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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성경자료 모음

[스크랩] 바벨론 포로시대 역사에서 주는 두가지 교훈

바벨론 포로시대 역사에서 주는 두가지 교훈

  

 

기독교회의 근원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4:22에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는 아브라함의 후예들이요 약속에 따른 후사들(갈라디아서3:29)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도 유대인의 인적 자손이며, 초대교회 교인들의 대부분이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역사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초로 기독교회의 종교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1) 바벨론 포로시대의 역사

 

유대왕국은 다윗왕에 의해 주전 1,0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다윗왕의 40년 통치는 선정의 표본이요 비록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사울왕 시대에 비하여 태평성대의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다윗의 왕정은 이스라엘의 메시야적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후 유대왕국은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에 앗수르 오아에 망하여 식민지가 되었으며 남방 유대 또한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정복되어 수많은 엘리트들이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가운데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비롯하여 세명의 선지자들이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아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고 소수의 남은 사람들을 위해일했으며 마침내는 그들과 함께 애굽으로 피신하였습니다 

 

남 유대의 엘리트이며 왕족이었던 다니엘은 기원전 606년 느부갓네살의 1차 침공때 포로로 잡혀갔지만 명석한 지혜의 소유자로서 투철한 신앙심을 지켜 오히려 느부갓네살 왕으로 부터 신뢰를 받아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또한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의 그발강가에서 일반 포로들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에야 포로들은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며 포로생활의 뼈 아픈 교훈을 잊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포로와 망명생활은 엄청난 고통의 시간들이었지만 그들의 신앙적 관점에서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들을 구심점으로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사상을 정립하는 일이었으며 또한 율법과 회당제도였습니다

 

2) 유일신 사상의 정립

 

앗수르에게 정복을 당한 북왕국 이스라엘이 종교적 타협을 통하여 세속화 된 것과는 달리 남 유대는 포로생활 가운데 회개의 신앙을 가지며 철저히 여호와 유일신앙을 회복하였던 것입니다  지난날 그들의 삶이 우상을 섬기며 가나안의 잡신 숭배사상에 젖어 있었슴을 고백하고 철저히 회개함으로서 여호와 한분에게로 회복하는 영적 성숙의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다왕국이었던 다니엘의 생명을 건 신앙에서 말해주듯이 장소로서의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이 다른것이 아니라 유일신 하나님만을 신앙하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3) 회당제도(Syangogue)의 정립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과 성전은 종교적 최대의 유산이었으며 모든 것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사건은 바로 그의 설교가 이 두가지를 모두 다루는 과정에서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였으며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유일무이한 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전혀 가져갈 수 없었으며 그들의 예배는 무너질 위기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예배가 그들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에서 그들이 이 두가지 모두를 잃은 것은 가장 절망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온 성경을 배울 수 있도록 성전을 대체할 수 있는 회집 장소가 절실히 필요하였고 그러한 연유에서 나온 것이 회당(Syangogue)이라는 회집소였습니다

 

회당에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대신에 성경읽기와 강해를 통하여 메세지 중심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안식일에 모인 유대인들은 회당장이 소개하는 율법사에 의하여 성경교육을 받는 새로운 회당제도에 익숙해 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실때에 성전휘장이 우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은 성전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결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중심의 의식에서 회당에서 드리는 말씀 중심의 예배로 옮겨지는 현상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구약에서 부터 적용되어 예언되고 있슴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시의 섭리속에서 포로시대 흩어진 유대인(Diaspora)들은 가는 곳 마다 회당을 짓는데 열정적인 헌신을 다 하였습니다  바로 그 많은 유대인 회당들은 훗날 초대교회의 복음의 접촉지와 선교의 선터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의 왕국과 통치기간 - 북 이스라엘 왕국

 

이스라엘 왕국(기원전 931년경~기원전 722년경)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르우벤, 스불론, 시므온, 므낫세, 단, 잇사갈, 아셀, 에브라임, 납달리, 갓 등 열 지파가 분열하여 만든 왕국으로서 사마리아 지역을 중심수도로 삼고 있었으며,  209년간 존속해 19명의 임금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예후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나님의 계명을 잊고 우상 숭배를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주전 722년경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B.C.930년~B.C.722년)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누린 다윗왕과 솔로몬 왕 이후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중 한 나라가 <<북 이스라엘>> 왕국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통치 말기에 이방 여인들을 들여온 문제로 국운이 기울게 되었고, 이때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여로보암 1세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왕상11:29-31).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승리를 확신한 여로보암은 손을 들어 솔로몬 왕을 죽이기 위해 성급히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애굽 왕 시삭에게로 도피하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거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솔로몬의 아들 로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나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강요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국가 노역에 시달리던 백성들(12지파)중에 10지파(르우벤, 시므온,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에브라임, 므낫세)는 여로보암 1세를 초대 왕으로 추대하여 북 이스라엘왕국을 창건하게 되었습니다(왕상12:1-20).   초대 왕인 여로보암부터 마지막 왕인 호세아까지 약 208년 동안 9 왕조의 19명의 왕들을 걸쳐 이어졌으며, 마침내 B.C.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왕하17:22-23)

