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쉬 서사시
1. 문제, 영웅, 판본들
우리는 에누마 엘리쉬를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인간조건을 감수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시도로서 검토해 보았다. 에누마 엘리쉬의 저자는 진정 그러한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약간 더 오래된 길가메쉬 서사시를 통해 드러나듯이 에누마 엘리쉬의 방법이 가능한 유일한 태도는 아니었다. 길가메쉬 서사시 역시 비록 쉽지 않지만 그리고 아마도 아주 설득력 있지도 않지만, 인간 조건을 감수하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에누마 엘리쉬와는 달리 길가메쉬 서사시의 관심은 신들과 우주의 질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즉, 우리 모두가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간의 가사성(可死性) 이것이 이 작품이 던지는 문제이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길가메쉬는 역사적 인물로서 기원전 2600년경 우룩(Uruk, 성
서의 에렉Erekh)의 통치자였다. 분명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가 죽은 이후부터 오랫동안 세간에 떠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중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기원전 2100년경의 것으로 이는 우르 제 3왕조의 궁정 시인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이 왕조의 왕들은 길가메쉬를 그들의 조상으로 여겼다. 우리가 갖고 있는 수메르어로 기록된 몇몇 짧은 서사시적 작품들의 원형은 분명 길가메쉬에 대한 관심이 부흥된 이 때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길가메쉬 서사시는 고 바빌로니아 시기의 말기인 기원전 1600년경에 아카디아어로 씌어진 것이다. 엄격히 말해 우리는 이를 ‘서사시’가 아닌 ‘서사시의 윤곽’을 갖춘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갖고있는 고 바빌로니아 시기의 문서가 단편들이고 따라서 이는 단지 그 결합이 긴밀하지 못한 길가메쉬 (서사시)권 속의 개별적인 노래들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편들은 대부분 내적으로 연관된 핵심적 에피소드들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으며 이 에피소드들이 후대의 판본에서도 주된 이야기를 구성한다. 기원전 천년대의 끝 무렵에 신-리키-운니니(Sin-liqi-unninni)라는 사람에서 의해 만들어진 이 후대 판본의 대부분은 복사본으로 기원전 600년경부터 니느웨의 유명한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도서관에 소장되었다. 그러나 이 판본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어 있고 고 바빌로니아 시기의 단편 속에 들어있는 신선함과 활력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가능한 고 바빌로니아의 단편을 인용하여 길가메쉬 이야기를 재 서술해보고자 한다.
2. 이야기
이야기는 영웅을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낭만적 서사시”의 스타일로 시작한다. 이는 마치
?오뒤세이아?가 오뒤세우스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다.
말씀해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그 사나이에 대하여,
임기능변에 능한,이곳 저곳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그에 대하여.... .
그가 보았던 도시의 사람들도 무척 많았고,
그 마음가짐을 알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깊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전우들의 귀향을 구하려다가....
마찬가지로 길가메쉬 서사시도 낯설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겪고 먼 지역까지 돌아다닌 영
웅에 대한 청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구절들로 시작한다.
땅의 둘레를 따라 돌아다니며 모든 것을 보았던 그는
바다1)를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오뒤세이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
것은 단지 기이한 개인적 경험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업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다. 아직도 현존하고 있는 우룩의 벽에 대한 묘사가 이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이 부분은 이 서문이 씌어진 때에 관한 궁금증도 불러일으킨다.
그는 우룩의 성벽을 지었다, 양 우리의 (도시)를,
성소 에안나(Eanna)를, 성스러운 창고를 지었다.
이 벽들을 보라,
청동과 같은 프리즈(frieze)를 갖고 있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저 능보를 보아라!
먼 옛날로부터 온 저 돌계단을 따라
에안나에게로 나아가라, 이쉬타르의 권좌로,
어떤 후대의 왕도 - 그 어떤 사람도 - 이와 같은 것을
다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우룩의 성벽으로 올라가서 둘러보아라,
테라스를 살펴보고 벽돌이 쌓인 모습을 자세히 보아라.
이들은 구운 벽돌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일곱 현인이 그 기반을 놓지 않았는가?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되는 젊은 길가메쉬는 엄청난 힘과 에너지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우룩의 지도자로서 그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뛰어든다. 그는 언제나 군대를 대기시키고 친구들을 불러내며 도시의 젊은이들을 실신할 정도로 괴롭혀 지쳐 쓰러지게 만들고 그들에게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당연히 우룩의 시민들은 이러한 점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었고 이에 대해 신들에게 불평
하며 신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주기를 간청하기 시작한다. 신성한 신들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꿰뚫어볼 수 있었다. 즉 길가메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은 그의 월등한 에너지와 힘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비범한 잠재력과 포부를 가진 친구가 필요로 했다. 그래서 신들은 창조자 아루루(Aruru)를 불러 그녀에게 길가메쉬의 짝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루루, 이 거친 황소(길가메쉬)를 창조한 그대가
이제 그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길가메쉬와 같은 거친 마음을 가진 그를,
1) ‘깊은 곳’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그들이 서로 겨루게 하라,
그러면 우룩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아루루는 천상의 신을 모델로 하여 하나의 정신적 이미지를 만든다. 그녀는 손을 씻고,
진흙을 떼어내어 사막에 던져서 엔키두(Enkidu)를 창조한다.
엔키두는 말하자면 자연상태의 사람이다. 그는 엄청나게 힘이 세고 벌거벗은 채 돌아다
니며 온 몸이 털로 덮여있고 그의 머리채는 여자의 것처럼 길며 곡식처럼 무성하게 자란다.
그는 마을이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영양(羚羊)과 함께 사막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저녁에는 짐승들과 함께 물가에서 갈증을 해소한다. 그는 짐승들의 친구로서 사람들이 짐승을 잡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를 메우고 덫을 부숴 버리면서 짐승들을 보호한다. 그는 이러한 파괴적인 행동을 통해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한 사냥꾼이 자신의 생계가 엔키두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러나 엔키두가 너무도 크고 강하기에 그 사냥꾼은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낙심한 그는 자기 아버지한테 가서 이 새로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이 존재가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물어본다. 사냥꾼의 아버지는 그에게 우룩에 있는 길가메쉬를 찾아가서 창녀를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그녀가 엔키두를 유혹해 짐승들로부터 그를 떼어놓을 수 있게 하라고 충고한다. 사냥꾼은 우룩으로 가서 길가메쉬에게 간청한다. 사냥꾼의 이야기를 들은 길가메쉬는 그에게 창녀를 데리고 가서 그녀가 엔키두를 유혹하게 하라고 이른다.
그리하여 사냥꾼은 창녀를 한 명 데리고 사막으로 갔다. 3일 째 되는 날 그들은 엔키두
가 짐승들과 함께 찾아올 법한 물가에 이르렀고 그곳에 앉아 엔키두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엔키두와 짐승들이 나타났고 물을 먹으러 내려왔다. 사냥꾼은 엔키두를 가리키면서 창녀에게 옷을 벗어서 그의 관심을 끌어보라고 부추긴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완벽하게 성공적이었다. 6일 낮 7일 밤 동안 엔키두는 모든 것을 잊고 그녀와 향락에 빠진다. 7일째 되는 밤이 지나고 만족감을 느낀 엔키두는 그의 짐승친구들에게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가 다가가자 짐승들은 그를 피해 달아났다. 그는 그들은 뒤쫓아갔으나 이제 더 이상 그가 옛날과 같은 힘과 빠르기를 지니지 못했고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물론 이는 부분적으로는 엔키두가 이 때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확실히
이 이야기의 저자는 이 부분에서 보다 더 심오한 것을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주술적이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엔키두가 성적으로 순결한 어린이 상태인 한에서 그 역시 어린이들과 짐승들 간에 형성되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여자를 알게되자 그는 곧 그 때부터 인간이라는 종족에 속하게 되는 선택을 한 것이며 짐승들은 이러한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이전과 같이 서로 침묵으로 의사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 엔키두는 서서히 이러한 사실의 일부를 이해한다. 저자는 말한다, “그는 자랐다. 그리고 그의 이해력은 넓어졌다.”
