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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보물을 생각하며/이런 얘기 해줄께...

친구 아버지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피에르 부르디외

존중돼야 할 개인적 취향, 짚어봐야 할 사회적 기호

한국이 구미 명품 브랜드의 최대소비국 중 하나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 수십 배의 모조품들도 덩달아 재미를 보고 있지만! 또 지난 가을에는 소위 ‘보졸레 누보’라는 프랑스산 와인이 불티나게 팔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한편 일부에서는 이를 천박한 속물근성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필자가 대학 다닐 무렵에는 3C(Coffee, Cola, Chocolate)를 멀리하는 애국적() 학생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만큼 불합리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또한 미제국주의에 반대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개인의 일상적 기호나 취향에 이처럼 억지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촌스러운 우직함이 지배하던 시절의 얘기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여가활동이나 취향 또한 급속하게 변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그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나 순수한 기호(嗜好)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하긴 개인주의가 득세하고 다원적 가치의 공존이 민주사회의 기초로 강조 되는 현실 속에서 각 개인의 자유로운 취향은 존중의 대상이지 논란의 대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물이 아니라 야채샐러드를 즐겨먹고 모차르트보다 바흐를 즐겨듣는 선택 속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소득의 차이에 따라 기호와 취향도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단순히 경제적 소득의 크기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의미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기호 또한 일종의 사회적 기호(記號)가 아닐까

이런 물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프랑스의 석학 피에르 부르디외가 쓴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최종철 옮김·새물결·1996)을 한번 들춰보는 것도 흥미로운 체험이 되리라. 물론 상·하권 모두 합해 900쪽이 훌쩍 넘어가는 방대한 분량에 군데군데 끼어 있는 통계자료와 복잡한 도표들, 게다가 칸트의 미학에서부터 현대 예술의 각 장르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란한 서술내용 탓에 일반 독자들이 완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예컨대 문화자본이라든가 아비투스(habitus), 상징투쟁, 필요취향 등과 같은 부르디외 특유의 개념들을 익혀가다 보면, 개인들의 취향이라는 게 단순한 사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계급적·이데올로기적 의미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상의 삶과 문화의 영역을 계급이라는 잣대로 독특하게 분석하는 그의 작업은 결국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데, 이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에만 매달리던 전통 철학의 한계를 시원스레 뛰어넘는 것이어서 가히 경험적 자료와 이론적 구성이 변증법적으로 융합하는 모범이라 할 만하다.

독자들을 위한 충고 한 마디! 책을 읽다 너무 지겨우면 하권에 삽입된 구체적 분석 사례들을 먼저 훑는 것도 괜찮다. ‘진정으로 고전적인 대학교수’,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젊은 관리직’, ‘매우 검소한 간호사’, ‘정확하게 중간인 빵집 부인’, 제목만 봐도 호기심이 일지 않는가

경성대 교수·철학/김재기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김재기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의 끝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호의 진실을 의심한 적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을 일러주는 것은 기호밖에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기호와 기호의 관계다.”

얼른 들으면 알쏭달쏭하게 들리지만, 이 말은 인간과 세계를 연결해 주는 기호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아주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인문학은 기호학이라는 거대한 태풍 앞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던 근대 지성의 낡은 형이상학적 오만 대신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적 체계에 대한 탐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주의 및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등과 더불어 어느새 인문학적 담론의 요지를 차지하게 된 현대 기호학 이론의 실질적 출발점은 한 천재적 언어학자의 유작이었다.

이젠 일반인들에게조차 그 이름이 꽤 알려진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최승언 옮김·민음사·1990)는 그가 한 세기 전 제네바대학에서 했던 일련의 강의를 사후에 출판한 것인데, 이 책은 결국 현대 인문학의 지형 전체를 바꾸는 핵폭탄이 되었다.

“언어는 관념을 나타내는 여러 기호체계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 생활 속에 있는 기호의 삶을 연구하는 과학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기호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기호학은 우리에게 기호가 무엇이며 어떤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가를 가르쳐 줄 것이다. 기호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할 권리가 있고 그 위치는 미리 정해져 있다.”

