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대는 영어 Media(메디아)의 음역입니다.
지명으로, 아시아의 자그로스 산맥의 동쪽, 카스피해의 남쪽, 바대의 서쪽, 엘람의 북쪽에 있는 산악국(현재의 이란 고원)이죠.
길이 약 960㎞,너비약400㎞으로서 그 면적은 약 38만4천㎢이고, 전성기에는 더 넓었습니다.
메대의 대부분은 900m의 높은 고원 지대인데,
나머지 부분은 서북쪽에서동남쪽으로 달리는 일곱 가닥의 병행한 산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비옥하고 물이 풍부한 곡간(谷間)이 있었습니다.
메대인은 BC 1400-1000년 경 이란 지방에 다른 민족과 같이 이동하여 왔습니다.
창세기 10장에서 볼 수 있는 제국민표에서는 메대(마대)는
고멜, 마곡,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등과 같이 야벳의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창 10:2).
고대 메대에 대해서는 앗시리아의 자료에서 알수 있는데,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 Ⅲ세(Shalmaneser Ⅲ, BC 858-824)가 북쪽으로 원정하여
발수아(Parsua)인의 영토에 침입하고,
이어서 남쪽으로 바꾸어 메대인이 땅에 들어간것을 알리는 1절에서 `메대인'의 이름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샴시 아닷 Ⅴ세(SamsiAdad Ⅴ, BC 823-810 재위), 디글랏 빌레셀 Ⅲ세(Tiglath-pileser Ⅲ, BC 745-727 재위),
사르곤 Ⅱ세(Sargon Ⅱ, BC 721-705 재위), 산헤립(Sennacherib, BC 705-681 재위)등의 제왕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약 2세기에 걸쳐 앗시리아와 메대간에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B.C. 715년 앗시리아의 사르곤에 정복당한 메대는
그 후, 7세기 중엽 무렵까지 앗시리아의 지배아래 있었던 듯 싶습니다.
이후 산발적인 반항을 하며 앗시리아에 저항한 메대는,
이후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뒤, 더이상 역사의 주요 무대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산(Sassan)왕조 시대의 속주 리스트 중에 메대의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메대'라는 이름 자체는 후대에도쓰인 듯합니다.
무슬림들은 고대 메대에 해당하는 지역을 `지발'(Jibal)이라 부릅니다.
바사도 Persia(페르시아)의 음역입니다.
바사의 땅은 대략 현재의 이란에 해당합니다.
바사는, 동쪽은 인더스 강에서 서쪽은 티그리스, 유브라데 강에 이르기까지의 이란 고원 지대에 위치합니다.
이 지방에는 카스피 사람(Caspians)이 원주민으로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BC 1500년 경 아리아 사람(Aryans)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란'이란 "아리아 사람의 (땅)"을 의미하죠.)
이란 고원에 침입한 아리아인 중 메대인과 바사인이 역사상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메대인은 바사인보다도 한걸음 앞서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신 바벨론과 협력하여 앗수르를 멸망시키기 위해 한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레스 Ⅱ세는 바사의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의 외가인 메대 왕가를 멸하고
마침내 바벨론까지 정복하게 되죠.(BC 539).
이사야서는 이 고레스 Ⅱ세 대왕을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사 45:1)라 부르고 있습니다.
고레스는 종교 정책에 있어서 매우 관대해서,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을 해방하기도 합니다.
피정복 백성의 종교나 법률이나 풍습을될 수 있는 대로 존중하는 유화정책은
그후부터 바사 왕의 정통으로서 계승되었으며,
바사제국이 200년 동안의 수명을 보존한 요인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레스 대왕 이후 혼란해진 바사의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고 제국의 통일을 회복시킨 것이
다리오 Ⅰ세 대왕(Darius Ⅰ, BC 522-486 재위)입니다.
다리오는 가우마다를 중심으로 반란을 꾀한 제후를 정복하고
제국을 재통일한 인물입니다.
그 경위를 적은 전승 기념비가 유명한 `베히스단 암벽의 비문'(In-scriptions ofthe Behistun Rock)입니다.