결국 엔키두는 짐승들을 뒤쫓길 포기하고 창녀에게 돌아온다. 그녀는 매우 친절하게 그
에게 말한다.
나는 엔키두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마치 신과 같아요!
왜 당신은 짐승들과 함께
사막을 배회하나요?
이리 오세요, 내가 당신을
넓은 길을 가진 우룩으로 인도할께요.
성스러운 신전으로, 아누의 거처로.
엔키두, 일어서요, 내가 당신을
아누의 거처인 에안나로 데려갈께요,
그곳에선 길가메쉬가 모든 의례를 관장하고 있답니다.
당신 역시 그를 대신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에요,
자, 당신이 그 자리에 앉아요!
이 말이 엔키두를 기쁘게 했고 그는 진심으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신의
옷을 벗어 하나를 먼저 그에게 입히고 나머지를 자신이 입었으며 그의 손을 잡고 사막을 건너 목자들의 천막으로 갔다. 목자들은 그들을 친절하게 환대해주었다. 여기서 엔키두는 최초로 문명과 문명의 복잡함에 직면하게 된다. 목자들은 그가 이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음식과 음료를 그에게 차려주었다.
그는 단지 들짐승들의 젖을
빨아먹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에게 빵을 내어놓았다.
그는 어색하게 움츠리며, 그것을 보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엔키두는 알지 못했다,
빵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그는 또한 배우지 못했다,
맥주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창녀가 입을 열어
엔키두에게 말했다.
“빵을 먹어요, 엔키두,
이것이 생명의 양식이에요!
맥주를 마셔봐요.
이것이 이 땅의 풍습이랍니다!”
엔키두는 빵을
배부를 때까지 먹었고,
맥주를 마셨다 ---
일곱 잔이나 ---
그는 편안해졌고, 기운이 났으며.
기분이 좋아졌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물로
털로 덮인 몸을 씻고,
기름으로 문질렀으며,
그리하여 사람이 되었다.
그가 옷을 입자
그는 마치 젊은 귀족 같았다.
그는 무기를 들고
사자를 때려 눕혔으며,
그래서 목자들은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엔키두는 며칠동안 목자들 곁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창녀와 같이 앉아있던 엔키두
는 어떤 남자가 바쁘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볼 생각에 창녀를
시켜 그를 불러오게 했다. 그 남자는 자신이 길가메쉬의 결혼식이 있을 우룩으로 결혼 케이크를 가져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엔키두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당황했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곧 창녀와 함께 우룩을 향해 떠났다. 그들이 도착하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들의 주변에 몰려들었고 엔키두의 힘과 큰 키를 보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길가메쉬보다 약간 작았으나 힘에 있어서는 그에 뒤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엔키두를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길가메쉬가 결혼식 행렬을 거느리고 와서 그
의 장인의 집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길가메쉬가 문 쪽으로 다가가자 엔키두가 길을 막고 그가 신부에게 못 가게 방해하였다. 둘은 서로 붙잡고 젊은 황소처럼 싸웠으며 그들의 싸움으로 문지방이 부서지고 벽이 흔들렸다. 마침내 엔키두가 이기고 길가메쉬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패배한 길가메쉬가 주저앉아 돌아서자 엔키두가 그를 향해 말했다. 그의 말은승리자의 기쁨에 찬 조소가 아닌 감탄과 존경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 누구도 당할 자 없는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낳았습니다.
우리의 거친 황소
닌순나(Ninsuna)가.
당신의 머리는 다른 사람들 위에 높이 올려지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엔릴은 당신에게 주었습니다!
엔키두의 아량이 길가메쉬의 마음을 움직였고 싸움으로부터 그들 사이의 영원한 우정이
자라났다.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손을 잡고 그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데려갔다. 그녀는 엔키두를 자신의 아들이자 길가메쉬의 형제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엔키두는 우룩에서 행복하게 살았고 길가메쉬는
친구를 얻었다. 그러나 종종 그러하듯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새로운 생활환경 속에서 엔키두는 점점 약해져갔다. 그의 근육의 강인함이 사라져갔고 그의 몸은 축 늘어지고 쇠약해졌으며 그는 이전 사막에 있을 때처럼 건강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울고있는 엔키두를 본 길가메쉬는 본능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예측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어려움과 모험으로 가득 찬 분투를 요하는 여행이었다. 길가메쉬는 그들이 서쪽 삼나무 숲에 살고 있는 후와와(Huwawa)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잡으러 떠나야만 한다고 제안한다.
엔키두는 자신의 힘을 잃은 것을 무척 슬퍼하고 있었으나 이런 방식으로 힘을 되찾는다
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길가메쉬는 후와와에 대한 소문만 들었으나 엔키두는 사막을 돌아다니며 그를 직접 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에 대한 건전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와와, 그의 울부짖음은 폭풍우이며,
그의 입은 불길이고,
그의 숨결은 죽음입니다.
누가 이러한 일을
하고자 하겠습니까?
후와와의 발걸음은
저항할 수 없는 공격입니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엔키두의 용기 없음을 비난하여 엔
키두가 창피를 느끼고 그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그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길을 떠나면서 마을의 연장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들로부터 여행에 관한 어버이다운 충고를 받았으며 길가메쉬의 어머니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그들의 여행은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있으며 특히 우리는 그 중에서 재앙에 대한 경고로
가득 찬 길가메쉬의 꿈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집 센 엔키두는 자신도 모르게 불경건한 태도로 그 모든 꿈 하나하나가 그들이 후와와를 정복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해석해 버린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직접 후와와와 대면하는 장면을 기록한 부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판본에서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은 분명한 것 같다. 즉 후와와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 패배하고 나서 자신의 목숨을 구걸했으며 길가메쉬는 처음에는 그를 살려주려 했으나 엔키두의 주장에 따라 결국에는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일화에 대한 가장 완전한 설명은 이 서사시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아마도 서사시의 저자가 분명 참고했을 것으로 보이는 수메르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처음에 길가메쉬는 후와와를 둘러싼 공포의 힘에 굴복해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후와와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산이 어디인지 알아 보고 그에게 자신의 누나를 아내로, 자신의 여동생을 하녀로 바치기 위해 온 것이라 말하고 목숨을 구한다. 후와와는 이 말에 속아 무기와 공포의 후광을 벗어놓는다. 무방비상태가 된 후와와를 이 때 길가메쉬가 기습하여 정복한다. 후와와는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신사인 길가메쉬는 그를 구해주려 한다. 적어도 농부특유의 의심에 가득 찬 엔키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전에는 말이다.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하는 저 가장 큰 자를
남타르(Namtar, 죽음)가 삼키는구나.
어떠한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 남타르가.
사로잡힌 새를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며
사로잡힌 젊은이를 그의 어머니의 무릎으로 돌아가게 해주면,
당신은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도시와 당신을 낳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이러한 엔키두의 간섭에 화가 난 후와와는 엔키두가 길가메쉬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음식
만 축내는 고용인이냐고 비꼬는 투로 묻고 이 모욕적인 말에 자극을 받은 엔키두는 후와와의 머리를 베어버린다.
다시 서사시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보자면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우룩으로 돌아온 후
길가메쉬는 싸움과 여행의 먼지를 씻어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렇게 차려입은 길가메쉬는 무척 매력적이어서 우룩의 여신 이쉬타르(Ishtar) 자신이 그에게 푹 빠져 청혼을 한다.
