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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성도의 생활

[스크랩] “교회에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교회에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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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만재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에 대하여 저들의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하여 조목조목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옮겼다. 우리 목회자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들의 눈에 비추어진 모습이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일 줄 모르니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삶과 목회 현장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회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교회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1. 노방전도 모습 보면 만정이 딱 떨어진다.

2. 여유 없어 교회 못 가

3. 말 많은 전도사 싫어

4. 부자 교회 천국 갈 수 있을까

5. 내가 믿는 건 나 자신뿐

6. 술 담배도 이해 못하는 교회

7. 종교, 미신과 뭐가 다르담

8. 타종교 타종파에 너무 배타적

9. 종교 없어도 불편함 못 느껴

10. 부모님이 반대하신다.

11. 조용한 교회 어디 없나

12. 교인 아니면 다 사탄인가

13. 기독교는 외래문화

14. 광신도들의 광적 행태 무서워

15. 허황된 성경얘기 어떻게 믿나

16. 팔자 편한 사람들의 교회

17. 동정녀 마리아 잉태 이상해

18. 건축헌금 무서워 개척교회 못 가

19. 세상문화를 사탄으로 매도

20. 꼭 교회에 가야 할 이유 몰라

21. 무교회 종교론에 공감한다.

22. 광란의 기도원 풍경 혐오

23.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 거짓말

24. 하나님 전지전능 못 믿어

25. 종교생활 각종 제약 싫어

26. 교회 요구사항 뻔해

27. 무전여행 때 냉대당했다.

28. 목사 결혼 세속적이다

29. 현찰로 돈 내면 천당서 갚아

30. 유흥업 하는데 예수를

31. 부흥회 가보고 어이없어

32. 형제 자매 장로 집사 호칭

33. 가정파괴 광신도 봤다

34. 세무조사 반대 이해 안 돼

35. 양보 모르는 압력집단

36. 죽은 후 천당에서 영생할까

37. 붉은 십자가 너무 많다

38. 개척교회 과잉경쟁

39. 신체장애 때문에 안 간다.

40. 각종 모임 참석 강요 많다

41. 기업화된 교회 위화감 싫어

42. 빈민구제 외면, 이해 안돼

43. 교회에 쓸 만한 총각 없다.

44. 감사할 줄 모르는 탐욕 메카니즘

45.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 못 봐

46. 교회는 또 하나의 계급사회

47. 교회는 고리타분하다

48. 양보없는 일등주의 세속성

49. 세상과 타협하는 기회주의

50. 교인들은 재미가 없다

51. 인간 약점 이용 겁준다

52. 헌금명단 공표 속보인다

53. 일요일 늦잠 잘 수 없다

54. 자유로운 모험정신 억압

55.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않나

56. 목사 수준 낮은 것 같다

57.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나

58. 교회 종파분쟁 이해 못해

59. 이중인격자 많아 싫어   

60. 헌금따라 사람대접 달라

61. 교회 단순논리 사고력 퇴행

62. 마음 터놓을 깊은 친구 없다

63. 진화론 부인 교리 못 미더워

64. 교회에서 연애 많이 한다.

65. 엉터리 목사 많다

66. 뭔가 달라야 한다는 시선부담

67. 교회 비판 함구는 불문율인가

68. 사기꾼 목사 봤다

69. 예수님 좋으나 교회는 싫어

70. 능력 이상의 직분 강요한다.

71. 꼴보기 싫은 사람 많다

72. 이성교제 제약 받는다

73. 음치라서 찬양 재미없다

74. 지옥협박 고립주의 이해 안 가

75. 자신의 이중생활 가책스러워

76. 아전인수 자기합리화 도구

77. 신분차별 때문에 벽 느꼈다


교회에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발췌)


1. 노방전도 모습 보면 만정이 딱 떨어진다.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큰소리로 “예수구원”, “천국구원” 등을 외치는 이들을 자주 본다. 이상스런 각설이 복장에 화가 난 흉한 얼굴로 “말세!, “종말!”을 외치는 사람도 보았다. 예수 믿으면 나도 저렇게 될까봐, 또는 남들이 저 비슷한 부류로 취급할까봐 아예 교회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신앙의 속성이 원래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도 어떤 이는 묵상하기를 즐기고, 또 어떤 이들은 통성하기도하기를 즐기지 않습니까? 또 스스로 거리로 뛰쳐나가 세상 만인들한테 당장 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예수님의 재림 임박을 간절히 믿는 경우도 있겠지요.

