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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손에 오기까지/이슬람에 관한 상식

이슬람 세계

사막과 낙타를 연상하게 되고 베두윈 또는 히잡을 쓴 여성이 떠오르는 먼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지난 2001년 뉴욕에서 가공할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뒤로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고조되었고, 그만큼 이슬람 세계와 종교, 문화에 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논의와 질문들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무슬림들은 과연 호전적인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들인가? 이슬람 세계는 일부다처제만을 고수하는 사회인가? 이슬람 세계는 남녀불평등 사회인가? 등이 아마도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질문인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무슬림들이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이슬람종교를 전파했다고 선전해왔다. 오랫동안 이슬람이 호전적인 종교인양 묘사하면서 이슬람의 폭력성을 부각시켜온 것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슬람을 다룬 내용들은 대부분 악의적인 편견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그런데 무슬림들이 아직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많은 서양세계 지식인들조차도 ‘호전적 이슬람’,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즘’과 같은 말을 분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쓰면서 이슬람이 위협적이고 도전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호전성이야말로 이슬람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폭력사태의 근원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1,400년의 이슬람 역사에서 이슬람 공동체는 안팎으로 화해와 용서, 절충과 합의를 통한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십자군 원정에서처럼 서방과의 충돌과 대립에서 침략행위자는 거의 서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이슬람이 비신도에 대적하는 전쟁을 의무화하고, 단지 비신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을 살해하라고 명령하는 무자비한 폭력의 종교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다시 탈환한 살라딘(1138~1193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이고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최상의 가치관으로 교리에 담고 있는 평화의 종교이다. 이슬람의 의미는 평화이며, 하나님의 99개 이름 중 하나도 평화이다. 무슬림들의 일상의 인사말도 평화를 나타낸다. “앗 쌀람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세 있기를)” 평화는 이슬람의 본질이요, 의미적 상징이요, 목적이다. 88년 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무슬림과 유대인에게 저질렀던 대량학살과 포악스러운 약탈행위와는 반대로, 살라딘은 투항하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자비를 베풀고 용서와 화합의 선정을 베풀었다. 이러한 그의 기사도적 관용정신은 서양에서도 널리 알려져 사자왕 리처드에 버금가는 정의와 평화의 영웅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무슬림들이 얼마만큼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초목까지도 존귀하게 다루고자 했는지는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아부 바크르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632년 제1대 칼리파로 등극하자마자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획했던 시리아 원정을 시행하였는데, 이때 젊은 사령관 오사마 빈 자이드에게 군사 지휘권을 맡기면서 어린이, 노약자, 부녀자를 살상하지 말 것, 수목을 해하거나 불사르지 말 것, 과실을 자르지 말 것, 소나 낙타 등 짐승을 도살하지 말 것, 인명과 재산을 보호 할 것, 신앙에 충실할 것 등 전장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군인들에게 훈시했다. 제2대 칼리파 오마르도 똑 같은 선례를 남겼다. 634년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에 들어 갔을 때 오마르는 모든 종교 공동체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들의 생명과 재산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예배장소도 그들로부터 결코 빼앗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으며 그대로 실행했다. 이슬람의 영역에 있는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그 사람이 무슬림이든 아니든 고귀한 것으로 보호받는 것이 이슬람의 정신이요, 관행인 것이다. 이슬람은 살인자에 대한 처벌과 전시에서의 전투상황, 정당한 자기 방어 행위와 같은 합법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라도 인간생명에 대한 위해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꾸란”은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다.

“…너희는 진리로써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성스럽게 하신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기독교가 전쟁과 적극적 포교활동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 간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전파도 정복사업과 선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전역과 중국의 중앙부로부터 캄보디아, 베트남,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지역에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 들인 것은 무슬림 상인들과 무슬림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개인적 노력 때문 이었다. 또한 이슬람이 표방하고 있는 형제애, 평등, 자유 같은 가치관과 교리의 단순함, 중용주의, 관용성 같은 좋은 점들 때문이었다.

만약 이슬람이 칼로 교세를 넓혔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고 자리매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관용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많은 개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슬람은 평화와 정의의 종교이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결코 강요해서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꾸란”에서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신앙의 자유는 이슬람의 원리이자 기본정신이다. 설사 일시적으로 강요나 강제에 굴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서구인들이 이슬람의 원리주의 운동의 확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도전과 위협, 문명의 충돌을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식이고 방어 의식 때문이라는 것이 현대 이슬람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두 번째 질문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들인가?” 를 간단히 살펴보자. 사실상 오늘날 서양세계에서 알 카에다와 같은 과격급진 무장세력과 온건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구별하지 않고 마치 무슬림은 모두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고 원리주의자는 모두 급진 무장조직의 일원인 것처럼 혼동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20세기 초 독립을 쟁취한 신생 아랍 이슬람 국가에서는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개혁적인 사고를 지닌 근대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서구의 제도, 문물, 사상을 받아들여 이를 이용해 교육, 행정,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을 주도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과학과 선진 기술 등 서구문명의 장점을 수렴하여 낙후된 무슬림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이들의 근대화 개혁주의는 서구와 손을 잡고 정권을 이어가기를 원하는 서구편향주의자, 세속적 민족주의자, 실용주의자들을 낳았다.

