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작
노엄 촘스키ㆍ에드워드 허먼 지음
■ 책 소개
현 시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 노엄 촘스키(MIT 교수)와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권위자 에드워드 허먼(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명예교수)이 함께 쓴 『여론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Manufacturing Cons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Mass Media)은 언론의 속성과 생리를 낱낱이 파헤친 현대 미디어론으로 촘스키의 저술 가운데 가장 많이, 오랫동안 읽히는 책으로 자리잡았다.
이 책은 언론이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도한다는 신화를 통렬히 해체한다. 「뉴욕타임스」「타임」「워싱턴포스트」 CBS NBC와 같은 미국의 주류 언론 미디어들이 다룬 인도차이나 전쟁과 라틴아메리카 선거 등 1960년대 이후 미국이 제3세계에 개입한 주요 사건 사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서 미국의 주류 언론이 얼마나 선전적이며, 어찌하여 세상을 이해시키는 정보 제공자라는 이미지 구축에 총체적으로 실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언론의 역할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노엄 촘스키ㆍ에드워드 허먼
노엄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창시한 세계적 석학이자 제국주의와 권력 비판의 선봉에 선 실천적 지식인이다.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1951~1955년까지 하버드 대학 특별연구원으로 선임되어 이곳에서 변형생성이론을 정립하여 언어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195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해 MIT 교수에 임용되었다. 19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기점으로 현실 참여를 시작하여 진정한 자유와 사회 변혁을 주창했다. 동티모르 사태,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정책과 패권주의, 정치․경제․미디어를 장악한 지배권력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왔다.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일컬어진다. 주요 저서로는 『통사구조』『언어 이론의 논리적 구조』『불량국가』『숙명의 트라이앵글』『패권인가 생존인가』『환상을 만드는 언론』『지식인의 책무』 등이 있다.
에드워드 허먼은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의 재정학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언론의 신화』『기업의 통제, 기업의 권력』『진정한 테러 네트워크: 실제와 선전에서의 테러리즘』, 그리고 프랭크 브로드헤드와 함께 쓴 『전시용 선거: 도미니카공화국, 베트남,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이 기획한 선거들』『불가리아 커넥션의 진실』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제1장 선전모델
제2장 가치 있는 희생자와 무가치한 희생자
제3장 제3세계의 정당한 선거 대 무의미한 선거: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제4장 KGB와 불가리아의 교황 암살 음모: '뉴스'를 가장한 자유시장의 허위정보
제5장 인도차이나 전쟁 ①: 베트남
제6장 인도차이나 전쟁 ②: 라오스와 캄보디아
제7장 결론
부록1 1984년 과테말라 총선거에 파견된 미국 공식 선거감시단
부록2 불가리아 커넥션에 관한 탈리아부에의 마지막 기사
부록3 브레스트럽의 『빅스토리』: "프리덤하우스의 독점 보도"
감수의 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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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작
선전모델
언론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으로서 기능한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ㆍ신념ㆍ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그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다. 그런데 부가 편중되어 있고 계층의 이해가 충돌하는 세계에서 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려면 체계적인 선전이 필요하다. 권력의 핵심이 관료의 손에 있는 나라에서는 흔히 언론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수단에 공식적인 검열이 추가된다. 이 때문에 언론은 지배 엘리트층의 목표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선전모델은 부와 권력의 불균형, 또한 그것이 언론의 이익과 선택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돈과 권력이 뉴스 보도를 여과하고 반대의견을 무시하며, 정부와 우세한 사적 이익집단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중에게 전달하도록 만드는 경로를 추적한다. 선전모델의 기본 요소, 다시 말해 뉴스를 ‘여과’하는 장치들을 큰 항목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규모, 집중된 소유권, 소유자의 부(副), 거대 언론기업의 수익 지향성, ② 언론의 주요 수입원인 광고, ③ 정부, 기업, 그리고 이들 일차적인 정보원이자 권력의 대리인들로부터 자금과 인정을 받는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언론의 의존, ④ 언론을 훈육하는 역할을 하는 ‘강력한 비난(flak)', ⑤ 국가적인 종교이자 통제 메커니즘으로서 ’반공주의‘. 이 여과장치들은 뉴스의 원료를 연속적으로 걸러내어 인쇄하기 좋게 세탁한다. 또한 담론과 해석의 전제를 규정하고, 뉴스 가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아울러 선전캠페인의 원칙과 역할도 설명한다.
