초에 받았던 상처로 인해 야기된 옛날의 고통을 재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첫 단계에서 치유적 역할을 하는 두가지 경험은 카타르시스(catharsis)와 고백적인 자기나눔(confessional sharing)이다.

카타르시스란 억압되었던 감정을 정화시키는 과정이다. 보통 눈물로 나타나는 카타르시스는 정서적 치유를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애통은 "상처에 대한 수리적 반응"(reparative response to hurt)이라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과 상실을 슬퍼하는 애통과정은 치유를 가져온다. 이 단계에서 정서적 고통에 대한 또 하나의 수리적 반응은 상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말하고 자기개방(고백)을 하는 것은 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나는 마음의 상처가 아픈 경험과 관련된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가장 잘 치료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관계를 위해서 창조되었는 바, 우리는 이 관계들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상처의 치유를 충분히 경험한다.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시인할 때 진정으로 강해 진다"(Drakeford).

상처의 경험이 치유받기 위해서는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상처는 대인관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사람에 의해서 상처를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치유는 인격적 관계속에서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상처는 나를 용납하고 경청하며 나의 상처와 분노의 표현을 수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누어질 때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의 명령은 우리가 짐을 서로 나누어지라는 것이다(갈 6:2). 짐을 나눌 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고 우리는 힘을 얻는다. "하나님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기 위한 준비과정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경험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이 다른 인간과 경험을 나누는 것을 대치시켜서는 안된다."

고백에는 ①하나님께 하는 비밀스런 고백과 ②특정한 죄를 범한 대상에게 하는 개인적 고백, ③회중이나 집단 앞에서 하는 공개적 고백, 그리고 ④중요한 타인들 앞에서 하는 치료적 고백이 있다. 특히 소그룹의 "중요한 타인들" 앞에서 하는 고백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행동을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치료적인 고백이다.

둘째, 상담자나 지원그룹에 참여하는 성인아이들은 서로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문제들이 애초에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역동적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무의식의 어두운 암실에 숨어있는 괴물은 진리의 빛이 비추이는 순간 그 힘을 상실한다. 우리에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

정서적 상처의 치유를 받으려면,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 상처를 준 사람과 화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셉이 자신의 경험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 형제들을 용서하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창 50:20), 우리는 우리가 겪은 고통스런 경험의 의미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적 통찰은 과거와 현재, 무의식과 의식,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으로 이와같은 인지적 재구성은 언제나 치유와 성장을 촉진한다.

우리는 동시에 악한 죄인(villain)이며 상처받은 피해자(victim)이기도 하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 이들도 나와 같은 연약함과 죄성을 지닌 취약한 인간들이다. 상대방을 악한 가해자로 보고 나 자신을 피해자로 간주하는 방어적 자세는 자기연민만 가중시킬 뿐 치료적이지 못하다. 내가 나 자신의 부족함과 필요에 대처하기에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처럼, 나에게 피해를 끼쳤던 가해자들도 자신의 필요와 부족함과 한계와 상한 감정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와 같은 "아하 경험"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상담자들은 지원그룹 참여자들이 "행동적 변화"(behavioral change)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대인관계 기술을 가르치고, 절제를 배우게 도와주고, 파괴적 관계를 벗어나거나, 중독을 중단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변화는 스스로 책임감을 느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지원그룹 사역자들은 한결같이 이 마지막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은 가해자를 용서해 주고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의지적인 결단으로 혹자는 참된 용서는 우주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용서는 우리가 자유의지의 결단에 의해 행하는 것이지만,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의 선물이며, 은혜의 기적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용서는 마치 목소리와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정서적 아픔을 직면하면, 성령의 도움으로 고통의 의미를 인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되며, 마지막에 가해자를 의지적으로 용서함으로써 삶이 변화된다는 말이다.

영적인 치유 또는 정서적인 치유는 용서를 통해 받는 것이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를 해치고자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대인관계에서 온 상처로 말미암은 분노와 원한감정의 문제를 다루는 중에, 분노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용서를 제시하고 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나가는 말
한국교회는 선교2세기를 앞에 두고 변화의 계기를 맞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변화의 계기를 맞기 위해서는 명제신학에서 관계신학으로의 전환, 과제중심적인 목회에서 관계중심적인 목회로, 교역자중심적인 교회구조에서 평신도를 참여시키는 교회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기독교는 올바른 생각과 앎을 강조해 왔다. 물론 성경공부와 기도, 제자훈련를 통해 명제적 진리를 성도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는 또한 감정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 모두는 고통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실' 목적으로 오셨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대부분 역기능적인 요인을 안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인아이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는 성자들을 위한 박물관에서 병자들을 위한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지원그룹은 "죄인이 다른 죄인을 돕는 기독교 공동체"이다. 상처받은 치유자가 다른 형제자매를 지원하는 치유모임이다. 과거의 묻어 두었던 고통스런 기억을 정서적으로 경험하고, 이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형제자매들과 나누는 가운데 고통의 의미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인지적으로 재해석하며, "사함받은 죄인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의지적으로 용서하는 작업은 전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지원그룹을 통한 집단상담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교회는 예배와 선교와 교육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피차 싸매어주는 이 집단치유 모델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나누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여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는 성경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며 효과적인 접근 가운데 하나다. 예수께서는 새 생명으로 거듭 난 나사로가 베옷에 감긴 채로 걸아나오는 것을 보고, "너희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고 명령하셨다. 우리는 모두 "섬기는 종"으로서 피차 권면(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살전 5:11) 서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참고도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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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7월호)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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