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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손에 오기까지/이슬람에 관한 상식

5,성직자 제도가 없고 샤리아를 따르는 제도

이슬람에는 성직자 제도가 없다. 이 점 또한 다른 종교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슬람은 신과 인간 사이에 영적인 어떠한 중간매체도 두지 않으며, 인간과 신의 직선적 관계를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예배, 선교, 교육 등 종교생활의 운영방식에서 타 종교인들과 다른 면을 보인다. 종교교육자나 선교사를 따로 두려 하지 않고 스스로가 선교사이고, 스스로가 누구보다 훌륭한 교육자임을 자처한다.

예를 들어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맘이 될 자격은 사막의 베두윈이거나 여행자이거나 젊은이, 무식자, 걸인 등 누구에게나 부여되어 있다. 이맘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특별교육과정이나 성직수임식, 안수식 같은 어떤 절차나 의식을 거치치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이맘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며, 이슬람교에는 기독교의 성직자 계급같이 특별한 영적 자질과 권위를 갖고 종교적 의식과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평신도와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 또는 사제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신의 본질, 신의 위엄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동등한 지위인 것이다. 이같이 이슬람은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신 앞에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무슬림은 누구나 똑같다. 무슬림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신에게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울라마는 이슬람 종교에 관한 지식을 쌓은 무슬림 법학자, 신학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성법의 수호자로서 간혹 중세 기독교 사회의 성직자들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울라마와 기독교 성직자의 지위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울라마는 성직자는 아니다. 단지 종교에 관한 가르침과 올바른 인도를 할 수 있는 지식인들로서 높은 학식 때문에 무슬림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무슬림 학자들일 뿐이다. 이들도 역시 울라마가 될 때 어떤 자격증 수여식이나 특정 종교의식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죄를 용서한다거나 파문을 선언하는 일 같은 초인적 지위에서나 행할 수 있는 권한은 더더욱 갖고 있지 않다. 그들도 똑 같은 무슬림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어떤 방법을 통하더라도-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한다거나 둘 사이의 관계를 이들이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즉 이슬람에는 주교나 신부, 목사와 같은 사제 신분이나 영적 인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은 완전히 신의 소유라고 무슬림들은 생각한다. 신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은 전혀 다르고 관련이 없는 것으로 양자간의 구분이 분명하다. 신은 유일한 존재자, 절대자이고 인간은 다만 신을 경외하며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슬람은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직선적 관계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종교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중재자도 둘 수 없다. 중보다(仲保者)나 영적 중개인이란 존재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맘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공동체의 수장인 칼리파도 신앞에서는 평신도와 똑같다. 이 점이 중세 기독교세계에서 황제와 교황의 지위와 이슬람 칼리파의 지위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다. 칼리파의 권력은 절대 권력이 아니다. 그가 공동체 안에서 종교문제에 대한 모든 지도권을 소유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권위나 권력이 신과의 관계에 직결되어 있다거나 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칼리파는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고, 무슬림은 종교수호와 세속정치에 대한 그의 능력과 자질을 신임하고 그에게 충성 서약을 함으로써 칼리파의 권력이 비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리파제도는 절대권력의 전제적인 통치권제가 아니고 신에게서 권력을 수임하는 신정주의의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움마 구성원들의 찬동(충성서약)에 따라 움마와의 계약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를 탄핵하고 직위를 해제할 권한을 공동체가 갖고 있는 일종의 민주적 제도인 것이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특별한 법체계를 갖고 있고 모든 무슬림은 이 법체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의 삶은 샤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샤리아는 아랍어로 길을 뜻하는 말이다. 무슬림이면 누구나 ‘복종하고 좇아야 할 길’로서 ‘알라께 나아가는 길’이며 그 목표는 신의 의지에 귀의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무슬림은 이 길을 잘 지키고 따라가기만 하면 누구나 신의 의지에 도달하고 복종하며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샤리아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달리 ‘신앙과 실천의 체계’이고 현세의 삶을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공동체 생활 내에서의 실용적 요구가 신학보다 먼저 법학을 발전시키고 체계화시켰다.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인의 길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믿는데 있는 것이라면, 무슬림의 길은 바로 이 샤리아를 받아들이고 이에 복종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울라마들은 이 법이 신이 만든 것이지 인간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법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요 임무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규율을 확인하고 해석하며 정리하고 설명해 내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즉 그들 중 누구도 독단적으로 절대적인 해석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것은 법학자들간에 법 해석의 다름과 유연성을 낳았다. 따라서 상이한 법학파들이 이슬람세계의 상이한 지역에서 권위 있는 학파로서 인정 받게 되었다. 이들 4대 법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가 수집하고 성문화한 피크(법)의 기본 골격은 모두 같은 것이다. 다만 일부 세세한 사항에서만 해석과 실천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순니 무슬림들은 누구나 이 4대 법학파 중 한길을 택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샤리아는 무슬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행위를 구속한다. 샤리아의 준수의무는 무슬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칼리파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물론 이슬람 역사에 출몰하던 무슬림 군주들이나 강력한 실제 권력을 쥔 통치자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점이 기독교 전통에서 교회법과 국가법 사이에 발생하던 갈등관계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 기독교세계의 황제와 교황간의 관계와, 무슬림 전통에서의 칼리파제도 또는 법제도가 근원적으로 다른 점이다.
한마디로 이슬람 국가는 신법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이다. 이것은 무슬림 세계에서의 법과 정치이론은 곧 종교교리에 근거한 것으로서, 신의 계시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체계와 정치이론이 기독교 교리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법은 기독교 발생 이전에도 엄연히 존재하였고,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교회법과는 별개로 시행되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서방사회와 이슬람 사회가 다른 점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꾸란” 으로부터 교리와 법이 똑같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서방세계나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종교, 도덕상의 죄(sin)와 법률상의 죄(crime)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슬림세계에서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라는 이종(二種)의 검(劒)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이자 국가’라는 이슬람의 전통적 정교일원론은 변할 수 없는 무슬림들의 신앙이다. 이들은 정치제도와 관련된 정치원리들이 “꾸란”에 명시되어 있고 예언자도, 그 후 후계자들(정통 칼리파들)도 이 원리들을 국가 통치에 실제로 적용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세속 국가들의 기본 목표는 공익(Public Interest)을 실현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 공익의 개념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정치철학과 이상, 사회, 경제 사상들에 따라 국가마다 다를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주요 특색을 갖는다. 첫째, 현세의(dunyawiy), 세속의 (jamaniy) 것이라는 점이다. 이 개념 속에는 정신적, 종교적 요소는 들어 있지 않다. 둘째, 헌법 제정의 권한을 갖는 국민들의 중의를 집약시켜 공익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국가는 중의가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공익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공익결정은 정치적 힘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익이 이와 같은 정치권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견해, 시대조류, 이념 같은 것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슬람 국가에서 공익과 복리는 종교를 세움으로써 성취되는 것이고, 샤리아에 복종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슬람 국가와 서방 또는 현대 세속국가의 목적과 역할 사이에는 이 같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국가의 구성요소 중 주권에 대한 기본 개념도 다르다. 이슬람 법에 따라 주권은 신에게 속하며, 국가나 국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의 국가기관은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한다. 신법에 따라 제한된 범위내의 집행권만을 행사할 뿐이다. 서방세계의 강대국들은 20세기 초부터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슬람 국가에 정착시키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다당제, 의회제도, 선거제 같은 것은 이슬람의 원리에 맞지만 주권재민이라는 기본 개념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식 민주주의를 추진해야 하며 서구제도와 사상을 평행적으로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서구인이나 우리가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꼭 알고 있어야 할 사항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