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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성도의 생활

[스크랩] 교회와 목사를 우상숭배 하지 말라

교회와 목사를 우상숭배 하지 말라

불교에서 종종 듣는 얘기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신앙의 대상에 대한 말치고는 상당히 과격합니다. 부처를 죽일 정도라면 부처 밑에 있는 스님들쯤이야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불교에서는 사찰의 우두머리인 스님에 대한 숭배가 있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해줍니다. 또 고승이라고 하는 이들도 설법하면서 "나를 죽여라" 하고 종종 말하기도 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개교회의 신부에게 문제가 생기면 상위 조직인 교단에서 신부를 치리합니다. 신도들에게 소문이 돌고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교황청에서 알아서 처리해 버린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몇 년 단위로 신부들을 순회시키니, 신도들이 어떤 특정한 신부를 숭배할 일도 별로 없을 듯합니다. 숭상의 대상으로 교황이라는 존재가 있지만, 그는 일반 사람들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에 대한 숭상이 그리 심각하게 사람들에게 와 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는 양상이 좀 다릅니다. 개신교에서는 각 교회의 목사가 다 교황입니다. 그는 담임목사가 되면 평생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네사람들 로서는 수십 년간 동네에서 매일 보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여신도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더라.” 이런 소문이 돌면 동네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말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 교회 신도들이 그 목사를 무슨 신성한 존재라도 되는 듯 여전히 떠받들고 '우리 목사님' 하면서 감싸고 돈다면 동네 사람들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회도, 총회도 손을 대지 못합니다. 결국 세상 법정에까지 가서야 시비가 가려지게 됩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더욱 심각해집니다. 세상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동네 사람들은 '이제 교회에서 쫓겨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 여전히 목사는 그 교회에 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더욱 더 열성적으로 그를 감싸고 옹호합니다. 오히려 억울하게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이라며 떠받들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그 목사를 법정에 고발했던 사람들은 그 교회에서 쫓겨나고, 교인들로부터 사탄의 자식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듣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그 교회는 광신자 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돌 맞아 죽는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죽음을 옳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제사장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숭상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의 권위와 밥줄에 도전한 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스데반이 한 이 말은 결국 성전에서 제사를 맡고 있는 제사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예수의 도를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떠납니다. 감히 성전과 대제사장을 능멸하는 자들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결연한 신앙(?)입니다. 그에게는 예루살렘 성전과 대제사장이라는 교회 조직이 곧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세상 법정을 향해, "사탄의 자식들아! 우리 목사님을 능멸하지 말라"고 목청 높이는 요즘 일부 교회의 신도들과 비슷한 정황입니다.

성전과 대제사장 편에 선 사울은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의 도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된 분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그대로 삶으로 살아진 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이 만든 성전과 대제사장에 매인 바 되었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대제사장, 그것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 그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읽는다고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편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회 조직의 편에 서는 것이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실행하지 아니하였을 경우에, 목사나 장로나 교회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경우,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통곡하며 회개하는 처참한 지경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하나님의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당과 목사라는 인간을 감싸고돌다 보니 어느새 하나님과 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가 개척하여 성장시킨 교회에서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우상이 되어버린 사실을 목사 자신도 모르고 성도들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며 교회와 목사라는 우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기 위해서는 교회가 죽어야 합니다. 목사가 죽어야 합니다. 목사가 하찮게 버려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살아납니다. 담임목사를 넘어서지 못하는 성도는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유성오 -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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