첫 번째 여과장치 : 언론의 규모, 소유권, 수익성 지향
정부, 통신사와 더불어 뉴스 의제를 결정하고 상당 건수의 국내 및 국외 뉴스를 하위층의 언론과 대중에게 공급하는 장본인이 최상위층에 속한 언론사들이다. 이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업체들이며 대단한 부자들이 소유ㆍ관리하고 있다. 거대 언론사의 경영진은 이사회와 사회적인 유대를 통해 재계의 주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또한 거대 언론사들은 이사들과의 유대 이외에도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 종사자들과 협력하면서 신용 대출을 원활하게 받고 주식 매각과 채권 문제, 그리고 인수 기회와 인수 위협을 다루는 데 대한 조언을 듣고 도움을 받는다. 은행과 타 기관투자자들 역시 언론사의 대주주들이다. 이런 언론기업은 다른 대기업, 은행, 정부와 긴밀하게 얽혀있고 상당한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뉴스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첫 번째 여과장치다.
두 번째 여과장치 : 사업 허가서로서 광고
광고가 호황을 누리기 전에는 신문사들이 판매수익으로 영업비용을 충당했다. 그러나 한층 성장한 광고의 유혹에 넘어간 신문사들은 생산비용을 한참 밑도는 가격으로 신문을 팔아도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언론은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싼 판매가격으로도 이윤을 남길 수 있으며, 광고를 하지 않는(광고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약한 경쟁자들을 침식해 들어간다. 광고주가 TV 프로그램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간단히 그것을 구매하고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은 비우호적인 언론기관을 차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원칙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별하기도 한다. 대기업 광고주들은 환경 파괴, 군수산업, 혹은 제3세계의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이익을 챙기는 기업 활동에 심각한 비판을 가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세 번째 여과장치 : 뉴스의 정보원
언론은 경제적인 필요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정보 제공자와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뉴스가 자주 발생하고 소문과 비밀이 무성하며, 정식 기자회견이 열리는 곳에 자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는 뉴스의 구심점이다. 재계 역시 뉴스 거리를 꾸준하고 믿을 만하게 공급한다. 마크 피시먼(Mark Fishman)은 이를 “관료에 대한 친화성 원칙”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관료 조직만이 뉴스 조직의 정보 공급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뉴스제작자들은 정보 제공자라는 굳건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뉴스를 발표하는 언론 조직의 편의에 모든 것들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네 번째 여과장치 : 플랙과 외압
‘플랙(flak)'은 언론의 표현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대응을 일컫는다. 플랙이 대규모로 발생하거나 상당한 재력을 지닌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제기된다면 언론은 그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으며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 특히 큰 희생을 치르게 할 만큼 위협적인 플랙을 생산할 능력을 가진 주체는 권력층이다. 광고주들도 지원을 철회할 수 있다. 플랙을 만드는 사람들은 서로의 힘을 보강하면서 뉴스 활동의 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한다. 주요한 플랙 생산자인 정부는 언론을 공격하고 협박하고 ’교정하면서‘ 정해진 테두리 밖으로 일탈을 막으려고 애쓴다.
통제 메커니즘으로서의 반공주의
마지막 여과장치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다. 공산주의는 궁극적인 악으로서 항상 재력가들을 따라다니는 망령으로 취급받았다. 이 이데올로기는 적에 대항하도록 대중을 선동할 수 있으며, 모호한 개념을 바탕으로 재산권을 위협하거나 공산국가, 급진주의와의 화해를 지지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을 견제할 수 있다. 반공주의의 통제 메커니즘은 제도를 통해 언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빨갱이 소동이 벌어진 시기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라는 둘로 나뉜 세상을 기준으로 논쟁이 형성된다. 경쟁하는 양편에 이익과 손실이 할당되고 ‘우리 편’을 옹호하는 것이 완전히 정당한 뉴스 보도로 간주된다.