이쉬타르는 만약 그가 그녀의 남편이 되면 자신이 그에게 황금과 청금석으로 만든 전차를줄 것이며 다른 왕들이 모두 그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고 그의 염소들은 세 쌍둥이를 낳을 것이며 그의 양들은 쌍둥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며 오히려 이러한 생각에 대해 좀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쉬타르의 제안을 조용하게 거절하는 대신 그녀에게 모욕을 퍼붓는다. 길가메쉬는 그녀가 바람과 외풍을 막을수 없는 만들다만 문이고 사람을 더럽히는 송진이며 물이 새는 가죽 부대이자 발에 꼭 끼는 신발이라는 등의 말로 그녀의 화를 돋군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이전의 모든 연인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까지 들춰낸다. 그녀의 젊은 시절의 연인 두무지(Dumuzi) 혹은 탐무즈(Tammuz), 결국 그녀는 그에게 매년 애가를 지어주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가 한 때 사랑했던 알록달록한 새, 그는 결국 날개가 부러져 이제 숲 위를 달리며 “kappee! kappee!(내 날개! 내 날개!)”라고 외치고 있다. 그녀는 사랑했던 사자를 위해서는 구덩이를 팠으며,군마(軍馬)에게는 채찍과 박차의 운명을 내렸다. 그녀가 사랑했던 목동은 결국 늑대로 변해 버려 자신의 개로부터 습격을 받게 되었고 그녀 아버지의 정원사, 이슐라누(Ishullanu)는 그녀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다가 그녀로부터 큰 재앙을 받았다.
이처럼 그녀의 결점을 쭉 나열하는 것을 듣고 나서 전혀 참을성이 없는 이쉬타르는 곧
장 아버지인 하늘 신 아누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에게 길가메쉬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말하고 길가메쉬를 죽일 수 있도록 “천상의 황소”를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한다. 아누는 아마도 이쉬타르 자신이 잔소리들을 만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쉬타르는 몹시 화가 나서 만약 아누가 자신이 하려는 일을 막으면 저승문을 부수고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워 그들이 산 자를 잡아먹도록 하겠다고 협박한다.
아누는 천상의 황소는 매우 파괴적인 동물이라서 만약 그것을 풀어놓으면 7년동안 기근이 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쉬타르는 자신이 7년동안 사람들과 짐승들을 먹여 살릴 곡식과 건초를 저장해 놓았다고 보장한다. 결국 아누는 그녀의 뜻에 굴복한다.
이쉬타르가 천상의 황소를 우룩에 데리고 내려오자 천상의 황소는 자신의 엄청난 위협을
드러냈다. 황소의 첫 번째 콧김은 땅에 커다란 구멍을 냈고 그 속으로 100명의 사람들이 떨어졌으며 두 번째 콧김이 만든 구멍으로는 200명이 더 떨어졌다. 그러나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가축을 다루는데 있어서의 노련한 모습을 보여준다. 엔키두는 황소의 뒤에서 그 꼬리를 비틀었고 -이는 오래된 카우보이 트릭이다 - 그사이 길가메쉬는 마치 투우사와 같이 황소의 목에 칼을 던져 꽂았다.
이쉬타르는 천상의 황소의 죽음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성벽에 기어올라가 탄
식의 춤을 추며 길가메쉬를 저주했다. 이 때 엔키두는 황소의 뒷다리를 찢어서 그녀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이봐! 만약 당신이 내 손 닿는 데 있으면 당신한테도 이와 똑같이 해줄 텐데 말이야.” 이쉬타르와 그녀의 여인들은 황소의 정강이뼈를 보고 울부짖었다. 한편 길가메쉬는 황소뿔을 그의 아버지 루갈반다(Lugalbanda)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전 장인들을 불러모아 그들이 그 뿔의 크기를 보고 탄복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와 엔키두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몸을 씻고 승리에 차서 우룩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들을 바라보았고 길가메쉬는 의기양양해서 궁녀들을 향해 노래했다.
“누가 고장 고귀한 젊은이인가?/ 누가 가장 유명한 청년인가?”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길가메쉬가 가장 고 귀한 젊은이죠! /엔키두가 가장 유명한 청년이죠!”
이야기의 이 지점에서 두 친구는 힘과 명성에 있어서 최정점에 서 있다. 그들은 멀리 떨
어진 외딴 삼나무 숲속에 있는 무시무시한 후와와를 죽였고 거만한 태도로 위대한 여신을 경멸했으며 천상의 황소를 죽이는 것을 통해 그들이 그 여신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제 그들이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후와와는 엔릴(Enlil)에 의해 삼나무
숲의 감시인으로 임명된 자였고 따라서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그를 죽인 것이 엔릴을 화 나게 했던 것이다. 엔키두는 꿈에서 신들이 모여 자신과 길가메쉬가 후와와를 죽인 것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장면을 본다. 엔릴은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길 요구하나 태양신 --공정함과 중용의 신 --이 중재하여 길가메쉬의 목숨은 구해낸다. 그러나 아마도 보다 더 명백하게 유죄로 보이는 엔키두는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엔키두는 병에 걸려 쓰러진다. 꿈에서 알게된 일이 그대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린 엔키두는 자신이 결코 우룩에 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하며 자신을 데려온 사냥꾼과 창녀를 저주한다. 태양신은 다시 한번 공정함을 변호하며 엔키두에게 그가 그의 새로운 삶에서 길가메쉬를 친구로 얻고 얼마나 호사스러움을 누리며 살았는지 지적해준다. 그러자 엔키두는 창녀에게 내렸던 저주를 긴 축복으로 상쇄시킨다. 그러나 감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엔키두는 죽어야하는 판결을 받았다.
이 시점까지 길가메쉬는 그 시대의 영웅적 가치에 따라 살아왔다는 것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죽음은 사물의 계획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간은 어쨌든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전투에서 고귀한 적과 싸우다 영광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이름과 명예를 남기자는 것이 이 시대의 가치이다. 따라서 길가메쉬가 엔키두에게 후와와를 잡으러 모험을 떠나자고 제안하고 엔키두가 이에 대해 싫은 기색을 비쳤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신랄하게 친구를 비난한다.
“나의 친구여, 누가 그처럼 높여져서
하늘에 도달하고
샤마시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겠소?
살 날이 정해져 있는 단지 인간이라는 존재,
그가 무엇을 하든 그는 단지 바람에 지나지 않을 뿐.
너는 -이미-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다.
너의 용기로부터 힘을 내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내가 이끌어줄테니,
너는 (내 뒤에 붙어서) 나에게 외쳐라.
“모여라!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만약 내가 쓰러진다 해도 내 명성이 세워질 것이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길가메쉬가 무시무시한
후와와와 싸우다가 쓰러졌노라‘라고.“
그는 계속해서 후에 자신의 자식들이 엔키두의 무릎에 앉았을 때 엔키두가 그들에게 그
들의 아버지가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으며 그가 얼마나 영광된 죽음을 맞이했는지 이야기해 줄 것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길가메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왔을 때 이 모든 것은 단지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제 엔키두의 죽음 앞에서 죽음은 강력한 현실로 그에게 다가 왔으며 길가메쉬는 이를 믿기를 거부한다.
나의 친구여, 재빠른 노새,
산 속의 사나운 나귀,
초원의 표범이여.
엔키두, 나의 친구여, 재빠른 노새,
산 속의 사나운 나귀,
초원의 표범이여,
나와 함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이여,
험한 바위산을 올라가
천상의 황소를 잡아 죽였고,
삼나무 숲에 사는 후와와를 무찌른 그대를
지금 사로잡은 이 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는 깊은 어둠에 빠져 나의 말을 듣지도 못하는구나!
그러나 그는 눈을 들지 않는다.
(길가메쉬가)그의 심장에 손을 얹어 보지만
그것은 뛰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친구의 얼굴을
마치 신부처럼 베일로 덮었다...
그는 독수리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새끼를 잃은 어미사자와도 같이.
그는 친구의 주변을 왔다갔다하며 맴돌았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머리타래를 풀어헤치며
아름다운 의복을 벗어 땅에 내팽개치면서.
그가 겪은 상실감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모든 모험을 나와 함께 겪어낸 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엔키두,
모든 모험을 나와 함께 겪어낸 그를
인간의 운명이 덮쳤다.
