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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성도의 생활

[스크랩] 직업과 영성

 

 

직업과 영성

 

영성 그리고 경건과 성령충만

일에도 성령충만이 있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결제판에 손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1. 영성 그리고 경건과 성령충만

최근들어 ‘영성’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영성계발’이다, ‘영성훈련’이다 해서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팎에서 영성이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에게 영성은 비교적 낯선 개념이었으므로 부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사실 영성이란 용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된 것은 주로 뉴에이지 운동이나 명상서적을 통해서였으므로 그렇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기독교적인 영성은 훨씬 역사가 길다. 기독교적인 영성은 주로 중세의 수도원이나 그리이스 정교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개신교가 영성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개신교에서는 영성이라는 말보다는 ‘경건’이나 ‘성령충만’과 같은 말이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것 뿐이다.

일반적인 영성과 기독교적인 영성은 분명히 다르지만 현상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으므로 혼동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영성은 “어떤 철학이나 종교적 주장에 따라 자신의 내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에 비해 기독교적인 영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역의 기초 위에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뿌리가 다르다. 영성학자들은 기독교적인 영성을 크게 다음의 네가지로 분류한다.

 

1. 신비주의의 영성

이 영성은 3-4세기경 사막에서 평생 기도하며 살았던 ‘사막의 교부들(Desert Fathers)’이나 중세의 수도원이나 동방교회에서 크게 나타났던 영성의 모습이다. 이 영성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을 체험하는 것이며, 때로는 육신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현재 수도원(한국에는 예수원, 트라피스트 수도원, 떼제 공동체, 은성수도원 등이 있다)에서 행해지는 관상기도나 침묵기도, 퀘이커 교도들의 예배가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 영성은 깊은 명상 중에 하나님을 직접 생각하고 만나는 체험으로서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에게는 비교적 익숙지 않은 편이다.

이런 영성은 복잡한 환경에서 떠나야 하므로 직장내에서 체험하기 쉽지 않다.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장소를 택해서 잠깐이라도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이 직장내에 함께 하심을 상상한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인 체험이 될 수 있다.

 

2. 복음주의의 영성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이란 모토가 말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한 영적인 체험을 강조했다. 성경과 상치되는 것은 물론 성경을 벗어난 어떤 체험도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에 기초를 둔 체험만을 영적인 체험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중세의 신비적인 영성을 반대하면서 성경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강조하였다. 기도 역시 명상이나 관상기도보다는 말씀에 기초를 둔 대화식의 기도가 보편적이 되었다. 이 전통은 청교도들이나 경건주의 운동을 통해 계승되어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들의 대표적인 영성이 되었다.

오늘날 선교단체를 통해 지역교회에 소개된 “큐티운동”이 이 영성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될 것이다. 아침 일찍 직장으로 나와서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에 기초해서 하루 생활을 내다보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직장생활을 바로 하게 도와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3. 은사주의의 영성

복음주의의 영성이 말씀에 기초하기 때문에 지적이며 교리적인데 비해 은사주의의 영성은 감정적인 차원을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는 신비주의의 영성과 상통하는 면이 있으나 그 외적인 표현은 서로가 다르다.

이 영성에서는 주로 방언이나 신유의 능력같은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특별한 은사의 체험을 강조한다. 대체로 전통적인 교회는 이런 영성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 영성이 오순절교파 뿐 아니라 교파를 초월해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고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런 능력을 체험했음을 인정한다면, 그 하나님이 오늘날에 같은 역사를 하실 수 있음을 부인할 성경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다만 이런 현상은 미신적으로 변질되거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재해 있는 대부분의 기도원들이 이런 영성의 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들 하나님의 능력을 병고치는 역사같은 것으로 제한해서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의 능력은 직장에서 맡게된 어려운 일들을 기도를 통해 해결함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직장에서 영성을 체험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

 

4. 생활 속의 영성

앞에서 말한 영성의 세 가지 양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이란 공통점이 있다. 좁은 의미의 영성의 표현은 대체로 이런 세 가지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영성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체험이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체험이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체험이라면 개인의 의식이나 체험 속에서만 제한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토마스 머튼의 말대로 진정한 영성은 세상과 격리되는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의 영성은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평상시에 하는 평범한 일이 영성의 표현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노력은 영성의 또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직장에서의 일과중이나 직장을 떠나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도 있지만, 일 자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내게 맡겨진 일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로 생각한다면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영적인 일이 될 수 있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직장 안에서 발견되는 비윤리, 불의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도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영성의 양상을 이해하게 될 때 직업과 영성은 다음과 같은 관계로 정리될 수 있다.

