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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이야기/일상에서 잡다한 느낌들

제자훈련 입문 나의신앙 간증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작은 어촌 마을이다 가난하고 무속신앙이 종교인 무지몽매한 작은 어선 선장집 육남매중 다섯째 차녀로 태어나 가난과 남성 우월주의 속에서 자라면서 오빠와 동네 친구들을 따라 여름성경학교를 시작으로 교회에 처음 가기 시작하여 주일학교를 다니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청소년시기에는 교회를 멀리하고  그렇게 성년이 되어 서울로 와서 20대 중반부터 사람이 이렇게 사는 것만은 아닐 텐데 하는 고민에 빠지며 항상 우울해져 갔다 그때 마침 주변사람들이 모두 우연히 기독교인들이며 유독 나만 이방인처럼 고독해 지기 시작하였는데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한 사람 으로부터 적극적인 권유를 받으며 일요일에는 급기야 함께 교회를 가자는 약속을 하게 되어 처음에는 충현교회 로 가게 되었다

내가 처음 교회에 갔던 날 내 옆자리에 앉아 예배를 보는 너무나 아름다운가족을 보게 되었는데 아이 둘과 부부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저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하고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나 그날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재미없고 흥미 없는 곳에 내가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다음주에는 그 친구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가자며 나를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데려 갔다

교회에 들어선 나는 처음 그 웅장함에 놀랐고 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및

스크린에 비치는 많은 유명 인사들을(유독 눈에 띄는 분이 이세기 그때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내신분 )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는데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신 분들이 겸손하게 앉아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 감동적 이었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그 유명인사들도 목사님 설교를 귀 기울여 듣는 것과

손뼉을 치며 찬양 하는 모습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들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며 나를 궁금증을 유발 하여 무엇인가 얻는 게 있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 들게 했다

그런데 그날 처음 온 사람은 일어서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벌떡 일어섰고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며 용서를 빌고 주님 만나기를 소원 한다고 내 입술로 따라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런 후 나는 일요일이면 즐거웠고 행복 했고 일요일이 기 다려 졌다

뿐만 아니라 수요 예배도 참석하며 금요 철야까지 참석하게 되었고 그 외롭고 지치던 객지생활이 외롭지도 않았으며 내가 세상에 왜 태어났으며 왜 사는지 이해가 되었다 언제나 표정은 밝게 웃음을 머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가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만나면 “주예수를 믿어보세요 ” 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혼자 인 나에게 여러 곳에서 중매가 들어오는데

그중한사람 나보다 나이는 10년 위 그러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 노모님을 모셔야하고 장손에 일년에 제사가 9번이라고 했다 예수 믿지 않는 가정으로 시집가 예수 믿게 하는 첫 번째 임무인가 생각을 했었다 공교롭게도 중매를 하신분이 내가 좋아하는 어느 권사님과 그 친구 분들이셨으니 나를 적합하다고 생각을 하신 터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승낙을 하고 그렇게 불교도 아닌 유교도 아닌 황후와 왕자를 모시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결정할 즈음 내가 기독교인 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이 조건을 말하는데 자기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교회에 나가자고 말하지 말 것이며 어머니가 교인들을 그리 곱지 않게 보시니 어머니에게 설교나 때론 어머니를 이길려고 하여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결혼 후 내 성경 내 책들 그리고 모든 교회에 관련된 물건들을 박스에 곱게 담아 옥상에 올려놓고 이제부터 나는 이집 며느리가 아닌 이가정의 전도자 다 라는 각오로 제사면 제사 집안일 이면 일 모두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해나갔다 오로지 나는 없고 시녀만 존재를 했었다 그러다보니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님이 병원 입원을 자주 하시게 되고 병원과 집 병원과 집을 그렇게 자주 반복하게 되는데 병원 밥을 못 드시겠다고 하여 밥을 해서 날라 가며 간호를 해드렸다 아마 나 혼자 생각이었으면 불가능 했으리라

그때 병원에 상주 하고 계시는 수녀님과 친하게 되었는데 당신이나 나나 진리는 오직 한분이시니 어머님을 전도 하고 싶은데 내가 며느리라 내말을 쉬이 듣지 않으실 터이니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수녀님께 부탁을 하여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어머님 손을 잡고 통성기도를 부탁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이 제게 수녀님얘기를 하 신다

그 수녀님이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병원 퇴원 후 저를 부르시더니

네가 교인인줄 알고 있는데 시집와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게 보기 안타까우니 나보고 교회 나가리고 하시는 거다 할렐루야~

그래서 옥상에 올려둔 박스들을 내려와 내방에 풀어 놓고 가까운 동네교회를 나가게 되고 어머님께는 더욱더 잘해 드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당신은 교회를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데 하느님이 당신을 용서해주시냐고 하시는거다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고 목사님을 모시고 세례를 집에서 받게 해드렸다 그 후 어머님은 찬송과 기도 속에서  지내시다가 세상을 달리 하시고 소원 데로 기독교장을 해드렸다

그 후 남편도 교회를 따라 나가게 되었지만 그건 순전히 어머님 장례 때 교회식구들의 봉사 에 미안해서 따라 나가는 수준 이였고

교회만 다녀오면 사소한 일로 싸우는 거다 그렇게 오래 동안도 남편을 온전히 신앙 안으로 끌어 들이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내기도가 부족 했다

그러다가 살던 곳에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새로 이사 간 곳에서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이년이 지났으며 다니던 교회에 특별한 날이 있을 때에만 출석을 하는 이상한 교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내가 교회에 상처를 조금 받기도 하였는데 그건 지나고 보니 내가 못나고 내가 믿음이 부족하여 일어난 일들이다 또한 내 뜻 데로 판단하고 내 멋 데로 정의를 내리는 나 홀로 교인이 된 것 이었다

그렇게 하여 중국에 오게 되었고 북경에 와서도 선뜻 교회로 출석 하는게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올해 봄 나는 급기야 눈에 눈물을 담고 길을 걷게 되며 다시 하느님 품이 그리워지게 되었다

이제 다시 돌아온 탕자가 된 후 처음주님사랑을 느꼈던 그때처럼 다시 행복해 지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나날이 기쁨이 넘친다 현실로 봐서는 암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넘치는 것이다

이제 남편도 온전히 돌아선 것 같아 더 기쁘다

이제 바랄 것 이 있다면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께 맏기고 나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늘 말씀 충만으로 사는 기독인이 되어 내 얼굴 가득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언제나 감사드리는 것은 아무 보잘것없는 천하고 천한 저를 주님이 이미 선택 하신 것에 감사드리고 내게 너무나 사랑스럽고 착한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에 언제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아들 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미가 되길 원하고

좋은 아내 되길 바라며 믿음이 충만한 가정이 되어 주님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족이 되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교회 안 에서는 참봉사자로 임하며 교회 밖에서는 나에게서 나타나는 그리스도 향기로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따라 올수 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남은 소망 입니다~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제 믿음이 이번 제자훈련을 기회로 더욱더 거듭나는 사람으로 변하여 졌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