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대왕의 죽음부터 아그립바 1세까지의 기간 (B.C.4년경-A.D.41)
1.헤롯 사후에 일어난 사건들
(1)반란들
헤롯이 죽은지 얼마 안되어 한 반란이 일어났다.이 반란은 헤롯이 죽기전에 유다와 마티아스를 처형한 결과였다. 헤롯의 군사들조차 참가한 반란도 있었으나 다 진압되었다.
(2)헤롯의 유언
헤롯의 유언에 따라 아르켈라우스는 왕위계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서로간의 사이가 나빠졌고, 아우구스투스 헤롯의 유언장을 재가해서 아르켈라우스는 유대,사마리아 및 이두매를 차지하였고,헤롯 아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레아를 ,빌립은 이두래아를 차지하였다.
그들중 어는 누구도 스스로 왕이라 부르는것이 금지되었다.아르켈루스는 분분와이 두사람은 사분분왕이 되었다.
2헤롯 사후의 팔레스틴통치
(1)유대와 사마리아
아르켈라우스의 통치는 단지 B.C.4년에서 A.D.6년까지만 지속되었다.
(2)빌립의 영토(B.C.4-A.D.33/34)
아우구스에 의해 빌립에게 할당된 지역은 팔레스틴의 북쪽과 동쪽에 있으며,아울러 거의 대개가 비유대인들이 거주하였다.
(3)헤롯 안티파스의 영토(B.C.4-A.D.39)
그는 빌립보다 더 중요한 지역을 물려받았다.그의 분봉왕직도 중요한데 그가 다스리는곳이 주로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활동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3.사회적 및 경제적인 상황
(1)조세
조세는 두범주로 나누어진다.즉 직접세와 사용세이다.산헤드린은 로마총독의 감독하에 직접세를 징수할 책임이 있었다. 이 세금들은 땅의 소산물에 대한 세금과 사용세를 포함하고 있다.토지세는 로마에 납부하였고, 가장 반감을 일으킨 인두세는 A.D.6년에 합병한 후에야 납부하였다.
(2)토지소유와 임차인
미쉬나와 고고학적인 증거에 근거하여 ,애플바움은 토지 소유가 A.D.1세기에 현저하게 증가했다고 주장한다.이렇게 된것은 높은 세금과 병으로 그들이 토지를 팔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자녀는 일용노동자가 되었다.또한 이 시기에 다양한 임차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수확한 부븐을 소유주에게 바쳐야 했다.
(3)가난한 자들의 위치
이러한 범주에서 머저 어급해야 할 것이 일용노동자들이고 이들은 정해진 시간동안 주인을 위해 일했다. 그들의 위치는 매우 형편없었다.(눅 16:20)
(4)경쟁과 무역
유대가 문헌에 있는 내용에 의하면 이시기에 40개 이상의 다양한 직업집단들이 있었다.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농업과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서서히 유대인들과 갈릴리 및 사마리아의 주민들이 점점 더 무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4.종교적인 상황
(1)성전
이 당시 종교 생활의 중심은 여전히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였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유대 ,갈릴리 그리고 디아스포라에서 세 큰절기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2)회당
팔레스티에서 회당이라는 기관은 단지 A.D.70년 성전파괴 이후에야 완전히 발전하였다.
(3)산헤드린
산헤드린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공회 및 게루시아의 연장으로 간주할수 있다.이 명칭은 B.C.63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주요한 직무중 하나는 전통적인 율법을 해설하고 적용하며 ,또한 세속적인 또는 종교적인 소송사건들을 선고하는 일이다.
(4)영적인 지도자
대제사장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였다.또한 산헤드린의 의장이었다.
(5)종교적인 생활
평민들은 성전예배에 단지 수동적으로만 관련되어있었다. 모든 희생제의행위들은 제사장들에 의해 수행되었고 평민들은 성전일과에 참여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5.예수님의 사역
(1)연대기
대충말해 예수님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그(B.C.27-A.D.14)티베리우스 (A.D.14-37)가 통치하는 기간 중에 태어나서 사셨다.
(2)예수님과 그 시대의 다양한 경향들
신약성경의 증건는 예수님이 자주 바리새인들과 논쟁에 관여하셨으며 또한 사두개파와의 논쟁에서 생각을 달리하셨음을 보여준다.
(3)예수님의 재판
모든것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재판레서 매우 적극적인 역활을 하지않았으며 또한 종종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예수님께 좀더 동정적이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예수님이 결국 빌라도에 의해 사형이 선고된다.
(4)예수님의 설교
예수님의 활동과 복음서의 기록 사이에 그에 관한 전승들을 나타내고 있는 공동체의 설교가 있다. 설교의 주요 특징은,예수님이 어떤 체계적인 교훈을 전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의 선포는 우선 구원의 메시지로 이해 되어져야한다. 마지막으로 코스터는 예수님의 윤리가 무엇보다도 종말론적이지 중간윤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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