소쉬르가 책의 서론에서 잠시 스쳐가듯 짤막하게 언급한 이 한마디는 ‘기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이었고,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예언은 그 자신의 예상마저 뛰어넘을 만큼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체계는 그 자체가 일종의 사회 제도이지만 정치 제도나 법 제도와는 아주 다르다. 기호체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일정한 사회적 약속과 내적 구조에 따라 의미를 생산하고 또 그 의미들을 통해 우리의 인식과 실천을 조직해내는 것이므로, 결국 기호체계는 보이지 않게 우리의 삶을 엮고 있는 거대한 그물망이며 인공적인 것이면서도 마치 제2의 자연처럼 우리를 구속하고 지배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기호체계에 대한 연구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해명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일반언어학 강의>는 아주 전문적인 언어학 이론서이기 때문에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며, 그 중에는 일반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내용도 꽤 많다. 그러나 서론을 비롯하여 제1부(일반 원리)와 제2부(공시 언어학)의 주요 내용들은 현대 인문학의 뿌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한번 되새겨볼 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김재기 경성대 교수·철학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 김재기

킹 크림슨이라는 영국의 록 그룹이 있다. 기성질서에 저항하는 반전과 반체제, 히피 운동이 전세계를 휩쓸던 1969년에 발표된 이들의 데뷔앨범에는 <에피타프>(묘비명)라는 명곡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혼돈은 나의 묘비명이 될 것”(Confusion will be my epitaph)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미래에 대한 온갖 장밋빛 전망이 세인을 유혹하는 21세기의 벽두에 갑자기 왜 옛날 노래가 생각나는 걸까 전통적 사유에 따르면 당연히 혼돈은 나쁜 것이고 질서가 좋은 것이다. 요즘의 선거구호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혼란이냐 안정이냐” 따라서 우리의 모든 이론적·실천적 노력은 혼돈을 극복하고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도대체 혼돈이나 불확실성 자체를 세상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그것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이미 1세기도 더 전에 이러한 상식에 반기를 든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다. ‘의심의 대가’, 심지어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까지 불린 희대의 반항아. 그는 죽은 지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에 현대사상의 선구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세계는 무한히 해석할 수 있다. 모든 해석이 성장의 징후이거나 몰락의 징후인 것이다. 통일된 일원론(一元論)은 타성에 젖은 욕구며,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힘의 징후다. 세계가 불안하고 혼미하다는 것을 부인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인용문은 니체의 사후에 유고로 출판된 <권력에의 의지>(강수남 옮김·청하 펴냄·1988)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사뭇 도발적인 선언이다. 오늘날 그의 주저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1천여개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미완성의 대작인데, 그 외적 형식에서부터 니체 사상의 독특한 색깔을 잘 드러내준다. 진리, 이성, 과학, 도덕 등 기존의 모든 사유체계와 가치체계를 전복하고 수천년의 역사를 뽐내온 전통 철학의 경계 밖에서 새롭게 사유하고자 한 이 기이한 철인의 고투는 이 책 속에서 가장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남겨놓은 걸출한 유산은 근대성의 모든 담론들을 철저한 심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물결과 함께 그야말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물론 니체 사상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이며, 우리는 그의 노골적인 엘리트주의나 관념론, 극단적 상대주의 등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의 칼을 겨눌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독자라면 이 모든 이론적 논쟁에까지 정통해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이 책 속의 단편들을 마치 시를 읽듯이 음미하면서 ‘사유를 통한 세계의 전복’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철학서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비체계적이라는 점이 오히려 그와 같은 안이한() 독서를 수월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단편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동안 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들이 조금씩이나마 깨져나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철학서를 읽는 첫번째 보람이 아니겠는가?

