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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관해/심리학 이야기

[스크랩] 죄책감 치유

 

죄책감 치유


(마26:75) 



서론: 모든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왜 모든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느냐?

 1) 롬3:10에 '의인이 한 명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인이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①도덕적으로

  ②윤리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도덕과 윤리를 배웠지만 그것 다 지키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

는가? 오히려 어릴 때 배운 도덕과 윤리를 다 지키지 못함으로 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2) 원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

사람들은 특별히 원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

서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원래 죄인이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다고 할 수 있다.


 3) 세 가지 문제로 죄책감을 느낀다.

  ① 의외로 물질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부모나 형제, 그리고 사업상의 어떤 문제로 금전적인 것이 깨끗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괴로워 죄책감으로 자리잡은 경우도 있다.

  ② 그리고 감정적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건이나 일로 인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어떤 실수로 인하여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③ 성적인 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많다.


 어떤 청년이 상담을 요청하기를 3년 전에 사귀던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그 후에 그 자매와 헤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다른 자매와 교제 중에 있으며 곧 결혼을 할 것

같은데 한 가지 고민은 3년 전에 그 자매와 있었던 성적인 관계를 말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 이것 때문에 고민이 되어서 상담을 요청하게 되었는데 성경적인 답을 달

라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3년 전의 그 실수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말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답하기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첫 번째는 '형제의 잘못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사함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형제는 그 자매에게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것이다. 그

러므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 자매에게 그 사실을 밝혀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밝히지 말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결혼 이후에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아내에게 충실

하는 것이 곧 아내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권면 했다.


 4) 그런데 이 죄책감은 우리를 평생 따라 다닌다.

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늘 새로운 죄를 짓게 되어 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죄를 짓지 않을 자신이 없다. 무슨 죄를 짓든지간에 짓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저는 또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 죄책감이 우리에게 죄책감이 큰짐이 되는가?

   ① 폭로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폭로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죄가 폭로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할 죄인데 다른 사

람이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

부모에게, 또는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자신의 허물이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죄

책감에 더 시달리는 것이다.

   ② 거부의 두려움

그 다음에 따라 들어오는 것이 사람들이 나를 거부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

문에 죄책감이 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환영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자신의 죄가 드러남으로 사람들의 거부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죄책감이 짐이 되는 것이다.


1. 그럼 죄책감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

질문을 하나 하겠다. 죄책감은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

다시 말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좋은가?  느끼지 않는 것이 좋은가?


 1) 죄책감은 우리에게 유익한 면이 있다.

죄책감을 느낀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① 폭군

만약 한 나라의 대통령이 죄책감이 없다고 한다면 굉장한 폭군이 될 것이다.

국민을 무차별하게 학살을 하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니까 더 많은 생명들을 죽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죄책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인해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두려움을 가지고

조심하게된다.  죄책감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와 수준이 똑같은 사람

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죄책감을 느껴야 된다.  왜? 원죄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이다. 

  ② 행동제한

또 우리의 죄책감 때문에 행동을 스스로 제한 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죄책감이 나를 유익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이다.  내가 죄를 짓고 타락을

하고 싶어도 죄책감이 있기에 쉽게 행동을 못한다는 것이다.

  ③ 갱신의 기회

이미 죄를 범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이 우리에게 해로운 면도 많이 있다.

  ① 정신과 육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

왜 그렇느냐? 죄책감을 잘 다스리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의 육신과 정신에 굉장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려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람, 죄책감으로 인해

육신적인 문제가 오는 사람, 심지어 죄책감으로 인해 자기를 자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죄책감은 파괴하는 힘도 있다.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이 있다.

  ② 자신을 고립시키고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함.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고립시키고 영적으로는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 빨리 해방되고 영적으로 힘을 얻어야 되는데 죄책감 때문에 눌려서 기도도 못하고

말씀도 못 듣는 그런 사람들도 많다.

  ③ 죄책감을 상상력을 가지고 키우지 말라.

우리가 굉장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과거에 지었던 죄를 죄책감으로 인해

상상력을 동원하여 키우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자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에 그 자매에게 죄를

하나 뒤집어씌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매는 그 모든 것을 잊고 있었으며

기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형제는 그 자매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으며 미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 그 자매의 소개로 중매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 그

자매가 소개해 준 자매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결혼한 이후였다. 결혼생활이 평탄했으면 그럴 리가

없었을 것인데 어려움이 닥쳐오고 결혼생활의 위기가 오자 그 형제는 지금의 아내를 소개

해준 자매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속으로 "그 때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앙갚음

으로 자기 친구를 내게 소개해줘 평생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나친 상상력으로 죄책감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

이며 꼭 치유되어져야 할 생각들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죄책감을 키워나감으로 분노에 차

있는 분이 있다면 오늘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치유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

린다.