다행한 것은 이제 날이 갈수록 그런 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는 사실이며, 또 이제는 대부분의 목사님들도 그런 방식의 노방전도는 별반 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귀뜀을 하자면 이상스런 언동으로 노방전도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일부는 정통 기독교단 소속이 아닌 사이비 교파 사람들도 끼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런 사소한 이유로 해서 젊은이가 교회를 멀리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젊은이의 냉철한 이성과 지성을 의심할 만한 일도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종교의 모습 가운데 99.9%는 참으로 아름답고 경건하며 진실된 정황이 아닙니다. 0.1%의 상한 기분 때문에 99.9%나 되는 ‘생명의 보물’을 포기하는 미욱한 젊은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참모습은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9. 종교 없어도 불편함 못 느낀다.


왜 그렇게 종교인들은 전도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종교가 없어도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산 속의 산토끼도, 노루도 꽃과 나비도 종교가 없지만 그냥 섭리대로 잘 살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 편하다.


젊은이 못지않게 나는 자유주의자였고 낭만주의자였고 인본 개인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왜 나이 쉰이 다 되어서 아차 하는 뒤늦은 깨달음과 만났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옳다고 믿었던 그런 내 방식대로의 생활 자세가 결국 하나뿐인 내 삶의 도식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방식의 삶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잠복해 있었고, 나의 그런 자유방임적 인생관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행착오가 끊이지 않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번민가 고뇌가 난마처럼 얽히고 꼬여 이제는 더 이상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을 즈음에 나는 한 줄기 눈부신 구원의 서광을 찾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는 헛것들로 가득 찬 나를 비워내고, 꽉 막힌 나를 뚫어내고, 그렇게도 무거웠던 운명의 짐, 자업자득의 짐, 그리고 끝없는 욕망의 짐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내 방식대로가 아닌 말씀의 방식대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오리무중이던 시야가 밝게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에 따라 손을 뻗으면 거기에 올라갈 사다리가 있었고, 말씀에 따라 발을 내딛기만 하면 그곳에 어김없이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오감에 닿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외면하고 살았던 성경 말씀을 진정한 ‘복음’으로 그렇게 꿀맛처럼 감사히 영접해 맞아들인 연유가 그러합니다.

종교는 바로 그 죄를 사함 받고 영혼의 구원을 얻는 데 큰 뜻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만일 “내겐 종교가 필요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처럼 살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영혼의 얘기입니다.


46. 교회는 또 하나의 계급사회?


예수님은 항상 만인을 평등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을 낮추고 낮은 곳으로 임하라 명령하셨는데 오는 날 우리네 교회의 낮은 곳에는 언제나 나와 같은 끗발 없는 평신도들밖에 없다. 보이게 안 보이게 귀족 따로, 평민 따로의 계급이 존재하는 조직이라면 교회가 세상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형편없는 인간들도 각종 헌금을 왕창 많이 내기만 하면 교회의 귀족이 된다.


세상적인 필요목적에 의해서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는 심정이 그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밖으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야 할 때가 많고, 보고서도 못 본 척 외면해야 할 때가 목사님들한테는 참 많답니다. 그러면서 혼자서 남몰래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지요. 맑지 못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말씀의 감화를 통해 언젠가는 맑은 심성으로 돌아오기를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지요. 맑지 못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말씀의 감화를 통해 언젠가는 맑은 심성으로 돌아오기를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지요.