이분법과 선전캠페인
다섯 가지의 여과장치는 문을 통과하는 뉴스의 범위를 좁히고, ‘빅뉴스’가 될 수 있는 것을 크게 제한한다. 1차적인 정규 정보원에서 나온 뉴스가 중요한 여과장치의 요구조건을 충족하면 언론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반대자, 약하고 조직되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에 관한 정보는 정보비용과 신뢰성에서 일차적인 불이익을 받으며, 여과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통제자를 비롯한 여러 권력자들의 이데올로기, 이익과도 배치된다. 언론의 일반적인 이분법은 여과장치가 작용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가치 있는 희생자들을 박해하는 일은 여과장치를 통과할 뿐만 아니라 선전모델의 지속적인 근거가 된다. 정부, 재계, 언론은 어떤 이야기가 극적이면서도 유용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치중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대중을 계몽한다. 이것은 1983년 9월에 발생한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을 보아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공식적인 적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확산시켰고 레이건 행정부의 무기 계획을 크게 진전시켰다. 그러나 1973년 2월에 이스라엘이 리비아의 민간 항공기를 격추한 사건에 대해 서방에서는 아무런 항의도, ‘냉혹한 살인자’라는 비난도, 보이콧도 없었다. 요컨대 선전의 관점에서 언론 보도에 접근한다는 것은 강력한 이익집단의 편의성을 기준으로 뉴스 보도를 체계적이고 매우 정치적으로 이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분화된 뉴스 선택 기준, 그리고 보도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다.
가치 있는 희생자와 무가치한 희생자
선전 시스템은 적국의 학대받는 사람을 ‘가치 있는’ 희생자로, 자국이나 우방국에서 똑같이 혹은 더 가혹하게 학대받는 사람을 ‘무가치한’ 희생자로 취급한다. 가치의 유무는 언론이 보이는 관심 혹은 분노의 범위와 성격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차별적인 보도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동안에도 언론, 지식인, 대중은 진실을 모른 채 매우 도덕적이고 정직한 성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선전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예르치 포피엘루슈코와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순교자들
1984년 10월, 폴란드 경찰에 의해 살해된 폴란드의 신부 예르치 포피엘루슈코에 관한 보도와 미국의 영향권 안에서 살해된 신부들에 관한 보도의 차이는 좋은 예다. 선전모델을 적용하면, 적국에서 살해된 포피엘루슈코는 가치 있는 희생자인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우방국에서 살해된 사제들은 무가치한 희생자들이다. 따라서 전자는 언론의 대대적인 선전을 유도할 것이고, 후자는 지속적인 보도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포피엘루슈코 사건을 10차례에 걸쳐 신문 1면에 대서특필했다. 그들은 살해된 포피엘루슈코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이 같은 무자비한 폭력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각인시켰다. 반대로, 1983년 11월에 살해된 과테말라의 프란시스코회 주임 신부 아우구스토 라미레스 모나스테리오, 포피엘루슈코가 살해된 같은 달에 실종된 과테말라 신부 미구엘 앙헬 몬투파르, 그리고 당사국의 신문에만 대대적으로 보도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순교자 수십 명에 관한 기사는 전혀 싣지 않았다.
예르치 포피엘루슈코는 활동적인 신부이자 폴란드 자유노조운동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폴란드의 비밀경찰들은 살해나 위협을 목적으로 1984년 10월 19일 그를 납치했다. 감금되어 구타를 당한 그는 재갈을 문 채로 저수지에 버려졌고, 며칠 후 사체로 발견되었다. 포피엘루슈코 살해사건에 관한 보도는 경찰이 그를 다룬 행위와 발견된 사체의 상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풍성하게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언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설명을 반복했다. 법정에 선 경찰들의 모습을 찍은 수많은 사진이 노골적으로 공개되었고, 여기에 경찰의 사악한 인상을 설명하는 극적인 내용도 덧붙여졌다.
