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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관해/심리학 이야기

성경인물 심리유형

성경인물과 심리분석


 

 


- 야 곱 -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삶의 사건들을 순서대로 간략히 지적한다면 출생 →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 →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감 → 레아와 라헬과의 결혼 → 귀향간사건 → 요셉의 상실 → 요셉과의 해후 → 애굽에서의 죽음으로 도식화 해볼수 있겠다,

야곱의 삶을 특징지우는 것들 중에서 “경쟁”을 맨먼저 지적할 수 있겠다. 성경인물들 중에서는 쌍둥이로 출생했던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뱃솔에서부터 형 에서와 써웠던 인물이다.

백속에서도 경쟁하던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발굼치를 붙잡고 간발의 차이로 태어났고 단 볓초 때문에 동생이 되어야만 했다.

야곱 스스로 경쟁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결혼 후에는 가정에서 경쟁을 벌이는 두 여자형제들 사이에서 경쟁심의 열매를 맛보아야 했었으리라. 아무튼 라반의 두 딸들의 경쟁심과 리브가의 두 아들들의 경쟁심 상이에 보여지는 유사성은 매우 흥미롭다. 라헬을 더 사랑하는 입장에서 레아와의 관계, 여종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이 빚어낸 배가 다른 아이들로 이루어진 역기능적인 가정의 가장으로서 야곱은 경쟁심이 빚어낸 결과들을 추수려야만 했을 것이다.

리챠드 로어와 안드레아스 에버트는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 야곱의 인성유형의 제 3유형인 ‘지위추구형’ 이라고 지적하였는데 필자 역시 이 유형의 특성을 일부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많은 현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제 3유형에 속할 것이라고 본다. 세계에서, 한국에서, 서울에서, 강남에서 혹은 어느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 , ‘제일 좌석이 askg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교회건축을 하는 목회자들의 심리저변에 이 경쟁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다른 사람이 보다 더 낫고 훌륭하면 그냥 두고 보지 못하며 나보다 나은 사람이 좋은 위치에 올라설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건강치 못한 제3유형의 사람들이다.

이같은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피상적이고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기에 바쁘며 외부적인 성취와 업적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속이고 속는 사건은 야곱의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고 할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는 할례의 고통이 심한 제 삼일에 시므온과 에위가 칼을 가지 부지 주엥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들을 죽이며 모든 재물을 배앗고 노략하였다.

몇 주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야곱은 라헬의 집에서 이십 년이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빈털터리인 야곱은 타향에서 이민자의 모습으로 삶을 시작해야 했었다.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식객으로서 눈치밥을 먹으며 처가살이 했을 야곱의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부싸움도 큰소리로 못하고“당신 우리 집에 와서 그래도 이정도 된줄 알고나 있어요?” 라는 바가지긁는 말에도 자신있게 대꾸하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줄줄이 태어나는데 아직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독립을 누리지 못하고 장인의 가축이나 쳐야 했던 신세 때문에 열등감도 겪었을 것이다.

또한 아내를 억기 위해 칠년을 종처럼 일해야 했던 야곱은 때때로 여러 가지 내면적이 상처들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태도에서 실망하고 외사촌이자 손위 혹은 손아래의 처남인 라반의 아들들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눈치와 마찰을 경험함녀서 야곱은 어쩌면 외톨이처럼 느꼈을 것이다. 라반의 집에 소속되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속감’을 경험 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얍복의 사건에서 야곱은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그 이후의 그의 삶에서 발견되어지드소이 그의 성품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았다. 딸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다시금 정신을 차린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벧엘로 올라가는 말슴을 듣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다시금 직면하게 된다. 이 두 사건을 퉁하여 야곱으 치유와 회복 그리고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야곱 역시 아버지 이삭과 마찬가지로 그의 말년에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보지 못하였다.

아버지 이삭은 속아서 차자에게 축복했지만 야곱은 알고 차자에게 축복하였다. 야곱은 마침내 모든 아들들에게 축복을 마치고 삶의 기운이 진하여 삶의 ‘게슈탈트’를 완전히 마치고 할 도리를 다하며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살아간 신앙의 위대한 인물이었다.

 

 

 


- 모 세 -

모세는 그이 이름이 의미하듯이 ‘물에서 주어온’ 입양아였다. 바로의 공주는 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을까? 모세의 입양 경로를 숨기기 위해서 오히려 다른 애굽식의 좋은 이름을 짓지 않고 그의 입양경로를 파악 할수 있게 하는 이름을 지은 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달리 모세가 입양아였음을 알리기 위했음이 아닐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바로의 공주는 나일강의 한 모퉁이에서 모세를 발견하였을대 ‘이는 히브리사람의 아이로다’ (출2:6)라고 외쳤다. 그래서 유모를 구할 때에도 애굽인 유모가 아닌 히브리인 유모를 찾았고 유모는 공교롭게도 모세의 생모였다.