김재기 경성대 교수·철학

 

 

프레이저 ‘황금가지’/ 김재기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전의 참상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독특한 색채로 그려낸 수작인데, 그 속에 꽤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실종된 쿠르츠 대령을 찾아 헤매던 주인공은 온갖 신고를 거친 끝에 마침내 정글 속에서 그의 왕국을 발견한다. 그런데 쿠르츠 대령의 처소 구석구석을 훑으며 느리게 이동하던 카메라는 그가 보던 책표지 위에서 잠시 멈춘다. 책의 제목은 <골든 바우(Golden Bough)>, 즉 <황금 가지>다.

많은 관객들은 별 생각 없이 이 장면을 넘겼겠지만, 그 책을 아는 이들에게 감독의 의도는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황금 가지>는 영국의 저명한 종교민속학자인 프레이저의 주저다. 원래 1890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20여년에 걸친 몇 차례의 수정·보완 끝에 모두 13권이나 되는 거대한 저작이 되었고, 그 뒤 민속학, 종교학, 인류학은 물론이고 기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그러나 원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저자 자신이 따로 축약본을 내놓았는데,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바로 이 두 권짜리 축약본(<황금가지 1·2>·장병길 옮김·삼성출판사·1990)이다.

뛰어난 풍경화로 잘 알려진 영국 화가 터너의 그림 제목이기도 한 ‘황금 가지’는 본래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에 붙여진 ‘신화적’ 이름이다. 그 제목이 암시하듯 프레이저의 이 책은 북부 이탈리아의 네미 호수 근처의 숲에서 벌어지는 사제왕(司祭王)의 살해와 교체를 둘러싼 비밀을 해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야기인즉, 기존의 사제를 죽이고 새로운 사제가 되려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황금 가지’를 꺾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사제의 생명과 힘이 ‘황금 가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프레이저는 동서양의 수많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주술과 종교, 터부 등의 숨겨진 의미와 구조를 차근차근 분석한다.

종종 지나치게 많은 사례들이 나열되고 반복되어 지루한 느낌을 주는 게 흠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른바 ‘유사법칙’에 기초한 ‘모방주술’과 ‘감염법칙’에 기초한 ‘감염주술’을 구분하면서 주술(적 사유)의 일반적 원리를 해명해 나아가는 프레이저의 논의는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분명 흥미진진하며 꽤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20세기 후반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지성계를 휩쓴 뒤에 프레이저의 선구적 혜안은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현대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이 ‘합리성’이라는 미명 아래 세계에 대한 모든 창조적 상상력을 앗아가고 때로 우리 자신을 기계보다 더 단순하게 만드는 그런 시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사유, 즉 ‘야생의 사유’는 면면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원형적 사유야말로 인간의 행위와 문화를 좀더 깊게 이해하도록 해 주는 창이며, 계몽주의 이래 우리를 숨막히게 구속해온 형식적 합리성의 족쇄로부터 생생한 직관을 해방시켜줄 열쇠일지도 모른다.

경성대 교수·철학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김재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엄청나게 박학다식한 인물로 등장하는 파리아 신부는 젊은 주인공에게 단정적으로 말한다: “철학이란 배울 수 있는 게 아냐. 철학이란 학문을 응용할 수 있는 천재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총화야.”

철학자들을 종종 우쭐하게 만들곤 했던 이런 종류의 찬사들은 사실상 그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했다. 철학을 ‘만학의 여왕’, ‘진리의 총화’로 추켜세우는 그 족쇄 때문에 철학자들은 종종 관념적인 사변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거꾸로 일반 대중들은 철학을 경원(敬遠)하면서 그 그늘을 벗어나 점점 더 멀리 도망쳤다. 철학은 그야말로 아무나 근접할 수 없는 구름 속의 신비가 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철학의 갖가지 사유 실험과 새로운 탐구 방법론은 전통적인 사변 철학의 철옹성에 적잖은 흠집을 내었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충격의 진원지는 전통적인 철학의 외부, 즉 다양한 사회운동과 언어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도 꽤 많이 알려져 있는 미셸 푸코의 저작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감시와 처벌>(오생근 옮김·나남출판·1994)은 주목할 만하다.

