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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주님 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스크랩] 가나안(안 나가)교인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7일전 국민일보에는 가나안 교인이라는 신조어를 타이틀화 하였다. 이는 [목회사회학연구소]가 25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  ‘소속 없는 신앙인 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 하면서

사용된 어휘다. 그리고 대략 파악된 그 숫자는 100만명을 웃돈다는 것이다!

 

몇일전 예향에서 모 회원으로부터 쪽지를 받게되었다. 지금 소속 교회에서 일어나는 목회자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갈등이

더 이상 소속의 의미 부여를 할 수 없게 만들었거니와 스스로 내적인 동기부여가 안되어 단체 속에서 메말라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문제가 키워져 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예배당을 나가고 있는 사람일찌라도 비슷한 심정을 겪는 사람이 상당수 라고 여겨지며 그런 예비군에 속한

잠재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본인도 그런 회의감에 빠져들어 나 스스로가 먼저 가나안 백성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현상적으로 앞으로도 예배당에서 이탈 가능성이 큰 사람이 부지기수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교회개혁 차원에서 볼 것 같으면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1. 이탈층이 주로 30~40대이며 이는 미래교회의 중추적 구성원인 동시에 실질적 기반층이다.

2. 주요 이탈층은 맹신형 신도들이 아닌 문제의식을 인식하고서 그것을 풀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3. 이탈 과정에서 일어나는 핵심 문제는 설득력을 가진 대안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1. 위기는 곧 기회다.

예향에서도 이런 가나안교인이 다른 어느 커뮤니티보다 많다고 느낀다. 신앙은 있으되 소속 없는 신앙인........그러나 이는

목회자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는 문제일지라도 거시적 하나님나라 차원에서 본다면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이며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그것이다.

 

관계에 지쳐버린 신앙인들, 끝없는 헌금 요구에 지쳐버린 신앙인들, 본질적 신앙의 깊은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현재의 예배당 시스템은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이런 가나안 신자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다.

 

가나안! 참으로 의미 심장한 말이다. 광야교회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와 매우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그렇다! 교회는 가나안(하나님나라)으로 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동안 신자들은 (의미적)가나안 정복을 거부하면서 예배당 안에서만 맴돌았다. 모든 삶의 의미를 신앙에 기초한 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예배당 안에서만 요란했던 것이다. 그 속에서만 찬양하고

예배(비록 하나님께서 요구하지 않은 쓸모없는 것이지만)하며 서로를 보듬었다. 사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영적 의미

에서 피비린내 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악령이 지배하는 세상을 하나님나라의 통치 방법으로

바꿔가야 하는 전투를 벌이는 것이 본연의 임무였는데 그것을 외면하며 예배당 안에서만 맴 돈 것이다. 이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려는 광야교회의 유대민족과 전혀 다름없다. 지금 시점은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위한 내부적 갈등이 극대화

되고 요단강을 건넌 후에 치뤄질 전면 전쟁을 앞두고 있다.

 

참고적으로 이러한 한국 교회내의 갈등요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찬스를 잘 잡은 케이스는 신천지 같은 사례였다. 적지

않은 신천지인들을 만났지만 대부분은 심적으로 상처를 못견뎌하는 여린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소극적이며 욕심이

적은 타입들이었다. 그에 반하는 내부적 갈등이 컸던 것일까?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기존교회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신천지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현상적으로 분석할 때 제 2나 제 3의 신천지와 같은 이탈 현상은

계속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가나안(안 나가) 신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새로운 수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 세계적 개신교 상황

지금 세계적 개신교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우선 3만 7천여 종파로 갈래갈래 찢긴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그 숫자 만큼

많아야 될 소속 인구는 3억명을 밑돈다. 이는 정확히 50여년 만에 세계 2차 대전 후의 카토릭 인구와 역전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 당시 카토릭 인구는 3억명 언저리 였고 개신교가 약 11억명을 웃돌았다. 지금은 정확히 반대다.

50여년만에 10억에 가까운 개신교 인구가 죽거나 이탈한 것이다.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이 시대를 설득할

사상적 기반이나 함량 즉 콘텐트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 종교는 이슬람과 카토릭이 대등한 숫자를

자랑하며 양분 되고 있다. 한국은 특징적으로 개신교인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을 외면하겠지만 숫자가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도 1991년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감소세에 있으며 상대적으로 카토릭이 늘어났다.