자신을 낳아주고 또한 젖을 먹여준 생모 요게벳과 자신을 애굽 왕실의 모든 좋은 조건 속에서 양육시켜준 바로왕의 공주인 양모사이에서 모세가 입양아가 겪는 심리적인 고층을 겪었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도 생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모세’라는 이름을 그의 평생에 썼던 것을 보면 양모의 사랑과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준수하게 생기고 범상치 않은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로 젖을 먹이며 히브리인이 섬겼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에 대하여 수업싱 이야기를 해주었을 요게벳의 사랑과 영향도 매우 컸을 것이다.

모세의 출생은 그의 부모에게 축복된 출생이 아니었다. 아들이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는 바로왕의 엄명이 떨어져 있던 시대에 모세는 ‘혹시라도 아들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속에서 “아니나 다를까?” 아들로 태어남으로 일종의 “원치 않는 아이” 로서 태어나야 했다.

에릭 에릭스의 발달심리학의 팔단계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모세가 나일의 하수에 버려졌던 시기는 태어난지 삼 개월이었고 여전히 부모와의 신뢰감을 형성해야 할 시기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백일 잔치도 채 해보기 전에 부모가 자신을 조그만 갈대 상자 속에 집어 넣고는 뚜껑을 닫아버렸을 때, 아기 모세는 아마도 “유기감”을 맛보아야만 했을 것이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일조의 “외상적 경험”을 하였을 것이며 또한 이 경험은 그의 이후 삶에서 타인과 신뢰감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으리라고 본다. 왜 자신이 버려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믿었던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을 때 그 충격은 컸을 것이다.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려고 할 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도 부족했던 모습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같은 모세의 모습은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약 사십 년을 머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부르심이 없음으로 인하여 자포자기한 것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톨릭 공동체의 ‘영적 지도’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아롭유형도에 따르면 모세는 제 1유형인 ‘개혁자’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제 1유형의 사람들은 정의와 불의의 이슈에 대하여 민감하며 분노감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프로이트 역시 낳아준 어머니와 자신을 길러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유모를 통하여 두 종류의 영향을 받았다. 유대인을 핍박하는 나찌즘이 팽배해져갔던 사회적 상활 속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콤플렉스를 경험하면서 살았던 것과 애굽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던 모세와 여러 가지 면에서 ‘동일시’ 경험을 하였을 것이라고 여러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모세가 오늘의 우리가 아는 모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버림작을 수 밖에 없던 그를 높이 드셔서 바로공주의 사랑을 입게 하셨고 미다안에서 완전히 추락한 상태에 있던 그를 다시 높이 드셔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사십 년 광야생활을 이끌어가게 하셨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광야 생활 가운데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과거의 삶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 울 -

사울이 왕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사통치 시대 혹은 신정시대가 사무엘의 두 아들이 방종함으로써 그 막을 내리면서 이스라엘에는 왕정시대가 그 막을 올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첫 왕위에 오를 것인지에 대하여 흥분감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열 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에서 어느 지파 출신이 첫 왕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정치 역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면 그 지방사람들이 여러모로 해택을 입는 것을 보아왔다. 사울이 왕이 될 당시에도 각 지파에서는 자기 지파 출신이 왕위에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틀림없이 기대하였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제비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던 사울에게로 돌아갔다. 물론 제비뽑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미 사울을 택하고 기름을 부으셨지만 제비뽑기 작을 통하여 공적으로 인준을 받도록 하셨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른 후에 사울이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을 분석해 볼 때 그는 정신의학에서 분류되는 ‘인격장애들’ 중에 여러 가지의 인격장애들을 아울러 갖고 있다. 첫 번재 인격장애는 ‘수동-공격성 인격장애인데 그 근거를 지적해본다면 그가 제비뽑혔을 때 행구사이에 숨어있음으로써 그의 수동적인 면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 행동을 그의 겸손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는 하다. 또한 일부의 비류들이 “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월하겠느냐” 라고 말하며 멸시하였을 때 “그는 잠잠하였다.는 점에서 또한 그의 소극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이 내용 또한 보는 관점에 따라 그의 온유한 부분을 볼 수도 있겠다.

두 번째의 인격장애로소 “편집성 인격장애”를 지적할 수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는 다윗을 그의 체면을 세워준 공신으로 대우하기보다 라이벌로 의식하였다.

그가 가진 세 번째 인격장애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였다. 다위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따라다는 그의 모습을 지속적이면서 만성적이며 또한 죄의식이 결여될 행동이었다.

프로이트의 충동이론으로 그의 행동을 설명하자면 그는 “싸나토스”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계속 치달았던 것이며 마침내 그는 전쟁중에 부상당했을 때 자신의 칼 위에 엎드러지는 자시-살인까지 행했던 것이다.

사울은 여러 가지 방어기제들을 사용하는데 능숙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리품을 가져온 것에 대하여 사무엘에게 “합리화”의 기제를 사용하였다. 사울의 인격유형을 제 8유형으로 분류하였는데 돈리소는 제 8유형의 사람을 “리더”로 총칭하여 부르면서 ‘강력하며 확장적이며 폭군적이며 파괴적인 사람’ 으로 소개한다.

리챠드 로어는 다위도 제 8유형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데 다윗은 제 8유형의 건강하고 기증적인 면들을 갖춘 “훌륭한 리더‘였던 반면 사울은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 엘 리 야 -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영광 중에 변화하셨을 대 모세와 더불어 나타났던 인물은 엘리야였다.