1975년에 발표된 이 책은 간단히 말해 서구의 형벌의 역사를 다룬 것이므로 전통적인 철학서의 범주에 넣기가 꽤 난감한 책이지만,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역사책도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저자의 목표는 형벌제도의 역사적 변천을 서술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의 전략과 근대적 개인(주체)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결국 푸코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권력의 숨겨진 비밀을 폭로하고 개인들에게 덧씌워진 이념적·구조적 통제장치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물론 <감시와 처벌>은 푸코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도 이른바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씌어진, 그러니까 푸코 개인의 사상적 발전 과정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저작이지만, 일반 독자들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무방하리라.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쉽다()는 것이니까!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재미있고 쉽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 ‘두더지의 시선’으로 미세한 역사적 자료들을 끈기 있게 파헤친 <감시와 처벌>을 끝까지 읽어내기 위해서는 독자들 또한 저자 못지 않은 끈기를 지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원된 자료의 방대함과 저자의 박학함에 놀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들과 실감나는 역사적 사례들에 매혹되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색다른 지적 경험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두터운 사변의 구름을 걷어낸 자리에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작은 진실들의 탑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데, 그 새로움은 통찰의 내용 뿐만 아니라 통찰을 이끌어내는 방법 자체가 새롭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진짜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경성대 교수·철학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김재기

“진리는 중간이 아니라 극단 속에 있다!”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 관한 덕담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 도발적 주장의 주인공은 <풍속의 역사>의 저자인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다. 1909년 빅토리아 시대의 근엄하고 위선적인 성 담론이 아직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 이 책은 르네상스 시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서구의 성풍속사를 재치 있고 날카로운 눈으로 해부함으로써 이 분야의 기념비적 고전이 되었다. 그러나 본래 미술품 수집가이자 풍자화 연구자였던 저자의 약력에 걸맞게 책 속에는 수많은 외설적이고() 에로틱한 도판들이 들어 있고, 다분히 좌파적인 시각에 물든 내용 또한 전통적 성 윤리에 비춰보면 불온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나치시대에는 금서목록에 올라 불태워지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한때의 어리석음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었을 뿐이다.

한국어로는 모두 4권(독일어 원서는 3권)으로 출판된 이 ‘흥미로운’ 책이 처음 한국 독자들에게 선뵐 때의 상황 또한 흥미롭다. 당시는 1986년이었으니 5공 군사정권의 패악이 극에 달해 그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또한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당시 출판계에서는 좌파적 시각의 사회과학 서적이나 역사 서적들이 대량으로 출판되었는데, 이러한 서적들의 주제와 내용 또한 ‘사회변혁’, ‘계급투쟁’ 같은 개념들만큼이나 하나같이 무겁고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을 주제로 다룬 무겁고() 진지한 책이 등장했으니 그것은 차라리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이야 성 담론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문학적 주제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른바 미시사 분야의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풍속의 역사>라는 책 자체가 매우 신기한 구경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펴는 순간 독자들의 단순한 호기심은 금세 진지한 탐구열로 바뀔 것이다. 제1권의 서장 ‘모랄의 기원과 본질’에서 일부일처제의 사회경제적 토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하는 저자는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역사 유물론의 원칙에 따라 성과 관련된 갖가지 풍속, 윤리,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근원들을 면밀히 추적하며, 더 나아가 우리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성 관념과 의식에 대한 합리적 반성의 기틀을 제공한다.

소재만 놓고 보면 심각한 철학 이론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한 <풍속의 역사>는 한마디로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이 필자가 대학에서 1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는 ‘성과 철학’이라는 교양강좌의 가장 중요한 기초 참고문헌 중의 하나라는 사실 또한 매우 시사적이다. 성 풍속의 진기한 개별적 사례들이 제공하는 재미에 빠져 책장을 넘기다보면, ‘인간의 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윤리나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채롭고 상이한 풍속의 뒤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동력은 무엇인가’ 등등을 성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성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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