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에 관해/심리학 이야기

[스크랩] 에릭슨의 사회심리발달이론

에릭슨의 사회심리발달이론

박 노권

에릭슨의 사회심리 발달이론은 서구 심리학에서 폭넓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이미 한국 교육현장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청소년 문제나 조기 교육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어김없이 그의 이론이 등장한다. 또한 교회의 신앙교육에 있어서도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있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은 신앙교육에서 중요한 인간이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1. 에릭슨의 8단계 이론

1) 배경

에릭슨은 190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덴마크계와 유태계인 사이에 태어났고 그후 부모의 재혼에 따라 유태계에서 생활하며 생소한 외모 때문에 이방인(비유태인)으로서 취급받았다. 미술과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였고, 20대 중반에는 비엔나에서 시작된 특수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미술과 사회분야의 과목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안나 프로이드에게 교육분석 및 기타 훈련을 받았고, 아동 정신분석 분야에서 자격증도 얻었다. 27세에 결혼한 그는 1933년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정책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보스톤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사회 역사적 변동과 문화 인종적 정체감 혼란이 후일 그로 하여금 정체감 상실 위기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밑바탕 경험이 되었다. 보스톤에서 아동정신분석을 연구하던 그는 1936년 예일 대학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하였고, 2년후 사우스 다코타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삭스족과 함께 살면서 연구활동을 계속하였다. 그후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여 아동의 놀이요법연구와 유로크 인디언 어족에 관한 문화 인류학적 연구를 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에릭슨은 프로이드의 5단계의 성심리 발달이론을 바탕으로 8단계의 사회심리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비록 프로이드의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프로이드와 그 관심을 달리한다. 먼저 그의 주요 관심은 건강한 인격의 발달에 있다. 프로이드가 주로 정신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에릭슨은 건강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에릭슨은 프로이드의 원본능(id)보다는 자아(ego)에 주된 관심을 갖는다.

프로이드에 있어서 원본능은 천성적인 구조로서 이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심리적인 에너지(libido)를 포함하고 있는 인격의 일부이다. 이 리비도는 생물적인 요구에 따라서 기능 하는데, 타고난 발달 시간표에 따라서 처음에는 입, 다음에는 항문, 그 다음에는 생식기와 같은 순서로 몸의 위치를 바꾸며, 쾌락의 원칙을 따라서 기능 한다.

따라서 에릭슨이 자아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인격이 성장함에 있어서 자아의 환경, 즉 사회와의 관계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인격은 프로이드의 주장과 같이 생물학적으로 기초된 성심리 발달(psycho-sexual development)보다는 일평생을 통한 환경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갖는 자아를 통해 인격을 형성한다는 것이 에릭슨의 주장이다. 물론 에릭슨이 프로이드의 입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인격의 형성은 일평생을 통해서 계속 형성되며 비록 어릴 적에 치명적인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훗날 좋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면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 사회심리발달이론의 특징

에릭슨의 발달이론(다른 말로, 생애주기이론)은 몇 가지 단계를 걸쳐서 확정되었다. 그의 생애주기이론은 1950년에 발간된 Childhood and Society(아동기와 사회)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여덟 시기"(Eight Ages of Man)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인간에 대한 이 여덟 가지 사회심리적 발달단계는 그로 하여금 인간발달에 대한 이론가로서의 관심을 끌게 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이 이론을 이용해서 1958년 루터의 젊은 날을 분석했고, 그후에 간디에 대한 연구를 했다.

에릭슨은 루터와 간디에 대한 연구에서 역동적인 종교의 지도자들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갈등은 그들 세대의 중심적인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갈등에 대한 그들의 해결 방식이 그들 문화 내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제공하는 보편적인 원리가 되며, 때문에 이러한 영적 지도자는 "그 시대의 갈등으로부터 그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정체감을 창조하는 문화의 작용자"가 된다고 보았다.

1959년에는 이 이론을 "건강한 인간성격"을 논의하는 데다 활용했고, 1964년에는 Insight and Responsibility(통찰력과 책임)이라는 책에서, 인간발달단계에 있어서 윤리에 대한 관심을 명백히 보여주며, 덕목의 스케쥴을 제시한다. 1968년의 Youth: Identity and Crisis(젊은이: 정체성과 위기)에서 에릭슨은 정체성 형성의 역동성과 부정적인 정체성 형성 안에 표현된 젊은이의 소외에 대하여 탐구한다. 여기에서 그는 불안정한 다수는 소수(유대인, 흑인, 여성등)에게 그들 자신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심리 안에 억압되고 거부된 성질을 투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77년에는 다시 이 발달이론을 인간의 경험과 단계적 의례화(ritualization)의 문제와 연결시켰다.

