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의 원조: ORGANON고찰
1)「오르가논」의 역사성
유럽에서 학문 연구의 기초인 논리학을 하나의 조직적인 학문 체계로 다룬 최초의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의 논리학은 후세에 <오르가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도 논리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엘레아(Elea) 학파의 창시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40∼480)가 「존재만이 있다. 무는 불가능하며 생각될 수도 없다. 비존재는 없다.」고 하여 A=A, A≠non-A, A=B or non-B 로서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을 진리 탐구의 세계에 등장시켜 사유에서의 모순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 점이라든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인 제논(Zenon, B.C. 490∼430)이 사용한 <운동 현상에 대한 역설(paradox)>의 귀류법은 진위를 떠나서 논리학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논리학적인 면에서 있어서 「엘레아 학파의 등장은 탈레스로부터 시작하여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 535∼475)에까지 계승되어 온 자연철학의 물활론에 대한 비판적 귀결이다. 물활론은 일정한 원질(arche)을 내세워 그것이 유일한 참된 존재라고 하여, 다양한 생성과 운동의 변화는 비존재로 향하는 것이라는 모순을 잉태하여 존재와 비존재, 一과 多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물활론의 철학은 비존재도 존재하게 된다는 모순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엘레아 학파에서 모순률로써 구별해 낸 것이다.
이것은 수학적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철학사적인 면에서 엘레아 학파 등장의 중요성은 <제논의 역설>의 진위보다 이제 인간의 사고가 경험적 실재의 세계를 넘어 본격적으로 인간의 주관적인 사고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그 발판의 중심이 바로 수학의 합리성으로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수학적 방법의 적용범위는 끝이 없다고 하겠다. 이러한 주관적 사고의 세계에서의 수학적 방법을 인간의 가치에 적용한 이들은 바로 소피스트들로서 이제 철학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수학적 합리주의를 그 도구로써 삼으면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주관적 사고는 출발부터 엘레아 학파는 물론이고 소피스트들도 노모스적인 오류를 가지게 되어 소크라테스의 도전을 받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노모스의 수학적 합리성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합리주의를 공격한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적 인식에 있어서 수학적 방법론을 바르게 사용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먼저 대표적인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0∼410)의 철학을 살펴보자. 그는 그의 유명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는 것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없다는 것의.」명제로써 「개별적인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자기 철학으로 분명히 하였다.」 그의 상대주의 인간관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피시스적인 진리에 대한 상대어로서 개별적인 인간과의 관련을 도외시하고는 인간에서의 진리의 문제란 달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주관'을 발견하여 그것을 만물의 척도로 하여 일체를 노모스적으로 해결하려는 '말(言語)'의 철학가가 된다.
그의 '말'의 철학은 후배들에 의하여 노모스의 세계를 취급하는 도구로 전락되어 오히려 지식과 학(學)의 존립을 위협하는 궤변의 논리로 추락하게 된다. 그 절정은 소크라테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극에 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소피시트들의 수학적 합리주의이다. 소피스트들의 수학적인 합리주의는 엘레아 학파의 운동에서의 모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일률의 합리주의와 바로 통한다. 「그들은 현상세계에서의 운동을 부정하려고 하였다. A는 A이지, B로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개인에서 있어서 甲은 甲이지 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주의 철학으로 현상세계에서의 참되게 일어나고 있는 운동의 법칙을 부정한 엘레아학파의 「동일률로 나아가는 모순율의 철학」과 통하고 있는 것이다. 즉 소피스트들의 철학적 배경에는 엘레아 학파의 수학적 합리주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레아 학파의 수학적 합리주의는 현상세계에서 경험적으로도 틀림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현상의 세계를 바르게 설명하고 있지 않음이 경험으로써 이미 증명된 것이다. 그것은 별도의 증명이 사실상 필요가 없다. 그것은 출발부터 주관적 사유이다. 엘레아 학파의 수학적 인식론은 현상의 세계를 객관적인 면에서 고찰한 것이 아니고 개별적 사고의 세계에서 고찰한 주관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것은 곧 바로 소피스트들의 주관주의 철학 그 자체가 된다.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가 없다. 엘레아 학파의 수학과 마찬가지로 이제 소피스트들의 철학도 그 자체로는 진리탐구의 방법이 될 수 없음이 새로운 수학자, 즉 새로운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에 의하여 드러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수학은 엘레아 학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탈레스적이었다. 탈레스적으로 개념을 산출하려고 하였다. 그는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여 문답법으로써 사물의 보편적인 본질 파악에 힘썼다. 그리하여 플라톤으로 하여금 본질을 개념으로 언표하여 개념의 확립에 노력하게끔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여러 대화편에서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개념 확립에 노력하였으며, 「'이데아'를 설정하므로써 수학적 개념의 순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에게 영향을 준 것은 물론이고 머지않아 유크리드의 「원론」에서 수학적으로 총결산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과 수학과의 관계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고대 그리스 수학의 성립은 동시에 고대 그리스 철학의 생명인 존재 본질에 대한 개념의 확립이기도 하다.