지금 세계 선교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미국은 더 심각하다. 대형교회 일부를 제외하고는 급속하게 유럽교회화 되고 있

으며 사회학자들은 '더 이상 개신교가 미국 내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종말 시점'을 2040년 경으로 보고 있다.

 개신교의 이탈 현상은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미국을 휩쓸었으며 이제 한국도 본격적인 발화가 시작되고 있다.

한가지 주의 할 것은 미국의 경우 예배당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나안(안 나가) 신자 현상과 일치하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인의 40% 이상이

심리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결속력을 발휘할 수단이 없고 미국

특유의 내쇼날리즘이 그것을 대신한다. 미국의 내쇼날리즘은 교묘하게 기독교적 세계관과 정치적 마인드가 결합하여

종교성을 띤 힘을 발휘하고 있다. 죠지 부시가 이것을 적절히 이용하여 폭력적인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것이 그 사례다.

 

3. 스스로 가나안 교인이 된 과거

우선 개인적으로 본인은 여러차례 예향에서 밝힌바 있지만 이미 예배당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 횟수가 약 10년이 가까

워 온다. 예배당을 떠난 갈등의 동기는 시스템적으로 더 이상 복음 세계를 구현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목도하였기 때문

이다. 예배당을 떠날 결심을 한 것은 비교적 큰 중형교회(성도 1천명 이상)에서 3년 소속되면서 1차 있었다. 이 교회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목사였으며 인기도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새 예배당에 입주하면서 많은 대출

을 안게 되었고 이 때 무려 40여명의 장로피택과 그 숫자에 준하는 집사 임명이 있었다. 이른바 노골적인 헌금강요였다.

본인은 아직 '목사'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은 면피될 수 있었지만 풀리지 않는 무엇이 커져 갔다.

이후에는 대학원 동기목사가 소박하게 목회하고 있는 노원구의 조그만 개척교회에 소속되었다. 성도 수 약 40~50여 명의

고만 고만한 나름대로 끈끈한 애정을 과시하는 교회였지만 늘 재정적 고충에 시달리는 교회였다. 그러나 그 곳 목회자의

꿈은 누구나 짐작하듯 '자체 건물'이었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 복음적 의미부여가 목회자의 의도에 따라 '돈'으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는 한계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보았으며 설사 불특정 다수가 은혜롭게 소위 '성전 건축 헌금'을 해서 목적 달성을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적 세계관과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것에 치를 떨어야 했다. 목회자의 의도는 곧 안정된 부동산이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안정된 교회란 곧 안정된 밥줄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의 번영이며 자신 가족의 안녕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소위 '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고서 그들과 같은 세계에서 관찰해 왔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지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심각하게 아내와 상의하여 예배당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성경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충분

하게 검토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교회당 시스템 내부에서 갈등한지 7년만에 가나안 교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선 예배당에 나가질 않으니 시간이 지천으로 남아돌았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주일....및 각종 행사에 소속되지 않으니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았다. 나는 이 시간동안 사유와 성경 분석에 상당 부분 할애 하였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삶

의 주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독교인과 아닌 사람들 속에 섞여서 대등한 입장으로 관계하며 관찰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예배당을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하며 스스로 상상했던 우려 상황들을 일어나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타락하지도 않

았고 남을 속이거나 잘못된 길로 가려 한 적도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근신하며 채찍질 하였다.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나를 과거부터 알고 있던 예배당 외부의 사람들과 관계 변화는 표면적으로 일어난 것이 없었다. 취하게 먹지는 않았지만

편하게 앉아서 막걸리 몇사발 쯤은 마시면서 삶의 텁텁한 이야기들을 부담없이 나누는 일도 왕왕 있게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굳이 예배당을 애써서 나가지 않기를 당부했다. 내가 아는 하나님 아버지는 예배당에 나가지 않거나

주일을 지키지 않거나,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거나 감점을 주시는 분은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구원의 속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미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십일조나, 주일

성수나, (의식)예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은 종교적 신전(예배당)을 유지할 목적으로

대중을 호도하는 것이지 본질적 복음의 요구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예배당 내부에서 갈등하는 적지 않은 숫자가 이

세가지 ①주일성수 ②십일조와 헌금 ③(의식)예배참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소위 신학적이나 교리적으로는 이

요소들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그러면 뭣 때문에 교회를 다녀?