낮이나 밤이나 나는 그를 위해 울었고,
그를 결코 땅에 묻으려 하지 않았다 --
혹시라도 나의 친구가 나의 (커다란) 통곡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
7일 밤낮 동안,
그의 코에서 구더기가 떨어질 때까지.
그가 떠난 이후 나는 결코 위안을 찾을 수 없기에,
사냥꾼처럼 들판을 배회하고 있다.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길가메쉬를 사로잡았다. 그는 다른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
었다. 오직 그 자신도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밤낮으로 그를 괴롭혔고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조상인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 영생을 얻어 세상 끝날까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우트나피쉬팀에게로 가서 불멸의 비밀을 알아내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길가메쉬는 여행을 떠난다. 그는 익숙한 길을 지나 해가 지는 서쪽 산맥에
까지 나아갔다. 커다란 전갈인(scorpion man) 부부가 해가 들어오는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길가메쉬로부터 엔키두의 죽음과 영생을 얻기 위한 길가메쉬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가 태양이 밤 동안 지나가는 산맥의 터널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길가메쉬는 12 마일의 두 배나 되는 길이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간다. 터널의 다른 쪽 끝에 있는 일출의 문 앞에 기대어서고 나서야 길가메쉬는 그의 얼굴에 바람을 느끼고 마침내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일출의 문에는 보석과 과일 같은 귀중한 돌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들로 가득찬 정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도 길가메쉬에게는 어떤 유혹이 되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오로지 단 한가지 생각 즉, 죽지 않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을 지나 길가메쉬는 거대한 사막으로 접어든다. 그 곳에서 그는 야생 소들을 잡아 그들의 살을 먹고 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며 돌아다닌다. 그는 물을 얻고자 전에 한번도 우물이 아니었던 곳을 파본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는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태양신 샤마시 -- 언제나 중용의 정신을 갖고 있는--가 이를 보고 마음이 상해 하늘에서 그를 설득한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그의 설득에 따르려 하지 않고 단지 삶만을 원한다.
사막을 이처럼 방황하고
배회한 후에
대지의 심장 안에 누워
쉬어야만 한단 말입니까?
나는 이제껏 많은 시간
충분히 누워 잤습니다!
(아니요!) 내 눈이 태양을 보게 해 주십시요
내가 햇빛에 물리도록 해 주시오!
어둠이 저 멀리 떨어져 있다구요?
그렇다면 햇빛은 얼마나 있습니까?
죽은 이들도 태양의 눈부신 광채를 볼 수 있습니까?
이렇게 배회하던 길가메쉬는 이윽고 대지를 감싸고 있는 바다의 해안가에 도착해 한 여
인이 운영하는 주막을 발견한다. 그의 지저분한 외모와 가죽옷은 술 파는 여인을 겁에 질리게 했고 그녀는 그가 산적이라고 생각해 황급히 문을 걸어 잠그려 한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고 엔키두의 죽음과 영생을 추구하는 자신의 여행,그리고 그가 우트나피쉬팀으로부터 배우길 원하는 비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샤마시가 그랬듯이 -- 그가 찾는 것이 가망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설득한다.
길가메쉬여,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당신이 찾고 있는 생명을 당신은
결코 찾지 못할 거예요.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들은
죽음을 인간의 몫으로 나누어주었고, 생명은그들이 채어가 버렸기 때문이죠.
그대, 길가메쉬여, 당신의 배를 가득 채우세요.
밤과 낮으로 즐거운 일을 만들고,
매일 향연은 베푸세요.
밤이나 낮이나 춤과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세요.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와 몸을 씻으세요.
당신이 손안에 품고 있는 아이를 보시고
당신의 아내가 당신 품안에서 기뻐하게 하세요.
이러한 일들만이 인간이 관심 가져야 할 일이랍니다.
그러나 길가메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술 파는 여인이여, 왜 당신은 내게 이러한 말을 합니까?
내 마음은 내 친구 때문에 너무도 아픕니다.
술 파는 여인이여, 왜 당신은 내게 이러한 말을 합니까?
내 마음은 엔키두 때문에 너무도 아픕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우트나피쉬팀에게로 가는 길을 묻는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 조언을 해준다. 우트나피쉬팀의 사공 우르샤나비(Urshanabi)는 마침 목재를 베어 가기 위해서 육지에 와 있었고 아마도 그라면 길가메쉬를 우트나피쉬팀이 있는 곳으로 건너가게 해 줄거라는 것이다. 길가메쉬는 그를 만나지만 처음부터 어려움이 뒤따른다. 아마도 우루샤나비가 길가메쉬의 청을 즉시 들어주지 않자, 화가 난 길가메쉬가 우르샤나비가 배를 나아가게 하기 위해 삿대로 사용하는 돌을 부숴버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길가메쉬는 영구적인 돌삿대를 대신할 엄청나게 많은 수의 나무(따라서 썩기 쉬운)삿대를 만들어와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우트나피쉬팀이 사는 섬으로 건너간다.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길가메쉬는 마침내 그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섬의 해안에는 그의
선조 우트나피쉬팀이 앉아 있었고 길가메쉬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길가메쉬가 그를 바라본 순간 길가메쉬는 상황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 무엇인가가 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내가 우트나피쉬팀 당신을 바라보니,
당신의 몫도 다르지 않군요,
당신도 나와 똑같군요!
당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도 나와 똑같습니다!
내 마음은 당신과 싸움을 할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처럼 한가하게 누워있군요.
말해주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신들의 회의에
참석해서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우트나피쉬팀은 그에게 홍수 이야기를 해주고 어떻게 그 혼자 그의 신 에아(Ea)
로부터 홍수에 대한 경고를 받고 커다란 방주를 지었으며 그의 가족과 모든 짐승들을 한 쌍씩 그 안에 실어 그들을 구했고 마침내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인간과 짐승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신들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게되었는지 말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특별한 하나의 사건에 대한 것일 뿐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는 어떤 비법이나 가르침이 아니었다. 이는 길가메쉬와 그의 상황에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고 따라서 길가메쉬를 이끌어온 모든 희망의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이제 누가 당신을 위해서 신들의 회의를 소집해서 당신이 찾고 있는 생명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겠는가?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쉬가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그가 이 교훈이 되
는 실례를 통해 자신의 요점을 절실하게 깨닫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뒤따르는 잠과의 싸움부분은 아마도 홍수 이야기가 원래 단지 교훈이 되는 실례만을 갖고있던 보다 짧은 이야기에 극히 기교적으로 삽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어쨌든 우트나피쉬팀은 곧 길가메쉬에게 6일낮 7일밤 동안 잠을 자지 말 것을 제안한다. 길가메쉬는 이 도전을 -- 이는 아마도 죽음의 동생인 잠과의 싸움을 의미할 터인데 --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지는 잠이 그를 덮치고 우트나피쉬팀은 자신의 아내에게 냉소적으로 말한다.
생명을 갈망하던 저 강인한 자를 보시오!
잠이 마치 폭풍과도 같이
그를 때려 눕혔군요.
하지만 우트나피쉬팀의 아내는 사실상 이 잠과의 싸움은 죽음과의 싸움이기에 길가메쉬
가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이 잠으로부터 깨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그에게 동정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그를 깨워서 그가 평화롭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우트나피쉬팀은 그렇게 날카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인간이 본래 기만적인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길가메쉬 역시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길 바랬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 길가메쉬를 위해 매일 음식을 준비하고 벽에 날짜를 표시하라고 지시한다. 아내는 우트나피쉬팀의 지시에 따르고 제 7일째 되는 날 우트나피쉬팀은 그를 건드려 깨운다. 길가메쉬의 첫 말은 -- 우트나피쉬팀이 예측했던 바와 같이 -- 다음과 같았다.
내게 잠이 쏟아지자마자
당신이 재빨리 나를 건드리고
나를 깨웠군요.
그러나 벽의 날짜 표시와 여러 가지 상태로 부패한 음식 조각은 다른 진실을 증언해주고
있었다. 이제 정말 희망은 없었고 이전보다 더한 공포가 길가메쉬를 사로잡았다.