한편 무슬림 사회 일각에서는 서구식의 지나친 세속화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무슬림을 각성시켜 순수 이슬람 원리에 충실한 근본주의적 개혁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서구이념들을 배격했다. 또한 무슬림 사회에 만연한 외래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원래 이슬람의 이상과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며 이슬람 국가 재건을 외쳤다. 이들이 바로 이슬람 원리주의자(근본주의자)들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이슬람 법으로 통치되는 이슬람 국가를 목표로 삼고 이슬람 부흥운동을 전개해가는 이슬람 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원리주의 조직 내부에서 일부 급진 무장세력이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서구식 실용주의나 세속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서구이념들을 무조건 거부하고 서구적 사고와 삶의 방식에 등을 돌린다. 이들은 매우 소수지만 비밀리에 조직원을 훈련시키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각종 테러행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세속화한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고, 2차 목표는 이러한 타락한 정부를 지원하는 서양세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들과 원래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원리주의자로 부름으로써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무슬림 급진 문장세력은 타락한 세속정부나 서방세력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허용되고 또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집트의 대통령 사다트는 이들의 손에 피살당하였고, 무바라크를 비롯한 여러 세속정권의 지도자들이 아직도 타도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1990년이후 이들이 자행해 온 무모한 테러행위는 서양세계 뿐만 아니라, 무슬림 사회에서 조차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과격 무장 세력들은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 무슬림들도 이들의 무모한 테러행위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온건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누구든지 남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자는 특정이념의 신봉자 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무슬림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일부 다처제와 무슬림 여성의 낮은 지위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해 갖는 편견과 오해의 주제이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던 미개사회 제도인 일부다처제가 아직 일부 이슬람 국가에 남아 있기 때문에 무슬림사회가 봉건적이고 남녀불평등 사회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무슬림들은 과거 무슬림 사회의 일부4처제야말로 진정 여성을 위한 제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많은 현대의 무슬림 법학자들도 이 제도가 차선으로 열려있는 것이지, 무슬림 사회의 보편적 제도는 일부일처제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 제도는 서기 624년 우후드라는 전투에서 무슬림 군대가 참패한 뒤 생겨났다. 전쟁에서 많은 남자들이 죽자 무슬림 공동체에는 갑자기 수많은 과부와 고아가 발생했다. 이들을 구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한 남자가 4명까지 아내를 맞아 들일 수 있는 일부4처제였던 것이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출현한 이 제도가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점 때문이다. 또 비록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직도 이 제도가 법에 따라 관용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근대 이슬람 개혁운동의 선구자인 무함마드 압두(1847~1905)는 이 제도에 관련된 “꾸란”의 구절을 재해석하고 현대 무슬림 사회에서 더 이상 일부 다처제는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너희가 고아들을 바르게 기르지 못할까 두렵다면 그때는 너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러한 둘, 셋 또는 네 명의 여인과 결혼하라. 그런데 만약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한 여인만 취하라.”

이와 같이 한 명 이상과 결혼을 한다면 부인 각자에게 공평한 대우와 동등한 정읠르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네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코 공평하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다른 구절을 들어 공평한 대우를 할 수 없음을 밝히고, “꾸란”의 근본취지는 어디까지나 일부일처제라고 말하였다. 이후 튀니지, 터어키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하고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다른 무엇보다 이슬람이 평등의 종교임을 강조한다. 인종, 피부색, 언어, 사회적 지위, 빈부의 차이 등으로 차별 받지 않는 사회가 진정한 무슬림 공동체라고 자인한다. 그러나 서방 언론에서는 매우 자주 이슬람 세계가 대표적인 남녀차별 사회인 것 처럼 표현하고 있다. 남녀가 평등하고 상부상조의 관계임을 “꾸란”에서는 “남녀신도들은 서로가 보호자이니라”, “여성은 남성의 옷이고, 남성은 여성의 옷.”이라고 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꾸란”은 종교적인 임무와 수행에서도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혼인과 이혼, 여성의 재산권, 상속권도 매우 구체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며 남녀의 동등한 지위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능과 일에서 남성과 여성의 유별을 강조한다. 예컨대, 남성은 경제적 부양의 의무가 있고, 여성은 자녀교육과 가정의 보호라는 의무가 있다. 남녀의 권리는 동등하나 각기 역할과 일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남녀의 지위가 동등함은 “꾸란”에서도 명백히 증명된다.

“그들의 주님께서 그들에게 답하시기를 실로 나는 남자든 여자든 너희들이 행하는 어떤 일도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로다. 너희는 서로 동등하니라.”

오히려 이슬람은 여성에 관해 기독교 사회에서 알려진 몇 가지 그릇된 관념을 교정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브의 아담 유혹설이다. 이슬람 전통은 이브가 하나님께 불경하고 아담을 유혹해서 신의(神意)를 배반하게 하였고 결국 추방당하게 되었다는 설을 부정한다. “꾸란”은 분명히 둘이 함께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아 죄를 범했으며, 그 뒤 하나님은 회개한 이들을 용서하셨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여성이 사악함의 원천이라거나 원죄인이라거나, 특히 남성은 여성의 머리라는 생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꾸란”은 아담과 아브라함의 아내들, 모세와 예수의 어머니들과 같은 여성들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이들의 지위를 높였다. 특히 마리아와 사라에게는 천사가 방문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할 만큼 이들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높은 지위였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오늘날 몇몇 이슬람 국가들에서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일선의 여성들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여성 수상 베쿰 칼레다 지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그리고 지난 2001년 7월 대통령에 당선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서장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먼저 이슬람이 단순한 신앙체계만이 아니라 종교와 세속 모두를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삶과 종교가 일치하는 독특한 가치관의 세계이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전쟁, 협상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항상 이슬람의 깃발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교분리의 세속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서구인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슬람권과 오랫동안 첨예하게 대립해온 서양이나 미국의 언론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접하고 굴절된 서구의 프리즘으로 그들의 사회를 잘못 들여다보는 사례가 많았다.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리는 나름대로의 객관적 시각을 갖고 이슬람 사회의 제도, 관습, 종교,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