이렇게 발전해온 에릭슨의 인간발달이론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있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도날드 캡스는 에릭슨 이론의 사회심리적 8단계의 특징이 '단계에 기초한 이론', '순환적 과정', '양극적 단계', '후성설적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필자는 쒜스의 주장을 중심으로 그의 이론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단계에 근거한 이론(A Stage-based Theory)

이것은 인간 발달이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Mature

Adulthood








통합:절망과 혐오

Adulthood







생산성:

정체


Young

Adulthood






친밀감:

소외



Adolescence





정체성:정체성혼란




School age




근면:

열등감





Play age



주도성:

죄책감






Early

Childhood

자율성: 수치,의심







Infancy

기본적 신뢰: 불신









위의 그림은 인간이 연대기적 순서로 올라간다는 여덟 단계의 발달을 나타낸다. 한 단계가 성공적이면 다음 단계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 단계들은 시기별로 나누어졌지만, 반드시 심리학적으로도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특별한 단계가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유별나게 강한 영향력을 구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첫 단계에서 신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동안 이 문제에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역시 과거의 단계를 재경험할 수 있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청소년기에 신뢰, 자율, 주도성, 그리고 근면에 대한 새로운 기초를 발견하기 위하여 과거의 단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각 단계들은 상호의존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양극의 단계(Bipolar Stages)

그의 이론의 각 발달단계는 두 개의 극--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 에릭슨은 긍정적인 극을 '힘', 그리고 부정적인 극을 '약함'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건전한 건강은 긍정적인 힘을 완전히 획득하고 부정적인 약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사이의 비율이다. 만일 철저히 신뢰만 하고 불신이 전혀 없는 사람은 위험과 적대적인 요소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심리적 힘은 부정적인 극에 대한 긍정적인 극의 우세를 요구하지만, 부정적인 극은 인생에 있어서 어떤 깊이나 복잡성을 더해주는 면도 있다고 본다.

3) 순환적 과정(A Cyclical Process)

에릭슨은 첫 번째와 마지막 단계에서의 긍정적인 '극'(polar)인 '신뢰'와 '통합'사이의 어의적 유사성을 언급한다. 즉, 어떤 의미에서, 발달과정은 그것이 (신뢰로)시작하는 곳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 삶보다는 세대의 순환에 초점을 맞춘다. 즉 각 세대는 지나간 세대와 그리고 계속되는 세대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수레바퀴가 둥글게 구르면서 또한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4) 후성설적 기반(Epigenetic Ground Plan)

에릭슨은 인간 내면의 고상함(the high)과 저급함(the low)은, 성숙함이 유아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듯이, 함께 존재한다고 본다. 이런 그의 윤리적 관점은 후성설적 원리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이것은 생물학의 후성설적 원리 개념을 빌려온 것이다.

이 후성설적 원리는 "성장하는 것은 기반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서부터 지체가 자라나는데, 모든 지체는 그것들이 온전히 기능을 하도록 성장할 때까지, 각 지체가 특별한 우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때 각 단계는 체계적으로 다른 모든 단계들과 연관되어 있는데, 전 단계의 적절한 발달에 다음 단계가 의존하고 있으며, 각 단계는 결정적이고 위기의 순간이 정상적으로 오기 전에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구웬 홀리(Gwen Hawley)는 어떤 단계의 갈등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으며, 단계의 진전은 속도와 강도에 있어서 다양하다고 말한다.

5) 과거와 현재의 조화

정신분석계통 심리학은 성인 인격의 형성에 있어서 오디프스 콤플렉스 시기(4-5세) 이전 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때문에, 청소년기, 젊은이, 성인들의 문제를 너무 초기 아동기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앞을 향해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과거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니버나 키에르케고르의 실존론적 불안 즉 과거뿐 아니라, 부모, 특별한 상실, 사고, 재정적 압박, 유한성에서 오는 불안 등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에릭슨의 이론은 여기에서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데, 과거의 문제 뿐 아니라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 예를 들어 핵가족 갈등, 외적환경의 영향등이 인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3. 사회심리발달 8단계

에릭슨은 생애주기 발달과정을 8단계로 나누고 있다. 여기에서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심리적 갈등과 각 단계들의 긍정적인 모습인 덕목(virtue)을 소개하며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덕목에 대비하여 쒜스(Donald Capps)가 그의 책 Life Cycle Theory and Pastoral Care(생애주기 이론과 목회적 돌봄)에서 제시하는 악덕목(Vice)을 함께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사회심리갈등

시 기

덕 목

악덕목

영향주는

관계

사회심리적양태

기본적 신뢰:

불신

유아기(1년)

희망(Hope)

탐식

(Gluttony)

어머니

얻으려함

(getting)

자율성:

수치와 의심

전기아동기

(2-3년)

의지(Will)

분노

(Anger)

부모

잡고holding on

보냄letting go

주도성:

죄책감

놀이기(4-5)

목표(Purpose)

탐욕

(Greed)

가족

추구go after

things, 오디프스

근면:

