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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니케아(Nicaea) 신조 - A.D.325

니케아(Nicaea) 신조 - A.D.325
 
  니케아 신경 (The Creed of Nicaea)원문
 
Credimus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factorem coeli et terrae, visibilium omnium et invisibilium.
우리는 천지의 창조자이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만드신 한분의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영원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난 신중의 신이며 빛중의 빛이고 참 신중의 참 신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출생되었으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을 받았읍니다. 그는 고난을 받고 장사되었으며, 성경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읍니다. 그리고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Et in Spritum Sanctam, Dominum et vivificantem [vivificatorem], ex Patre [Filioque] procedentem, cum Patre et Filio adorandum et conglorificandum, qui locutus est per sanctos prophetas. 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 Confitemur unum baptisma in remissionem peccatorum. Expectamus resurrectionem mortuorum et vitam futuri saeculi. Amen.
우리는 또한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생명의 부여자와 주님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세계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주시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립니다. 아멘.
 
   1) 니케아 신조의 작성배경 및 논쟁 내용
 니케아 신조가 작성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아리우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부의 신성과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말씀 곧 성자는 지으신 일종의 피조물로서 시작이 있었고 따라서 한 때 그는 계시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성육신 신앙에 위배되는 것임을 아다나시우스(Athanassius)가 지적하고 아리우스와 논쟁을 하게 된 까닭이다. 이 논쟁은 자유를 얻기 시작한 기독교의 통일과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었으므로 콘스탄틴 황제는 325년에 세계교회 회의를 니케아(Nicaea)에 소집하여 이때까지 이론(異論)이 많았던 기독론의 교리를 확정하여 올바른 신앙고백을 제정할 것을 기도하였다".
 
  그렇다면 이단으로 지목을 받았던 아리우스의 주장과,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싸웠는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도 그런 잘못에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① 그릇된 교리{아리우스(아리안주의)의 주장에 대해서}
 
  가. John Calvin
  칼빈은 아리우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그의 거짓된 교리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아리우스라는 사람은, 명백한 성경을 반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며, 또 자기가 올바른 일을 하기나 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척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가 창조되었으며, 다른 피조물들처럼 시작을 가진다“고 주장하기를 계속하였다.
 
  나. Herman Bavinck
  바빙크의 다음 글에서는 아리우스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비뚤어져 나갔는지를 살펴보자. 또한 왜 잘못 되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이단들은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하자.
 
  "AD 2세기와 3세기에 있었던 아리안주의자들의 선구자들은 그리스도를 단지 초자연적 방식으로 낳은 사람으로만 여기고 그가 세례 때에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의 사역에 적합하게 되고 주로 높여졌다고 생각하되, 그의 선재와 신적 본성을 부인하는 에비온주의자들(the Ebionites), 알로기파(the Alogi), 떼오도투스(Theodotus), 아르테몬(Artemon),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nosata) 등이다. 그들은 양자론적 기독론(an adoptionistic Christology)을 받아들였다. 4세기에 이 신념이 루시안(Lucian)과 그의 제자 아리우스(Arius)에 의해서, 또한 아에티우스(Aetius)와 유노미우스(Eunomius)에 의해 옹호되었다.
 
  아다나시우스의 말에 의하면, 아리우스는 하나님이 불출생적이고, 시작을 가지지 아니하시는 한, 그는 절대적으로 독특하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고, 다 알 수 없으며, 무한하시므로 직접적인 교제 관계에 들어갈 수 없고, 그의 존재를 부여할 수 없으며, 불출생적인 것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존재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뜻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고, 피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원부터 아버지이신 것이 아니고, 창조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되셨다. 즉, 그는 그의 피조물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창조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를 통해서 모든 것이 창조될 매개자로 행동할 일종의 존재, 즉 성경에서 지혜, 아들, 로고스,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운 구별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또는 구별된 본질을 존재케 하셨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낳아진 것도 아니고, 성부와 동일본질이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두 신(two Gods)이 있게 되겠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무(無로)부터' 낳아졌고, 또는 피조되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의해서' 존재케 된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사역'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시간들과 세대들 이전에', 즉 '우주' 이전에 피조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가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로고스는 성부와 동일본질인 것이 아니고, 그와 완전히 구분된다. 그는 성부처럼 불변적이지 않고, 선뿐만 아니라 악도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전한 피조물"이다. 그는 선을 선택하였고 그럼으로써 불변성을 얻었고 그리하여 신성에 이르렀다. 이 로고스는 또한 사람이 되어 진리를 선포하고 우리의 구속을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의 영예를 받으시기에는 합당하나 우리 경배의 대상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② 바른 교리{아다나시우스(Athanasius)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아리우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개혁주의의 입장을 바르게 정립했던 아다나시우스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가. John Calvin
칼빈은 아리우스의 주장을 교활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대 교부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선인들은 아리우스의 꾸불꾸불한 술책을 그 은신처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한 걸음을 앞질러 가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요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라고 선포했다. 그러자 아리우스주의자들의 불경이 끓어올라서 동일본질이라는 말에 대하여 증오와 저주를 가장 사악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만일 그들이 처음부터 진지하고 또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이라면 이렇게 그가 아버지와 동일본질 이라고 말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작은 단어 때문에 아무리 열띤 논쟁이 불붙고 또 교회의 평화가 방해를 받았기로서니 누가 그 고결한 사람들을 말장이, 궤변가들이라고 독설을 하였겠는가? 하지만 그 아무 것도 아닌 단어 하나가 순수한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과 거룩한 것을 짓밟는 아리우스주의자들 사이에 구분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다나시우스와 당시 교부들은 바른 신앙고백을 하기 위한 한 단어를 목숨처럼 지키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나. Herman Bavinck
바빙크는 아다나시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아다나시우스는 그의 동시대인들 중 어느 누구보다,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 여하에 따라 서기도 하고, 폐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전 생애와 그의 모든 힘을 이 교리의 변증에 쏟아 부어 넣었다. 그래서 그는 철학적 문제를 위해 투쟁한 것이 아니고, 기독종교 자체, 하나님의 계시, 사도들의 가르침, 교회의 신앙과 고백을 위해 투쟁한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를 신적 존재 내의 구별을 부인하는 유대교와 하나님의 단일성을 거부하는 이교로부터 원칙적으로 구별시키는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아다나시우스는 존재론과 우주론의 철학적 혼합을 완전히 거부한다. 그는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영지주의적, 아리안주의적 이원론을 거부하고, 따라서 매개적 중간존재들에 대한 이론도 모두 거부한다.
 
