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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교외에서 열린 어느 중국인 커플의 결혼식 정경
中한인사회의 꽌시에 대한 집착과 위험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중국인들 대상으로만 꽌시를 맺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들끼리의 꽌시에 대한 욕구도 못 말린다. 중국 교민사회의 덩치가 커지다 보니 왕징 중심의 교민경제가 또한 커졌다. 많은 사업의 주고객이 중국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이다 보니 교민 경제가 교민들끼리 상호의존적인 구조가 되어 버렸다. 동업도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교민들끼리의 꽌시를 맺으려는 노력도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기회가 닿으면 학연, 지연, 업종 뭐든 껀수를 통해서 ‘엮으려’ 한다. 돌이켜보라. 한국에서 살다 보면 특별한 사교모임 혹은 사업상의 신규 거래처가 아닌 바에는 전혀 새로운 인물의 자신의 인간관계에 신규 진입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교민사회에서는 좀 괜찮고 ‘든든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어디든지 달려 나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수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사업차 누가 왔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끼고 싶어한다. 돈 좀 많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두말 할 나위 없다. 특별한 목적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떠돌며 만나는 사람도 많다. 젊은 층이 주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이들에게 진솔한 인간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일부를 제외하고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진솔한 교민들이 더 많을 것이라 믿는다. 멀리 고국을 떠나와 해외에서 같은 한국인들끼리 알고 지내고 화합하고 뭉치는 것은 얼마나 보기 좋은 일인가. 문제는 꽌시에 대한 무분별한 집착, 거품과 욕망에 있다.
몇 년전 중국에서 사업을 위한 시장조사를 하러 왔다는 L(38)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중국에 와서 돈 많은 행세를 하다 보니 주위에서 이 사람 저사람 ‘연결’을 시켜 주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이 별로 없었던 그는 많은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다 보니 스스로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때로는 지위가 좀 높은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해지곤 했다.
한국에서는 왠만해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도 중국에서는 교회를 나가거나 이런 저런 사람들을 통하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해외 교민사회의 인간관계는 많은 부분 종교, 그것도 기독교 커뮤니티 위주로 재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대단한 인사인양 우쭐해졌고 식사라도 한번 하면 더 기고만장해졌다. 그러나 그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 교민사회는 의외로 상류층의 이너서클이 아주 작고 계층간의 접촉이 잦은 구조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다만 얻은 것은 L씨도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심리만 생겼을 뿐. 들뜬 기분에 2년여를 보낸 L은 얼마 전 베이징을 힘없이 떠나 귀국했다. 자신이 직접 중국을 통찰할 생각을 안하고 그저 2년여를 꽌시를 통해 사업 아이템을 찾고자 노력하다가 세월을 허비한 것이다.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반가워해야 할게 아니라 한국인들끼리의 꽌시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를 현지의 실정과 함께 살펴보자. 첫째로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체류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생활하기도 어렵고 이민을 떠나지도 못하는, 극히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 중국에 온 분들이 많다. 외국에 갈 어학실력도 안되고 외국에 투자할 만큼 충분한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무작정 또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준비 없이 중국에 온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 시어머니 모시기 싫어서 여행 왔다가 눌러 앉은 사람. 여성 편력 문제로 이혼직전의 상황이 벌어지자 시간을 벌려고 온 사람. 집안에 낮 뜨거운 일이 벌어져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어 온 사람. 빚 갚기 싫어서 온 사람. 이성 친구와 헤어져서 머리 식히러 온 사람, 최근에는 갖가지 유형의 범법자 및 민형사 사건 관련 용의자들이 중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가깝다. 그리고 말이 통하는 조선족 동포가 있다. 이유는 만들면 된다.