또한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한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활동했을 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햇을 정도로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신화적인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의 시대에 걸맞게 능력있는 선지자로서 활동했던 엘리야는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엘리야의 성장과정이나 출신배겨엥 대해서 성경은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단지 그가 길르앗 지방에 있는 디셉이라는 마을 축신이라고 밝힐 분이다.

그도 한 남성으로서 젊은 과부에게서 성적인 느낌을 가졌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로서 그러한 느낌을 신전의식 속에서 ‘승화’ 시키며 극복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젊은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 여인의 반응 속에서 그녀가 엘리야를 이성적인 시가으로 바라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할 것 같다.

엘리야는 몸에 턱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홉유형도의 관점에서 볼 때 엘리야는 제 1유형인 “개혁자”유형의 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1유형의 사람들은 진실과 정의의 세계를 추구하며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계속적인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는데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이들은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며 높은 도덕성과 자제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건강치 못한 제 1유형의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들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완벽주의적인 삶의 태도로 인하여 “극단적인 태도”를 갖는다. 또한 이들은 위기에 처하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제 4유형인 ‘예술가’ 유형의 병리성인 우울증의 증상을 드러내게 되는데 엘리야의 경우에 그것이 잘 드러나고 있다.

성경르 통해 엘리야의 성장고자어에 대해 일기는 어렵지만 제 1유형의 많은 사람들이 유년시절부터 어른스럽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영웅적인 성인아이일 경우가 많다고 본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어릴적부터 엘리야는 모범적이며 영웅적인 성인아이로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 돈 리소는 그의 책 「아홉유형도 이해하기」에서 많은 제 1유형의 사람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비교적 좋지 못하다고 지적하였다.

엘리야는 종교적으로 암흑시대를 살아가면서 여호와 신앙의 빛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추었던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 수 가 여 인 -

수가는 기구한 삶의 역사를 가진 여성이었다. 가부장적인 당신의 문화를 고려할 때 여자가 여섯 번씩이나 결혼을 햇다는 것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떤 이유에서 여섯 번씩이나 결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요한복음은 침묵하고 있지만 남편의 사별로 인하여 재혼을 하게 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여러번의 이혼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여진다.

수가는 동네여인들의 왕래가 뜸한 시간인 정오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뜨거운 햇빛에도 불구하고 물길러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회피하는 여인이었다, 아마도 동네사람들로부터 비난받거나 소외된 삶을 살아가며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여인이었을 것이다.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이 여인의 삶 속으로 초대받지 못하고 이 여인 역시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폐쇄적일 수 밖에 없었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겪고 있었던 수가에게는 아마도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하여 동네사람들이 비난하며 수근거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점점 불신해가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모습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낯선 남성인 예수님과의 체대화에서도 약간 드러나고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속감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수가는 남편으로부터 그 욕구를 채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마실 때는 갈함이 채워지지만 다시 목마름을 느끼는 ‘우물물’ 로 상징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여섯 번씩이나 다른 남편들과 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수가는 외적인 미모를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것이다. 자신도 결혼의 삶을 통하여 소속감과 안정감을 누리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각까이 다가와서 그녀와 결혼을 하고 살게 되면 장미에 돋힌 가시처럼 상대방을 힘들게 하며 지치게 하는 모습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막상 그 남편이 떠나고 나면 버림받은 상처로 아파하고 또 다른 남성을 찾아나서는 삶을 반복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한번의 이혼의 상처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깊게 자리잡는데 다섯 번의 이혼의 관정을 거치면서도 또 다시 결혼해서  살아가는 수가를 생각해보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남자에게 집착하도록 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보게 된다.

헤어지고서도 혼자 살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다른 남성에게 의존하야 하는 수가의 모습에서“관계중독” 혹은 “동반의존”의 증상을 발견하게 된다. 혼자 힘으로는 삶을 영위해갈 수 없고 누군가에게 기대어야만 살 수 있는 ‘동반의존자’의 모습이 그녀에게서 나타난다.

결혼생활의 스트레스가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것임을 알면서도 다시금 새로운 남성을 남편으로 만나 의존하며 살아가려고 부단히도 몸부림치는 수가에게서 관계에 중독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남자면 자신에게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보았지만 그 관계가 처음에는 오아시스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신기루였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는 수가의 삶이었다.

이같은 삶을 살아가던 수가에게 예수님은 전혀 예기치 않게 찾아오셨다. 다시금 목마를 수 밖에 없는 우물물로 상징되는 수가의 갈급한 삶에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로서 찾아오셨다.  수십년 동안 억눌려 왔던 내면적인 상처들이 드러나며서 수가는 치유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예수님과의 대화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발가벗겨지듯이 드러나게 될 때 회복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수가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 ‘화해’의 과정이 일어나게 되었다. 수가는 기쁨과 놀라움,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의 변화와 대인관계의 회복까지 점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길하지 않는 생수로 우리를 채우시며 우리의 내면적인 모든 상처들을 씻어주고 싸매어 주신고 치료해 조시는 그분께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