다리오 왕은 각지의 반란을 진압한 후 고레스에 의해 시작되었던 제국내의 행정 조직의 완성을 꾀합니다.
전토를 20 사트라비로 나누고 각각 방백(Satrap, 스 8:36, 에 3:12,단 3:2-3 참조)을 두고
제국내의 신민을 그 전통이나 습관을 중히 여겨 평등하게 처우하도록 유의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사드라비를 과세 단위로 하는 신세제를 마련하여
국가 재정을 확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화폐를 발행하여 국가 경제의 진흥에도 진력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국내 각지에 경제적 번영이 재래되었으며,
그에 따라 지방 경제권 사이에 유통성이 생겼습니다.
제국의 경제는 부흥했고, 곧 헬라나 지중해 연안 지방과의 교역으로도 발전했습니다.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교통도 좋아져서
수산에서 사대, 베소에 이르는 `왕의 길'은 특히 유명했습니다.
파발마(擺撥馬)의 제도도 창설되었고,
평전시를 불문하고 제국의 통일과 발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다리오는 또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 대궁전의 건축을 개시하였는데,
그 공사는 후에 세르크세스 1세(Xerxes I)가 인수하여 완성하였습니다.
그 후 아닥사스다가 증축하였기 때문에 이 전 건축은 3대에 걸친 대역사였죠.
다리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Ⅰ세(BC 486-465 재위, 스 4:6의 `아하수에로스')가 즉위하였는데,
그가 바로 살라미스 해전 등으로 유명한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입니다.
그는 후에 신하들에 의해 암살되고 맙니다.
크세르크세스 I세 암살 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닥사스다 Ⅰ세(BC 465-424 재위, 스 4:7의 왕)였습니다.
그는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제국과 화친을 꾀했고,
그 결과 동서의 문화 교류가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바사는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퇴보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바사 제국의 왕은 크세르크세스 Ⅱ세(BC424-423 재위), 다리오 Ⅱ세(BC 423-401 재위), 아닥사스다 Ⅱ세(BC404-358 재위, 스 7:1의 왕), 아닥사스다 Ⅲ세(BC 358-338 재위), 아르세스(Arses, BC 338-336 재위), 다리오 Ⅲ세(BC 336-331 재위, 느 12:22의왕)로 이어지나 왕실 내의 내홍(內訌)이 꼬리를 잇고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익수스의 싸움(BC 333)과 가우가메라 아르베라 회전(BC 331)에서 바사 제국군을 격파하고
바사 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참고적으로,
메대와 바사는 매우 가까운 민족으로,
세계사에서 때때로 서로 혼동되거나 함께 쓰이곤 합니다.
'메대-바사 제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7명의 귀족의 이름
◐ 오나테스 - 파르나스페스의 아들(아케메네스 가문의 일족), 키루스 2세의 처남, 캄비세스 2세의 외숙부
◐ 아스파티네스
◐ 고브리아스
◐ 인타프레네스
◐ 메가비조스
◐ 히다르네스
◐ 다리우스 1세 - 아르사메스의 손자,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캄비세스의 6촌동생.
아케메네스
테이스페스(Teispes, 675-640 BC) - 전자의 子
***테이스페스의 제자(諸子)들이 분봉(分封)되어 왕국을 다스렸는데, 그 중 키루스 1세가 Anshan의 군주로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함.
키루스 1세(Cyrus I, 652-600 BC) - 테이스페스의 次子, 長子는 아시리아 볼모로 죽음
아리아람네스(Ariaramnea, 620-580 BC) - 키루스 1세의 弟, 키루스 1세 & 캄비세스 1세의 공동통치자.
캄비세스 1세(Cambises I, 600-559 BC) - 키루스 1세의 子, 메디아 공주와 Mandene결혼
아르사메스(Arsames, 580-550 BC) - 아리아람네스의 子, 캄비세스 1세 & 키루스 2세의 공동통치자
***어디까지나 正統은 키루스 1세 - 캄비세스 1세에게 있었으며, 이를 보충하고 도와주는 부왕(副王)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아리아람네스 - 아르사메스 계통이다.