말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온유한 마음으로 참으면서 기다리는 목사님의 모습, 장로님들의 모습은 평소 우리의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이의 경우와 같은 부정적 시각에는 잘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언의 실체를 헤아리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신실한 자기 신앙을 쌓아 가는 것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갖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코앞의 산도 볼 수가 없답니다.


65 엉터리 목사 많이 있다


헌금도 말고, 매매도 말고, 그냥 돈과는 일절 상관이 없는 그런 교회는 혹 어디 없을까?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성직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어서 일까요? 성직자의 비리에 대한 기사들, 소문들은 나도 더러 알고 있습니다. 고해성사 때 애정고백을 듣고 파계해버렸다는 신부 얘기도 들었고, 밤이면 가발 쓰고 유흥가를 출입한다는 중 얘기도 들었고, 남의 재산을 탐한 나머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가며 사리사욕을 꾀했다는 목사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지 아무튼 세상이 그렇게 돼가고 있네요. 그러나 세상에는 오로지 말씀이 명하는 바에 따라 누구보다도 가장 낮은 곳에서 오롯한 희생과 헌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훌륭한 성직자들이 백 배 천 배나 더 많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지방의 어떤 생선에 일시적으로 비브리오 균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평생 생선을 먹지 않고 사는 바보가 되어야 옳습니까?

사과 상자 안에 가끔씩 썩은 사과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평생 과일을 먹지 않고 살아야 옳습니까? 서울 시내 어느 지역의 공기가 특히 탁하다고 해서 평생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수많은 훌륭한 교회들과 수많은 훌륭한 성직자들이 헌신 사역하고 있는 사회에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사실도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답니다. 그냥 단순한 시각 차이일까요?


69.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어


중학교 때 한동안, 그리고 고교 때도 1학년까지는 가끔 교회에 다녀봤다. 그런데 대학에 올라온 이후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 ‘어쩐지’ 에 대해서 지금 곰곰 생각해 보고 있는데 결론은 이런 것이다. 교회의 각종 제도가, 각종 불문율이, 교회 사람들이 각종 형태나 눈치나 수준이 싫은 것이다. 교회가 지능적으로 교묘히 돈을 밝히는 것도 물론 매우 싫다. 이런 생각을 무례하게 써서 미안하다. 그러나 솔직히 예수님은 좋다. 교회에 나가서 그냥 혼자서 예수님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아무 교회에나 기꺼이 나가겠다. 당장 오늘이라도!


젊은이는 언젠가 반드시 신실한 신앙인으로 제 모습을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지금 내게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훌륭하심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사실만도 얼마나 반가운 가능성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것은 누구누구처럼 멋진 사람이 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수준 높은 사람으로 고고히 살겠다는 데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수준’에 맞지 않는 세리와 창녀와 장사치와 좀도둑들을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가까이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멀리에 있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래서 거짓말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우선 가까이에 있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벽하지 못한 그 문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통과해야지만 비로소 예수님 근처에 접근할 자격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것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오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74. 지옥 협박, 고립주의 이해 안 가


이미 오래 전 얘기지만 나는 잠시 동안의 교회생활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의 교회생활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의 교회시절을 떠올리면 언뜻 기억나는 게 무시무시한 지옥 불구덩이 협박이고, 그 뒤에는 항상 겁을 주는 징벌협박(채찍)이 따른다. 속 보이는 당근과 채찍......., 사람을 뭘로 보는가. 나는 교회식으로 세상과 고립된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화목하고 친근하게 잘 지내려는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는 섭리라고 부릅니다. 우연과 섭리를 구분해서 볼 줄 아는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말로는 왜 그렇게 처참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늘아래 최강을 자랑하던 로마제국은 왜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오늘의 우리 인류 위에 덮여온 에이즈의 공포나 환경재해의 공포는 애초 어디서부터 그 사단이 비롯되었는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속의 교리를 당근과 채찍과 술수쯤으로 허술히 여기는 젊은이의 비뚤어진 시각이 심히 염려됩니다. 또 젊은이는 세상의 가치를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해석의 오류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가치를 존중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죄악투성이 일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사랑과 봉사와 희생으로 껴안아야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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