과연 얼마나 높은 직책의 인물이 이 사건을 사전에 알고 승인했는가? 미국의 언론은 기사를 내보낼 때마다 이 질문을 제기했다. 수많은 기사들이 소련 연루설을 주장했고, 「뉴욕타임스」의 마이클 코프먼(Micheal Kaufman)은 이 신문을 선두로 미국의 언론들이 소련과 불가리아를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던 교황 암살 사건을 두 번이나 끌어들였다. 잔혹행위가 강력한 선전을 통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 책 전체에 걸쳐 강조하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선전의 거부가 미국과 언론이 보호하는, 선전의 영향이 훨씬 더 클 수 있는 살인적 우방국에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뉴욕타임스」는 살인적인 폴란드와 살인적인 엘살바도르의 차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루틸리오 그란데와 72명의 무가치한 희생자들
페니 러눅스의 순교자 명단에 있는 72명의 무가치한 희생자들은 「뉴욕타임스」와 「뉴스위크」에 각각 8건과 1건의 기사로 다루어졌을 뿐이다. 예수회 소속의 루틸리오 그란데는 농민들이 자조단체를 조직하도록 도운 진보주의자였다. 지방 지주, 경찰, 군 지휘관은 그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엘살바도르 교회에서 그는 국민적인 인물로 통했고 대주교와는 친구 사이었다. 그는 1977년 3월 12일 미사를 집전하던 중 10대 청소년 한 명, 72세 농부와 함께 총에 맞아 숨졌다. 신부의 몸을 벌집처럼 만들어놓은 총탄의 구경은 경찰이 사용하는 멘저 총의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 지역의 통신망이 한 시간 동안 두절되었다. 그 지역에서 순찰하던 경찰의 행방도 묘연했다. 로메로 대주교와 성직자들은 자신들을 향해 가중되는 폭력 위협에 대한 대응조치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그들은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신문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살인사건과 교회의 대응이라는 완벽한 상품은 극적인 요소와 뉴스 가치에서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살인사건, 결사적인 교회와 억압적인 국가 간의 대치, 그리고 교회가 자기방어를 위한 지지를 얻으려고 실시한 극적 조치는 미국의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루틸리오 그란데 살인사건은 「뉴스위크」에는 언급되었지만, 「뉴욕타임스」 「타임」 그리고 CBS 뉴스의 독자나 시청자에게는 단 한 번도 전달되지 않았다. 이것은 테러가 아무런 방해 없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했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엘살바도르 기독교회의 최고 성직자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된 것은 ‘빅뉴스’였으며, 그 속에 담긴 정치적인 암시도 대단했다. 살해 당시, 로메로 대주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정부가 살인을 이용한 억압 정책을 펴자 앞장서서 노골적인 비판을 가했다. 로메로 신부는 살해되기 불과 몇 주 전에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도 엘살바도르 국민의 이익을 훼손하는 군사정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편지를 썼다. 카터 행정부는 비밀리에 교황과 접촉해서 대주교를 꾸짖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로메로는 단순히 ‘무가치한’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는 군부와 소수 독재자들의 지역적인 연맹과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중요한 행동가였다. 미국 언론은 이 사건 관련 보도를 하면서 부정직하고 선전적인 뉴스의 새로운 수준을 보여줬다. 미국 언론의 설명은 간결했고 로메로 지지자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그들의 분노를 전달하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살인을 용인할 수 없으며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구나 인용문도 전혀 없었다. 「뉴욕타임스」 역시 이 사건에 관한 사설이나 비난 기사를 전혀 내보내지 않았다.
제3세계의 정당한 선거 대 무의미한 선거: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제3세계의 선거는 선전모델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미국의 시각에서 우방국에서 열리는 선거는 기존 권력자와 정권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 반면, 적대적인 국가에서 열리는 선거는 그들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치러지는 것이 된다. 1982년과 1984년의 엘살바도르 선거는 진정한 전시용 선거였으며, 1984년과 1985년의 과테말라 선거는 미국이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강력하게 지원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1984년의 니카라과 선거는 레이건 행정부가 해체ㆍ전복하고자 했던 정부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니카라과 선거를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렸다.
선거 선전의 방향
전시용 선거를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의제 및 상징 조작을 통해 그 선거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민주주의’라는 근사한 말을 끌어다 붙여놓고 선거를(이후로는 민주주의를) 지원하면서 군사정권의 뒤를 밀어주었다. 그러고는 내부 갈등의 상황에서도 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떠들었다. 미국은 홍보의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공식 감시단을 선거 현장에 파견했다. 이들의 명목상 역할은 선거의 ‘공정성’ 확인이었지만, 진정한 역할은 미 정부의 의제를 강조하고 언론의 관심을 믿을 만한 정보제공자에게로 돌려 정당성이라는 겉모습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미국 정부의 목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선발된 데다가 언론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선전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우호적이지 않거나 적국에서 열리는 선거에서는 미국 정부의 의제가 완전히 뒤바뀐다. 그때의 선거는 민주주의와 상관이 없고, 미국의 관리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선거가 치러지는 것에 경탄하지 않는다. 그들은 군으로 하여금 선거를 보호하거나 결과에 승복하라고 촉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에 의한 통제와 지원을 등에 업은 집권당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본다. 이 경우에는 이른바 선거라는 거짓 수단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선거를 실시하는 당국의 숨겨진 의도가 강조된다.