 
1. 여로보암 1세 (Jeroboam) 22년 주전 931년경-909년경 (열왕기상 12:20)
2. 나답 (Nadab) 2년 주전 909년경-908년경

(열왕기상 15:25)

3. 바아사 (Baasha)

24년 주전 908년경-885년경 (열왕기상 15:33)
4. 엘라 (Elah) 2년 주전 885년경-884년경 (열왕기상 16:8)
5. 시므리(Zimri) 7년 주전 884년경-884년경 (열왕기상 16:15)
6. 오므리 (Omri) 12년 주전 884년경-873년경 (열왕기상 16:21)
7. 아합 (Ahab) 22년 주전 873년경-852년경 (열왕기상 16:29)
8. 아하시야 (Ahaziah) 2년 주전 852년경-851년경 (열왕기상 22:51)
9. 요람 (Joram) 12년 주전 851년경-842년경 (열왕기하 1:17)
10. 예후 (Jehu) 28년 주전 842년경-815년경 (열왕기하 9:6)
11. 여호아하스 (Jehoahaz) 17년 주전 819년경-804년경 (열왕기하 13:1)
12. 여호아스 (Jehoash) 16년 주전 805년경-790년경 (열왕기하 13:10)
13. 여로보암 2세 (Jeroboam II) 41년 주전 790년경-750년경 (열왕기하 14:23)
14. 스가랴 (Zachariah) 6달 주전 750년경-749년경 (열왕기하 15:8)
15. 살룸(Shallum) 1달 주전 749년경-749년경 (열왕기하 15:13)
16. 므나헴 (Menahem) 10년 주전 749년경-738년경 (열왕기하 15:17)
17. 브가히야 (Pekahiah) 2년 주전 738년경-736년경 (열왕기하 15:23)
18. 베가 (Pekah) 20년 주전 736년경-732년경 (열왕기하 15:27)
19. 호세아 (Hoshea) 9년 주전 732년경-722년경 (열왕기하 17:1)

 

5) 남 유다

 

솔로몬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강대국을 만들며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적 번영을 누렸으나 솔로몬은 통치 말년에 육신의 정욕에 빠져,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경홀히 여겨 잊어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열왕기상11:11-13)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포하시고,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원수가 되게 하셨고(열왕기상11:14-22), 또 다메섹(수리아)의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열왕기상11:23-25).  그리고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서 여로보암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이 말씀대로 솔로몬이 죽자 여로보암 1세는 열 지파를 중심으로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를 중심으로 <<남 유다>>를 다스리게 되는 분단국가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쪼개어진 원인은 솔로몬의 범죄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남 유다 왕국의 초대 왕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을 비롯해서 남 유다의 모든 열왕들은 그 혈통이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다윗왕조>>로써, 아홉 차례나 왕조가 바뀌는 북 이스라엘왕국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남 유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범죄를 거듭하다가 주전 586년 신 바벨로니아제국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열왕기하25:1-12)(역대하36:17-21)

 

  • 1. 르호보암      (주전 930년-913년)
  • 2. 아비암         (주전 913년-910년)
  • 3. 아사            (주전 910년-869년)
  • 4. 여호사밧      (주전 871년-847년)
  • 5. 여호람         (주전 847년-840년)
  • 6. 아하시야      (주전 840년-840년)
  • 7. 아달랴         (주전 840년-835년)
  • 8. 요아스         (주전 835년-796년)
  • 9. 아마샤         (주전 796년-767년)
  • 10. 웃시야       (주전 791년-739년)
  • 11. 요담          (주전 750년-735년)
  • 12. 아하스       (주전 731년-715년)
  • 13. 히스기야    (주전 715년-686년)
  • 14. 므낫세        (주전 696년-642년)
  • 15. 아몬           (주전 642년-640년)
  • 16. 요시야        (주전 640년-609년)
  • 17. 여호아하스 (주전 609년-609년)
  • 18. 여호야김     (주전 609년-598년)
  • 19. 여호야긴     (주전 598년-597년)
  • 20. 시드기야     (주전 597년-586년)

     

     

  •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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