열등감

학령기(6-11)

능력

(Competence)

시기

(Envy)

학교

만듦

(making things)

정체성:

정체성혼란

청소년기

(12-20)

충실(Fidelity)

자만심

(Pride)

동료그룹

자신이 됨

(being oneself)

친밀감:

소외

초기성인기

(21-34)

사랑(Love)

정욕

(Lust)

결혼상대자,

친구들

자아상실(남과나눔Losing oneself

생산성:

침체

성인기

(35-60)

돌봄(Care)

무관심

(Indifference)

자녀,젊은이

돌봄

(taking care of)

통합: 절망과 혐오감

노인기

(60- )

지혜(Wisdom)

우울

(Melancholy)

살아있는

전통

to be, through

having been

1) 기본적 신뢰 대 기본적 불신(Basic Trust vs. Basic Mistrust)

이 단계는 출생후 1년동안의 시기로서 구강적-감각적 단계이다. 프로이드는 이 시기의 구강적 측면만 강조했으나 에릭슨이 감각적 단계를 추가했다. 이 시기의 삶의 첫 과제는 신뢰와 불신의 위기를 다루는 것이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는 돌보는 사람(특별히 어머니)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이때 돌보는 사람의 행동에서 일관성과 예측성, 그리고 의존성을 발견하게 되면, 어린이는 부모에 대한 기본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만약 아기가 수용적이고 따뜻한 대접을 받게되면 신뢰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이 신뢰의 결과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개방적 자세, 삶에 대한 긍정적 관점, 자신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긍심을 배우고 얻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 위기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나 자신, 또는 세상을 신뢰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신뢰와 불신은 어머니와 유아가 접촉하는 시간보다는 관계의 질에 의존한다.

에릭슨이 이 시기를 인생의 초기단계 중 가장 비중 있게 취급했던 이유는 발달 특성으로서의 기본적 신뢰감이 인생 후기에서 갖게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물과 대인적 신뢰감이 결손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의자에 안심하고 앉는다든지 사람을 처음 사귀거나 같이 자리에 동석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감의 중요성과 함께 상대적 불신감 또한 전혀 쓸모 없는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에릭슨은 어느 정도의 불신감이 충실한 성숙함을 만들어내는 필요 요건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 두 요소 사이의 균형 중 신뢰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세해야만 정상적인 발달이 된다.

쒜스가 제시하는 이때 나타나는 악덕목 탐식(gluttony)은 포식하기 위해 지나치고도 물릴 줄 모르는 욕망으로, 지나친 과식이나 과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일중독, 알콜중독 등은 여기에서 연유된다고 한다. 이것은 유아 시절 젖을 먹는 과정에서 갑자기 이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이 두려움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유아들은 지금 필요한 것 이상으로 먹으려 한다.

사실 유아들은 잘 먹었을 때 행복을 느끼고, 배고플 때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그들이 취하는 것들과 행복을 연관시킨다. 이때 탐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먹는 것으로, 무차별적인 신뢰를 갖는다. 이것은 탐식과 중독이 긴밀히 관계되어 있음을 잘 설명해 준다.

이 탐식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희망이다. 우리가 진실한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지금 여기서 과도하게 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희망적인 사람은 세상을 대하는데 무조건적인 신뢰가 아니라 구별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건전한 불신을 구사할 수 있다.

2) 자율성 대 수치심 및 의심(Autonomy vs. Shame and Doubt)

2-3세의 초기 아동기로,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항문 근육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근육들도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두 발로 일어나 걷기 시작하는 이때는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어떤 물건을 잡거나 놓거나 던지기도 한다. 특히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자율성에 대한 표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내가 할꺼야" "안해"라는 말을 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하려고 한다. 이때 이들은 서로 상충되는 감정--협력하고자함과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함, 유순함과 공격성, 복종과 고집--속에서 투쟁하게 된다.

이때 수치는 다른 사람이 그의 행동을 인정치 않을 때 생기는 경험으로 예를 들면, 배변과정에서 자기 통제의 상실감, 보행시도중 근육의 무능감, 자기주장에 대한 과잉 통제 등의 자율성 확보의 과제 해결이 실패하게 되면 수치를 느끼게 된다. 이때 수치심을 너무 많이 느끼는 어린이는 수치심을 주는 자들에 대하여 커다란 내적 분노나 반항을 일으키게 된다. 의심은 지나친 자기-통제에서 나타나는데, 타인과의 상호행동에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대신에 미리 이런 만남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 의해 거부됨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율성이 결여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유아발달에는 사회적인 기대나 압력과 자신의 의지 사이에서의 조절과 적응력이 발달 특성을 결정짓게 된다. 사실 유아에게 있어서 통제와 조절의 가능성은 심리적인 노력이나 능력에 달려 있다기 보다는 신체적 능력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교사와 보호자에게 있어서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유아의 신체적 발달, 즉 '준비된 성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압적이거나 무리한 배변, 보행, 식사, 언어 훈련은 실패에 따른 부정적 발달특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유아와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강요하거나 전문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보모나 교사에 의한 집단 탁아 등은 위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기 쉬운 조건들이 된다.

