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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 저런 마음/가슴에 남는글들

[스크랩] 폐업 황제

 

 

 

폐업 황제

 

명나라 270년 간의 역사는 열 여섯 황제를 세웠고
그 중에 명 군으로는 홍무제인 태조와 성종인 영락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선종과 효종이 있을 뿐이다
영락제는 조선 여인 공비의 몸에서 태어났고 효종은 야오족의 몸에서 태어난 황제이다
한족이 천시하는 蠻夷의 피가 그 두 황제 속에 흐르고 있었다

효종의 아들 무종 정덕제는 열 다섯 나이로 황제에 올랐지만
효종의 기대만큼 영명한 임금은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는 세상 모르는 어린 황제는 환관 유근을 필두로 한 여덟 명의 환관들에게 휩싸여서 유흥에 탐닉하여 걷잡을 수 없는 탕아가 되었다

놀란 노 신하들이 아무리  간해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행하기에 간한 노 신하들이 물러났다
효종 때의 李東陽만은 침묵을 지킨 고로 대 학사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정무 보기를 싫어하는 무종의 성격을 알고 환관 유근은 정무를 대신 볼 수 있는
백지 위임장을 받아서 정권을 거머쥐었지만
글을 잘 몰라 사위와 심복이 집에서 결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무식한 악당들의 손에서 나라의 정사가  제멋대로 요리되었다
관리의 지위는 뇌물 하나로 되고 정부는 환관 유근에게 아첨하는 무리로 들끓게 되었다
정덕 2년에 환관 유근은 거짓 칙령으로 방을 붙여 반대파를 숙청하고 효종 때의 이름을 날리던 대신들을 박해하여 변경에 귀양을 보내고 조정관리 300여명을 옥에 넣어 세상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모의하기도 하였다

정덕 5년에 유근의 죄상이 들어 나서 그 죄상대로 거리에 내다가 체형 후에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죽은 그의 고기를 다투어 한 조각에 은 일전에 사서 씹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사후에 몰수한 재산은 황금과 모든 것을 통합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당시 명나라 국가 세입의  십 년 치라고 하면 그가 오 년 동안 긁어모은 것이  가히 기하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수탈이 얼마나  가혹하고 악독했는가를 알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그대로  통한다
유근의 집에서 나온 많은 편지는 황제를 노엽게 했으나 이동양( 李東陽)의 조언으로 많은 사람을 구하였다고 한다 
그가 말하기를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유근에게 있었으니 유근을 맞서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이동양( 李東陽)을 절개 없는 사람으로 후세 인들이 규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그 말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는가!

지나간 역사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 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로서 한몫을 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유근이 황제가 되려고 모의 한 것이 나타나자 황제가 말하기를 가지려고 하면 가지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황제 노릇에 실증이 난 무종은 황제보다는 자유스러운 신하의 몸이 부러웠다
그리고는 방랑의 길을 떠났다
만리장성을 따라 서쪽으로 가서 황화를 건너 싼지의 국경에 다다르고
나아가 산서의 타이위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말을 타고 활을 메고 방랑하기 수 천리 험한 길을 넘고 비바람과 눈보라를 헤치며
따르는 사람들이 도중에 지치고 병들어 탈락해도 황제만은 지칠 줄 몰랐다고 한다

북경으로 돌아온 황제는 남경에 간다고 서둘다가 영왕이 모반했다는 말을 듣자 
친정 길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가 뒤집혀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병이 들어서  표방에서 죽었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글은 "지금 까지 모든 일은 내 잘못이다. 너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죄가 없다" 라는 글을 남겨서 그 죄를 한 몸에 지고 갔다
정덕 16년 그의 나이 삼 십 세다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는 황제를 폐업한 황제이다

대업이란 아무 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출처 : 블로그 > 언덕에 올라 | 글쓴이 : 아카시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