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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성도의 생활

[스크랩] 우리가 복음의 꽃 피워야 될 곳은 어디인가?

 

요즘에 십일조니, 구약시대니, 율법이 완전케 된다는둥 뭐 설왕설래가 계속되어 뻘짓좀 해서 그려봤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사실 "예배당"입니다.

 

위 표를 보십시오. 우리가 예배당에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사제들)은 꼭 예배당으로 와보라!고 합니다.

 

예수증거의 본질은 땅 끝까지 계속해서 가는것이며 그것이 바로 세상을 정복하는 비결입니다.

세상을 정복하라는 것은 이 땅을 하나님의 원하는 통치방식으로 바꾸어버리라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건설의 가장 쉬운 공식입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요 몇일간 있었던 또는 계속해서 반복되어지는 어떤 논쟁들의 두드러진 두가지 양상은

바로 저 도표 안에 모두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바로 예배당입니다. 한 쪽은 자유케 되려는 진리에 목말라하는 그룹이며 그 반대편에 선 그룹은 예배당(신당)에서 일어나는 종교의식을 사수하는 그룹입니다. 종교의식의 최대 보루는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두 기둥입니다. 이 중 어느 하나만 무너져도 예배당이라는 허상은 존재할 수 없는 허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현대 개신교에서 최대 가치를 부여하여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의식(소위 예배 또는 집회라고 부르는)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습니다. 기도나 찬송등을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나 찬송은 얼마든지 우리가 개인적으로 충족할 수 있으며 소규모든 대규모든 필요하다면 장소를 불문하고 수시 또는 불시에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소위 현대 개신교의 '예배'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적 집회 스타일을 예수님께서 남기시고 떠났는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목숨처럼 지키고자 한다면요.

 

신당은 사제가 필요합니다. 사제 없는 신당은 역할 할 수 없으며 신당없는 사제는 무의미합니다. 개신교에서 사제 역할을 수행하는 목사는 의식행위를 집도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이며 이들은 지어낸 언어로 '주의 종', '하나님의 사자', '기름부음 받은 자'등으로 말도 안되는 거짓 언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종교의식을 집행하기 위하여 특별히 허락된 어떤 직책이나 역할을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부분은 절대 찾아볼 수 없을겁니다. 목사, 목자, 장로, 교사,집사 등은 모두 코이노니아 하기 위한, 성도들이 상호 연합하며 돕고 교제하기 위해 ,질서를 위해 필요한 섬기는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신당문화의 끝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절대자',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과 영혼이 어떤 고차원적이며 초월적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하여 종교의식을 즐거이 행하며 그것에 최대가치를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예배당을 더욱 호화롭게 꾸미고 성물, 지성소, 성전, 거룩한 전, 하나님의 집, 만민의 기도하는 집등으로 미화하며 주술적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재정 사정이 허락하는한 아늑한 의자, 잘 인테리어된 실내, 완벽한 냉온방, 방송국 수준의 음향과 영상시설, 연극무대와 같은 조명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른바 종교의식의 집단적 퍼포먼스를 통해 종교성을 충족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셨습니까? 일주일의 단 한시간만이라도 전국의 1천만 성도가 낮고 어두운곳에 흩어져 힘없고 약한 이웃을 돕는 활동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그날부로 뒤집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냉철한 지성에 물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과연 이 땅에서 사역하실때 단 한차례라도 그러한 것을 언급한 적이 있으며 제자들에게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희망사항으로 남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속(신약속)에서 오늘날 개신교의 종교의식처럼 반복적이며 습관적으로 종교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구별된 장소를 정해놓은 흔적을 볼 수 있는냐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핍박속에서 피난처인 카타콤에서 드디어 풀려나 지상의 햇빛을 자유로이 보게되었을때 과연 그들이 오늘날 관광지에서 보게되는 소위 '건물교회'의 진짜 주인들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건물교회'의 주인들이 변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의 우주보편적 신앙세계와 합치된다면 오늘날 그 건물교회들이 관광객들로 붐벼야 할 것이 아니라 무려 2천년의 계승된 종교의식을 시금석으로 보여주어야겠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준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은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 비유, 달란트비유, 양과염소비유에서 너무나 쉽고도 간략하게 묘사되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쓰자면 끝이없고 잔소리로 이어질 것입니다만....

 

요즈음 뚜렷이 갈리는 두 그룹의 분쟁을 보면서 갑갑증이 치솟아 불현 잔소리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미친 중년의 푸념으로 이해하시길.....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iDeaRu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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