쒜스가 말하는 이 시기의 악덕목인 분노는 여러 형태를 띤다: 신체적 남용(때리기, 상처입히기), 언어적 남용(소리지르기, 모욕주기, 신랄한 빈정거림), 그리고 자신에 대한 남용(자신을 차는 것). 이런 태도는 일반적으로 상처 입은 자아에 대한 공격적인 방어이다. 분노(가게 하는 것"letting go")는 상처 주는 상대방에게 나는 더 이상 상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가게 하는 것보다 분노를 침묵으로 잡아두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너무 많은 수치심을 주는 부모에 대해 비밀스런 분노를 간직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것이 폭발하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에서 "이러는 것에 대해 나는 너를 미워한다"로 바뀐다. 그러나 예수가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에게 보여준 격렬한 분노도 과연 악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절제를 통한 분노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는 없는 것이다.

이때 덕목인 의지는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통제되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보이는 반응은 자존심을 빼앗기지 않고 우리의 상처난 자아를 회복시키는 올바른 방어이다.

3) 주도성 대 죄책감(Initiative vs. Guilt)

대략 4-5세의 어린이 시기로, 자신과 타인의 성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성인의 역할을 상상하고 한쪽 부모와 경쟁관계를 느끼게 된다는 프로이드의 오디프스 컴플렉스의 시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의 특징은 능동적이며 운동적으로 되기 위해 어떤 일을 만들어 나가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언어나 행동에 있어 공격적인데, 남자아이의 경우는 남근적-공격적(phallic-intrusive)이며,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물건을 낚아채서 꼭 잡거나 사랑스럽거나 매력적인 태도를 통해서 자신의 성적 내지는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려고 한다.

이 단계의 어린이는 인간관계가 부모와 더불어 다른 식구들에게까지 확대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자신의 호기심이나 공격적 행위를 적절하게 제한하지 못하면 범법자 취급을 받게 되는데, 이때 죄책감이 생기게 된다. 주도성이 너무 지나치게 될 때 이것은 다른 사람들, 특히 부모나 형제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느끼고 공격적이거나 적대적이 됨으로, 여기에서 죄책감이 생기는 것이다. 즉, 이들은 부모로부터의 전적인 연합에서 벗어나 스스로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도성과 여기에서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죄책감사이의 갈등을 겪는 것이다.

이때 쒜스가 말하는 악덕목인 탐욕에는 한계가 없다. 이것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 이상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이때 어린이는 한계가 없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그러나 보통 부모의 반응은 "거기에 가지 마라" "들지 마라. 너는 그것을 깨뜨릴거야" "어른이 말하는데, 방해하지 마라" 등이다. 그러므로 주도성이 발달되는 이 단계에 있어서 어린이는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한 영역을 설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제한을 벗어날 때 그들은 잘못을 했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때 덕목은 목적이다. 이것은 "가치 있는 목적을 직시하고 추구할 수 있는 용기"로 한계를 모르는 탐욕을 깨뜨리게 해준다. 이것은 어떤 한계 내에서 목표를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남을 짓밟거나 남의 재산이나 안녕을 파괴하지 않는다. 탐욕이 "나는 그것을 가져야겠어. 나에게 줘"라고 한다면, 목적은 "흥미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이지?"라고 접근을 한다.

4) 근면성 대 열등감(Industry vs. Inferiority)

이 단계는 초등학교 시기로, 성적 충동이 잠복기로 들어가며, 인간관계도 가족에서 학교라는 사회로 넓어진다. 이제는 사회에 의하여 성인과 같은 기능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술을 습득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요구를 받는다. 따라서 근면이란, 학업을 시작하면서 작업의 원칙을 익히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며, 이런 과정에서 쾌락이나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을 얻는다. 더 이상 노는 것만을 즐기는 어린이가 아니라 무엇을 만듦으로서 인정을 받고 스스로도 뭔가 생산적이라는 느낌을 갖기를 원한다. 이런 사회적인 수단들을 다루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은 건강한 자기 평가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학습결과나 도구를 다루는 기술이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져서 바람직한 결과를 나타내지 못할 때 열등감이 생긴다. 열등감은 동료들 사이에서 사회적 신분이 낮아진 것을 의미하며 교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처지를 의미한다. 만일 이런 단계에서 갈등이나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적절하지 못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경쟁이 저지되었다면 열등감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유능한 형제들에 비해 자신의 능력이 뒤떨어졌다고 느끼는 경우에도 열등감은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때 쒜스가 말하는 악덕목인 부러워함(envy)이란 그것이 물질적 소유가 되었든 개인적 자질이나 능력이 되었든, 남이 가진 것에 대해 소유를 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바램이나 욕망이다. 학생들은 나의 기술과 남의 기술을 비교하는데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늘 뛰어난 소수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부러워함은 아이들로 하여금 종종 인생이 불공정하다는 강한 느낌을 갖게 한다: "왜 그 아이는 스마트하고 나는 이렇게 바보 같지?" 그래서 때로 이 부러워함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도 한다: "그 아이가 시험에 떨어졌으면 좋겠어"

