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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손에 오기까지/이슬람에 관한 상식

자료

 
1. 이슬람이란 어떤 종교인가
2. 이슬람의 개요(Islam at a glance)
3. 이슬람의 교리-5주(五柱)
4. 6신(六信) : Iman
5. 이슬람의 도덕 체제(Moral System of Islam)
6. 이슬람에서 하나님의 개념(Concept Of God In Islam)
7. 이슬람에서 예언자의 지위(Prophethood In Islam)
8. 사후(死後) 의 삶(Life After Death)
9. 이슬람에서 인간의 권리(Human Rights In Islam)
 
 
학자는 단지 판단 자료의 분류와 분석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과학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 한다. 더욱이 인간은 지난 수세기 동안 과학이라는 현대적인 관념으로 연구와 조사에 몰두해왔으나,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사후의 삶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숭배하고 사후의 삶을 믿도록 명하였다. 선지자들은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확고 했기 때문에 심지어 그것에 대한 약간의 의심조차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든 다른 믿음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느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그들 사이에 수천 년이란 기간의 간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후의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그토록 확신을 같고 한결 같이 다루었다는 그 사실은 그들 모두에 의하여 공포되었듯이 사후의 삶에 대한 지식의 출처는 같았다는 것, 즉, 신의 계시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큰 문제는 그들의 백성들이 이사실에 대하여 불신 하였기 대문에 그들로부터 많은 이의를 제기 받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아주 많은 진실한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무엇이 그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공통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 선조들이 갖고 있던 확고한 믿음, 전통 그리고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그들의 심적 능력으로 진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지각 (知覺) 을 통하여 진실을 깨달았는가? 그렇지 않다, 사후의 삶에 대한 지각적인 경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느님은 지각 의식 이외에 이성적, 심미적 그리고 도덕적인 의식을 또한 사람에게 부여하셨다.

지각의 자료를 통하여 입증되어질 수 없는 사실들에 관하여 인간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식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사후의 삶이 인간의 심미적, 도덕적 그리고 이성적인 의식에 호소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면 메카(Makkah)의 우상 숭배자들이 사후의 삶의 대한 가능성조차도 부정했을 때 성 꾸란은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증을 펼쳐나감으로써 그들의 논리의 결점이 드러나게 하였다: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것들을 지어내며 그가 창조된 것을 잊어 버리고 말하기를, “바짝 말라버리고 부패한 이 뼈에 누가 생명을 부여 하느냐? ” 라고 하더라. 말하라, 하나님께서 최초에 그들을 창조 하신 생명을 그들에게 주리라! 그분은 모든 창조에 관하여 알고 계시기 때문 이니라. 그분은 너희들을 위하여 푸른 나무로부터 불을 만드시니 너희들이 그것으로부터 불을 피우리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분이 그와 흡사한 일을 할 수 없단 말이냐? ” 결코 아니니,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지고한 창조주 이시기 때문 이니라 ! (성 꾸란36장 78-81절)

또 다른 경우에서 성 꾸란은 불신자들이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에 논리적으로 올바른 어떠한 근거를 갖고있지 않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은 억측에 근거를 두고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세의 삶 이외에 우리에게는 어떠한 것도 없으며, 우리는 죽고 우리는 살며 시간 외에는 어떠한 것도 우리를 멸하지 못하느니라 ” 라고 말하니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며 단지 추측할 뿐이라.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이 그들에게 전해 졌을 때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것을 믿는 사람들 이라면 우리의 선조들을 데려오라! ” 라고 주장하더라.(45장 24-25절)

확실히 하나님은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며 모든 사태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갖고 계신다. 모든 우주가 파괴되고 다시금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부활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결코 끝나지 않을 삶의 시작이고, 그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이나 악행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후의 삶의 필요성에 관한 성 꾸란의 설명은 인간의 도덕적인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후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은 부적절한 것이 되거나, 또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한때 인간을 창조하였으나 인간의 운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될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며, 그들의 일시적인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 따위의 셀 수 없이 많은 범죄들을 저지르는 폭군들에게 하나님은 벌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매우 짧은 수명을 갖고 있고 이러한 물질세계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인간들의 악행이나 훌륭한 행동에 동등한 처벌이나 보상이 이 세상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성 꾸란은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 하느님은 인간 각자의 행위에 대한 기록에 따라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결정하실 것이라고 매우 단호하게 언급하고 있다 :

