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교계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단체인 한국교회언론회(대표 박봉상 목사)는 도올이 강의를 하기도 전부터 반응을 보였다. 한국교회언론회는 강의 전인 1월 30일 EBS에 공문을 보내 도올은 성경을 강의할 적임자가 아니라고 항의했다. 도올은 과거 예수를 모독하는 발언을 하여 종교 논쟁을 일으켰다는 점, 공영 방송이 특정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 강의를 방영하면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보수 교계, 제일 먼저 딴죽 걸어 한국교회언론회는 도올이 다섯 번의 강연을 EBS 홈페이지에 올린 지 이틀 뒤인 2월 8일 '도올 교수의 요한복음 강의 신학적 문제점 드러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도올이 성경 구절을 충분히 설명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강의 여러 곳에서 신학적 오류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도올이 주장한 회개에 대한 해석에 '딴지'를 걸었다. 도올은 제3강에서 회개를 설명하면서 예수는 회개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며, 회개하라의 원어인 메타노이아는 마음의 상태를 바꾸라고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죄에 대한 자각 없이 단지 마음을 돌이키라는 것은 포괄적인 의미를 놓친 설명이라고 반박했다. 또 복음서가 예수의 어록자료(일명 Q문서)를 기초로 쓰였다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전제하는 것,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로고스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정통 신학 입장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도올은 초대 교회 이단과 닮았다? 도올의 요한복음 강연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구약폐기론. 도올은 2월 13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예수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신약)이 성립된 만큼 구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도올이 초대 교회에서도 구약을 성경에서 떼어내자는 말이 많았으나 참고문헌으로 붙여놓았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보수 교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2월 20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구약성경 폐기론은 "성경에 대한 몰이해"라고 반박했다. 한국교회언론회도 "2세기에 나타났던 마르시온의 이단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어이없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었다"고 비판했다. 진보신학자인 김이곤 교수(한신대)도 도올을 마르시온과 비교했다. "구약을 비난하는 도올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기원 후 2세기경에 일어난 마르시오니즘(Marcionism)의 마각이 그 발톱을 드러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실로, 마르시온(Marcion) 사상의 마성(魔性)이 놀랍게도 도올 선생께서 시중의 신심을 왜곡 선동하였던 그 궤변의 저의와 상응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반면 이영재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알려면 반드시 구약성서를 읽어야 한다"며 구약폐기론을 비판하면서도, 도올을 마르시온주의자로 보는 것은 반대했다. 이 연구실장은 도올과 마르시온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예수와 교회를 사랑하며 구약을 배척한 점, 야훼 하나님을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신으로 본 점 등을 공통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폐기한 마르시온과 달리 도올은 요한복음을 중심에 둔 것이 크게 다르다고 했다. 학자와 목사 신부까지 도올 비판 가세 이들 외에도 여러 신학자들이 교계 안팎의 언론에 반론을 제기했다. 천주교 신부와 학자들도 도올을 비판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신학적인 반론도 있지만, 인상비평 수준을 넘지 못한 비판도 많았다. "도올의 성경 이해는 불행하게도 기독교의 운명을 이끌 만한 푯대이기는커녕 오히려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윤철원 서울신대 교수)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일부 교회의 문제로 전체 교회를 매도하고, 교회를 훼손하고 파괴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음모가 숨어 있다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뚱딴지처럼 그가 요한복음을 강의하겠는가." (최희범 한기총 총무) "(김 교수는) 성서 신학자도 아니면서 신학자인 척하며 교회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신앙인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 것 같아 걱정된다." (박홍 서강대 이사장) 도올을 '따뜻하게' 본 신학자, 김경재 언론에 나서는 이들마다 감정적인 비판을 하기 바쁘다. 학문적 토론을 벌일 만한 교수들은 '대응하자니 어처구니가 없고 무대응하자니 선의의 신자들이 흔들릴 수 있어서 기독교 일각에서 딜레마에 빠지'거나 '학문적이지도 고상하지도 않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침묵'하고 있다. 학자 가운데 도올의 의중을 알아보고 평가하는 이는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정도가 눈에 띈다. 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도올은 <요한복음 강해>에서 자신의 독특한 신관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성서와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고, 어느 한 집단만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전 세계, 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했던 한반도 초기 기독교인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촉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도올이 한국의 루터와 칼뱅이 될 수 있다는 김 교수는 김 교수와 같은 대학에서 가르친 동료 학자에게조차 "도올을 격려하는 게 아니라 도올의 인기와 대중성에 대한 아첨에 더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다. 도올의 요한복음 강의가 진행되는 초반은 도올이 기대한 기독교와 성서에 대한 건강한 토론보다는 몇몇 주장에 대한 거친 비판과 반박, 재비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100여 회에 달하는 긴 강연의 초반인 만큼 신학자들의 생산적인 논의를 기대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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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올 김용옥이 TV에서 유교 논어를 강의하고 불교를 강의할 때만 해도 작금의 기독교계 반응처럼 이렇게 그 시작부터 방방 뜨진 않았는데, 왜 이다지도 심하게 민감하게 구는 건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기존 기독교가 지니고 있는 교리적 잣대와 보수적 배타성이 작동된 게 아닐까 싶다. 확실히 도올이란 존재는 이미 우리 사회를 읽어내는 아이콘 중의 하나이다. 한국교회는 성경 아닌 교리공부에 치중 도올의 구약폐기론,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세계와기독교변혁을위한연대 기획실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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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게 만든 것은 먼저 그가 시비를 거는 사안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구약폐기론에, 유일신앙에, 삼위일체론까지. 구약폐기론에서는 야훼 하나님과 예수의 하나님 사이를 가르고 대립시키는 마르시온 냄새가 나더니,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를 대놓고 편들고, 영지주의마저도 옹호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굵직한 것들만 이렇다. 군데군데 눈에 걸리는 곳이 적지 않다.
