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죠. 우리 일상 언어생활을 보면 어휘들이 잘 연결되어 거침없이 흘러 나옵니다. 언어에는 순발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정의나 공식을 생각해야 한다면 언어는 순발력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휘를 어떻게 올바로, 일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유사성을 통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의자”라고 하면 우리는 여러 형태의 의자를 머리 속에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이미지들이 이 단어의 의미인 것이죠. 어느 물체가 이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느껴지면 그것을 “의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것을 의자라고 부를 때 그것이 의자의 정의에 부합하는지 않는지 곰곰이 따져 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사성을 느끼게 되면 바로 의자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무등걸을 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누가 거기 걸터 앉으면서 '여기 의자가 좋은 게 있네” 한다면? 보통 의자와 모양은 다르지만 앉는다는 기능이 유사하므로 충분히 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의 과정은 즉각적이며 이 때문에 언어는 순발력을 가질 수 있죠.
우리가 많이 쓰는 컴퓨터 마우스. 그것을 어떻게 해서 마우스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원래 mouse는 찍찍거리는 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컴퓨터를 밤낮 없이 따라다니는 요 조그만 물체가 쥐가 되었을까요? 어느 언어학자가 “에~ 이 물체는 쥐의 정의와 부합하니 mouse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렇게 결정했을까요?
아닙니다. 단지 컴마우스의 엎드려있는 듯한 모양이 쥐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에 누군가 mouse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트북이 생겨서는 거기 붙은 조그마한 핀이나 패드까지도 마우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엎드린 마우스가 이미 mouse의 의미의 일부가 되었고 핀과 패드는 모양은 다르지만 기능적으로는 유사하기 때문에 또 mouse라고 부르게 된 거죠.
이렇게 단어는 여러 각도의 유사성을 통해 사용되고 또 변화됩니다. 공식에 맞추어 쓰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느낌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가 항상 자로 잰 듯 정확하거나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매우 유동적이고 신축적인 것입니다. 언어사용자가 창의성을 많이 발휘할 수 있죠.
만일 쥐 mouse, 그냥 mouse, pin mouse, pad mouse를 하나로 묶는 mouse의 보편적 정의를 찾아야 한다면 찾을 수 있을까요? 열쒸~미 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헉헉거리고 그 정의를 다 찾을 때쯤이면 어디선가 전혀 못 보던 놈 하나가 마우스라는 명찰을 달고 짜자~안 나타날 지도 모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언어에는 정의라는 것은 없습니다. 언어는 수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인간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언어에서 정의가 필요한 때는 특별히 어느 단어를 연구할 필요가 있을 때, 등 특수한 경우일 뿐입니다.
대신 모든 어휘는 우리 머리 속에 어떤 인상으로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의자”나 “마우스”같이 사물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단어에 따라 어떤 상황, 모습, 동작, 상태, 등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휘의 의미라고 하죠. 그러나 의미라고 하면 정의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순발력 있는 어휘의 사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앞으로는 종종 어휘의 느낌, 또는 감각이라고도 부르겠습니다. 우리가 사전의 정의라 하는 것도 사실은 수학적 정의가 아니라 이런 느낌을 잘 묘사해 놓은 설명일 따름입니다.
사실 어휘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적 언어
생활은 느낌에 의해 움직입니다. 우리는 현재완료는 계속, 경험, 완료, 결과를 나타낸다, 정관사는 이미 아는 것을
지칭한다는 등의 공식을 배웁니다. 그러나 네이티브들은 이런 것 없이 느낌으로 이 어휘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죠.
문법도 그렇습니다. 세 살배기 아이들이 주어가 뭐고
목적어가 뭔지 아나요? 문법적 공식을 전혀 몰라도, 예를 들어 “I like him” 이라고
말할 때 대명사의 형태는 “I”하고 “him”이라는 것, 어순이 I + like+ him이라는 것 등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그냥 느껴지는 것이죠. 그리고 성장하면서 점점 더 복잡한 구문을 느낌으로 익히게
됩니다.