 아다나시우스는 모든 낯선 요소들을 배제한 삼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즉 삼위성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연합이 아니고, 그 성격상 온전히 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성은 영원하다. 하나님 안에 비본질적 요소들이라고는 없다. 그는 어떤 것이 되지 않으신다. 그는 영원히 모든 것이시다. 삼위성이 영원부터 있는 것처럼, 이는 영원까지 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것이다. 성부는 항상 성부이시다.  
 
 성부 됨은 그의 성질에 속한다.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와 같이 말할 수 없다. 햇빛을 떠나서 해를 인식할 수 없고, 그 물을 떠나서 그 물의 원천을 인식할 수 없듯이, 성자를 떠나서는 성부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통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그는 항상 말씀하신다. 삼위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생명 없는 원칙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우주의 영원한 존재사실에 대한 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생명 없는 원칙이 아니시므로, 성자의 출생은 영원하다. 성부도, 성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결코 피조물일 수 없고,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존재(본질)로부터 출생한 것이다.
 
 성령에 대해서도 이미 마찬가지이다. 비록 아다나시우스가 성령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이 삼위는 참으로 구별된다. 그들은 하나의 전체의 세 부분이나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한 세 이름이 아니다. 성부만이 성부이시고, 성자만이 성자이시며, 성령만이 성령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다나시우스는 이 삼위가 그 본질과 실체와 속성에서 같다고 하며, 성부는 신성의 첫 원리요, 원천이라고 하고, 삼위가 서로 안에서,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고 하며, 그들이 그 행위에서 하나이시라고 가르침으로써 삼위의 통일성을 주장한다."
 
  2) 니케아 신조의 특징 및 영향
니케아 신조의 특징으로는, "니케아 신조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고 또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한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Homoousios)하다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니케아 이후 계속되는 논쟁의 발단이 될 정도로 당시의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표현을 통해서 아리안주의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이'(Homoiousios)를 주장하면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했던 유이설자들도 배격되었기 때문이다." 니케아 신조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본래 아리안주의를 향한 저주문이 첨가되어 있었으나 훗날 이것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니케아 신조의 영향으로는,
  "이 신조 이후로 삼위일체 교리에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다. 니케아 공의회는 하나님의 존재 내의 위격적 구별을 주장하였고, 성부와 성자(그리고 성령)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다. 그 이후로 삼위의 구별을 믿는 이가 하나님의 통일성(단일성)에 관한 진리를 무효화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만 하였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는 주된 쟁점이 어떻게 통일성(단일성)으로부터 삼위성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그 반대의 쟁점이 나타났다. 이제 삼위일체론은 그 나름의 독특하고 독자적인 가치와 신학적 중요성을 갖게 된 것이다".
 
  3) 니케아신조에 대한 평가
  바빙크는 니케아 신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오리겐의 종속론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온전하고도 참된 신성을 고백하였다. 이 고백은 그 성격이 전적으로 종교적인 것이었다. 즉, 그것은 기독교의 구원론적 원리를 드러낸 것이다." 그 외에 "서방 교회에서 추가한 조항이 없는 니케아 신조는 희랍교회에서 큰 권위를 인정받아 사도신경이 라틴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차지하는 것과 버금가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니케아 신조는 '동일'이란 표현을 통해서 일체성에 대해서는 극복을 했지만 이 하나의 본질에서 어떻게 삼위가 바로 주장되면서 또한 어떻게 서로 구별되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성령에 대한 표현이 좀더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믿습니다'라고만 되어있기에 어떤 방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단순성 때문에 후에 '성령 피조설'을 말하는 이단들이 발생되었고 이 영향은 콘스탄티노플 감독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하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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