하나같이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주제들이다. 어느 하나라도 기독교에서 제하고 나면, 사실 남는 것이 없다. 장기판에서 졸은 포기할지언정, 차 떼고 포 떼고 장기를 둘 수는 없다. 구약을 폐기처분하고 예수의 신성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면 그건 기독교가 아니다. 도올의 기독교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만큼 예민하고 조심스레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그러니 도올이 이렇게 나가다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또 하나, 비평을 흐리게 하는 것은 그의 교묘한 전략이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정통 신자라고 고백했거니와 이 책 1장에서는 성서주의자라고 선언한다. “기독교는 반드시 성서의 말씀의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떠한 자연주의적 해석도 차단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거룩하고도 진지한 성서주의의 출발이다. 나 조선의 사상가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성서주의의 입장을 한치도 이탈하지 않는다.”(15쪽) 그리스도인이라면 뉘라서 ‘오직 성서’를 반대할건가?
새벽마다 교회 마룻바닥에 엎드려 우시기만 하던 시온성 처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단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상에 젖게 한다. 아들의 신대톱(신학대학 수석 입학)을 축하하며 건네준 성경전서의 뒷장 싸인에 적힌 어머니의 글귀는 그분의 신앙을, 글씨는 그분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것이 책 전체의 진정성을 확보해 주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어 보인다. 도올은 단지 누천년 이어져오면서 덕지덕지 붙은 기독교 아닌 것들을 떼어내려고 할 뿐, 안티 기독교가 아니다, 오히려 순수 기독교, 오직 성서, 그냥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무지의 소치인가 해석학적 전제의 차이인가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고 한데, 도올의 주장이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해석학적 전제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도올의 소식을 들은 나의 첫 반응이 ‘이렇게 무식한 사람 다 봤나’였기 때문이다. 도올을 두고 몰상식의 도를 넘었다고 발끈하는 가톨릭 측도 별반 나와 다르지 않다. 교회의 세속화나 권력화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소리는 지적으로는 무식이요, 도덕으로는 예의가 없다.
자그마치 1만 불 어치의 책을 구입했다는 말을 듣고 내심 아니 그렇게 많은 책을 사고, 읽은 사람이 고작 한다는 소리가 구약폐기라니,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대담무쌍하게 떠드는 건지 참 괴이한 일이다. 시쳇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자기 자랑과 뻥이 심한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것인데 그럴 만큼 잘났으니 라고 눈감더라도, 신학의 ABC에 해당하고, 기독교 뿌리를 뒤흔드는 발언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 엔터테이너가 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않을 텐데, 왜 그럴까, 정말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의 책을 다 읽고 덮은 다음 내린 결론은 이렇다. 도올은 무식하지 않다. 예수에게서 복음서로 이행하는 과정이나 각 복음서에 대한 설명이 어지간한 신학자 못지않았고, 성서의 정경화 과정을 포함해서 정통 기독교가 배척한 영지주의 문서에 이르는 역사적 궤적을 줄줄이 꿰는 것이 보통이 아니다. 헬레니즘과 로마 문명사의 맥락에서 그것들을 읽어내고, 유교나 불교와 비교하는 대목 등에서 이것저것 읽을거리가 많다.
결국 지식의 유무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가 그와 일반 기독교와 문제가 된다. 예컨대, 신자에게 성서는 이미 주어진 것인데, 도올은 이성과 역사를 배제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를 수립하려는 아타나시우스의 지난한 여정보다는 여타의 종교나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아리우스 전통에 그는 마음을 준다. 삼위일체가 확립되기까지 작용했던 로마와 교회의 얽히고설킨 정치권력 함수 관계에 그가 더 많은 방점을 찍는다면,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가 성경적이며, 성경을 읽는 해석학적 틀이며, 신자의 삶의 표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다름이 존재한다.
도올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도올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가지 힌트가 마르시온에 대항하는 교회의 취한 길이다. 그도 잘 지적하였거니와 교회가 신약 27서를 확정한 것도 기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시온 덕분이다. 그 과정에 온갖 권력과 이해관계가 작동했어도 교회는 현명하게도 구약의 하나님과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긴장을 유지하는 책을 정경으로 포함하고 확정하였다. 이를 두고 바울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다”(롬 5:20)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말은 선이 되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가혹한 탄압이 도리어 이방 선교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안팎의 거센 도전을 통해 신앙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거친 도올의 공격이 교회와 신자의 신앙과 신학을 굳은 반석 위에 세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성서의 신앙이요, 교회사의 지혜였다. 이제 한국 교회의 미덕이 될 때가 되었다.
김기현 / 부산 수정로침례교회 목사(http://www.soojung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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