부러워함은 무능력의 감정을 만들기에 이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에 반대되는 덕목은 능력(competence)이다. 능력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주며 타인에 의해 위협을 당하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정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5) 정체성 대 정체성 혼란(Identity vs. Identity Confusion)

이 단계는 청소년기에 해당되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된다. 생리적인 변화와 성기관의 성숙, 그리고 피아제가 말하는 인지의 발달이 일어남으로 여러 가지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어린이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도전 받으면서 질적으로 다른 자기 이해가 생겨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새로이 생겨난 감정들과 능력에 의해 발생한 기본적 질문임과 동시에 사회에 의해 주어지는 질문이다. 이때 정체성이란 "일관성 있는 자아"가 되는 의식이다.

청소년기는 아동기와는 달리 자신 속에 여러 다양한 자아들이 내재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또한 다양한 그룹으로부터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는데, 이때 자신의 일관성이 없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려면 이들을 잘 선별해서 자신의 내면성과 일관성을 이룰 수 있는 잠재적인 요소들을 선택해야한다. 이때 선택되지 않은 자아들은 거절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우리의 부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물론 이것은 도덕적 의미에서 나쁜 정체성은 아니고, 우리 자신이 될 수 없다고 우리가 부정해버린 정체성이다. 비록 이런 거절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나 자신의 의식을 갖는 경험은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고, 처음으로 살아 생동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의 나의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다소 경멸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때로 이런 생동감은 황홀경의 경험을 갖게도 한다. 여기에서 에릭슨은 일관성 있는 자아가 되는 것에 대한 인식과 인식의 궁극적인 근거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 사이에 중요한 연결을 시도한다. 에릭슨에 따르면, 모세가 하나님에게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물어봤을 때 하나님의 대답이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I am that I am)이라고 대답하는데, 이것은 "Who am I?"(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는 우리가 "I am that I am"(나는 나다 곧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라고 대답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궁극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내가 나 되는데 실패하게 되면 정체성이나 역할의 혼란이 오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영웅이나 인기 탤런트에게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화시킴으로 야기되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사랑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그 상처로부터 혼란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사하면서 쉽게 사랑에 빠짐으로써 진실한 사랑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에릭슨은 청소년기 심리학적 문제들에 대한 연구에서 정체성 혼란의 본질에 대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체성 혼란은 어떤 경우에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청소년기의 정상적인 위기라고 그는 말한다. 정체성 혼란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전 단계에서의 발달적 어려움이다. 에릭슨의 오디프스 이전 발달단계--신뢰와 불신, 자율과 수치--는 관계대상 심리이론들과 같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데, 관계대상 이론의 심리학자인 클라인, 위니코트 등도 자아가 건강하고 굳건하고 응집력 있는 정체성의 발달을 갖기 위해서는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전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그러나 에릭슨은 더 나아가서 또 다른 요인들을 인식한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 매우 분화되고 자동화된 사회에서 사는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혼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압력을 주는 성, 직업, 정치, 이념 등의 복잡한 문제들 등의 사회적 요인들이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한다.

쒜스가 말하는 이 시기의 악덕목인 교만은 기만, 자만심, 그리고 자기만족의 형태를 갖는다. 이것은 특히 의상이나 신체적 매력에 대한 뽐냄을 말하며, 전통적으로 허무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교만은 지나친 자기 존중, 자기 중심, 자아에 대한 터무니없는 심취, 때론 종교적 우월성으로 나타난다. 청소년기에 이것이 잘 나타나는 이유는 이때가 자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청소년기는 교만과 정당한 자아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자아 정체성은 일관성이 있는 통합적인 자아이지 결코 과장된 자아가 아니다.

이에 반대되는 덕목은 충실(fidelity)이다. 교만은 단지 자신에 대한 충성이지만, 충실은 타인에게 진실됨으로써 자신에게도 진실해지는 것이다. 신앙적으로도 '나 중심'에서 '하나님 안에서 중심적인 자아'로 전환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나 중심'인 교만은 신앙에 대한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는 남성적 혹은 여성적 자아정체의 발달에 대해 좀 더 논해보고자 한다. 과연 남자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공격적이고 용감하고, 여자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온순하고 수동적인가? 이것은 본능이냐 사회적요인에 의한 영향이냐라는 논쟁을 가져왔는데, 이 논쟁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미국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떻게 다른 것이 이상적인가 하는 질문을 했었는데, 40%는 남녀간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대답한 반면에 60%는 그 차이에 대하여 거의 공통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즉 남자아이는 공격성, 지배성, 자율성, 자기과시성, 성취성 및 이성에 대한 관심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여자아이는 질서, 봉사, 순종, 양육, 및 겸손 등의 소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어른들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와 같은 생각이나 태도를 가지고 키우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도 전통적인 남성 혹은 여성 역할을 하게되는 것일까? 어쨌든 에머리히(W. Emmerich)는 남성 혹은 여성 역할에 대한 자아정체가 형성되는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일(경험)들이 아동기에서 사춘기 사이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고는 말한다.

