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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세계 의 역사 속으로

페르시아 포르셀리스

페르시아(이란)의 포르세폴리스는 어떻게 파괴 되었을까?

페르시아의 영욕의 세월을 찾아서 지난 12월 11일부터 12월 18일까지 8일간 이란의 옛 수도 '파사르가데'와 옮긴 수도 '포르세폴리스'(이란의 남부 쉬라즈에서 80여Km 떨어진 사막 한 가운데)를 둘러 보고 왔다.

페르시아(기원전 559년 - 기원전 333년)는 고대 이란의 옛 이름으로 첫번째 왕인 고레스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인 5만명을 자기 나라로 귀환시킨 왕으로 이란에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고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차지한 왕으로 선지자 '이사야' 는 그를 가르켜 '메시아', '목자'라고 불렀던 왕이었으나 다른 왕들처럼 화려한 궁궐을 짓거나 화려한 무덤을 남기지는 않았다.

첫 수도인 '파사르 가데'에 있는 아파다나 궁 유적지를 둘러 봤다.

추춧돌 몇개가 고작인 옛터는 사막 한가운데 덩그라니 남아있다. 대 제국 페르시아가 이곳에서 탄생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파사르 가데에 있는 아파다나궁 입구 추춧돌 자리

 

6개의 주춧돌자리는 시멘트로 봉해 있어 볼 수는 없었다.

 

아름답던 정원터는 온갖 잡초들만 무성한 사막지대가 되어 있다.

 

기둥마져도 없어진(사우너이나 궁을 짓는다고 가져가 버림) 아파다나궁터

 

돌기둥만 남아 세월이 무상을 이야기한다.

 

돌기둥 하나만 복원을 해 놨다.

 

팔레비왕 때 궁전을 복원하기위해 뜯어갔던 원래의 기둥들을 제자리로

돌려다 놓았으나  복원을 못하고 지금은 뒹글고 있다.

 

궁궐 기둥위 부분은 모두 사라지고 기둥뿌리만 남았다.

 

복원을 다시 시작한 부분

 

돌기둥 밑부분

 

고레스왕 시대에 만들어진 파수대를 복원하는 모습

 

고레스 대왕의 묘

이곳은 파사르 가데 남쪽 끝에 있는데 동서양을 잇는 '왕의 대로' 선상에 있다.

외형은 완벽하게 보전이 돼 있다. 무덤은 두부분으로 나뉘었는데 밑 바닥의

높이가 5.5m인 6개의 사각계단형으로 이뤄져 있고 그 위에 5.5m인 석실이 있다.

이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인간! 나는 캄비시아의 아들, 고레스,

바사(페르시아)제국을 세웠고 아시아의 주인이다. 나와 내 비문에 원한을 품지 말아라."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포르세폴리스를 파괴한 후 이 비문을 보고 한탄을 했다고 한다. 

이 비문을 먼저 보았더라면 포르세폴리스는 온전하게 보전이 되었을 것이다.

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파사르가데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페르세폴리스로 갔다.

이곳은 화려한 궁궐터로 다리우스 1세가 즉위를 한 후 건설한 페르시아의 새 수도로 산을 배후에 두고 사면을 이용하여 석조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궁전, 후궁, 보물창고, 기록 보관소, 아파다나(알현전),백개의 기둥으로 된 화려했던 백주궁궐터 등이 있고

지금은 박물관도 만들어져 그 시대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 화려한 건물들은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파괴를 했다고 한다.

(기원전 330년)알렉산더대왕은 이곳에서 금은 보화를 5만마리의 나귀에 싣고 고국 마케도니아로 가져갔는데 금은 보화로 인해 마케도니아에 인플레가 이루어져 곤욕을 당했다고 한다.(너무 과한 것도 병이다. 라는 교훈을 준다.)

이도시를 파괴한 원인은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치고 아크로폴리스를 파괴한 보복으로 파괴를 했다고 한다.

보복의 악순환이라할까.. 아니면 인과 응보라 할까....

이곳을 파괴한 알렉산더 대왕이 고레스대왕 무덤의 비문을 보고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는 이치를 깨닫고 후회를 했다고 한다.

(악연의 악순환인 셈이다.)

 

페르세폴리스 유적 입구

 

파괴된 궁궐터

 

파괴되다 남은 석주들

 

행운의 상징 호마(현재 이란항공의 상징이 됨) 이 말이 사람위로 지나가면 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해서 옛날에는 궁궐의 기둥위에 얹어 놓았으며 지금은 비행기에 장식을 해 놓았다.

 

호마를 앞에서 본 모습

 

추줏돌 자리만 남은 궁궐터

 

궁궐기둥에 새겨진 왕의 행차 모습

당시의 왕은 다른사람보다 앉으나 서나 키가 커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왕을 크게 부조해 놨다.

 

페르시아의 유물

 

 

 

 

 

 

 

궁궐 입구의 석주

 

신하들이 거주 했다는 처소터

 

산위에 있는 신전 터

 

산 위에서 내려 다 본 궁궐터

 

왕들의 무덤(배화교 : 조르아스터교도 들은 왕이라도 흙을 더럽힐 수 없다고 하여 절벽에 동굴을 파고 묻었다. ) 당시 페르시아는 조르아스터교를 믿는 나라였다. 조장을 했다. (새에게 시체를 주어 먹게하고 남은 뼈를 절벽에 묻었음.)

조르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은 불을 신성시하여 지금도 2400년된 불을 꺼지지 않게하고 신전에 모시고 있으며 무덤은 + 가로 장식을 했는데 이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물, 흙, 불, 바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함.(4가지 신성물을 사람이 함부로 더럽힐 수 없다고 생각을 함.)

 

페르시아의 마지막왕 다리우스 3세의 + 형 절벽무덤

(알렉산더 대왕의 명에 의해 성대하게 묻어 주었다고 함.)

 

마라톤 전쟁에 진 페르시아는 기원전 480년에 다시 아테네로 쳐들어가 아테네의 아코로폴리스를 철저히 파괴하였다.(당시 페르시아 왕은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왕이라고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왕비의 부왕)

살라미스해전에 의해 아티카에 침입을 한 페르시아군에 의해

아크로폴리스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기원전 334년 3만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알렉산더대왕은 그라니코스강을 건너 페르시아군을 물리치고 페르시아를 멸망시켰으며 도망을 가던 페르시아의 마지막왕인 다리우스 3세는 기원전 330년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임을 당해 고레스대왕이 시작한 페르시아는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곳을 방문하고 복수는 복수를 몰고 오며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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