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생각 저런 마음/함께 나누기

비판과 비난(비방하지 말라)

이탈리아의 항해사이며 아메리카의 발견자인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에 귀환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어느 날 콜롬부스는
여러 귀족 부호들이 마련한 축하 잔치에 초대되어 참예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어느 한 귀족이 비꼬아 말하기를,
"누구라도 배를 타고 끈기 있게 항해만 하면 어떤 육지에라도
닿을 것이 뻔한 일이 아니냐?"
하고는 쿨롬부스의 업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버렸다.

이 말에 콜롬부스는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한참이나 조용히 앉아 있더니
식탁에 올라온 삶은 계란 하나를 들고는
"누구둔지 이 계란을 바로 세워 보십시오."하고 말했다.
식탁에 둘러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식탁에 놓여 있는
삶은 계란을 세워 보려 하였으나 세우는 자가 없었다.

이때에 콜롬부스는 "그러면 제가 해 보지요."하더니 삶은 계란의 한쪽을
테이블에 쳐서 깨뜨린 후 부서진 쪽을 아래로 하여 계란을 세웠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라면 못 세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정거렸다.

그러자 콜롬부스는 다시 말했다.
"이렇듯 쉬운 일도 지금까지 누구하나 하지를 못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이나 남이 해논 다음에는 쉬운 것이랍니다."라고 말하자모두 시비를 그쳤다는 것이다.
'잠바라'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남의 잘못에 대하여는
말이 많으나 자신의 잘못은 요술쟁이가 구슬을 감추듯 감추기를 잘햐며
남의 욕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말과 행동의 그릇된 점에는 눈을 밝히지만,
그러는 동안 그 자신은 발전이 없고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며
욕심만 부풀어 점점 나쁜 사람이 될 뿐이니라."고 하였던 것이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를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네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1-5) 비판에는 건전한 비판도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비판이 그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살해한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의 사람 나단은 목슴을 걸고 담대하게 나아가 다윗의 죄를 비판했습니다.

또 세례요한의 비판이 그것입니다.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왕비를 삼았을 때 용기 없는
많은 사람들은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있었던
세례 요한은 담대하게 왕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고 결국은 목슴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만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여기고 훈련받아야 할 것은 비판받을 줄 아는 훈련입니다.

다윗의 훌륭한 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비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부족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비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판은 매우 위험해서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함부로 비판하게 되면 자신과 상대방에게 심한 상처를 입힘니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조심성 없이 비판하여 일어난 문제들이 많습니다.
첫째로 비판은 비난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비판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들은 대개 정확하고 빈틈 없으며 청렴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사람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도 하고 도리어 그들 때문에 교회는 더 어지러워집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옳고 그른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옳고 상대방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내가 바른말 한 것에는
일절 잘못이 없고 못 알아들은 상대방만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비판이 정확한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판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비판의 내용을 잘 알아듣도록 전덜할 책임이 비판자에게 있습니다.

 
비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은 감정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일에는 이성만 중요한 줄 아나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이 뒤틀리면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에 목사님과 장로님이 서로 의견 충돌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이 주일 예배 때 맨 앞 자리에 앉아서

목사님이 설교할 때 신문을 꺼내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는 이는 정말 잘못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잘 설득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잘 감싸 줄 책임이 비판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은 상대의 감정 따위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더 격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바른말 한다고 해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는 사랑입니다.
어떤 문제를 지적하려고 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비판이 되고 사랑 없이 정죄만 하려 하면 비난이 됩니다.
일단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비판은 중독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올바른 비판자는 남의 허물을 발견했을 때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데 비판 중독자는 남의 허물을 찾으면 기뻐합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얘기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들이 비판 중독자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비판 중독자는 쓰레기 같은 정보를 수집합니다.
상대방의 장점과 본받을 점 등 긍정적인 정보는 거부하고 부정적이고
잘못된 정보는 다 수집합니다. 온갖 더러운 정보를 다 갖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만 물어 보면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는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불행합니다.
밤낮 냄새 나고 골치 아프고 좋지 않은 생각을 머리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비판은 우리를 교만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런데 남을 비판하다보면 마치 우리가 심판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비판은 잘못을 바로 잡도록 돕는 것이지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다 보면 자기는 마치 죄가 없는 사람인 양 착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교만해지는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1-3절)

그렇다면 좋은 비판 좋은 판단은 무엇일까요?
첫째 사랑이 동기가 된 긍정적인 비판과 판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칭찬이라고 합니다.
칭찬이 비판인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비판은 칭찬입니다. 사랑입니다.
삭개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눅19:5)
또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눅7:36-48)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칭찬을 많이 하십시오.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자기가 잘못하는 것을 스스로 고칩니다.
둘째로, 비판 중에 가장 좋은 비판은 자기 비판입니다.




 

'이런생각 저런 마음 > 함께 나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망의 끝은?  (0) 2007.01.11
세상에서 가장 좋은말  (0) 2007.01.06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0) 2006.12.30
좀더 많이 칭찬 합시다,  (0) 2006.12.30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  (0) 2006.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