 

 

4. 제안 : 가나안 교인이여 모이자(궐기하자)!

글의 서두에서 가나안(안 나가) 교인이 무려 100만을 웃도는 숫자라고 했다. 이는 적지 않은 숫자이며 당장 예향에서만

해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과감히 그분들을 향해 복음적 대안을 마련할 창구

구실을 하자는 제안을 해본다.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은 종교운동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의 측면에서의 제안이다. 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그

들의 신념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세계를 구현하려 한다는 것은 복음적으로 항상 환영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가장

우려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우선 목회자 그룹일 것이며 두번째는 현대의 낡아버린 개신교 시스템을 맹신

하고 있는 전통과 유전에 길들여진 주변 신앙인들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하나님나라 운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살인과

함구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전통 유대교인과 그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종교적 권리를 포기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도 간단히 십자가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적 음녀의 정체다!

※ 한 편 하나님나라 운동을 시도하기만 한다면 이는 계시록적 전투에 해당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란 나라라고 선언된 백성들(베드로전서 2장 9절)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커뮤니티다.

또한 그들의 삶의 주변에서 섬겨야될 연약한 자를 찾아내고 돌보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증거의 능력은 보혜사 성령으로 보증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선언이기 때문에 전 인류사를 관통하는 유효

메시지다. 이것보다 더 큰 복음은 없다. 예수 증거가 곧 하나님나라 이며 하나님나라는 곧 예수 증거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세계적 연대와 통일성이 가능하다. 가장 쉬운 예로 FIFA나 WTF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FIFA는 그냥 축구

월드컵으로 표면화되는 축구라는 운동 하나로 모여든 취미 커뮤니티다. 그러나 월드컵 하나가 가진 막대한 영향력은 온

지구를 휘감는다. 산 속 구석 티벳의 고원 지대까지 사람들이 열광하며 TV 앞에 모여 카메라에 비춰지는 공 하나에 울고

웃으며 세계가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WTF는 세계태권도연맹 커뮤니티인데 이는 태권도를 수련하는 소속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세계적 커뮤니티 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코리안 태권도는 거의 안알려 진 곳이 없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세계적이다. 축구공 하나와 품새 하나가

세계를 휘돌고 남는다. 이것이 콘텐트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도 아니며 경제활동도 아닌 취미활동으로서의 상징적

세계 정복이다. 세계는 종교대립이 극화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계를 단일화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가능성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천년왕국을 예언하고 있

지 않은가?

 

하나님나라는 종교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개혁적 대안이다. 이것은 지역과 지방과 세계를

망라하고 가능성이 열려있는 세계 단일 교회 커뮤니티가 가능한 방법론이다. 착취하지 않으며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커뮤니티는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또한 진정한 한류가 될 가능성 또한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은 성령께서 관여하시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우리는 영적 안테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요구 사항이 매우 증폭된 시기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움직임을 또 하나의 종파 운동이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 속에서 케어낼 수 있는

진정한 통합 운동이다. 왜냐하면 이미 흩어져 힘을 잃어가는 가나안(안 나가) 신자들을 결속 시킬 수 있는 힘이요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예배당에 소속된 전통과 유전을 체질화 한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개혁에 목말라하고 본질적

복음의 시도를 꿈꾸는 사람들의 안식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 때문이다. 시스템에서 착취적 기득권을 제거하고

자발적이며 은사적인 범 국가적, 범 세계적 네트웤을 꿈꾸는 것이 성경에 반하는 종교적 범죄일까?

 

일제 치하에서 광복을 꿈꾸는 33인이 안개낀 장충단 공원에 모여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듯 전국,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

져 가나안(안 나가) 신자들이 된 사람중에 용기있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나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장 9절]

 

※ 다양한 복음적 의견들이 댓글로서 교환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by 하나님나라 Builder iDeaRush.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iDeaRu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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