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성경속의 인물들

[스크랩] 성 야고보 5월3일

 

 

성 야고보(James) 축일 5월 3일 
신분 사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62년 

 

 

알패오(Alphaeus)의 아들인 성 야고보(Jacobus)는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12사도로 기록되어 있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가끔씩 등장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예루살렘의 어느 2층 방에 모였던 11제자 중의 한 분이다(사도 1,13). 야고보는 분명히 주님의 형제로 언급되고(마태 13,55), ‘주님의 동생’으로 불린다(갈라 1,19). 베드로(Petrus)는 자신이 기적적으로 감옥을 빠져나온 사실을 알려주라고 이른 사람이 바로 야고보이다(사도 12,17).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야고보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초대 주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다만 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을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편지를 띄웠으면 합니다.”(사도 15,13-21) 하고 비유대계 그리스도인에게 4가지 관행만을 실천하도록 요구하였다.

   후대에 생긴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는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이집트에 정착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의 오스트라키네(Ostrakine)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였는데, 그의 설교가 군중을 노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신전 지붕에서 내던져졌다고 한다. 그리고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매맞아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곤봉이나 방망이를 든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야고보  라틴어 Jacobus

 

①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알패오의 아들.

고대 전승은 작은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 보는데 `작은’이란 신장이나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차야고보라 불러왔다.

전승은 나아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글레오파는 동일 인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름이며,

더구나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이므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뻘인 야고보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최근의 다수 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이 구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별은 사도 1:14와 1고린 15:7에서도 드러난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같으며

바울로가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열거한 것도 갈라 1:19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 다.

 

정경인 야고보의 편지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것이다.

예루살렘의 야고보는 62년 혹은 66년경에 순교하였다.

동방전례에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다른 인물로 보고 축일을 달리 지내나

로마 전례에는 양자를 동일인으로 보아 5월1일(3일)을 축일로 지낸다.

 

②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제베대오의 아들. 축일은 7월 25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야고보라 불러 왔으나, 성서에서 붙인 호칭은 아니다.

갈릴래아의 어부였으며 삯꾼을 고용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며,

이들 형제가 `천둥의 아들’이라 불린 이유는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를 참지 못해 하던 과격한 성격때문일 것이다.

44년 헤로대왕에 의하여 죽음으로써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전승은 야고보의 스페 인 여행시기를 예수님의 죽음이후, 야고보의 순교이전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바울로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에 안치된 유해가 야고보의 것인지에 관하여 교황레오 13세가 칙사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어지고 있다.

회화에서 순례자의 종을 들고있는 모습이 많다.(가톨릭대사전)

 

 

야고보의 편지

라틴어 Epistola Catholica Beati Jacobi Apostoli

영어 Epistle of St. James

 

1. 문학적 성격 :

1장 1절의 인사말 외에는 편지다운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저서는 구체적 상황에 관한 언급없이 윤리 도덕적인 훈계를 별 순서 없이 늘어놓고 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편지가 아니라 구약 성서의 지혜서들과 가까운 교훈집이다.

 

본서는 주제가 서로 다른 명제를 나열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서로 비슷한 내용의 단절어 를 연결하기도 하며,또 흔히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넘어 갈 때 양쪽에 나오는 공통적인 낱말을 `연쇄어’로 삼아 문장을 연결하기도 한다.그리고 짤막한 문장과 직설성, 많은 비유와 명령법은 이 저서가 정열적이며 분명한 결정과 행동을 요구하는 설교자의 작품임을 드러낸다.

 

2. 저자와 집필상황 :

본서의 필자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야고보 가운데 이 편지의 저자는 누구일까?

인사말 가운데 사도라는 명칭이 없으니 예수와 동기간인 야고보가본서를 집필 했을 가능성이 짙다.그는 일찍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등장했으며 유태인들의 율법에 대한 애착을 가진 동시에 이방인 신자들의 자유를 인정하였다.이 사실은 야고보서의 내용에 잘 들어맞는다.

그 분위기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팔레스티나의 유다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본서를 가명작품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세련된 그리스어.

②70인역의 그리스어 구약성서의 사용.

③오랜 신자생활을 하다가 권태에 빠진 상태를 전제하는 실천의 강조.

④갈라디아서나 사 도행전에 등장한 야고보와는 달리 본서에는 율법의 준수를 요구하지 않는점.

따라서 야고보서의 친저성에 관해 확실한 판단을 내릴수 없다.