2. 그럼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중에서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1) 아담과 하와(창3:8-12)가 죄책감을 느꼈다.

창3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

하고 피해 숨어버린다. 그럼 왜 아담이 하나님을 피했으며 숨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담에게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따먹은 것이다. 분명히 하

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실과였다. 그런데 아담이 따먹은 것이다. 그러니 아담에게는 따먹지

말라고 한 실과를 따먹은 죄책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숨었던 것이다.


2)  다윗(시38:13)도 죄책감이 있었다.

밧세바를 취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다윗에게 있었다. 그래서 회개하는 시를 지었던 것이다.


3) 베드로(마26:75)의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너희 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님을 따를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이 한 말대로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연약한 소녀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다. 이때 닭이 울므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울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베드로가 가진 죄책감이다. 


4) 그럼 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은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 받아야 겠는가?

만약 여러분들이 이 죄책감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 속에

사단의 집을 세워두고 있는 꼴이 된다. 그래서 사단은 그 죄책감이라는 집을 통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괴롭힌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이 무엇이든지

간에 치유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오늘 죄책감 치

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단의 집을 허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

이다. 음란의 집을 무너뜨리고, 열등감의 집을 무너뜨려야 한다. 치유메세지를 통하여 내

안에 역사하는 온 갖 더러운 사단의 그림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오늘 이 응답을 받게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3. 죄책감에서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1) 자기의 죄를 시인하는 것이다.

  ① 요일1:9 :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된다. 즉 우리의 죄를 회개하라는 말이다. 

  ② 시103:12 :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또 죄사함을 위해 기도하면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옮겨버리겠다"고 하셨다.

  ③ 히10:17-18 : 저희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다시는 우리의 죄를

위해 드릴 제사가 없다고 하셨다.

이미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다 사함 받은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믿음이 있어야 치유가 된다.

저는 약 11년 전에 죄책감으로 굉장히 시달린 적이 있다.

하루는 과거에 지었던 죄가 나를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할 정도로 죄가 나를 괴롭

혔다. 지난 날 지었던 죄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렸다. 그 죄 때문에 내가 눌려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밤맛도 없었고 사람들 만나기도 싫었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잠

이 오지 않아서 하루는 그동안 내가 지었던 죄와 내가 착한 일을 하였던 모든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래가지고는 착한 일 하나 빼고 죄 하나 빼고, 또 착한 일 하나 빼고 죄 하나 빼고

하기를 밤새도록 했는데 결국 남는 것은 죄밖에 없었다. 그 죄의 짐으로 너무 눌려 기도원

으로 금식기도 하러 갔다. 금식으로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는데

  ① 골1:14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곧 구속 죄사함을 얻었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읽는

순간 그렇게 나를 누르던 죄책감이 한 순간에 도망가고 말았다.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었지

만 그때만큼 이 말씀이 분명히 내게 들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골로새서 1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분명히 조금 전에 읽고 지나갔는데 다시 읽을 때

  ② 골1:13이 나를 완전한 확신가운데로 인도했다

"그가 우리를 흑암에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셨다"고 하셨다.

이때 너무나 기쁜 나머지 추운 겨울날 밖으로 나가 양손을 벌리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

소리를 지르며 죄책감에 얻은 자유함을 감사함으로 찬양을 했다. 한 두 시간 정도 찬양했을

때 손이 어는 것 같아서 그 손을 양호주머니에 넣고는 발로 뛰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

고 했다. 한참 뛰다보니 숨이 차서 산에 들어 누운채로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저의 생애에 최고의 영적축복을 누렸던 것 같다.


  3) 죄책감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 말씀은 꼭 명심해야 한다. 사람에게 잘한다고 해서 죄책감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올바를 때 치유가 되는 것이다.


결론

  1) 우리가 완전히 죄책감에서 자유함을 얻고 해방 받았다고 할지라도 성격에 따라 죄

책감이 다르게 온다.

  ① 율법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죄책감을 오래 가지고 가고

  ② 복음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방종에 빠지기가 쉽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자신을 잘 알고 다시는 죄책감에 빠지거나 방종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

도록 해야 한다.


  2) 이 죄책감에서 지속적으로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때 그 때 증거되어지는 하나

님의 말씀을 붙잡고 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강단메세지가 중요한 것이다.


  3) 롬8:2을 오늘 꼭 기억하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 그러므로 지난

날의 죄로 인하여 눌릴 필요가 없다. 오늘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

린다.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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