길가메쉬는 멀리있는 우트나피쉬팀에게 말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트나피쉬팀이여, 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내 뒤를 쫓아오는 자,
그 탐욕스런 자,
죽음, 그가 내 침실에 앉아 있습니다!
내가 어디를 돌아보아도,
그곳에 죽음, 그가 있습니다!“
우트나피쉬팀은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뱃사공 우르샤나비에게 씻을 수 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고 그에게 귀향을 위한 깨끗한 옷을 주라고 지시한다. 이 옷은 그가 고향에 닿을 때까지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길가메쉬와 우르샤나비는 다시 배를 타고 출발한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려 할 때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다시 길가메쉬를 위해 중재에 나선다. 그녀는 길가메쉬가 그처럼 어려움을 많이 겪고 고향에 돌아가려 하는 이 때 우트나피쉬팀이 그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길가메쉬는 배를 돌려 다시 해안으로 돌아오고 우트나피쉬팀은 그에게 깊은 땅 밑의 달콤한 물 압수(Apsu)안에서 자라는 가시가 많은 풀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이 풀은 생명체를 다시 젊어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풀의 이름은 “노인이 어린이가 되듯이”였다. 너무나 기쁜 길가메쉬는 서둘러 압수로 내려가는 밸브를 열었다. 그리고 마치 바레인(Bahrein)의 진주잡이 잠수부들이 하듯이 자신의 다리에 돌을 묶어서 물 아래로 내려간 후 그 풀을 찾아서 가시에 손을 찔려가면서도 이를 땄다. 그 후 그는 돌을 다리에서 풀었고 그러자 물살로 인해 다시 위로 떠올라 해안에 당도했다. 길가메쉬는 기뻐하면서 우르샤나비에게 이 풀을 보여주고 -- 이들 두사람은 분명 지금 우트나피쉬팀의 섬이 아닌 페르시아만의 해안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데 -- 그 효력에 대해서 말해주며 이를 우룩으로 가져가서 자신이 늙으면 이를 먹고 다시 어린이로 돌아갈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날씨는 더웠고 길가메쉬는 돌아가는 길에 마음을 끄는 시원한 연못을 보자 옷을
벗고 목욕하러 들어갔다. 이 때 뱀이 그가 옷과 함께 남겨놓은 풀의 향기를 맡고 굴에서 나와 이를 낚아채어 먹어버렸다. 뱀은 자신의 굴 안으로 들어가서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롭고 빛나는 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는 길가메쉬 여행의 끝을 의미한다. 결국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회춘의 힘
을 얻은 것은 길가메쉬가 아니라 뱀이다. 결국 그는 최후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없다.
그 날 길가메쉬는 앉아서 울었다.
눈물이 계속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르샤나비여, 대체 누구를 위해 나의 팔이 그처럼 피로해졌는가?
누구를 위해 내 심장의 피가 쓰였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아무런 축복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나는 저 땅 속의 뱀을 위해 봉사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최후의 패배와 직면하는 이 장면의 분위기는 뭔가 새롭고 이전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공포와 절망 대신 일종의 평정과 체념이, 심지어는 유머와 자조적인 포기가 있다.
이는 드라이든(Dryden)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났고,
누구도 진정한 행복을 자랑할 수 없기에,
침착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견뎌내자,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우리의 볼일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
순례자와 같이 우리는 정해진 곳을 향해 간다.
세상은 하나의 여인숙이며 죽음은 여행의 끝이다.
이처럼 늦게 값지게 얻어진 체념, 현실에 대한 인정은 서사시가 처음 시작한 곳 즉 길가
메쉬의 영구적 업적으로 우뚝 서 있는 우룩의 성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일지라도 그가 행한 일은 그의 뒤에 계속 살아남는 다는 것이다. 불멸의 척도는 이 업적 속에 있다. 이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불멸의 길이다.
따라서 길가메쉬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첫 번째 행동은 우룩의 성벽을 우루샤나
비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길가메쉬는 뱃사공 우르샤나비에게 말했다.
“우르샤나비여, 우룩의 성벽으로 올라가서 둘러보라!
테라스를 살펴보고 벽돌쌓인 모습을 자세히 보라!
이는 구운벽돌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일곱 현인이 그 기반을 놓지 않았는가?
한 에이커는 도시이고 한 에이커는 과수원,
한 에이커는 강바닥,
그리고 또한 이쉬타르 신전의 경내가 있다.
삼 에이커와 경내가 우룩을 구성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출처들
이 고대 이야기가 무엇에 대한 것이며 이 저자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본적 질문, 즉 이 이야기의 출처와 주제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출처에 대한 질문은 저자가 무엇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지 혹은 --만약 고 바빌로니아 단편들이 아직 하나의 서사시를 나타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하나의 이야기 권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면 -- 어떤 준거틀 내에서, 어떤 전통적인 길가메쉬 전승체계 내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왔는지 묻는 것이다.
주제에 관한 질문은 이를 보다 더 깊게 파고든다. 즉 이는 저자, 혹은 저자들은 이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 그들의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그들 속에서 어떤 의미가 드러나며 혹은 어떤 의미가 그들에게 부여되어 있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시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그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혹은 그렇다고 추측될 수 있는 출처들을 “길가메쉬 전
통”이라는 제목의 도표 안에 간결하게 제시해보려고 하였다. 이는 제 2 초기왕조라고 알려진 시기, 기원전 약 2600년 경 우룩의 지도자였던 “역사적인 인물 길가메쉬”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길가메쉬 전통이 실제 역사적 인물 주변에 밀집되어있다고 가정한 이유는 이 전통이 다루고 있는 시기가 두드러지게 이의 내용을 특징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화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 예를 들어 “길가메쉬와 악가(Agga)"이야기에 나오는,키쉬(Kish)의 악가의 아버지 엔메바라게시(Enmebaragesi)와 같은 이는 동시대의 비문에 의해 실존한 역사적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길가메쉬라는 이름 자체도 한 때 고유명사 속에서 통용되었으나 후대에는 쓰이지 않게 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길가메쉬의 죽음“에 암시되어 있는 궁전의 신하들을 통치자와 함께 매장하는 풍습도 실제 우르의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의 왕실 무덤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 풍습은 이후 곧 없어졌다.
초기 왕조 시기의 우룩의 지도자로서 역사적 인물 길가메쉬는 엔(en)의 호칭을 갖고 있
었을 것이며 주술적이고 군사적인 두 가지 구별되는 측면의 임무를 한 몸에 겸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표에서 우리는 이를 각각 Heros 측면과 Hero 측면이라고 칭했다.
주술적인 혹은 Heros적인 측면의 엔의 임무에 대해서는 매년 인간인 엔 사제(혹은 여사
제)와 신이 결혼하는 성혼의례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우룩에서 엔은 남성이었으며 도시의 지도자였다. 의례에서 그는 두무지-아마우슘갈란나와 동일시되었으며 여신 이난나, 혹은 이쉬타르와 결혼했다. 그들의 결합은 주술적으로 모두에게 다산과 풍요를 보장해 주었다. 이 의례가 묘사되어있는 유명한 우룩의 병(Uruk Vase)를 통해 보여지듯이 이 도시에선 문자이전 시대부터 이러한 의례가 거행되었다.
