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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위해 온것들/이한규의 사랑 칼럼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얼마 전 CNET의 편집인인 한국계 제임스 김(James Kim)의
실종 뉴스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CNN 보도에 의하면 김씨 가족은 추수감사절 휴가 후,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목적지로 가는 도로를 놓치고
산악도로로 들어섰다가 눈 속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차 안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게
차의 시동을 주기적으로 켰고,
추울 때는 서로 몸을 꼭 껴안고 비벼대며 체온을 유지했습니다.

휘발유가 떨어지자 제임스 김은 타이어를 태웠고,
눈이 잠깐 그칠 때는 잡지와 목재를 태웠습니다.
일주일 동안 구조의 손길이 없자 그는 가족을 구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가 얼어 죽었습니다.
그 구조상황을 자세히 보도한 CNN 블로그 사이트에서는
그가 시체로 발견된 후 다음 질문으로 한참 논쟁을 했습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당신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What would you do in the same situation?)”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에 뜨겁게 논쟁할 때,
 
한 전직 미 공군 그린베레의
씨어 특수훈련(SERE, Survival(생존), Evasion(도피),
Resistance(저항), Escape(탈출))
교관이 ‘3의 법칙(the rule of threes)’이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음식이 없어도 3주 동안 살 수 있고,
물이 없어도 3일 동안 살 수 있고,
거처가 없어도 3시간 동안 살 수 있고,
공기가 없어도 3분 동안 살 수 있지만
희망이 없이는 3초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희망의 근거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what I have)?”가 아닙니다.
능력, 물질, 성공은 얼마 후에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희망의 근거는 “내가 누구인가(who I am)?”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사람입니다.
세상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으면 희망의 근거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 희망의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희망하는 것(hoping)’은 ‘바라는 것(wishing)’이 아닙니다.
진짜 희망은 ‘바라는 것’을 버릴 때 생깁니다.
‘바라는 것’은 내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 우연을 믿고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이지만 ‘희망하는 것’은 내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에 나를 여는 것입니다.
바램은 ‘허무한 환상’에 기초를 두지만 희망은 ‘위대한 실체’에 기초를 둡니다.

고난은 ‘희망하는 것(hoping)’과 ‘바라는 것(wishing)’을 분별하는 도구입니다.
 ‘바라는 자’에게 고난은 기득권의 상실이지만
‘희망하는 자’에게 고난은 산고의 진통입니다.
‘희망하는 자’에게 주어진 고난 체험은 오히려 희망 체험입니다.

현재의 약점과 장애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일의 기회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일본 비단잉어 코이(koi)는 작은 수족관에 두면 8센티까지 자라고,
연못에 두면 25센티까지 자라고,
강에 두면 120센티까지 자랍니다.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은 자랍니다.
희망을 가지고 나가면 몸은 죽어도 영향력은 죽지 않습니다. (06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