 

① 일로부터 떠난 영성…일에서 떠나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수님도 바쁜 일정을 피해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다.(눅 5:15-16) 예수님이 그랬다면 크리스천 직장인들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직장 안에서 일과를 시작하기 전이나 일하는 중에 틈틈히 시간을 내어 주님과 교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일정기간 직장을 떠나서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수도원이나 수양관, 기도원을 찾는 것을 일년계획에 넣어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② 일을 위한 영성…하고 있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다.

동시에 크리스천 직장인들을 자기가 하는 일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도 있어야 한다. 특히 일상의 일을 하나님이 맡기신 일로 받아들이는 크리스천들로서는 직장에서의 일 자체가 영적인 일이 될 수 있으며 직장이 기도의 현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수도원에서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노동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이런 영성의 이해를 뒷받침해준다.

 

 

 

2. 일에도 성령충만이 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일터에서의 경험에 영적인 가치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1. 활동에 대한 영성 “장사하는 시간이 곧 기도시간이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서 기도하는 마음과 일터에서의 활동이 창조적인 긴장을 갖게 한다고 했다. 그는 “장사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기도시간과 다를 바가 없다. 부엌에서 들리는 소음 속에서도 나는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하는 때와 똑같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일을 하면서 더구나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통해 하늘을 ‘엿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진리는 역설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일과 기도와의 관계도 이해가 된다.

떼이아르 드 샤르뎅은 모든 행동을 신성화할 것을 말하면서 우리가 일하는 시간을 기독교적인 영성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자세는 우리들의 생활의 어느 영역도 하나님으로부터 막힐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물건에 대한 영성 “작은 과자조각 하나에도 영성이 있다”

현대 직장인들은 자기가 하는 일, 만드는 물건의 최종 결과를 보지 못하고 단지 과정의 일부에 참여하기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일의 결과만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 자체-계산, 조립, 운전, 교수, 제조, 치료 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고치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마지막 만찬 때에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바로 성만찬이 그것이다. 성만찬에서 우리가 받은 것은 작은 과자조각이나 한잔의 포도주가 아니라 세상에서의 일의 의미를 변화시킨 선물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건의 영성, 일의 영성의 예식적인 핵심이 된다.

 

3. 장소에 대한 영성 “학교, 일터, 병원, 가정도 성소이다”

거룩한 장소란 지역적, 물리적인 제한이 있는 곳이 아니다. 거룩한 장소란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전통적으로 교회나 수도원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풍성하게 느끼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학교, 일터, 병원, 가정 등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내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기도가 너무 추상적이 되지 않도록 직업에 관련해서 할 수 있어야 한다.

 

4. 소명에 대한 영성 “현재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가?”

소명은 특정한 직업-목회자, 선교사, 신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인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 부르셨다. 소명을 넓게 생각할 때 어떤 곳에서도 주님을 섬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있는 곳에서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곧 영성의 핵심이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이 신앙과 직업과의 연결성을 이해해야 하며 이런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영성이란 것이 개인의 경건과 개인적인 도덕이나 교회내에서의 봉사활동을 넘어서는 것임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5. 모험에 대한 영성 “기업에도, 신앙에도 모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이 영원하신 분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양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정지된 상태로 있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 때로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게 하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 좋은 예가 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현실에 안주하기를 원치 않고 부르심을 따라 모험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현대사회의 기업이 바로 모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험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세계에서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안정된 곳, 익숙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고 위험부담을 택하는 것도 영성의 요소가 된다. 현실이 부정적일지라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장래에 “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영적인 태도이며 직장인으로서도 필요한 태도이다.

