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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이야기/일상에서 잡다한 느낌들

조카 혜현이~

나보다 한살 적은 시조카 혜현이

지금 뉴욕에서 산다

 

이민간지가 20년이다

 

친구 같은 혜현이 는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중 가장

반듯 하게 사는 사람 처럼 보인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잇었던 관계로 오년전 얼굴을 처음 마주 했다

 

그 다음해 내가 아들을 데리고 두번째 방문으로 만났을때

서먹한 관계가 없어지고 서로 아픈곳을 내어 보이며

힘들게 살아온 이민 이야기며 여러가지 이야기 보따리를 나에게 풀어 놓았다

 

부자였던 아버지가 새살림으로 집을 등한시 하고

어머니혼자서 어렵게 꾸려가는 집안 형편을

동생들 뜃바라지에 힘을 써가며 공부를 하다보니

마지막 등록금을 낼수가 없엇다고 한다

 

그때 지금 남편인 조카 사위가

여름방학 동안 공사판에 가서 일을 하여 두사람이 번돈으로

등록금을 간신히 내고 졸업을 할수가 잇었다고

 

 

그때

지금 혜현이 시어머님께서 위로를 해주시며

"그렇게 해서라도 졸업은 해야지" 하셨다고 한다

벽돌짐을 지고 피곤에 지쳐 집으로 들어 오는 아들을

바보 같다고 말씀을 하실법도 한데

아들이 대견 하다며 

당신이 등록금을 보태주지 못하심을 안타 까워 하시던

시어머니가 너무나 감사 하고 좋았다고

 

그렇게 학업을 마친 두사람이 간단한 결혼식을 하고

  끝나지 않은 친정집 동생들 뒸바라지 하면서 살다가

 

 미국으로 취업 이민이 되어 가게 됬다고

 

미국에서 사는동안도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고

두사람 모두 열심히 일을 하며 혜현인 공부를 더하게 됬고

 

지금은 작은 사업을 하며 여유 를 즐기며 산다

 

 

한사람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다음 형제들도 따라 가기 쉬운게 이민이다

큰남동생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함께 이웃하며 살면서

 

그렇게 가족들을 고생 시키며 몰라라 하시던 아버지 께서

어느날 중풍이 들어 모셔가라는 연락이 왔을때도

혜현이와 세동생들은 한사람도 마다 하지 않고

어머니가 모시게 하고 생활비를 나누어 주었다

그중 혜현이 못은 물론 컷고

어머니가 혼자서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된것이

안스럽다며 두분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갔다

 

형님 부부께서는  딸이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덕에

영주권을 쉽게 취득을 하셨고

고모부 께서는 말년에는 시설좋은 미국 노인병원에서 

좋은 의료 헤택을 받아 가며 생을 마치셨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혜현이는 시댁식구들 모두 순서대로 초청하여 여행을 모두 시켜드렸고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겟다고 하였으나 당신이 미국이 싫다고

자주 여행만 다녀 가신다고

 

그렇지만  다른일은 제쳐 두고서라도 시어머님 용돈은

어김없이 보내드린다면서

그때 시어머님께서 배푸신 마음에 비하면

자긴 해드리는게 아무 것도 없다며

건강 하게 오래 사시기 만을 기도 할뿐이라고 햇다

시누이 딸은 몇년을 함께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등하교 시간에 맟추어 픽엎까지~

 

그렇게 어질게 살아 주어서 인지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이 너무나 훌륭히 자라 주고 있다

아직 학업을 마친 상태는 아니지만

분명히 꿈을 이룰것 이라고 짐작을 해본다

 

 

오늘 김치를 썰다가 혜현이 생각이 났다

 

이민 초기에 둘다 일을 하느라

김치를 담아 먹을 수가 없었다고

먹고 싶어 사러가면 너무나 비싸서

침을 꿀꺽 삼키며그냥 돌아서 나올때가 너무 많았다고 하며

김치 국물 한방울도 그때 생각하면 버릴수가 없다며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것을 봤다

 

그런 마음들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그 힘든 이민생활을 이겨 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감사함을 알았고

소중함을 알았고

용서를 할줄알았고

사랑을 알고 있었다

 

난 가끔 혜현이가 그때 나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했던 말들이

지금 외국 같지도 않은 북경살이에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