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파드 국왕은 지금
지브롤터해협 인근에 있는 스페인 별장에서 피서를 하고 있다. 수행원이 3000명이요 600대의 벤츠가 횡행하며 귀금속을 매점하는데 팁도
200만원이 상식이라 한다. 하루 별장 장식에 드는 꽃이 200만원어치요 한 달 체류하는 동안 현지에 떨어지는 경제효과는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호화 행차다.
중국사에서 가장 부자로 치는 석숭(石崇)이 행차할 때면 귀인들의 독점색인 자색포(紫色布)로 좌우 행길을 가리는 보장(步障)을 40리나
쳤으며 비단옷을 입히고 제호(醍 )만을 먹여 기른 닭요리, 사람 젖을 먹여 기른 애저요리에 꽃초를 켜 지은 밥만을 먹었다.
이덕유(李德裕)라는 이는 끼니마다 구슬국(玉羹) 한 그릇씩을 마셨는데 3만금을 들여 색색의 주옥을 한데 삶아 국물을 우려 마셨으니
상상을 초월한 식도락이다. 진(晋)나라 원보(元保)는 자기 거실의 창살을 옥으로 새긴 봉황으로 만들고 금방울을 물리는가 하면 황금으로 용을
만들어 금실 은실을 토하게 했다. 양귀비의 오빠인 양국충은 겨울에 살진 비녀들로 하여금 방 안에 인간 병풍을 치게 하여 그 체온으로 난방을
했으며 쿠데타로 양귀비를 죽인 안녹산은 요강에 이르기까지 금그릇이요, 옷은 금실로 짜 입었다.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西太后)가 심양으로 성묘갈 때 16량으로 된 어용기차를 타고 가는데 그 중 4량이 황금칠을 한 식당차였다. 이
차에 탄 요리사만도 150인이요, 주방차의 양 곁에 아궁이가 25개나 있었다. 조석 정찬에 100그릇의 찬을 내야 하고 이를 환관 10명이 명에
따라 접시에 덜어 서태후의 입 가까이로 날랐다. 이 요리열차는 그 후 동북재벌 장작림(張作霖)이 타고 가다 일본군에 의해 폭파당하는 비운에
처한다.
현대의 사치 최고봉은 필리핀의 이멜다 여사일 것이다. 2000켤레의 구두, 2500장의 팬티, 500개의 브래지어, 25대의 외제 고급
승용차, 그 가운데에는 호화 목욕탕까지 갖춘 이동 살림차도 끼여 있다. 그리고 황금 대야까지 있어 한때 화제가 됐었다.
이 역사적 사치에 뒤지지 않는 사우디왕의 호화 바캉스다. 문제는 이 별장에서 일용 고용자를 4000명씩 쓰는데, 연일 별장 앞에 열지어
서있는 수천명은 국왕과 같은 백성인 아랍 빈민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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