2)「오르가논」의 내용
「오르가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적 저작으로서 오늘날 알려지고
있는 것은 다음 6편이다.
⑴ 범주론 (De categoriis)
⑵ 명제론 (De interpretatione)
⑶ 분석론전서 2권 (Analytica priora)
⑷ 분석론후서 2권 (Analytica posteriora)
⑸ 토피카 8권 (Topica)
⑹ 소피스트논박 (De sophisticis elenchis)
이상 6편이 주제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내용에 관해서 간단히 말하면「범주론」은 소위 범주에 대해서, 「명제론」은 명제 및 판단에 대해서, 「분석론전서」는 추리 일반에 대해서, 「분석론후서」는 진의 추리에 대해서, 「토피카」는 진인 듯한 추리에 대해서, 「소피스트의 논박」은 그릇된 추리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나, 이 최후의 저작은 「토피카」의 속편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것들 6편의 논리학 저작은 후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가 일괄하여 「오르가논」이라고 총칭하였다. 그 의미는 「기관」, 따라서 이것은 , 논리학이 소위 학적 인식의 도구라고 이해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오르가논」의 기타 내용은 다음의 수학적 방법론 편에서 함께 고찰하면서 살펴보자
3)「오르가논」에서의 수학적 방법론 고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를 간단히 비교하여 보자.
「플라톤의 중심학문이 수학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학문은 생물학이었다. 플라톤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학 특히 그 중에서도 기하학을 중시하며 언어를 소피스트적 궤변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무시하였다. 이에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의 수학 중심적인 경향을 비판하고 언어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여 명제·판단·추리를 중심으로 형식논리학을 완성하였다. 동시에 생물학의 범주는 논리학 및 형이상학 경험적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야말로 플라톤적으로 플라톤의 수학적 방법론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그 내용을 철학교육의 기초자료로서 ⑴개념 ⑵범주 ⑶판단 ⑷추리 ⑸증명 ⑹연역으로 나누어 어떻게 수학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⑴개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은 주로 개념의 외연관계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개념의 외연은 불변하는 추상세계를 지칭한다.」 그것은 세계를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려는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의 특징과 연결된다.
「인간의 사유는 개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개념은 일정한 존재를 지시하는 의미체로서 초시간적이며 논리적 동일성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도리어 플라톤의 이데아적이다. 소크라테스적 정의(定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서도 하나의 개념은 정의(定義)를 통하여 명백해진다. 정의는 정의되는 대상을 그 대상이 속하는 유개념에 포함시키고, 여기 포함되는 개념들의 차이를 제시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즉 '정의=종차+최근류'이다. 같은 종개념이 구분되는 특징적인 차이가 종차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성+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합리성과 바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것을 고집하는 경우는 수학적 합리주의가 된다. 그것은 합리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인 경우보다도 오히려 비이성적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인간사의 전형 모두를 합리주의에 짜 맞추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이것은 유크리드적인 기하학의 특징과 흡사하다. 유크리드의 기하학도 19세기말부터는 무수히 도전을 받아 유크리드학이 기하학 그 자체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기하학으로 전락된지 이미 오래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론은 생물학적인 유와 종의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의 정의를 비생물학적인 것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친구'라는 개념을 정의하려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상·하위 개념으로는 정의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것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해결하려는 고대 그리스 수학의 한계와도 같은 것이다.