 

6. 실패에 대한 영성 “실패는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지름길”

실패하면 초라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도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실패하셨지만 실제로 그의 생애가 실패가 아니었듯이 의를 위해서 살다가 세상적으로 실패한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실패에 대한 영성의 핵심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어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느냐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상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실패의 고독은 때때로 하나님과 가까와지게 만들어준다.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이 좋은 예가 된다. 기도의 생활은 성공의 이정표를 지나치는 여행만이 아니라 일단 출발한 후에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기쁨과 슬픔의 길을 거쳐가는 것이다. 이 영성은 우리가 실패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고 다시 출발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7. 부활에 대한 영성 “삶 속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다”

기업처럼 죽음과 부활이 실감나는 영역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고 있다. 상품만 해도 그렇다. 새로운 상품이 나타났다가는 또 사라진다. 크리스천들은 이런 일들 속에서 복음과 부활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패배와 죽음 이후에 살아나신 것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기업이 힘들어지고 상품이 안팔릴 때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그 부활을 기대해야 한다. 이렇듯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다면 그것이 영성의 표현이 된다.

 

8. 영성과 미래의 현실 “일을 위한 영성을 개발하라”

한 경영학 교수는 요즈음 기업내에서는 교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은 일을 위한 영성을 가르치기 위해 교회보다 앞서서 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직장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신앙과 직장과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대체로 신앙은 과거의 가르침이나 경험의 토대위에 세워지는데 비해 기업은 장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생존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이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일을 위한 영성을 개발해야만 한다.

 

위의 글은 「INDUSTRY CHURCHES FORUM」 1993년 9월호에 실린 Malcolm Grundy의 <A Spirituality for Work>를 전재한 것입니다.

 

 

3.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주님은 우리에게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한답시고 해야 할 일을 내팽게칠 수는 없다. 주님의 명령과 우리의 현실을 조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들을 기도로 바꾸는 것이다. 도대체 그것이 가능할까?

 

1. 우리가 하는 일과의 사이에 깊은 영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동시에 두가지 일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훈련이 쉽지는 않다. 땅을 파든, 청소를 하든, 일단 그 일을 할 때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일을 기도하는 자세로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정신이 엉뚱한데로 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해야 한다.

딴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면 일의 결과도 좋지 않지만 그런 자세 자체가 영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하는 일에 성실하면서 그 결과에 예민하게 대처하는 것이 직장인의 기본 자세이다.

 

2. 우리는 우리가 일한 결과와도 영적인 교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상품이나 해놓은 업적에 대해서 창조사역의 연속으로 생각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위적인 스케쥴에 자신을 맞추거나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에 쫓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취욕을 위해서 무리하게 일하다보면 일을 통해 영적인 교류를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때때로 사람들의 요청에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담은 일을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었지만 그 일이 자신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중요성은 그의 일이나 직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됨에 있었다.

 

3. 우리의 일이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아담은 낙원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일을 했다. 그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조화될 수 있었다. 비로 그 일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신과 재능과의 관계를 맺게된다.

일의 원래의 역할인 양육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노는 것과 쉬는 것 등 다른 활동과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놀이와 같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 일의 결과가 탁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은 마치 수영과도 같다. 수영을 하는 목적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다. 수영의 주된 목적은 수영자체이다. 물장구를 치면서 즐기고 그 결과로 다른 편으로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일을 할 때의 자세가 바로 이런 자세이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들의 손을 기다린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신을 절제하고 조용히 앉아서 기도와 묵상을 할 시간을 갖는다면 항상 기도하는데 필요한 인내와 조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균형을 찾게될 때 다른 사람들의 책망이나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자책으로 인한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아담이 잃었던 이 균형의 회복을 몸소 보여주셨다. 그는 목수로 일하셨는데 그 일은 그의 사역의 준비라기보다는 그의 가르침과 선포사역과 병행한 또 하나의 사역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한다는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회복해야 할 영성인 것이다.

