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힘(The anatomy of hope)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 온 책이다. 책을 처음 손에 잡을 때 말기 암 환자 호스피스를 담당하는 나의 일과는 별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치유에 대한 그릇된 기대를 버리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 중 일부였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환자나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위중한 병을 앓는 환자를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희망부터, 이유없는 고통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인도자로서의 희망, 치유의 희망이 없는 말기 환자가 침착하게 현실을 수용하도록 하는 영원한 영혼의 희망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제롬 그루프먼은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서 하버드 의대 교수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생 실습 시절부터 갖게 된 의문 -희망이란 무엇이며 병의 치유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는가?-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해답을 30년간의 임상경험과 연구 속에서 찾는다. 막연한 희망에서 실용적인 가치를 찾아내고, 엄밀한 과학적인 근거를 부여하였다는데 이 책의 독특한 가치가 있다. 저자는 희망을 치유의 심장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희망을 ‘마음의 눈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볼 때 경험하는 상승 감정’이라고 정의하고, 그러면서 미래로 향한 길에서 만나는 중대한 장애물과 깊은 함정까지 인정하는 것이 참 희망임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희망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 현실을 뛰어넘을 능력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떻게 병을 호전시키는가? 정신 의학자와 실험 심리학자들의 교류를 통해 저자는 믿음과 기대라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뇌에서 강력한 진통물질을 분비시킨다거나, 자율신경계를 조정하여 호흡순환과 같은 기본적인 신체작용에 영향을 미침을 밝혀낸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희망의 질병 호전 과정을 그려낸 부분일 것이다. ‘도미노 효과를 상상해 보라. 각각의 결과가 다음번의 결과를 더욱 크게 만드는 그런 연쇄 반응을 바로 희망으로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적 표현 “희망이 꽃피다.”라는 말은 바로 그러한 촉매 과정을 나타낸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읽은 그리스-로마 신화가 생각난다. 판도라의 상자에 담긴 희망.. 모든 축복이 사라져 버려도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남은 선물이 희망이라는 신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생의 끝에서 바라 본 희망의 의미에 눈길이 갔다. 어떤 신앙심 깊은 말기 환자의 희망은,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과 신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생의 의미를 창조한 사람의 희망이었다. 저자의 부친은 종교도,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도 없었지만 죽음을 삶의 당연하고 불가피한 일부로 보았다. 부친은 자신이 떠난 뒤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할 기억의 영원함을 믿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로 조용히 고백한다. ‘가끔씩 나 자신의 유한성이 심각한 사실로 다가오고, 그때마다 과연 어떻게 그 순간을 맞이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마지막 순간 나 역시 희망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깊은 위로가 된다.’라고...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돌보았던 말기 환자들이 떠올랐다. 종교보다는 개인적인 철학과 경험이 죽음의 현실을 인정하게끔 준비시킨다는 저자의 의견에 나 역시 공감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희망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삶의 마지막을 돌보는 나에게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보호자의 격려 편지를 받고서, 말기 환자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던 일.. 또한 희망이라고 하면 잊혀지지 않는 환자가 있다. 뇌암 말기로 신체 기능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항암 치료에까지 희망을 걸던 남자 환자와 가족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혈액종양 전문의에게 의견을 구해보았지만, 이미 초치료때 반응이 좋지 않아 중단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구토 등 부작용을 고려해서 재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이후 수 일안에 환자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어 급기야 사망에 이르렀다. 식욕과 언어기능 등이 좋아지고 있어서, 퇴원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던 환자였기 때문에, 나의 놀라움은 보통의 의학적 상식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절망으로 생의 의지를 포기한 것이라고만 짐작했을 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절망감이 뇌에 ‘더 이상 살기가 어렵겠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부정적인 신경 화학 물질들을 만들어내 쇠약감과 의식저하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항암 치료제와 비슷하게 생긴 가짜 약이라도 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환자들에게 희망은 생명의 가능성이고,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삶의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희망이라는 무게 중심만 유지하고 있으면 우리는 위험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고, 오래 견뎌 내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나는 첫 아이를 낳은 후 자궁 선종으로 인해 7년간 둘째 아이를 갖지 못했다. 불임 클리닉에 다니며 시험관 아기도 시도해보았지만 착상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호르몬 주사의 부작용으로 선종이 커져 선종 절제술이라는 실험적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수술 동의서를 쓰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오랜 기간동안 아이를 기다려 온 남편마저도, 선종이 다시 커질 위험이 있다는 후배 의사의 설명에, 자궁 적출술이 낫지 않겠냐며 권유해왔다. 나는 문득 ‘희망의 힘’을 떠올렸다. 지금 자궁 적출술을 하면, 앞으로의 고통과 위험은 사라지겠지만, 아기에 대한 희망은 버려야 한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남겨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막연한 기대감만은 아니었고, 나 자신 의사로서, 선종이 재발할 가능성과 자라남에 따른 고통을 충분히 알고 내린 결정이었다.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9개월만에 나는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의학적으로 증례 보고-희귀한 경우로 학계에 보고하는 것-감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제 임신 10주째에 접어든 나는, 아기의 태명을 ‘희망이’로 지었다. 희망이가 태어나서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 희망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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