1982~1985년 사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선거의 기본 조건
1982년에서 1985년 사이에 선거를 치른 이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극심한 분쟁을 겪고 있었다. 니카라과는 미국이 조직하고 지원하는 반정부세력(콘트라)이 주기적으로 국경을 침범했고, 엘살바도르에서는 내전에다 외부(미국)에서 조직되어 자금을 지원 받는 대 게릴라전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과테말라는 인디오 대다수를 비롯한 농민들이 자기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임으로써 앞서 언급한 게릴라전의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정치 체제의 중심에 폭력적인 억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는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보다 니카라과에서 훨씬 더 순조롭게 치러졌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앞의 두 나라의 경우는 선거기간에 맞춰 군대가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살해하는 데 열중하면서 극도로 가혹한 살인의 형태가 판을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카라과의 상황은 달랐다. 더 큰 차이는 산디니스타 정부가 대다수의 요구를 충족하려고 노력했고, 따라서 더 폭넓은 연설과 단체교섭의 자유를 허락할 수 있었던 대중적인 정부였다는 데 있다. 선거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친 세 번째 요인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서는 분쟁이 내부적으로 발생했고, 대중을 상대로 한 테러가 투쟁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니카라과의 분쟁은 주로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공격이 대세를 차지했다. 네 번째 요인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적대감과 선전기관의 힘이었다. 미국의 자유언론은 니카라과에서 벌어지는 체포와 가혹행위를 공론화해서 산디니스타 정부의 악랄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니카라과 정부는 선을 넘지 말라는 강한 압력을 받았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강압 정책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선거의 투표자 수는 선거와 그 후보자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를 반영한다. 그러나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선거(여기서는 니카라과의 선거)에서는 이 같은 기준이 사라지는데, 투표자 수는 당국에 의한 선택의 제한이나 강압적인 위협에 의한 결과이므로 무시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된다. 엘살바도르의 선거는 ‘체제 전복기도자들’을 대규모로 학살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군의 통제 속에서 열렸다. 투표도 법에 의해 강요받았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특별 재무평가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 역시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5케찰(1.25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반면 니카라과에서도 선거인 등록은 의무적이었지만 투표 행위는 법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또한 선거 당일에 신분증을 제시하는 유권자 등록증을 선거감독자가 관리했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은 행위를 증거를 통해 확인하고 보복의 근거로 삼을 수 없었다.
엘살바도르 : 미국 언론은 어떻게 ‘미치광이 살인기계’를 풋내기 민주국가의 수호자로 탈바꿈시켰나?
미국의 언론들은 1982년에 실시된 엘살바도르 선거를 보도하면서 정부의 견해를 아주 충실히 따랐다. 후보자들에 대한 인물 비평, 투표를 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 반군의 테러 가능성, 그리고 ‘투표자 수’를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엘살바도르 정부가 투표 참여를 법적으로 강요한 사실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라 크로니카」와 「엘 인데펜디엔테」가 폐간되고 선거 이전에 26명의 언론인이 살해된 사건조차 선거의 질과 의미를 논하는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1982년 3월 이전과 이후에 군대와 그 결탁 세력은 수많은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이런 행위가 계엄령과 더불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자유로운 토론이나 선택권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언론은 이 문제를 일절 다루지 않았다.
결국 선거가 끝난 뒤에 전쟁은 재개되었고 암살단의 활약도 계속되었다. 선거의 진정한 목적이 미국 국민을 달래고 전쟁과 테러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가설과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엘살바도르 국민이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는 가설은 얼토당토않다. 정직한 언론이라면 이 선거가 “총알용 투표용지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음을 지적했을 터였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언론은 1982년뿐 아니라 그 이후로 많은 경험을 하고 난 뒤에도 1984년에 다시 애국적인 의제를 따르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중도파 후보를 선택하며 첫걸음을 내디딘 과테말라”
레이건 정부는 1984년과 1985년 선거를 독려하고, 선거 관리를 위한 조언과 재정 지원을 제공했으며, 공식 감시단을 파견하는 등 선거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한 홍보를 아끼지 않았다. 과테말라 선거는 엘살바도르 선거보다 훨씬 덜 보도되어 좀더 ‘균형’을 찾았으나 변명식의 기사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미국의 언론은 과테말라 장군들의 살인적인 통치를 문제삼지 않았고, 반란의 원인에 대한 어떠한 합당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았다. 「타임」은 오히려 과테말라 정부의 대규모 살인은 반란세력을 진압해야 한다는 명백한 필요성에 의해 반쯤 정당화되었다고 밝혔다.