그래서 영어 학습자들도 결국 느낌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어를
자연습득이 아니라 한국어를 통해서 공부로 배우다 보니 살아 움직이는 언어의 성격과 느낌을 망각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어휘사용 터득의
길> 시리즈에서는 언어의 본질에서 인위적으로 멀어져 있는 영어 학습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최대한
자연적인 언어 생활에 학습을 맞추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느낌과 유사성으로 움직이는 언어의 성격은 본 어휘/영작 칼럼 전체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서 기본 바탕이 될 것입니다.
한국어로 번역이 잘 안 되는 영 단어들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commitment라는 단어는 사전에 “열의”, “헌신”, “전념”, 등으로 뜻이 나와 있지만 어느 것도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좀 더 일반적인 문제는 한글 뜻풀이가 어휘의 의미들
간의 유사성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려버린다는 것입니다.
Pick이라는 단어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Pick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다의어입니다. 영한 사전을 참고해 중요한 것들을 들어보자면: “선택하다”,
“(열매를) 따다”, “(코를) 후비다”, “(이빨을) 쑤시다”, “(자물쇠를 열쇠 말고 다른 것으로) 열다”, “(구멍을) 파다”,
“(머리를) 빌리다”, “(고기를) 뜯어먹다”, “소매치기하다”, “괴롭히다”, “(싸움을) 걸다”, 등이 있습니다.
한 단어의
의미, 혹은 느낌들은 유사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pick의 많은 의미들 간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요? 부분적으로 유사성이 보이긴 합니다. “선택하다”와 “따다”는 무엇을 취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후비다”, “쑤시다”,
“파다”도 서로 유사해 보입니다. “괴롭히다”, “(싸움)걸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유사성 외에 전체 의미를
연결해줄 수 있는 유사성의 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선택하다”, “쑤시다”, “열다”, “뜯어먹다”, “(머리를) 빌리다”, “(싸움을)
걸다”, 등은 생긴 것이 다 제 각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문과 영영사전의 정의를 보면 의미들의 이미지와 상호 유사성의 흐름이 드러납니다. 같이 한 번 볼까요?
1.The group picked me as their spokesperson. (Longman)
2.He
helps her mother pick fruit. (Collins)
3.He kept picking his nose.
(Cambridge)
4.He picks his teeth with a corner of the in-flight magazine.
(Cambridge)
5.She picked the lock with a hairpin. (Longman)
6.The
carcass had been picked clean by other animals and birds. (Cambridge)
7.Have
you got a minute? I need to pick your brains. (Longman)
8.When all the fuss
died down I found my pocket had been picked. (Longman)
9.Why don't you go
and pick on someone your own size? (Cambridge)
10.He picked a fight with a
waiter and landed in jail. (Collins)
1번은 나를 대변인으로 선택했다는 말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무엇을 취하는 이미지이므로 2번의 “열매를 따다”와 유사합니다. 3번은 “그는 콧구녕을
마냥 후벼댔당~”, 4번은 (비행기에서) “그는 기내 잡지의 한 귀퉁이로 이를 쑤신당~”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웩!)
그런데 잠깐, pick one’s nose [teeth]에 대한 Collins 사전의 정의를 보면 “remove substance from inside your nose or between your teeth”입니다. 즉, 이 표현의 정확한 이미지 (느낌)는 한글 뜻풀이처럼 무얼 쑤셔대는 것이 아니라 콧구멍이나 이빨 사이에서 이물질을 파내는 (remove substance) 것입니다. 즉, 뭔가를 잡아내는 것이므로 이렇게 하면 2번의 과일을 따는 동작과 이미지가 연결이 되죠?
영한사전에는 “쑤시다”가 pick의 주요한 의미로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지만 사실
pick에 쑤신다는 느낌은 거의 없습니다.