 

야고보서는 2세기 말에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목록에 없다.

3세기 초에 오리제네스가 처음으 로 본서를 성서로서 언급한다.

그러나 4세기 말 이전까지는 본서를 정경으로 보지 않은 교부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16세 기에 이르러 마르틴 루터가 다시 본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 까닭은 루터가 일방적으로 따른 바울로의 신학에 비해서 야고보서는 선행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개신교에서 본서를 경전목록에서 뺀 적은 없다.

 

본서의 수신인들은 팔레스티나 본토를 떠나서 사는 유대계 그리스인들이며 그 집필 연도는 예수의 동기인 야고보가 사형 받은 62년 이전이다.그러나 이 편지를 가명작품으로 보는 학자들은 그 연대를 80년 이후로 내려잡는다.

 

3. 내용 :

본서의 윤리적 교훈들은 그 성격상 구약과 유태교 윤리관과의 지속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윤리관은 공동체의 질서와 개개인의 생활을 하느님의 말씀과 게명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제애와 기도, 그리고 세말에 이루어질 하느님 심판에 대한 각오와 기대가 강조된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전통을 이어 야고보는 치부를 경계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선다.

이 점들은 모두 예수의 윤리적 교훈, 특히 산상설교의 내용과 잘 통한다.

 

야고보는 신앙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바울로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인상을 줄수 있다.같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야고보는 인간의 의화가 행실이 없어 오직 신앙으 로 말미암아 실현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여기서 양자가 반박하려는 오류들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바울로는 유태인들을 상대로 인간이 율법준수로 하느님의 구원을 살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려고 한 반면에,야고보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신앙이 쓸데없는 신앙 또는 사이비 신앙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여기서 야고보는 바울로를 직접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로의 본 의도를 잘못 알아듣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선행의 필요성을 아예 부정하기에 이른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다.실상신앙의 실천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는 야고보와 바울로는 완전히 일치 한다.(가톨릭대사전)

 

 

 

야고보서는 어떤 책인가요?

야고보서란 이름은?

야고보서는 공동(catholic)서간에 속하는 첫번째 편지입니다.

13개의 바오로 서간은 모두 이 편지를 받는 개인이나 교회 앞으로 편지를 띄우지만,

공동서간은 이 편지를 받는 지역이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누가 편지를 띄우는지만 첫머리에 밝혀져 있지요. “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를 드립니다”(야고 1,1)는 내용에 따라 ‘야고보서’란 현재의 책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어요.

 

누가 썼나요?

야고보서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한 최초의 교부인 오리게네스는 이 서간의 저자를 단순히

‘야고보’ 또는 ‘사도 야고보’라고 밝히고 있어요.

유세비우스는 이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사도 15,13; 21,18)며 “주님의 형제”(갈라 1,19)로 여겼지요.“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야고 1,1)이라고 야고보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며,“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야고 1,25)을 지키라는 권유가 유다교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야고보(사도 15,13-21; 21,18-24)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죠.

 

나아가 사도 15장에 나오는 야고보의 설교와 문체가 서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의 기후현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가을비와 봄비”(야고 5,7)라는 언급도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요. 서간에 쓰인 그리스어 문체가 갈릴래아 농부 출신치고는 너무 유창할 뿐 아니라,주님의 형제로 오래도록 생활해 온 것에 비해서는 예수 자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율법의 효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믿음과 행동을 다루고 있음이 의아하다는 점을 들어,익명의 저자가 야고보의 이름을 빌어 집필했을 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언제 쓰여졌나요?

야고보서의 집필연대는 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크게 달라져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썼다면 야고보가 순교하기 전에는 집필되었을 거에요.

야고보는 페스도와 알비누스가 유다 총독으로 이취임하던 62년 또는 베스파시안 황제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해 들어오던 67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되어요.

반면에 야고보서가 차명서한이라면,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교회는 지역상으로도 도시와 농촌에 걸쳐 있고, 직업상으로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그 안에 모여들게 됩니다.따라서 사람들의 생김새나 차림새를 보고 박대하거나, 선행은 뒷전에 밀쳐놓은 채 믿음만이 최고라는 환상을 갖기 쉽지요.이에 야고보는 진정 하느님의 자녀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하며,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일러주고자 이 서간을 집필했어요.(가톨릭홈)

 

 

■ 같은이름-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제임스 

출처 : 엔담의 쉼터
글쓴이 : 엔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