1. 키루스 2세(559-530 BC) - 캄비세스 2세의 子, BC 550 이후에는 단독 통치
2. 캄비세스 2세(530-521 BC) - 키루스 2세의 子
3. 스메르디스(Smerdis, 521 BC) - 캄비세스 2세의 弟(거짓)
***스메르디스는 사실 "가우마타"라는 사람으로서 아케메네스 가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가우마타는 캄비세스 2세가 살해해버린 동생 스메르디스를 참칭하여 본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스메르디스가 살해될 때 그 일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의 지배층에 불과했다. 그러기에, 아직까지 스메르디스가 생존해 있다고 믿는 군중을 이용해 정권을 차지할 수 있었고, 가우마타 자신이 스메르디스임을 참칭했다.(물론, 용모가 스메르디스와 아주 흡사했다고 전한다.) 스메르디스는 캄비세스의 이집트 원정 때 득죄하여 페르시아로 압송하여 처형케했는데, 장군 프락사스펙스가 홍해에서 살해하였다. 이집트 원정을 떠나기 전 본토의 통치는 마기승이였던 가우마타의 형에게 맡겼는데, 이 마기승 형제가 권력을 농단하게 된 것이다.
4. 다리우스 1세(521-486 BC) - 아르사메스의 孫, 캄비세스 2세의 妹弟, 再從弟
5. 크세르크세스 1세(486-465 BC) - 다리우스 1세의 子
6.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465-424 BC) - 크세르크세스 1세의 子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는 모두 이복형제들로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들이다. 이들은 부왕의 사후 왕위계승을 놓고 내전을 벌였는데, 다리우스 2세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내전 기간동안에 이집트가 분리되었다.
7. 크세르크세스 2세(424-423 BC) - 아르타크세르크세르 1세의 子
8. 소그디아누스(Sogdianus, 424-423 BC) - 크세르크세스 2세의 異母弟
9. 다리우스 2세(424-403 BC) - 소그디아누스의 異母弟
10.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403-358 BC) - 다리우스 2세의 庶子(嫡子를 제치고 즉위)
11.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358-338 BC)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子
12. 아르세스(Arses, 338-336 BC)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末子
13. 다리우스 3세(336-330 BC) - 다리우스 2세의 증손, 방계통
출처 : 헤로도투스의 <역사> + 잡다한 내 지식
페르시아(Persia)왕조: BC 648 ~ BC 330, 318년간 존속
-단위는 BC-
1. 키루스 1세(Cyrus I)
2. 캄비세스 1세(Cambyses I)
3. 키루스 2세(Cyrus II) - 키루스 대제 - 550 - 530
4. 캄비세스 2세(Cambyses II) 529 - 522 - 키루스 대제의 아들
5. 스메르디스(Smerdis) 522 - 캄비세스 2세의 아들
6. 다리우스 1세(Darius I, 대제) 521 ~ 486
7.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Xerxes I) 485 - 465 :
다리우스 대제의 아들
8.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1세 (Artaxerxes I) 465 - 424: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9. 크레르크세스 2세(Xerxes II) 424: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적자
10. 소그디아누스(Sogdianus) 424 - 423: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서자
11. 다리우스 2세 노두스(Darius II) 423 - 405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서자
12.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멤논(Artaxerxes II) 405 - 359:
다리우스 대제의 막내아들
13.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쿠스(Artaxerxes III) 359 - 338: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아들
14.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 아르세스(Artaxerxes IV) 338 - 336: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아들
15. 다리우스 3세 코도만누스(Darius III) 336 - 330:다리우스 2세의 증손자
'나의 하나님에 관하여 > 구약 핵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세르크세스 1세 (아하수에로왕) (0) | 2008.01.25 |
---|---|
캄비세스 2세 (0) | 2008.01.25 |
바이블? (0) | 2007.08.22 |
오리엔트의 신비 (0) | 2007.08.22 |
구약성경과 고대 근동 (0) | 2007.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