엔의 주술적 힘은 성혼에서의 의례적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 힘은 그의 고유한
권한에 속한 것으로서 그가 죽어서 저승세계에 사는 때에도 계속 효과를 발휘하고 그로부터 땅위에서 나무와 풀, 과수, 논밭, 목초를 자라고 번성하게 하는 힘이 나왔다. 따라서 재임 기간에 많은 풍요를 가져다 준 아주 성공적인 엔 사제들은 죽은 후에도 지상에 계속 축복을 내려달라는 이유로 장례 제물을 받으며 계속 숭배되었다. 우리는 아마도 역사적 존재로서의 길가메쉬가 이러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풍년을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었다고 믿어져서 죽은 후에도 계속 숭배되는 인물이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이 추측에 대한 첫 번째 명백한 증거는 기원전 2400년경의 기르수(Girsu)에서 나온 계산서들이다. 이 계산서들은 훌륭한 엔 사제와 풍요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그 밖의 인물들의 죽음 앞에 장례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길가메쉬의 (강)둑”이라는 성스러운 장소에서 치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길가메쉬가 저승세계의 힘으로서 특출함을 보였다는 또 다른 증거는 기원전2100년경 우르 제 3왕조의 첫 번째 왕 우르남무(Urnammu)의 죽음을 다룬 글을 통해서이다. 여기서 길가메쉬는 죽은 자들의 영토에 있는 재판관으로 나온다. 그는 후에 기원전 첫번째 Millenium 시기의 주술적 텍스트 속에서 고집센 귀신들과 다른 악령들에 대한 재판을 호소하는 자로 또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천년대 전반에 작성된 애가 속에서 길가메쉬는 닝기쉬지다(Ningishzida)신과 더불어 나란히 죽어 가는 두무지의 형태로 언급된다.
따라서 역사적 존재 길가메쉬가 가지고 있었던 엔의 주술적 임무라는 측면에서 비롯된
역동적이고 연속적인 비문학적 종교전통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엔의 군사적 임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역사적 인물 길가메쉬는 분명 우룩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그의 이름을 둘러싼 전통은 그가 특별한 위업을
이룬 군사 지도자이었음을 암시한다. 길가메쉬를 키쉬로부터의 해방전쟁에서의 지도자로 숭배하는 후대의 전통이 실제로 역사적인 핵심을 지닌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긴 쉽지 않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가능한 이야기이다. 어쨌든 그에게 부과된 해방자의 역할을 통해 우리는 후에 구티족으로부터의 독립전쟁에서 신 두무지-아마우슘갈란나가 우룩의 신성한 대표자로 섬겨졌을 때 왜 그가 길가메쉬의 본을 따르겠다고 결정했는지 알 수 있다. 기원전 2100년경 산지인 구티족과 싸워 승리를 쟁취한 우투헤갈(Utuhegal)의 비문에는 그가 출정하기 전 그의 군대를 앞에 놓고 이러한 두무지-아마우슘갈란나의 결정을 전달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길가메쉬와 키쉬와의 전쟁에 관한 전통은 우르의 슐기(Shulgi)를 위해 쓰여진 왕실 찬가
속에서도 언급된다. 그는 우투헤갈보다 한 세대 뒤의 인물로서 기원전 1800년경 아남
(Anam)의 비문에 보면 슐기가 우룩의 성벽을 세워 또다른 군사적 업적을 쌓았고 자신이
이를 수리했다고 적혀있다.
저승세계에서의 풍요의 힘(Heros 전통) 그리고 유명한 전사이자 고대의 성벽 축조자
(Hero 전통)라는 두가지 비문학적인 전통 배경에 반하여 소위 문학적 전개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서사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분명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어떤 구전 이야기와 노래가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와 노래가 후대의 문서화된 작품의 자료가 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문서화된 작품은 우르 제 3왕조의 즉위 무렵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 왕조의 왕
들은 일반적으로 문학, 그리고 고대 작품들을 보존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길가메쉬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따라서 길가메쉬에 관한 전통이나 작품은 특별히 더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것들(대개 후대의 복사본으로)은 수메르어로 씌어진 짤막하고 개별적인 서사시 작품들이다.
이들은 길가메쉬가 죽음의 문제와 직면하는 내용을 다룬 Heros 전통과 그의 군사적 용맹을 찬양하는 Hero 전통으로 비교적 깔끔히 나눠진다.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서 ?길가메쉬의 죽음? 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엔 길가메쉬의 삶이 다했을 때 어떻게 죽음이 그를 찾아왔고 그가 어떻게 강하게 저항했으며,어떻게 엔릴이 직접 그에게 인간이 죽음을 피할 길이란 없다고 설득했는지 적혀있다. 이 이야기는 단지 단편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후에 더 발굴이 이루어져야만 그 전체 내용이 명확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죽음과 관련된 또다른 길가메쉬 이야기는 ?길가메쉬, 엔키두, 그리고 저승세계?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 따르자면 태초에 여신 이난나가 유프라테스 강둑을 거닐다가 강물위에 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를 강변으로 가져와 심고 나중에 이 나무가 자라면 그걸 가지고 탁자와 침대를 만들 꿈에 부풀었다. 나무가 빨리 자라 적당한 크기가 되자 이난나는 이를 베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무의 꼭대기에는 천둥새 임두굿(Imdugud)이 둥지를 틀었고 악마 키스킬릴라(Kiskillilla)는 줄기에 거처를 마련했으며
뿌리에는 커다란 뱀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나무를 벨 수 없게 되어 풀이 죽은 이난나는 자신의 오빠인 태양신 우투(Utu)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녀는 길가메쉬에게 가서 부탁한다. 그는 용감하게 무기를 들고 나가 침입자들을 쫓아버리고 나무를 베어서 그녀에게 탁자와 침대를 만들 목재를 주었으며 자신은 뿌리로 납작하고 둥근 공과 막대기를 만들어 갖는다(아마도 오늘날 하키와 유사한 게임을 하기 위해서). 모든 우룩의 시민은 이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이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 부모도 형제도 없는 한 집 없는 어린 소녀만은 자신만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슬퍼한다. 소녀는 고통 속에서 태양신이자 정의와 공정함의 신인 우투를 향해 ‘i-Utu'라고 외쳤고 그는 소녀의 외침을 들었다. 그러자 대지가 갈라지며 길가메쉬가 자신을 위해 만든 장난감들이 저승세계로 떨어졌다. 이는 생각없는 난봉꾼에 대한 일종의 비난이었다. 이 일로 인해 길가메쉬가 울적해하자 엔키두는 자신이 그 장난감들을 찾아오겠다고 나선다. 길가메쉬는 엔키두에게 저승세계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준다. 즉 저승세계에서는 조용히 해야 하며, 좋은 옷을 입어 남의 이목을 끌지 말아야 하고, 몸에 기름을 발라야하며,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와 부인에게 입맞추거나 혹은 자신이 미워했던 아이와 부인을 때림으로써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정작 저승에 내려간 엔키두는 길가메쉬가 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을 다 행하고 결국 저승에 굳게 묶여 버린다. 길가메쉬는 신들에게 엔키두를 돌려달라고 사정하나 신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단지 엔키두의 망령이 나와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구멍을 뚫어주는 일 뿐이었다. 이 구멍을 통해 만난 두 친구는 서로를 껴안고 길가메쉬의 질문에 엔키두는 저승세계의 생김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준다. 저승의 고통에도 단계가 있지만 그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음침하다. 대 가족을 가진 사람.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 선한 삶을 산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분명한 도덕적, 윤리적 성질의 일반 법칙이 저승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영웅 전통에 속한 작품들 중에는 우선 길가메쉬가 키쉬로부터의 해방전쟁에서 어떻게 우
룩을 지휘했는가를 이야기해주는 짧막한 수메르어 작품 “길가메쉬와 키쉬의 악가”가 있다.
우룩이 키쉬에 대한 통상적인 부역을 거절하자 악가의 배를 거느린 군대가 우룩의 성벽 앞에 나타나 포위한다. 처음에 전사 비르후르투라(Birhurturra)가 출격하나 실패한다. 두 번째에는 엔키두가 출격하며 길가메쉬는 악가의 배로 가는 길을 뚫어 그를 사로잡는다. 이 이야기는 영웅적 명예와 충성심에 대한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길가메쉬는 한때 도망자 신세였고 이런 그를 악가가 친절히 받아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길가메쉬를 우룩의 지도자로 세워준 사람이 바로 악가였던 것 같다. 그런데 길가메쉬는 바로 그러한 악가에 대항하는 반란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으로서 길가메쉬는 자신이 타인의 과분한 처분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전투에서의 용맹스러움을 통해 얻어야만 했고 아가를 무찌름으로써 자신을 증명해보여야만 했다. 악가를 포로로 잡은 후에야 비로소 길가메쉬는 악가에게 자신이 빚진 것을 인정하고 그를 풀어준 다음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그를 군주로 섬길 것을 약속한다. 이제는 길가메쉬 그가 관대한 처분을 베푸는 자가 된 것이다. 그는 원래 악가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선의를 다시 갚아줌으로써 이제 더 이상 빚진 상태에 있지 않게 되었다.
