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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위해 온것들/환경&식량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안보·경제 문제다, 펌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안보·경제 문제다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6.28 03:31 | 최종수정 2008.06.28 07:58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안보·경제 문제다" 기후 변화가 식량 부족 부르고, 정치 불안으로 이어져 GDP보다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체제로 가야

다음 달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열리는 G8(서방 선진 7개국+ 러시아 ) 확대 정상회의는 '기후변화 정상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주최국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이 회의에 참석한다. 이 회의를 앞두고 지난 23일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공동개설한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에서는 존 애쉬톤(Ashton) 영국 기후변화 특별대사와 정래권 외교통상부 기후변화 대사를 초청, '기후변화 국제 동향과 대응'이란 주제로 특별 강의를 가졌다. 애쉬톤 대사는 강의에서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안보·경제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던 미국도 오는 12월 대선(大選)이 끝나면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저(低)탄소 경제 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 애쉬톤 영국 기후변화특별대사 "제로(0) 탄소 경제체제 만들어야"

식량 문제부터 말하겠다. 올 초 고든 브라운(Brown) 영국 총리가 중국 을 방문했을 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식량 가격 폭등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수천 년간 중국 역사를 보면 식량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정치 불안이 이어지곤 했다.

최근 식량 가격이 폭등한 원인을 수요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중국·인도 중산층이 증가하고 이들의 육류 소비가 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더구나 유가가 폭등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옥수수를 바이오 에탄올 생산으로 돌리고 있다. 고유가 역시 식량 가격에 일조하는 셈이다.

'공급 쇼크(supply shock)'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 때문이다. 주요 밀 생산국인 호주에선 몇 년째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호주 동남부 곡창지대에 7~8년째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대규모 밀 곡물 생산이 점점 힘들어진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기후변화를 거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또 정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지금 전 세계 경제를 보면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요즘 서브프라임 사태로 영국과 미국이 신용 경색을 겪는다고 하지만 이는 단기적 문제다. 이에 반해 '자원 경색'은 펀더멘털(fundamental)의 문제다. 식량과 에너지, 물, 기후의 4대 축이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 남미 페루 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를 하겠다. 그곳에선 사용하는 물의 70%를 안데스 산맥 빙하(氷河)에서 얻는다. 그런데, 앞으로 20년 내 빙하가 녹아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페루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페루 산(産) 야채와 과일이 영국 수퍼마켓에서 많이 팔리는데, 빙하에서 발원(發源)한 강이 메마르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광물자원 개발 과정에서도 물이 많이 필요한데, 물이 부족하면 개발할 수 없다. 페루 정치 지도자들이 빙하가 녹는 것을 걱정하는 이유다.

요약하면 기후 변화는 환경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특별대사를 맡으면서 처음 한 일은 각종 문서에 '환경'이란 단어를 없애는 것이었다. 기후변화를 안보·경제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는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오늘의 문제'다. 내년 말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2012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게 있다. 각국마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지금 변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탄소 경제를 뛰어넘어 '제로(0) 탄소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래권 외교통상부 기후변화대사 "성장의 질을 생각해야 할 때"

그동안 우리는 '성장이 우선이고 환경은 나중'이란 사고방식이었다. 이제 성장의 질(質)을 생각해야 할 때다. 시장보다는 생태 효율성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가격에는 기후변화 가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비용으로 환산돼 자동차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

각국은 나름대로 생태 효율성을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철도 위주 운송체제이고, 런던 은 도시 혼잡 통행료를 부과함으로써 성과를 거뒀다. 노르웨이 는 교외(郊外) 대형 쇼핑몰을 규제하고 시내에만 짓게 하고 있다.

교통 혼잡 비용을 보면 일본은 GDP(국내총생산)의 0.79%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3.4%에 이른다. 참고로 한국 의 국방비는 2.6%다. 교통 체증만 줄여도 크게 성장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생태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장 가격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세금 총량은 늘리지 않으면서 소득세 대신 환경세(예를 들어 오염세) 중심으로 조세 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다. 환경 오염을 발생시킬 때마다 세금이 더 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소비 생활도 잘못돼 있다. 한국에서 가전·자동차는 점점 대형화하고 있다. 한국인의 대형 자동차 선호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강하다. 냉장고·세탁기·TV도 갈수록 대형화 추세다. 저렴한 수돗물 가격도 물의 낭비를 유발하고 있다. 수돗물 가격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수돗물 원가의 35%는 전기료가 차지한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을 때다. GDP의 극대화 대신 행복과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체제를 생각할 때다. OECD는 GDP를 넘어서는 지수를 개발 중이고, 부탄 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태국 은 '자족 경제(sufficiency economy)'를 들고 나오고 있다.



[호경업 산업부 기자 ho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