과테말라의 선거와 관련한 언론의 정보원은 미국 관리, 공식 감시원, 가장 유명한 과테말라 정치 후보자, 장군 등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니카라과에서는 ‘주요 야당’으로 불린) 반군 세력, 소수당, 시민단체, 교회, 인권단체의 대변인들과 일반 시민들은 근본적으로 언론과 차단되어 있었다. 언론이 정보의 출처를 확대했다면 선거의 기본적인 조건이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났을 터였다. 미국 정부의 관점에서, 반군은 주요 야당이 아니었고, 과테말라의 국가적 테러는 단순히 홍보상의 불편일 뿐이었으며, 선거는 공정했다. 그리고 과테말라 선거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이 같은 정부의 선전 의제를 아주 잘 반영했다.
니카라과 : 불법화 조작에 기여한 언론
레이건 행정부는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의 경우와는 반대로 니카라과의 총선거를 불신하는 데 주력했다. 산디니스타 정부가 정당화되면 결국 테러국가에 대한 지원을 옹호하는 논리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니카라과가 선거를 계획하기 시작할 때부터 줄곧 선거의 질이 의심스럽다고 표명했다. 미 행정부는 두 우방국의 선거를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한 만큼이나 니카라과 선거를 가능하면 최악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니카라과 선거에는 일부 최고의 자격을 갖춘 인사들을 포함해서 450여 명의 외국 참관인이 있었으며,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 파견된 미국의 공식 감시원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자유롭게 선거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타임」을 비롯한 언론들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서 반군이 투표권을 박탈당한 사실은 미국의 언론을 조금도 동요시키지 않았지만 니카라과의 경우는 완전히 반대였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반군과, 후보들을 배제하는 것은 선거의 질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언론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이를 잘 따라주었다. 니카라과 선거에서 미국의 관리들이 강요한 극적인 주요 선전방침은 산디니스타로 하여금 정당한 경합을 벌일 수 있는 개방적인 제도를 만들도록 촉구하기 위한 아르투로 크루스의 노력, 충분히 인정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 크루스의 경합 거부, ‘주요 야당’에 대한 ‘배제’였다. 무력과 공작에 의해 배제된 엘살바도르의 실질적인 주요 야당은 무시하면서 자발적으로 후보를 내세우지 않기로 결정한 니카라과의 ‘주요 야당’을 강조하는 데서 언론은 별다른 고민 없이 정부의 선전방침을 받아들였다. 니카라과에서는 자유선거를 위한 기본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잘 지켜졌고 강압적인 요소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다는 것은 언론의 구조적인 편향성을 증명하는 뚜렷한 증거이다.
인도차이나 전쟁 ①: 베트남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개입한 전쟁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격렬한 논쟁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 특정한 사건들에 관한 자세한 분석과 포괄적인 연구가 잇따랐다. 결론은 대체로 언론이 대중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확산시켰고, 불공정하고 부적절하고 편향적인 보도를 계속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이끌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전모델의 예측은 사뭇 다르다. 선전모델은 언론이 베트남전을 보도하고 해석하면서 관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미국이 남베트남을 적의 공격과 테러로부터 지켜주고 그곳의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을 위해 참전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선전모델은 언론이 미국의 박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중요한 문제마다 공식 노선을 고수한 데 대한 비난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는 이러한 언론의 행위를 깨닫지도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논쟁의 범위
이 논쟁에서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져 배제된 선전모델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즉 언론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을 다루는 데 정말로 ‘부주의’했다. 그러나 ‘좌파(주전론자의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의견을 뜻하는)’는 실질적으로 제외된 일반적인 ‘저널리즘-문학-정치 문화’에 따라 공식적인 워싱턴의 관점에 근접한 특별하고 잘못된 의견에서는 매우 ‘애국적’이었으며, 기업 엘리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선전모델은 이것이 일반적으로 보도 주제와 보도 방식을 선택하는 데서 참이고, 훨씬 더 중요하게는 쟁점이 짜여지고 뉴스가 보도되는 전제의 일반적인 배경에서도 참이라고 예측한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엘리트의 의견은 점차 미국의 개입이 ‘비극적인 실수’였다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비용 소모가 지나치게 컸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고, 줄곧 배제되었던 전술적인 문제가 포함될 만큼 논쟁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명분이 정당했는지, 의도가 고상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여전히 보도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관한 논쟁은 한쪽으로는 미국이 충분한 노력으로 “남베트남을 방어”하고 “그 국민을 통제해서” 그곳에 ‘미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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