첫째는 또래(동성) 친구들과의 밀접한 관계로서, 이것을 통하여 아동들은 또래들과 친해지는 방법과 재미를 경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나이의 남자 혹은 여자아이가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보고 배우게 된다. 사실 이때의 경험과 학습들이 사춘기에 들어가서 동성 및 이성 친구들과 사귀는데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두 번째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사춘기 초기에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성적 성숙)로서, 이것은 남성적 혹은 여성적 자아정체와 어떻게 통합시키는가 하는 과제를 갖는다. 사람의 신체적 자아상이 심리적 자아개념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신체적 자아상에 대한 관심이 사춘기만큼 예민할 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거울을 자주 보게 되고, 이차적 성특징(수염이나 유방의 발육등)에 신경을 쓰며,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생겼나에 관심이 많아진다.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춘기 초기에 형성된 신체상이 성인기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체형이 바뀌더라도 사춘기에 형성된 자기 신체에 대한 심리적 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자기 신체에 대한 반응은 그의 신체상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또 그의 심리적 자아상 형성에 영향을 주고, 그의 대인 관계 양상을 비롯한 제반 성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남들이 나를 매력적이라고 보는가, 예쁘다고 하는가, 아니면 재수 없게 생겼다고 보는 것 같은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견해 그 자체보다도 남들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자기가 생각(지각)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부모 혹은 형제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 사람을 어떻게 보아주었는가 하는 것 등이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흔히 사춘기의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근거 없는 열등감을 느끼며,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기 쉽고, 심할 경우 우울증이나 피해망상과 같은 병적 현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열등한 부위가 있다고 하여 반드시 심리적 자아개념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신체적으로 잘 생겼다고 해서 부정적 자아개념이 결코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며, 이 '생각'을 올바르게 가지고 있는 한 어떤 신체적 열등 조건이 있다 하더라고 부정적 자아개념으로 인한 비극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라는 것도 학습(경험적으로 획득되었다는 뜻임)된 것이며, 불변의 고정화된 개념이 아니라 노력을 통하여 수정 또는 변화가 가능한 인식의 소산이다.

세 번째로 성적 역할과 관련된 자아정체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으로는 사춘기의 내분비(호르몬)변화와 이로 인한 성적 충동의 증가 및 생식 능력의 발달이다. 특히 남성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차이가 남성적 혹은 여성적 특징과 관계가 있다. 이 호르몬의 분비가 많을 때 남자에게는 공격성이 증가하고, 여자에게는 독립심과 성취욕구가 강하게 나타난다. 남자이면서 성격이 여자 같고 수염도 잘 나지 않는다거나, 여자이면서 억세고 비관습적이며 몸에 털이 많이 난다거나 하는 경우도 이 호르몬의 영향이 많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남성적 혹은 여성적 성격의 형성이 반드시 학습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녀 자아정체 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사회적 및 문화적 기대이다. 남자라면 일정한 직업이 있어야 하고 가정을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경쟁사회에서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여자라면 충실한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있고 살림을 잘하며 대인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사교성(애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혹은 문화적 기대가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잘 맞을 때에는 특별한 갈등이 생기지 않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때로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가족, 친구, 이웃 사람들, 선생,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등이 이와 같은 사회적 기대의 제공자들이며, 실제로 개인의 자아정체란 결국 이들의 가치관이나 기대를 내향화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경험들을 통해 남성적 혹은 여성적 정체성을 청소년기에 형성한다고 본다. 이는 에릭슨이 말한 것처럼 과거 뿐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6) 친밀감 대 소외(Intimacy vs. Isolation)

이 단계 이후로 에릭슨은 프로이드의 이론을 넘어서서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하고 있다.

사춘기가 끝나면 초기 성인기에 접어드는데, 이 시기는 바로 그 사람의 인생 모습(life style)이 결정되는 때이다. 인생 모습이란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친구를 가까이 사귀며, 어떤 직업,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서 노동과 여가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려 하는가, 또한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여 어떤 형태의 가정 생활을 영위하는가 등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여태까지 키워온 자아정체를 기초로 가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때이다. 이 같은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심리적 조건은 바로 친밀감이다.