불신자들은 “그 시간은 결코 우리에게 오지않을 것이라 ”고 말하니:

말하라, “그렇지 않느니라! 주님을 두고 맹세하니 틀림없이 그것은 너희에게 다가올 것이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계시는 그 분에 의하여 ……”(34장 3절)

부활의 날은 정의와 자비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이 완전히 표명되는 날이 될 것이다.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그들을 기다려 왔다는 믿음으로 현세의 삶에서 그분을 위하여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삶을 전혀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악용한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날은 인간들 행위에 대한 선악을 구분하며 이에 관하여 성 꾸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이들 둘이) 서로 같으냐? 하나는 우리가 훌륭한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의 이행에 다가가고 있는 자이니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주었으나 심판의 날 (벌받기 위해) 불려 세워질 자들 중에 있게 될 자이니라. (28장 61절)

또한 성 꾸란은 현세의 삶이 사후의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임을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들의 열정과 욕구의 노예가 되어, 고결하며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임종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더 이상의 기회가 부여되기를 간구하지만 결국 허사가 된다. 그들의 임종 시 비참한 상태, 최후의 심판 일의 공포 그리고 진실한 신자들에게 보장된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다음의 성 꾸란 구절에 매우 훌륭하게 언급되어 있다 :

죽음이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이르렀을 때, “오! 나의 주님이시여, 제가 게을리 하였던 정의로운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돌려보내 주소서, ” 라고 그가 말하니, “불가하노라 ! ” 진실로 그것은 그가 애원하는 말에 불과하니 그에게는 부활의 날까지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성 꾸란 (23장 99-100절)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은 내세에서의 구원을 보장하여 줄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이 행동하는데 있어 가장 책임 있고 성실하게 행함으로써 이세상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만들어 준다.

그들이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던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Arabia) 사회는 도박, 술, 부족간의 불화, 약탈 그리고 살육이 그들의 주된 특성이었다. 그러나 유일신과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자 곧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수양 된 민족이 되었다. 자신들의 악습을 버리고 필요 시 서로를 도왔으며 그들의 모든 논쟁들을 정의와 평등의 기초 아래에서 해결하였다.

마찬가지로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은 내세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그것 자체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한 민족이 전체적으로 그것을 부정할 때 모든 종류의 해악과 부패가 그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종국에 가서 그 국민은 멸망한다. 성 꾸란은 아드 싸무드(Aad Thamud)와 파라오(the Pharaoh)의 끔찍한 종말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싸무드와 아드의 민족들은 심판의 날을 부정하니, 싸무드 민족은 무시무시한 괴성에 의하여 멸망하였고 아드 민족은 사나운 폭풍에 의하여 멸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7일 밤 8일 낮 동안 계속해서 벌하시니, 너희들은 그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게 되리라, 대추야자나무의 밑둥이 처참히 쓰러지듯, 너희들은 그들 중에 살아남은 누구를 볼 수 있겠느냐? …….성 꾸란(69장 4-8)

따라서 사후의 삶을 믿는 매우 설득력이 있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의 백성에게 사후의 삶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믿도록 촉구하였다.

둘째, 인간 사회가 이러한 믿음의 기초 위에 건설 될 때, 그것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이며 해악이 없는 가장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었다.

셋째, 선지자의 반복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 집단에 의하여 진리가 거부될 때 그 집단 전체가 현세에서도 하나님에 의하여 벌받았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넷째, 인간의 도덕적, 심미적 그리고 이성적인 능력은 내세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다섯째, 정의와 자비의 하나님의 속성은 만일 사후에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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