5번으로 갑니다. 부우웅~ 영한사전을 보면 pick
a lock은 “(자물쇠를 연장으로) 비틀어 열다”로 되어 있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트는 것처럼 자물쇠를 비틀어 부수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느낌은 pick의 다른 의미들과 전혀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Collins 사전은 이 표현을
“open it without a key, for instance by using a piece of
wire”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무식하게 부수는 것이 아니라 철사 같은 것을 집어
넣어 살살 돌려서 여는 것이죠. 아하~! 그래서 예문도 머리핀으로 자물쇠를 열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해서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쉬는
것과 느낌 연결 성공!
6번은 시체(carcass)가 다른 동물과 새들에 의해 깨끗하게 뜯어 먹혔다(picked clean)는
뜻입니다. 3, 4번의 뭔가를 파내는 이미지가 이제는 고기를 뜯어내서 섭취하는 동작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번은 “잠깐 시간 있니? 니 머리 좀 빌리자”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pick your brains의 이미지는 마치 고기를 뜯어 먹듯이 뇌를 조금씩 뜯어가는 것입니다. (흐미~) 이런 느낌을 “빌리다”라는 뜻풀이만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가 없죠.
8번에서 pick pocket은 호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집어 낸다,
즉 호주머니를 턴다는 뜻인데 뭔가를 취하여 가지는 느낌(2번)도 있고 뭔가를 파내는 느낌(3, 4번)도 있습니다. 9번은 누가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괴롭힐 때 “얘야, 너하고 덩치가 맘먹는 애들한테나 가서 집적거려라”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보이는, 사람을 자꾸 건드리고 집적대는 모습은 고기나 뇌를 뜯는 6, 7번의 느낌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싸움이 나겠죠?
그래서 이 느낌은 바로 10번 pick a fight의 싸움을 거는 이미지하고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네이티브들이 이런 느낌의 유사성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사용을 통해 어휘의 이런 의미의 흐름을 자연스레 터득하고 이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시켜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의미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이미지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유사성은 사슬처럼 연결됩니다. 의미
사슬이라고 할까요? 사슬 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의미들은 서로 유사성을 찾기가 힘들 수도 있죠. “선택하다”와 “(싸움을)
걸다”가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습자들은 한국어를 통해 단어를 접하다 보니 각 의미들의 연결이 잘
안되면 따로따로 힘들게 외워야 합니다. 또한 느낌이 잘 안 잡히면 정확한 뉘앙스도 파악이 안되고 그 단어를 새로운 상황에 탄력 있게 사용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네이티브들의 자연습득에 근접하기 위해 되도록 한글
뜻풀이를 거치지 말고 용례와 영영사전의 정의를 보며 느낌과 그 흐름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많은 단어들을
접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이미지들이 마구 섞여있는 경우도 있고 또 유사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변화되어왔기 때문에 단어들은 나름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느낌의 흐름을
중심으로 어휘에 다가가면 전에 보지 못했던 많을 것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어휘를 익힐 때 한, 두 개의 대표적 의미들을
집중적으로 보지만, 그것들을 다른 의미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보면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휘 학습에 도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휘 공식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고 어휘의 용법입니다. 즉 어휘가 언제 어떤 의미와 뉘앙스로 쓰이는 지를 말해주는 것이죠. 현재완료 have를 계속, 완료, 경험, 혹은 결과를 나타낼 때 쓴다는 것이 좋은 예이고, 그 밖에 관사, 조동사, 전치사, 등도 제각각의 용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문법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어휘적인 문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휘 공식은 어휘들의 사용상 차이를 말해줍니다. 이런
차이가 있으니 상황에 잘 맞게 잘 쓰라는 것이죠. 현재 완료 have를 쓸 때와 have 없이 단순 과거를 쓸
때의 차이, 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무(無) 관사의 차이,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의어의 뉘앙스 차이
설명도 어휘공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will과 be going to,
until과 by, avoid와 escape, 등 그 예는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네이티브들은 이런 공식 없이 자연스런 느낌으로 어휘들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학습자들은 자연 습득의 여건이 안되므로 그 습득의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공식에 의존하지만 이 분야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공식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문제는 공식을 어휘의 느낌을 전해주는 제한된 수단이 아니라 마치
수학 공식같이 어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일종의 법칙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영어를 수학이나 과학처럼 학문으로 배웠기 때문에 영어가 실은 학문이기 전에 언어라는 것을 쉽게
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시중에는 “비법” 운운하며 일련의 공식만 터득하면 영어를 일거에 통달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책들도 많습니다.