친밀감이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솔직해지고, 그를 위하고 싶어지고, 좋아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애정과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감을 느낀다. 친밀한 관계에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서로 함께 변화해갈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친밀감을 통하여 서로 애정적 그리고 지적 자극을 주고받음으로써 더욱 행복해짐을 느낀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친밀감이란 올바른 자아정체가 형성된 다음에라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친밀한 관계 형성은 각자가 자신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을 통하여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친밀감의 능력과 더불어 성숙된 남성적 혹은 여성적 자아정체라는 심리적 속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이혼이 점점 증가하고 부부 폭력도 증가하며,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는 부부가 매우 많은 것으로 보고된다. 이것은 위에 말한 것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결혼 자체가 친밀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결혼이라는 것은 가족을 떠나 완전히 남남끼리 만나서 함께 살게 되는 친밀한 관계 형성으로서 초기 성인기의 대표적인 한 과제이며, 성인기에 들어서면서 친밀감이 형성되는 또 하나의 장은 직장생활이다. 직장에서 직원들 사이에 친밀한 유대와 우정이 생기며, 상사나 선배를 섬길 줄 알게 되고, 공식적 및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하여 집단에 대한 동일시와 애정이 담긴 동료애가 형성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대인관계에서 친밀감의 강도가 덜하다는 결과가 보고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대인관계 기술이 부족하고, 자기 개방을 덜한다. 여자들은 동성애간이나 이성간에나 모두 친밀감을 잘 나타내는 반면에, 남자들은 주로 이성관계에서만 친밀감을 나타내고 동성간에는 충분히 발휘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소외감은 자신의 자아가 상실되거나 타인의 자아가 위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접촉을 두려워함으로써 생긴다. 이 단계에서 개방성과 상호성이 없다면 자연히 닫힌 정체성에 의한 소외감이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쒜스가 말하는 악덕목인 정욕은 통제되지 않은 욕망으로, 성적 욕망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적대적인 경향을 띠게 되는데, 여기에는 상대방 안에서 자신을 잃고자 하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친밀감의 행동이 아니다. 비록 친밀감으로 위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심각하게 소외시키는 행동이다. 이것은 성욕에서 두드러지고 권력욕, 명예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나눔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만남을 방해하는 모든 장벽을 허물 수 있고, 이 사랑 안에서 더 이상 과거의 나가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7) 생산성 대 침체(Generativity vs. Stagnation)

이 시기는 성인기로써, 이전까지의 단계가 자아정립을 위한 준비 단계였다면 이 단계는 정립된 자아를 통해서 이웃과 세계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실천하는 단계이다. 생산성의 우선적인 관심은 자녀를 생산하고 잘 가르쳐서 다음 세대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게 후성설적인 톱니바퀴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계획이나 목표를 성취하는데서 벗어나 이웃과 세계,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까지도 사랑을 가지고 돌보려는 성숙한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스스로의 결함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다음 세대를 잘 양육하거나 교육하지 못해서 생산적인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지나치게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인간과 세계에 대해 신뢰가 없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측면이 곧 침체성으로 나타난다. 침체성은 사람들을 돌보거나 양육하려는 동기와 열정이 결핍돼서 형식적으로만 이런 책임을 감당하려고 한다. 자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고만 하지 다음 세대를 위한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할 때 부모는 침체성에 빠진 사람들이다.