길가메쉬의 영웅적인 측면은 또한 후와와를 무찌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다룬 수메르
이야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판본으로 전해지는데 하나는 정교한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간략한 형태이다. 이 모험 역시 길가메쉬 자신의 명성을 세우기 위한 것이지만 거의 동화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보다 더 낭만적이라는 점에서 악가에 관한 이야기와는 다르다. 인간으로서 적대자였던 악가와는 달리 후와와는 전사라기 보다는 일종의 괴물로 보인다. ?길가메쉬, 이난나, 그리고 천상의 황소?에 관한 수메르 이야기 속의 캐릭터들도 전체적으로 신화적이다. 여기에서도 서사시의 동일한 에피소드에서처럼 길가메쉬는 신성과 신화적 괴물과 용기를 겨룬다.
이처럼 명백히 길가메쉬 전통의 두 가지 흐름이 문학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정반대 되는 두 가지 태도를 볼 수 있다. Hero 이야기 속에서 영웅은 거의 무모한 태도로 죽음을 자초한다. 악가에게 빚을 갚고 더 이상 신세지는 기분이 들지 않기 위해서, 후와와를 죽임으로써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이난나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그러나Heros 이야기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이다. ?길가메쉬의 죽음?에서 길가메쉬는“저항할 수 없는 어둠이 당신에게 도달했다.”는 말을 듣는다. “만약 당신에게 저승세계에 대해 내가 무엇인가 가르쳐준다면 당신은 자리에 앉아 울 것이고 나 역시 앉아서 울고 싶어질것이다.” 엔키두는 ?길가메쉬, 엔키두, 그리고 저승세계?에서 길가메쉬에게 이렇게 말한다.
길가메쉬라는 한 인물 속에 통합되어 있는 이 모순되는 두 가지 태도는, 말하자면 후대의
서사시의 주제가 되는 어떤 것을 예고하고 있다. 즉 초기의 죽음에 대한 경멸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로의 전환-- 엔키두의 죽음 후 길가메쉬를 여행길에 오르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다.
만약 보다 명확하게 수메르 문학의 길가메쉬 전통 중 어떤 부분이 이 서사시에 사용되었
는가 묻는다면 우리는 후와와 이야기와 ?길가메쉬, 이난나, 그리고 천상의 황소? 이야기를 서사시와 대응되는 명백한 원형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에피소드는 모두 고 바빌로니아 문서 속에서 나타난다. 반면 ?엔키두의 도착?과 ?생명에 대한 추구? 에피소드 역시 고 바빌로니아 문서의 일부이긴 하지만, 이들의 수메르어 원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이야기들이 수메르 길가메쉬 전통의 일부였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의심이 간다. 아마도 이들은 수메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전통인 것 같다.
?엔키두의 도착? 이야기의 경우를 보자면, 털투성이 야생 인간이 동물들과 함께 살다
가 여자의 유혹에 이끌려 인간 사회 속으로 들어온다는 모티브는 아시아의 민담에서 많은형태로 발견된다. Charles Allyn Williams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Oriental Affinities of theLegend of the Hairy Anchorite(Urbana, 1925-6)에서 이 주제를 자세히 다루었다. 그의 자료들은 이 이야기의 기반이 오랑우탄에 대한 놀라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랑우탄이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피하는 “야생 인간”으로 보여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원은 극동에서부터 찾아져야 한다.
?생명에의 추구? 모티브 또한 메소포타미아 밖의 것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
림(Grimm) ?동화집?에 들어있는 “생명의 물” 이야기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죽어 가는 왕과 그를 되살리기 위해 생명의 물을 찾아 나서는 그의 세 아들에 대한 것이다.
이 중 막내아들만이 친절을 베푼 동물의 도움을 받아 생명수가 있는 섬에 도착하는데 성공,이를 가지고 온다. 물론 그는 그 대가로 공주와 결혼하고 몇몇 시련을 더 겪은 후 계속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회춘의 풀을 훔쳐간 뱀에 관한 모티브가 있다. Julian Morgenstern은
Zeitschrift fur Assyriologie 29, pp, 284-300에 실린 “길가메쉬에 대하여 -- 제 11 서사시(On Gilgamesh --Epic XI)”라는 논문에서 매우 설득력있게 이 모티브를 멜라네시아와 안남에서 추적해 보았다.
언제 이 극동의 민담 주제가 메소포타미아에 퍼졌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첫 번째
두 주제는 길가메쉬 문서에서 보이듯이 고 바빌로니아 시기에 분명히 퍼져있었으며 이보다
더 일찍 들어왔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왜 이들이 길가메쉬 전통 속에 유입되었는지는 더수수께끼이다. 가장 간단한 대답 -- 따라서 당연히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은 명확하게 고 바빌로니아 문서가 하나의 서사시의 일부이며, 이 서사시의 저자는 그의 주제를 길가메쉬 전통 속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대조적인 태도에서 얻었으나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이야기들을 자료에 끼워 넣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고 바빌로니아 문서가 단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그 결합이 긴밀하지 못한 이야기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과연 이 이야기들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이와 길가메쉬를 연결시켜 언급하게 만들었을까?
만약 고 바빌로니아 시기에 길가메쉬 서사시가 존재했다는 우리의 추측이 맞다면, 그
서사시는 기원전 천년대 끝무렵 신-리키-운니니(Sin-liqi-unnini)가 만들었다고 하는 판본보다 짧았을 것이며 우리가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의 도서관에서 얻은 12개의 토판으로 이루어진 판본보다도 훨씬 짧았을 것이다. 이 12개의 토판 중 12번째 토판은 ?길가메쉬, 엔키두, 그리고 저승세계?의 후반부를 아카드어로 번역해서 기계적으로 덧붙인 것으로 서사시의 나머지 부분과 전혀 연관관계가 없다. 이 첨가작업은 완전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의 첫 부분은 오로지 원래 이야기와 연관되어서만 이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길가메쉬 서사시 안에서는 이해 불가능하다. 이 첨가부분을 제외한 -- 이는 편집자의 작업이라기 보단 필사자의 작업인 것 같은데 -- 서사시는 하나의 틀을 보여준다. 즉 이는 우룩의 성벽을 찬미하는 동일한 노래로 시작하고 끝난다. 아마도 이는 신-리키- 운니니가 부여한 형태라 생각되는데, 제 11 토판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우트나피쉬팀의 긴 홍수 이야기 역시 그의 판본에 속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서사시의 틀 안에 포함된 것이라는 주장은 서사시의 도입부가 홍수 이야기의 바탕 위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내가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도입부의 길가메쉬의 업적에 대한 나열 중 그가 홍수 이전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주었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생명에 대한 추구를 다루는 내러티브의 흐름과 균형을 뒤엎을 정도로 홍수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며 또한 이 이야기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인-- 이어지는 길가메쉬와 잠과의 대결 부분을 되풀이한다는 사실은 이것이 원 이야기의 일부가 아니라 후대에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분명이 이야기의 출처는 수메르의 홍수 이야기와 보다 정교한 아트라하시스(Atrahasis) 신화에서 모두 나타나는 홍수에 관한 전통이다. 물론 이 두 문서 중 어느 것에서도 홍수 이야기와 전통적인 길가메쉬 문서가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아마도 고 바빌로니아 서사시(혹은 생명을 찾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에 아직은 홍수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았다고 생각해야하며 --최소한 그렇게 길게는--, 신-리키-운니니의 고유한 관심 때문에 그의 판본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3. 구조적 분석: 주제들
우리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출처에 관한 질문을 통해 우룩의 엔으로서 역사적 인물인 길
가메쉬를 추적해 보았으며, 죽음에 관한 대조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두 가지 전통의 기원을 지적해 보았다. 또한 이는 후대의 서사시의 핵심 주제는 바로 이러한 대립적인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제시해준다. 이 주제가 어떻게 발전되었으며 저자가 자료들을 가지고 어떤 작업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초점을 맞추었는지에 대한 심화된 질문은 아마도 신-리키-운니니 판본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작품은 불멸에의 추구에 관한 것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죽음을 피하기 위한 도주에 관한 것이다.
