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단에 있는 구약 아하수로에 왕 비문 | 이란의 성경유적지
2007.03.04 19:30
하메단에 있는 아하수에로 왕 석비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에게 해방령을 내린 고레스 왕의 칙령이 발견된 악메다(Achmetha,에6:1∼2)는 메대제국 수도로 헬라어 명칭은 ‘엑바타나’(에크바타나)이다. 후에 페르시아 제국과 파르티아 왕국의 여름수도이기도 했다. 이곳은 현재 이란의 테헤란 남서쪽약 337㎞ 지점인 하메단(hamadan)으로 알반드(Alvand) 산의 북동쪽 기슭 근처에 있는 해발 고도 1,800m 높은 평야지대 위치해 있다.
테헤란에서 이곳까지는 국내선 비행기가 있으나 그 편수가 적어 세이오 사파리 정류장에서 이곳 까지 가는 최신형 볼보버스로 출발했다. 테헤란에서 337㎞나 되는 이곳을 하루에 왕복하기 위해 아침식사는 중간에 하기로 하고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시원한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여쯤 달리자 그때서야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날이 2월초 한겨울이지만 우리나라 만큼 춥지는 않았다. 시원 고속도로를 벗어나 이젠 1차선 국도로 달린다. 해발 높은 곳이라 주변에 펼치는 산세가 제법 사납다. 한 5시간 이상을 달려 구악성경의 지명인 악메다로 나오는 하메단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메단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성경에 나오는 악메다 궁터였다. 궁터에 도착하자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궁터에 세워진 자그마한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기원 전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악메다(엑바타나)는 BC 678년 메대인 데이오세스(Deioces)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BC 550년 페르시아의고레스(Cyrus)에게 점령당했으며,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30년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다리오(다리우스)3세로부터 다리오가 예루살렘 재건을 허용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을 빼앗아 간다. 구약 에스라 6:1∼2에 의하면 다리오왕 때 이 악메다에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이 고레스 칙령(조서)이 발견됨으로써 스룹바벨성전으로 지칭되는 제2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수월해질 수 있었다. 이후 악메다는 파르티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으나 사산(Sassan)왕조 하에서 쇠망하였고 이슬람에 정복된 후 하메단이란 도시로 지금까지 옛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지금도 그 옛터 궁전을 복원하면서 각종 유물을 출토시키고 있다. 최근에 아케메네스왕조의 비문들과 1923년 다리오 1세의 이름이 새겨진 금과 은으로 된 2개의 받침쟁반과 크세르크세스(구약 성경의 이름 아하수에로)2세의 기둥 뿌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 두 왕이 악메다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 이 궁터에서는 상 쉬르(Sang Shir)라는 사자상이 발굴되었다. 이 돌사자상은 길이 2.5m,폭 1.5m,높이1.2m의 매우 큰 것으로, 마케도니아에서 전사한 헤파에스티온(Hephaestion) 장군을 기리리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석공들이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사자상은 이곳의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악메다 시내에서 서쪽 5㎞ 지점의 압바스 아바드(Abbas Abad) 계곡에 있는 간자네메 아하수에로왕과 다리오왕의 돌비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황량하기로 이를데 없는 이곳 주변 자연과 달리 이곳은 계곡에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있어 많은 이곳 사람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왼쪽 산 언덕 절벽에 네모로 깎아 만든 커다란 비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비문이 BC 500여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바로 믿에 비문을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해 놓은 간판이 있다.
비문 내용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위대한 신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 모든 신들 중에 가장 위대하시며, 이 땅과 하늘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 그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셨고, 그분은 쎌서스(아하수에로)왕을 세우셨다. 많은 왕들 중에서 뛰어난 왕, 많은 통치자들 중에서 뛰어난 통치자, 나는 위대한 왕 쎌서스, 왕중의 왕이며 수많은 거민들이 있는 땅의 왕, 끝이 없는 경계를 가진 거대한 왕국의 왕 아케메니안의 군주 다리오의 아들이니라”이 비문이 바로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왕의 비문이다.
하메단 간자너메에 있는 아하수로왕 비문
테헤란에서 이곳까지는 국내선 비행기가 있으나 그 편수가 적어 세이오 사파리 정류장에서 이곳 까지 가는 최신형 볼보버스로 출발했다. 테헤란에서 337㎞나 되는 이곳을 하루에 왕복하기 위해 아침식사는 중간에 하기로 하고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시원한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여쯤 달리자 그때서야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날이 2월초 한겨울이지만 우리나라 만큼 춥지는 않았다. 시원 고속도로를 벗어나 이젠 1차선 국도로 달린다. 해발 높은 곳이라 주변에 펼치는 산세가 제법 사납다. 한 5시간 이상을 달려 구악성경의 지명인 악메다로 나오는 하메단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메단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성경에 나오는 악메다 궁터였다. 궁터에 도착하자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궁터에 세워진 자그마한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기원 전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악메다(엑바타나)는 BC 678년 메대인 데이오세스(Deioces)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BC 550년 페르시아의고레스(Cyrus)에게 점령당했으며,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30년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다리오(다리우스)3세로부터 다리오가 예루살렘 재건을 허용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을 빼앗아 간다. 구약 에스라 6:1∼2에 의하면 다리오왕 때 이 악메다에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이 고레스 칙령(조서)이 발견됨으로써 스룹바벨성전으로 지칭되는 제2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수월해질 수 있었다. 이후 악메다는 파르티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으나 사산(Sassan)왕조 하에서 쇠망하였고 이슬람에 정복된 후 하메단이란 도시로 지금까지 옛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지금도 그 옛터 궁전을 복원하면서 각종 유물을 출토시키고 있다. 최근에 아케메네스왕조의 비문들과 1923년 다리오 1세의 이름이 새겨진 금과 은으로 된 2개의 받침쟁반과 크세르크세스(구약 성경의 이름 아하수에로)2세의 기둥 뿌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 두 왕이 악메다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 이 궁터에서는 상 쉬르(Sang Shir)라는 사자상이 발굴되었다. 이 돌사자상은 길이 2.5m,폭 1.5m,높이1.2m의 매우 큰 것으로, 마케도니아에서 전사한 헤파에스티온(Hephaestion) 장군을 기리리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석공들이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사자상은 이곳의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악메다 시내에서 서쪽 5㎞ 지점의 압바스 아바드(Abbas Abad) 계곡에 있는 간자네메 아하수에로왕과 다리오왕의 돌비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황량하기로 이를데 없는 이곳 주변 자연과 달리 이곳은 계곡에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있어 많은 이곳 사람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왼쪽 산 언덕 절벽에 네모로 깎아 만든 커다란 비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비문이 BC 500여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바로 믿에 비문을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해 놓은 간판이 있다.
비문 내용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위대한 신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 모든 신들 중에 가장 위대하시며, 이 땅과 하늘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 그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셨고, 그분은 쎌서스(아하수에로)왕을 세우셨다. 많은 왕들 중에서 뛰어난 왕, 많은 통치자들 중에서 뛰어난 통치자, 나는 위대한 왕 쎌서스, 왕중의 왕이며 수많은 거민들이 있는 땅의 왕, 끝이 없는 경계를 가진 거대한 왕국의 왕 아케메니안의 군주 다리오의 아들이니라”이 비문이 바로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왕의 비문이다.
하메단 간자너메에 있는 아하수로왕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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