인본주의 심리학(마슬로, 로저스, 펄스)에서 말하는 건강한 자아의 모습이란 인간의 기본적이고 자연적인 관심인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에릭슨이 말하는 생산성의 개념은 인본주의 심리학이 말하는 단순한 건강이론을 넘어서고 있다. 이에 대해 시카고 대학 신학부의 브라우닝은 에릭슨의 이론이 더욱 심오함을 세 가지를 가지고 주장한다. 첫째로, 이것은 계속되는 세대에 생식적인 문제뿐 아니라 폭넓은 돌봄에 관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단지 자신의 아이들 뿐아니라 다음세대에 대한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것은 상호성의 원리와 양립하기 때문이다. 에릭슨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진실로 가치 있는 행동은 그것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서 상호성을 고양한다. 이 상호성은 다른 사람을 강화시키는 만큼 또한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을 강화시킨다."라고 재구성한다. 이러한 에릭슨의 상호성(mutuality)이론(또는 동등한 배려)은 '세대에 기초한 이론'위에 세워졌다.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어른들은 또한 자신 안에 있는 필요들을 채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아들이 어른들의 따뜻하고 인정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어른들도 유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유아가 음식물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어머니는 젖을 빠는 아이들로부터 기쁨을 얻는다. 또한 아이들을 돌보는 바로 그 행위 안에서 부모들은 그들 자신의 "가르치는 본능"(teaching instinct)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셋째로, 에릭슨은 Gandhi's Truth라는 책에서, 생산성의 이론을 확장하고, 자기 희생을 포함하는 것으로 황금률을 재해석하는데, "진실한 행동은...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을 준비에 의해 지배된다. 이것은 비폭력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이다." 즉, 상처를 받을 준비 다시 말해 자기 희생에 대한 자리를 그의 이론 안에 넣고 있다. "상처를 입음"(getting hurt)은 분명히 상호성을 넘어가는 것이다. 비폭력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더 정당하고 상호적인 행동을 가질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이 고통받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한 상호성과 정의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전략으로, 그런 사람은 기꺼이 비폭력적 행동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에릭슨의 이론은 인본주의 심리학이 말하는 자연적 본능에 기초한 정신적 건강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브라우닝은 에릭슨의 이러한 돌봄의 개념을 논하면서, 에릭슨의 성인기(중년)의 성숙성의 에너지는 단지 중년이라는 단계에만 머무르는 성장의 단계와 목표가 아니라, 인간 삶의 전 영역에 적용되어야 할 삶의 에너지이며 인간의 종교적이며 또한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심리학적 이유를 제공해주는 핵심적 원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시기의 악덕목인 무관심은 의지의 상실과 싫증냄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정서와 영혼이 인생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에 의해서 압도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저항해야할 다른 악덕목들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며, 남을 돌보지 않는 행위이다. 무관심은 "나는 정말 관심없다. 나는 돌보야하지만, 나는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인생 중반에 이른 사람들은 이제까지 많은 것을 경험해 왔는데, 앞으로도 똑같은 일만 계속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불의나 침체된 결혼,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한 다른 이의 공격 등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적 삶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내적으로 심오한 공허감을 가질 수 있다.

무관심을 깨뜨리는 돌봄은 성인이 책임져야할 젊은이들에게 희망, 의지, 목적, 능력, 충실, 그리고 사랑을 가르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돌봄은 아이들이 그들의 덕목을 발달시키도록 하게 하는 성인의 덕목이다. 덕목들은 밖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만들어지는 내재적 힘이다.

8) 자아통합 대 절망감 및 혐오감(Integrity vs. Despair and Disgust)

노년기에 속한 단계로, 이 단계는 인간의 모든 갈등이 조화롭게 통일되며 성숙한 경지에 도달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첫째로, 자신의 삶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삶을 만족과 감사로 받아들이며,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고 죽음으로 끝나는 생애주기를 초월하려는 궁극적 관심까지도 갖게 한다.

둘째로, 세대와 세대간의 계속성에 참여하는 일이다. 전 단계의 생산성이 타자에 대한 돌봄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자아통합은 이전 세대와 동지의식을 갖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위해 시공을 달리해서 몸바쳐 일한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유년기의 순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젊은 날의 자만심이나 방어벽이 성숙함으로 흡수되어 거짓이나 위선이 '노숙한 순진성'(senile childishness)으로 순화되는 것이다. 이런 특징으로부터 지혜가 터져 나오고 만인을 공감케 하는 기지가 넘쳐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런 통합과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타나는 대극이 혐오감이나 절망감이다. 자신을 향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하거나 염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고, 타인을 향해서는 아무리 값진 일을 해낸 인물이라도 경멸하려 든다. 이것은 자신의 후회스러운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려는 것이다. 노인층이 차지하는 인구비례수가 낮았던 과거에는 노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장수는 큰 축복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노인인구의 비례가 높고 장수가 보편화되어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노인들의 혐오감이나 절망감은 늘어갈 요소가 많다. 이 단계는 자신의 삶을 보람있게 평가할 수가 없어서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면 자신을 혐오하거나 절망감으로 보복하는 시기이다.

이때 나타나는 악덕목인 우울은 종종 고독과 거부로 인해 오는 세상에 대한 싫증이다. 이것은 절망이라는 이름 하에 나타나는 여러 감정들에서 보여지는데, 슬픔, 의기소침, 불평, 자기경멸, 타인경멸 등을 들 수 있다. 우울은 잃어버린 대상에 대하여 감정 부여를 하지 않음으로 생겨난다. 프로이드가 제시했던 것처럼, 잃어버린 대상에 대해 감정부여를 하지 않을 때, 그것은 분노나 원망으로 바뀌어진다.

우리가 이전에 관심과 정열을 갖고 투자했던 세계(사람들과 모든 사물들)가 이제는 혐오스럽게 취급된다. 우울의 적대적인 형태에서, 우리는 상실한 대상에 대해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상실에 대해 방어를 하게 된다.

이러한 우울을 깰 수 있는 덕목은 지혜이다. 지혜는 "죽음의 면전에서 삶에 대한 초연한 관심"이다. 지혜에도 욕망이 있을 수 있으나, 이전의 욕망의 대상을 이제는 멀리서 사랑할 수 있는 것으로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해 돌아서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대해 포기하는 것이다. 지혜는 우울증의 슬픔을 알지만, 슬픔의 대상에 대해 방어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