다음에 제시된 도표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 곡선의 위로 향한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가 목표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지적했고 반대로 아래로 향한 움직임을 통해서는 이 목표가 방해받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길가메쉬는 당대의 영웅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불멸에
대한 그의 열망은 불멸의 명성에 대한 추구라는 형태를 갖고 있다. 아직 죽음은 진정 적이 아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어쨌든 게임의 일부이기도 하다. 즉 훌륭한 가치를지닌 적과의 싸움에서 맞는 영광스런 죽음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살아남게 해 주는 것이다.
이 목표를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길가메쉬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잇달아 승리를 거둔다. 엔키두와의 싸움을 통해 그는 친구이자 협력자를 얻는다. 함께인 그들은 저 유명한 후와와를 정복하고 우룩의 여신 이쉬타르에게 모욕을 줄 정도로 강력하다. 이 지점에서 의심할 바없이 그들은 인간 명성의 최정점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이 정점에서 그들의 운은 바뀐다. 무자비하게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의 용맹을 떨칠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던 그들은 신들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신들을 심각하게 화나게 했다. 후와와는 엔릴의 하인이었고 그에 의해서 삼나무 숲의 관리자로 임명받은 자였으며, 이쉬타르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교만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이제 신들의 화가 그들에게 미쳤고 그 결과 엔키두가 죽게 된다.
친구를 잃은 길가메쉬는 처음으로 적나라한 현실로서 죽음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 새로
운 파악과 더불어 그 자신도 결국에는 죽게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새로운 깨달음과
더불어 이전의 모든 가치들이 무너진다. 이름이 남겨지고 불멸의 명성을 얻는 것이 갑자기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이겨낼 수 없는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동시에 영생의 가치, 아니 영생의 필요에 사로 잡혔다. 진정한 불멸 -- 이는 실로 불가능한 목표인데 --만이 이제 길가메쉬가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결국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추구가 시작된다. 명성을 통한 불멸이 아닌 문자그대로의 육
신의 불멸을 찾는 것이다. 명성을 추구하던 이전의 길가메쉬는 영웅적 재능과 불굴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잇달아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불멸을 얻은 자신의 선조 우트나피쉬팀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불멸을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길을 떠난 길가메쉬는 전갈인 부부, 술 파는 여인 시두리(Siduri), 그리고 우르샤나비의 도움을 차례로 얻는다. 하지만 온갖 수고를 겪은 후 그가 우트나피쉬팀 앞에 섰을 때 모든 희망의 지반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홍수 이야기는 우트나피쉬팀의 경우가 얼마나 특별한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을 더욱더 분명히 하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이 제시한 잠과의 싸움은 죽음을 극복할 만큼 강한 힘에 대한 길가메쉬의 희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절대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상황에서, 예기치못한 새로
운 희망이 길가메쉬를 찾아온다. 동정심을 느낀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길가메쉬가 고향으로 떠나는 길에 선물을 주라고 남편을 설득하고 마침내 우트나피쉬팀은 비밀을 내보인다.
땅 속 깊은 곳 깨끗한 물 속에 노인을 다시 어린이로 만들어주는 풀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길가메쉬는 물 속으로 들어가 이 풀을 따온다. 드디어 그의 소망을 이룬 것이다. 그는 생명을 자신의 손에 거머쥐었다. 이제 언제고 그가 늙게되더라도 다시 어린이로 되돌아가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길가메쉬는 마음을 끄는 연못을 발견하고는 그 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기 위해 부주의하게 이 풀을 둑에 남겨놓는다. 이 때 마침 뱀이 이 풀을 보고 이를 낚아 채어가 버린다.
명성을 통해 불멸을 얻고자 한 길가메쉬의 첫 번째 시도에서 그는 신들에게 도전하고 이
때문에 신들로부터 벌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적인 불멸을 향한 두 번째 시도는 이보다 더
심각한 도전이다. 이는 유한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 즉 인간 본성 자체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 이러한 인간의 본성자체를 재선언하는 것은 길가메쉬 자신의 인간 본성이다. 그를 패배시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유약함과 경솔함이다. 그가 비난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불명예스럽게도 그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실패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이러한 영웅적 능력의 결여가 그를 미혹에서 깨어나게 한다. 공포가 사라지고 이제 그는 가엾은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 흘린다. 이 때 그는 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깨닫고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게 된다. 그의 초인간적 노력은 거의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웃음, 이 유익한 유머 감각은 그가 마침내 성공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드디어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새로운 가치 체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가 추구하는, 그리고 자부심을 느끼는 불멸이란 영구한 업적을 통해 이룩되는 상대적 불멸이다. 마치 우룩의 성벽을 통해 상징되고 있듯이 말이다.
길가메쉬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영웅적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적인 일상의 용기로의 전환은 이 이야기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추구’로만 보지 않고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에서 ‘도피,회피’로 바라보고 분석할 때 더 깊이있게 드러난다. 즉 생명에 대한 추구라기 보다는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측면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도피를 바라보아야 할까?
서사시 내내 길가메쉬는 젊은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결혼과 아버지가 되는 것
을 통해 대표되는 어른의 세계를 거부하고 그 대신 젊은이, 소년의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배리(Barrie)의 피터팬(Peter Pan)과 같이 그는 자라지 않으려 한다. 그와 엔키두의 첫 만남에서 그는 소년기의 우정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고 천상의 황소 에피소드에서는 --불필요할 정도로 과격하게 --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재앙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주문을 건다. 엔키두가 죽었을 때 그는 결혼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유년기의 안전함을 향한 상상적인 도피 속으로 나아간다. 전갈인의 문 앞에서 그는 현실을 떠난다. 문자그대로 그는 “이 세계 밖으로” 나아간 것이다.
술 파는 여인과의 만남에서 그는 또다시 결혼과 자식을 낳는 것을 만족스런 목표로 받아들이길 강하게 거부하고 마침내 죽음의 물을 안전하게 건너 유년기에서처럼 나이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섬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조상, 우트나피쉬팀과 그의 아내를 만나며 이는 곧 아버지, 어머니 형상이기도 하다. 아버지라는 자신의 이미지에 충실하게 우트나피쉬팀은 강한 태도로 길가메쉬를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라게 하려 한다. 그는 분명한 교훈을 말해주고 잠과의 싸움을 제안하며, 길가메쉬로 하여금 결과를 직접 대면하게 해 줄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우트나피쉬팀의 아내는 어머니로서 보다 더 관대했다. 그녀는 길가메쉬가 어린아이로 남아있길 원하며 결국에는 “노인이 어린이가 되듯이”라는 풀을 통해 길가메쉬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길가메쉬는 노령으로부터, 심지어 성숙함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는 유년기의 안전함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따라서 풀의 상실은 인간이 어린아이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환상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성장의 필연성, 현실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필연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을 통해 길가메쉬는 처음으로 자신을 보다 덜 심각하게 간주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자신을 향해 슬프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성숙하게 된 것이다.
“우르샤나비여, 대체 누구를 위해 나의 팔이 그처럼 피로해졌는가?
누구를 위해 내 심장의 피가 쓰였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아무런 축복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나는 저 땅 속의 뱀을 위해 봉사한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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