⑵범주: 「범주는 '모든 유개념을 포섭하는 최고의 유개념'이라 정의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한 범주는 10개이며 실체, 분량, 성질, 관계, 장소, 시간, 상태, 소유, 능동, 수동이다. 그 중에서 실체는 모든 개념의 상위에 있는 범주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를 살펴보자. 그의 실체는 소크라테스이고, 그의 분량은 키와 몸무게이고, 그의 성질은 철저성이고, 그의 관계는 제자들에 대한 스승이고, 그가 있는 장소는 아테네이고, 그의 시대는 B.C. 500이고, 그의 상태는 앉아 있고, 옷은 소유하고, 능동적으로 문답하며, 부인으로 밥을 얻어먹는다.」 그러나 그도 실체를 설정함으로써 플라톤의 이데아를 방법론적인 면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⑶판단: 「개념을 결합하여 명제 혹은 판단을 내린다. 명제는 주개념과 빈개념으로 이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 명제[판단]을 긍정과 부정 , 그리고 특칭과 전칭으로 구분하였다.」 판단을 내리는 명제에 있어서 모든 방향을 제시하여 완벽을 기하려고 하는 것도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의 수학 방법론과 동일하다.
⑷추리: 「이미 알려진 판단을 근거로 새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을 추리라고 한다. 추리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삼단논법(syllogismos)이다. 그것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리(대전제)와 사실(소전제)을 통한 판단(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를 다룬 그의 「분석론」을 살펴보면
「참된 전제에 기초한 추리로서의 논증법은, 참인 듯한
전제로부터의 변증법으로부터 구별된다. 이러한 논증법에 의해서 명제 가 얻어 졌을 때, 그 주어(S)와 술어(P)와의 결합관계는 보통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명제에 있어서 진리에 기초한 <학적인식>(episteme)이 성립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명제의 주어(S)와 술어(P)와의
관계는 동일한 을 중개로 필연화하면 되는 것이다. Aristoteles의 논증법, 후에 삼단논법이라고 불리게 된 그 Syllogismos는
이것을 위한 것이다. 즉 그것은 S와 P로 성립되는 명제를 '결론'으로 하고, M과 P 및 S와 M으로 성립되는 두명제를 '전제'로 하는 세개의
명제로 구성된다. 보통 형식 논리학에서는, M은 <중개념> 또는 <매개념>이라 하고, 이것에 대해서 P는
<대개념>, S는 <소개념>의 술어로 되어 있으나, Aristoteles 자신은 이것들을 각각 <중간의
것>(meson), <끈 끝의 것>(meizon akron), <작은 끝의 것>(elatton akron)이라고
불렀다. 확실히 Aristoteles의 추리(Syllogismos)와 형식논리학의 삼단논법은 ,적어도 외견상은, 하등의 차이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우선 여기에서 우리들은 Aristoteles에서는, 그 근본동기는
<학적 인식> 에 있으며, 이것이 결국은 'S는 P이다.' 라는 명제로서 나타내지는, 즉 형식화된 삼단논법에서는 전제로부터 결론으로의
추리가 다루어지고 있는데 반해서, 거꾸로 그 주어(S)와 술어(P)와의 결합관계가 보통 필연화되어서, 그 명제로써 학적 인식이 얻어지기 위해서
매개념(M)을 구하려고, 환언하면 오히려 결론으로부터 전제에로 추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존재론과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가 있다.」 존재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한 그의 논리학은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알고자 하는 존재에 대한
인식론', 즉 기하학의 여러 방법론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⑸증명: 「추리를 결합하여 증명을 이끌어 낸다. 증명이란 추리를 기초로 하여 한 명제의 필연성을 다른 명제들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증명되려면 의심할 수 없는 사고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자명한 공리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논리적 공리의 사고의 원리로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은 「동일률(A=A)과 모순율(A≠non-A), 그리고 배중률(A=B or non-B) 과 존재하는 것의 존재 이유가 되는 충족이유률이다.」
이러한 증명은 바로 연역과 통하게 된다. 연역은 수학적이며 역시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방법론으로서 결론에서 바로 출발하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직결되는 것이다.
⑹연역: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추리는 논리상으로는 아무런
모순이 없지만 구체적인 새로운 지식을 우리에게 전할 수 없는 분석판단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한계이자, 당시의 수학적 방법론인
기하학의 한계이기도 하였다. 찾고자 하는 바를 움직임이 없는 정적의 세계에서 찾았다. 그것은 자연히 연역법이 되었으며 어떤 보편적인 원리로부터
특수한 원리를 끄집어내는 논리상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감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성을 숭상하였던 고대 그리스의 합리주의의 산물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과 당시의 수학의 학풍을 집대성한 유크리드의 수학이다. 여하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경험적이고 실험과 관찰의 진보적인 인식까지는 가지 못한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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