많은 학습자들이 어휘의 사용을 과도하게 공식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습자들의 목소리를 좀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에서 10개월 정도 공부를 했다는 어느 유학생의 하소연인데 어느 영어 카페의 게시판에서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문법에 자신이 있고 문법에 의존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처음 몇 개월간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생기더라구요... 분명
소설을 읽고 뉴스를 듣고 대화를 하면 이해가 되지만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자꾸만 분석하려 들고 영어
단어 하나하나가 수학 공식처럼 보이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탈피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때로는 명확한 문법적 해설에 근거한 해석을
못할 때는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을 때도 있구요..
그냥 예를
들어볼께요... I would have to give him some time to get back on his feet. ...
would
have to... 도대체 여기서 would는 어떻게 쓰인건가? ... would를 사전에서 찾아 수없이 많이 보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해도 실제
생활에서 소설에서 그 지식을 적용시키면 실제 안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 다음은 “I will address
the nation more fully tonight on...” 이라는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어느 학생의 질문입니다:
“be going to는 가까운 시일 내로 해야 할 일이
계획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I will address ~'에서 will 대신 ‘be going to'를 쓰는 것이 더 좋지
않나요?”
자, 이 문제를 “의미의 흐름”이라는 그림을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전 칼럼에서는 pick의 여러 가지 의미 (느낌)가 서로 연결된 흐름을 형성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유사성으로 연결된 의미 사슬이라고 말씀 드렸죠.
어휘 공식은 이런
그리고 의미는 미세하나마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흐름을 어떤 공식으로 꼼짝 못하게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즉 항상 새로운 의미가 생겨날 수 있고 따라서 아무리 기가 막힌 공식도 그 어휘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다는 말이죠.
공식은 자연적인 흐름에 인위적인 틀을 씌웁니다. 현재완료 have의 의미의 흐름을 계속, 경험, 완료, 결과의 범주로 나누어 놓습니다. 학습자들은 마치 현재완료의 자연적인 의미 자체가 이렇게 분명히 구분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수학에서 수나 영역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 범주들이 현재완료의 모든 의미를 다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계속”은 어떤 상태나 동작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이 사용되는 켐브리지의 문법책 [Grammar in Use]
2. We
have had the car for six years.
