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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유대민족의 역사

[스크랩]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관계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관계

 

 

히브리어(Hebrew)는 아람어(Aramaic)와 알파벳이 같고 문법 규칙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매우 가까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약 성경은 순수하게 히브리어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아람어로 씌어진 내용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으며, 어떤 부분은 아람어로 기록하였던 것을 나중에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을 정도로 두 개의 언어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약 성경 중에서 아람어로 씌어진 구절이나 본문이 있는 곳은 네 개의 책에서이다. 아람어 본문이 제일 많이 나타나는 곳은 다니엘서인데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 다섯 가지 이야기를 아람어로 기록하였다. 다음으로는 에스라 4:8-6:18에서 성전 건축의 방해 끝에 준공되는 과정까지와 7:12-26에서 에스라의 영도로 제이차 귀환하는 내용을 아람어로 기록하였다. 특히 에스라 4:7은 이후의 내용을 아람문자와 아람의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다고 알려주고 있다. 다음은 예레미야 10:11에서 우상숭배자들을 저주하는 내용의 한 구절이 아람어로 되어있고, 마지막으로 창세기 31:47에서 야곱과 라반이 미스바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갈르엣'과 '여갈사하두다'라고 부른 말이 아람어이다.

아람어는 좁은 의미로는 다메섹을 수도로 하며 북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아람'이라는 나라에서 사용한 언어를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아람어라고 할 때는 셈어 계통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역과 수리아(Syria) 지역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한 고대 근동의 대표적 언어를 뜻한다.

따라서 아람어는 지역에 따라 크게 갈대아 아람어와 수리아 아람어로 나누는데, 성경에 사용되고 히브리어에 영향을 많이 준 아람어는 그 중에서 갈대아어(Chaldee)로 불리는 아람어이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영향을 끼친 역사를 살펴보려면 먼저 히브리어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최초의 히브리어는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 오는 시기인 BC 21-20 세기경에 사용된 셈어(Semitic)인데, 이때 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는 그들의 본향이였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와 관련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그들이 가나안에 거주하면서부터는 가나안어에 동화되어 발전한 것이 최초의 히브리어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후 히브리어는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이거하면서 약 400 동안 함어(Hamitic)인 애굽어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는데, 그것은 BC 15세기경 모세가 성경을 최초로 기록할 때의 히브리어 서체가 현재의 아람형 장방형 문자(Aramic Square Letter)가 아닌 애굽의 상형문자를 모방한 예리한 서체임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출애굽 후에 가나안에 다시 정착하면서 히브리어는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문에 히브리어는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문명을 교류하면서 셈어와 함어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아람어는 고대 바벨론 문명의 언어인 악카드어의 언어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BC 14-13세기경 아람인들이 가나안 북방으로 이주해 오면서 가나안어에 영향을 줌으로써 히브리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고학을 통해 발견되는 증거로는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 시대인 BC 9세기경 아람어 기명(Inscription)들이 가장 오래된 것들이어서 이전 시대의 아람어 역사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BC 722년 북왕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살만 엣셀 왕이 앗수르를 비롯한 바벨론, 구다, 하맛 등지의 아람어를 사용하는 족속들을 북 이스라엘 땅 사마리아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면서부터이다.

북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여세를 몰아서 남 왕국 유다에게도 총공세를 퍼부었는데, 열왕기하 18:26에 보면 당시의 앗수르 장수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에게 투항을 권유할 때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동시에 구사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유다 마저도 앗수르 후신국(後身國)인 바벨론에 의하여 BC 586년에 멸망당한 후 바벨론 포로와 팔레스타인의 이민족 이주정책이 계속됨에 따라 히브리어는 아람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후 BC 538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여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를 세운 고레스는 아람어를 바사 제국의 공용어로 채용하였다. 그 이전의 아람어가 구어(口語)로서 발전하였다면 바사 왕국에서 아람어는 공식적 행정 언어로서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람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면서부터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까지 사용하게 되자 아람어는 구문법과 어휘에서 다른 언어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독특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바사 시대 근동에서 계속 사용되어진 아람어는 BC 3세기경 헬라가 근동을 지배하게 되면서 표준어로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헬라어에게 제국 공용어의 위치를 내어주고 말게 되었다. 그 후 아람어는 제국 공용어가 아닌 각 지방의 방언으로 해체되어 나름대로 특성을 지닌 채 발전해가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아람어는 동부 아람어와 서부 아람어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동부 아람어는 수리아어, 바벨론어, 탈무드의 아람어, 만다어 등이 포함되며, 서부 아람어는 팔레스타인과 사마리아 지역의 아람어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일상 언어로서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히브리어는 종교적으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따라서 바사가 망하고 헬라 시대에 비록 헬라어가 표준어가 되었어도 완전히 다른 체계의 언어인 헬라어보다는 친숙한 아람어를 버리지 않았다. 두 언어간에 적어도 문자는 완전히 일치하는데, 그것은 BC 3-2세기경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고안할 때 아람어의 각문자(角文字)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운 현상이 비슷하고 단어 또한 서로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다. 한 마디로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가장 가까운 형제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안유섭)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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