 

■위의 글은 Edward Hays의 「SECULAR SANCTITY」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4. 결제판에 손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든지 살아계신다. 골방과 예배당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일하는 직장 속에도 살아계신다. 그런데 이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사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바로 그런 크리스천 직장인들의 생생한 체험을 나누어 봄으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껴보도록 하자.

 

-직장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굉장히 낙심됐었다. 그런데 정반대로 별로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승진시험을 치루었는데 합격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별 생각없이 주위의 권유에 의해 시험을 치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가 기도동지들과 함께 내 시험을 위해서 기도했었다고 한다.(구로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

 

-어느 무역회사의 사장이 외국손님들을 접대하는 식탁에서 그저 일상 하던대로 식사기도를 했다. 그런데 나중에 거기 참석했던 한 사람이 그 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신자이지만 그 날 도전을 받았노라고 했다. 한 사람이 경건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생각지 않게 영향을 주게된 것이다.(무역 회사의 사원)

 

-까다로운 상관에게 결재를 받아야 할 일이 있었는데 결제판에 대고 기도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상관이 보통 때와는 달리 쉽게 해주었다. 또한 웬지 이유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것이 문제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침에 아침식사 준비하랴, 남편과 아이들 치닥꺼리하랴, 출근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쁘지만, 머리를 말리면서, 때로는 화장실에서라도 말씀을 묵상하려고 한다.(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여직원)

 

-주일에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부서 책임자로서 도저히 빠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장로가 교회에 빠지고 체육대회에 갈 수도 없고 해서 그 문제를 가지고 토요일에 철야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주일예배를 드리고 조심스럽게 경기장으로 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경기가 늦어져서 아무런 어려움없이 경기에 다 참여할 수 있었다. 또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가 고장이 나서 어쩔줄 모를 때에 기계를 붙잡고 기도했더니 윤전기가 움직여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다. 기도의 생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경험이 되었다.(신문사의 간부직원)

 

-업무중 나의 실수로 고객이 손해를 보게 된 상황에서 기도로 그 위기를 면한 적이 있었다. 거의 힘든 상황에서 기도가 유일한 해결책이었다.(구청에서 근무하는 직원)

 

-출판사에서 새로운 잡지를 출간하면서 처음부터 많은 부수를 팔게 되리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한 결과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얻었다.(기독교 출판사 직원)

 

-아침마다 전체 직원이 함께 큐티를 하는데 이 시간을 통해서 회사에 필요한 많은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었다. 특히 큐티는 기업의 최대목표인 이윤추구로 인해 영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데 큰 힘이 된다.(혼수이벤트를 담당하는 회사책임자)

 

-직장 사람들은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크리스천”이란 레텔을 붙인다. 그러므로 경건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맡은 일에서 능력을 나타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도 영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공무원)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작은 음식점을 경험하는데 절대로 술을 팔지 않는다. 자신이 술의 피해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할 때도 종업원과 같은 자세로 일한다. 음식배달도 손수 하는데 배달하러 갈때면 항상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외친다. 대답도 없는데 왜 그렇게 말하고 가느냐고 하니까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면서 이 식당의 주인이 위에 있다고 말하더라.(방송국 프로듀서의 말 )

 

-경리책임을 맡은 집사님인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책임이었다. 그런데 그는 돈이 필요할 때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돈을 향해서 “돈아 내게로 오너라”고 소리친다고 한다. 어찌보면 어처구니없는 것 같은 행동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만유의 주재가 되신 주님을 믿는 신앙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직장내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선배를 모시게 된 것이 큰 복이다. 그 분을 통해 말씀으로 충고를 받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런 선배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경영컨설팅 회사 직원)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나 자신도 기도를 하지만 전화로 동료 크리스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곤 한다.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그 사실을 또 나누게 되는데 이런 일이 영적으로 피차에게 유익이 된다.(컴퓨터를 담당한 여직원)

 

바로 이런 크리스천 직장인들의 체험처럼 우리는 ‘직장’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함을 체험할 수 있다.

 

 

출처:야곱의우물가

 

 

 

출처 : HOLY BIBLE WALKING
글쓴이 : Joh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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