1은 차를 6년 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2는 과거에도 지금도 차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즉, have를 더해 줌으로써 차를 가지고 있는 상태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I was
reading until midnight last night”에서 책을 읽었던 것은 어제 밤이고 지금은 아니기 때문에 was를 썼고 이렇게 현재까지 계속되지 않는 경우 have
been은 쓸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웬걸, 영어에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1. Your eyes are red. Have you been crying? (Advanced
Grammar in Use, p. 14)
2. I have been busy for the
last few years writing a Thesis, but now that it is complete I have spent a few
days writing a home web page... (kent.ac.uk/)
2번은 Google에서 검색한 어느
영국 교수의 글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과거의 동작이나 상태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1번에서는 현재는 crying 하고 있지 않으며 2번에서는 현재는
논문(thesis)이 다 끝나서 (now that it is complete) 더 이상 busy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현재완료를 썼을까요? 그것은 비록 그 동작이나 상태가 현재까지 계속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계속적 용법의 예문들과 느낌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Have를 쓸 때 공식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느낌을 동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틀린” 듯 한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죠. [Grammar in Use]에서도 1번이 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용법들을 볼까요? 한국 문법책들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을 보게 됩니다:
경험: 과거의 경험 (I have been to Paris)
완료: 무엇이 완료된 것 (The train has just left)
결과: 어느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 미치는 것 (I have lost the pen -> 이 결과 현재 펜이 없다)
그런데 다음은 영어 문법의 최고 권위서로 꼽히는 [A Comprehensive
Grammar of the English Language]에서 발췌한 예문입니다:
All
our children have had measles. (p. 192)
아이들이 다 홍역을 앓아서 지금은 면역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아이들이 홍역을 앓은 경험이 있으니 경험으로도 볼 수 있고 또 그 결과 현재는 면역이 있으니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위의 “The train has just left”의 경우 완료로도 볼 수 있지만
기차가 현재 떠나고 없으니 결과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 예문들이 어떤 용법에 해당하는 지 고민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낭비죠. “여기는 경험의 느낌도 있고 결과의 느낌도 있네” 이런 식으로 감이 잡히면 그
이상 이해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전 칼럼에서 말했던 의미의 흐름과 의미의 스펙트럼을 기억해 주세요. 스펙트럼의 색상들이 경계 면에서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섞여있는 것과 같이 have의 의미 (느낌)들이 혼재해 있는 것입니다.
사실 경험, 결과, 완료는 물론 도움이 되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국 문법책에서만 쓰이고 [Grammar in Use]나 [Comprehensive Grammar]같은 현지의 문법 책들은
이 분류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다 뭉뚱그려서 현재완료를 “경험/결과/완료” 와 “계속” 에 해당하는 경우들로 양분합니다.
어휘 공식이 법칙이 아니라 대표적인 느낌들을 정리해 주는 도우미라는 제 주장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시나요? 그렇다면 실제
접하는 문장에서 공식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언어의 성격상 당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공식에 잘 맞느냐 하는 것
보다 그 어휘의 의미의 흐름에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칼럼 10>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두 학습자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은 어느 어휘의 뜻이나 사용 이유가 잘 잡히지 않을 때, 즉 “실제 생활에서” 문법적인 지식이
적용이 안 될 때, 너무 정확한 의미의 파악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사전이나 문법책을 파헤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보다 문제되는 표현이
들어간 용례들을 코퍼스나 사전을 통해 충분히 찾아 음미하면서 그 유사한 느낌의 흐름을 더듬어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좀 더 여유 있게 영어를 꾸준히
사용하면서 그 표현에 대한 자신의 감각이 더 성숙해지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겠죠.
미국에 어릴 때 이민을 가서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를 얼마 전 만나서 “~까지”를 말하는
until과 by에 대해 시험을 해 보았습니다.
<칼럼2>에서와 같은 괄호 채우기 문제를 줬는데 언제 until을 쓰고 언제 by를 쓰는지 기가 막히게 잘 맞추더군요.
그런데 막상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라니까 갑자기 쩔쩔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설프게 설명을 하기는 하는데 그 설명이 다른
경우에는 적용이 안 되고 그래서 그 설명을 취소하고, 수정하고... 네이티브들의 언어 생활에는 공식이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느낌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습자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물론
완전히 네이티브 같은 자연 습득을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자연 언어생활에 근접한 방법을 취할
수는 있습니다. 네이티브들이 언어의 느낌을 터득하는 것은 결국 실생활에서 접하는 많은 용례들을
통해서이므로 우리도 학습을 철저한 용례와 느낌 중심으로 전환하고 공식은 그 정체에 걸맞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보물을 생각하며 > 아들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간자란무엇인가? (0) | 2006.08.09 |
---|---|
[스크랩] 절때로변화하지않는100가지법칙 (0) | 2006.08.02 |
[스크랩] 인재육성7가지포인트 (0) | 2006.08.02 |
[스크랩] 옷입을때 배색방법 (0) | 2006.08.01 |
[스크랩] 변화를위한로드맵 (0) | 2006.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