이런 저런 여기까지 아주 정상적인 이유로 온 한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라면 동석할 수 없는 분들이지만 이상하게 중국에서는 가능하다. 한국인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말이다. 서로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허우대 멀쩡하고 언변좋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밝으면 술자리 몇 번 끝에 거래가 시작되고 청탁을 한다. 돈이 오간다. 그리고 약속한 기일이 지난다. 한쪽은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등을 돌린다. 뿌리 깊은 외국에서의 한국인 기피증은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게 발병한다. 평소 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인 한국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슬슬 도망 다니는 처지가 되거나 잠적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꽌시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부 한국인들…결코 그 수가 적지 않다. 그래서 한인사회에 무분별한 꽌시 확장과 연결은 위험하다. 자신 조차도 검증 못하는 사람을 그저 꽌시 확장을 이유로 잘못 ‘연결’ 해주었다가 책임져야할 민망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꽌시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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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대학
중국에서 꽌시의 진정한 의미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관계, 즉 ‘꽌시’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꽌시는 물론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기관이나 사람들을 만나 친교를 두텁게 하는 일은 개인적인 일 일수 있지만 사업차원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활동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많은 중국 교민들이 꽌시에 대해 잘못 오해하다가 상당한 돈과 시간의 낭비는 물론이고 심지어 발목을 잡히는 수도 더러 생긴다.
사실 꽌시는 합리적인 인간관계가 주를 이루는 서양과는 달리 우리의 경험에서 그렇게 생소한 개념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인맥이나 연줄 등 뒷 배경을 잘 활용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적 특징을 고려한 인간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술 한잔 거하게 사주고 선물 주고 살살 달래야 하는 상대 이상의 의미가 나오기 어렵다.
중국에서의 꽌시는 법치(法治) 보다는 인치(人治)을 위주로 국가의 규칙을 운영해 왔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이 바뀌면 원칙도 수시로 바뀌는 사회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키워줄 수 있는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주변 사람 중심으로 인맥을 엮기도 하지만, 중국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의(義)라는 덕목인데 여기서 ‘의’란 우리말의 의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중국의 영웅 소설 수호지나 삼국지를 보면 이러한 의로 맺어진 꽌시가 거대한 세력을 이뤄 천하의 자웅을 겨루곤 한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의 특징 중의 하나가 ‘확장성’이다. ‘내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라는 단순한 평범한 도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사업하다 보면 믿을 만한 사람이 써 주는 소개장의 위력은 대단하다. 중국의 이런 인간 네트워크는 그간 상당히 유효한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어 왔다. 물론 개혁, 개방 이후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과거 중국의 상업 네트워크의 전통과 맞물려 만만하지 않는 그들 나름대로의 꽌시 네트워크가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공무원들을 몇 번 접대하고 선물 주고 이런 과정으로 친해졌다고 해서 꽌시를 형성했다고 으시대는 것이 아직도 우리의 현 수준이다. 물론 이런 꽌시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동네 포장마차 정도를 운영할게 아니라면 중국에서 성공하겠다는 패기만만한 젊은 사업가들의 꽌시는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즉 자신의 중국 사업을 외풍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개척하고 실질적인 제휴를 성사시키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성공을 일구어 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찾아내고자 하는 목적에서 꽌시 수립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고급 꽌시는 술자리 접대, 선물증정이 아니라 깊은 신뢰감과 덕망, 재능과 실력, 비젼이 그들에게 읽혀지고 보여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꽌시를 수립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이다.
젊은 기업인들이 있는 술자리에 가보면 “나는 북경시의 누구를 안다”, “나는 어느 쪽과 좀 인맥이 있지” 라는 식으로 너도 나도 술 한잔 걸치고 경쟁적으로 꽌시를 자랑하는 것이 요즘 흔히볼 수 있는 세태다. 주로 “너 누구누구 알기나 해? 난 알아!” 이런 식이다. 과연 그런 이들이 얼마나 진정한 꽌시를 수립했는지 의심스럽다. 혹시 어렵사리 줄을 대 만나서 밥 한번 사주고 술 한번 접대하고 명함 주고 받은 것으로 꽌시 운운하는 것이 아닐런지. 중국에서 성공한 젊은 사업가들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입력시간 : 2007-05-27 16: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