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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주님께 드리는기도

[스크랩] 기도의 법칙

기도의 법칙

 

 

 크리스천들 중에는 기도를 열심히 하여도 효과가 없다고 기도하기를 아예 그만두는 분들도 있다. 이런 생각은 기도의 본질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기도에는 기도의 법칙들이 있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 법칙을 잘 모르고 법칙에 벗어나게 되면 노력을 하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된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도에도 분명한 법칙이 있기에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벗어나게 되면 기도의 열매를 얻지 못하고 나중에는 지쳐 기도하기를 중단해 버린다.

기도의 법칙의 첫번째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무엇인지를 대신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숙제를 받아와서 어머니께 해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있다. 그 말을 듣고 숙제를 대신해 주는 어머니는 어머니가 될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못한 어머니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에게 도움이 되지를 못하고 오히려 나쁜 버릇을 길러주게 된다. 현명한 어머니들은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하여 주고 격려하여 준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하나님께 미루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도피처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를 대신하여 해 주시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이것이 기도의 첫번째 법칙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수단이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공산주의자가 공원에 있는 연단에 서서 “공산당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직장, 새로운 주택, 새로운 차를 약속합니다”하고 연설을 하니 한 크리스쳔이 연단에 올라가 이르기를 “예배당은 그 새로운 직장, 새로운 주택, 새로운 차를 이룰 새로운 사람을 약속합니다”고 하였다. 기도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어떤 환경일찌라도 극복하여 나갈 수 있도록 사람을 바꾼다. 이것이 기도의 제2법칙이다.

성경에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느헤미야, 욥, 베드로, 바울 등등으로 헤아리기 어렵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공통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온갖 시련과 환난을 만나 이를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간 사람들이란 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면서 그들이 직면하는 환경과 조건을 바꾸어 주시지 않으시고 모진 고난과 시련을 견디며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오히려 모진 고난 을 당하도록 허락하시어 그 속에서 정금같이 값진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이끄셨다. 욥기 23장 10절에서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에서 ‘단련한다’는 말은 고통스런 훈련을 일컫는다. 그리고 ‘정금(精金)’이란 말은 순도 높은 믿음을 일컫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일꾼을 기르실 때에 고통스런 훈련을 거치게 하시어 확고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역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환경을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환경을 이겨나갈 사람이 되도록 응답하신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 기도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을 따라 기도를 드리게 될 때에는 기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고 그 법칙을 벗어나 기도를 드릴 때는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앞에서 기도의 법칙의 첫번째와 두번째를 적었다. 기도의 첫번째 법칙은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무엇인가를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는 것이다. 두번째 법칙은 기도는 상황을 바꾸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오늘은 기도의 세번째 법칙을 살펴보자. 기도는 복잡하고 위험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실을 극복하고 정복하는 것이란 법칙이다. 기도는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처지에서 피하게 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정면으로 부딪혀 그 처지를 정면돌파하게 하고 그 처지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어려운 처지에서 도피처를 제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처지를 돌파하게 하는 힘, 그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살이는 마치 장애물 경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 장애물을 넘어서서 이제 편안하여 지는가 하면 다시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난다. 천신만고 그 새로운 장애물을 극복하여 나가면서 이번만 넘기면 순탄하고 편안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겠거니 하고 장애물을 넘어서고 나면 또 다시 생각지도 못하였던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기도의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 드려야 한다.

“하나님 내가 가는 앞길에 장애물이 없도록 기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으레 닥치는 장애물들을 확신과 용기로 극복하여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지혜로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도의 법칙의 네 번째는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란 법칙이다. 기도는 Speaking이 아니라 Listening이다.

우리들은 기도드릴 때에 우리들이 원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어 허락하여 주시기를 구한다. 마치 가게에서 상품을 주문하듯이 하나님께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들어 주시기를 열심히 구한다. 우리들의 신앙이 초보일 때에는 그렇게 기도하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신앙의 단계가 깊어져 가면서 그런 수준의 기도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저 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기도임을 깨달아 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도를 하나님께 말하는 것, 주문하는 것이 아니란 뜻에서 Speaking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루시고저 하시는 뜻을 듣는 것이란 점에서 Listening이라 일컫는다. 신약성경의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날 밤 감람산에서 드리신 기도에서 참다운 기도의 한 본보기를 찾을 수 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장 39-42절)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고 싶으셨다. 당연한 바램이셨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시기를 앞세우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으시고자 하셨다

 

기도의 법칙으로 네번째까지 소개하였다. 오늘은 다섯번째를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한 소년이 실제로 쓴 기도문을 보자.

“하나님, 부디 우리들이 착한 아이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기도문은 단순한 내용이지만 기도의 법칙에 비추어 말하자면 올바른 기도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기도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착한 아이가 되도록 해 주세요”라고 하지를 않고 “착한 아이가 되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한 점에서다.

이 기도는 단순히 착한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라고 하지를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하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릴 때에 그 기도에 스스로 참여하고 헌신 할 수 있어야 한다. 주위의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갈 때에 그들을 찾아가지를 않고 기도만 드려서는 올바른 기도가 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릴 때에 실제로 도우려들지를 않고 그냥 기도만 드려서는 그 기도가 바람직스런 기도가 되지를 못한다.

해외선교를 위한 기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선교를 위하여 아무것도 바치지를 않은 채로 그냥 기도만 드려서는 그 기도가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이것이 올바른 기도요 좋은 기도이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나’라는 말을 적게 쓰고 ‘우리’란 말을 많이 쓰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나만의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란 점에서 그러하다.

 

 /출처 : 다음카페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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