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면 말세를 열심히 전하는 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기뻐하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저 역시 도움 받고 있습니다. 분명 좋은 의도 일 것입니다. 그 의도를 좋게 생각하고 답답한 마음에 복음을 전파 하려는 용기를 느낍니다. 하지만 가끔 보면 그 선을 넘어 의도와는 달리 너무 자극적이고 두려움을 심는 글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 과하게 치우치면 안된다는 생각 입니다. 알기로 사실을 전하는 것이지만 너무 과한 자극적인 성격을 글은 오히려 성도들에게 불신을 더 키울 수 있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차 문제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와 세상의 교회를 불신하게 될 수 있습니다. 보통 말세를 전하는 글들은 교회의 타락을 자주 전합니다.
2차 문제는 혼란과 두려움 입니다. 믿음을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한 성도들은 십중팔구 이러한 두려움과 혼란을 가질 것 입니다. 짐승의 표 부터 해서 적그리스도의 환난까지 도저히 내가 견딜수가 없을 것 같다. 글들을 가만히 보니 지금 세상도 충분히 무섭다.
3차 문제는 두려움과 혼란속에서 돌파구를 이단쪽에서 찾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안믿으면 지옥가는데 글들을 보고 세상의 교회를 보니 다 타락한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당장 이라도 짐승의 표를 받아도 된다고 선동 할 것 같아 보이며 마음이 급해 믿기는 해야겠는데 또 사랑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습니다. 결국 자극적인 해결책을 던져주는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단이 있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줄 압니다.
말세를 과하게 전하는 경우와 비슷한 경우는 성도들이 전도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전도하는 방법 중 주위에서 보는 흔한 방법은 바로 "예수천국 불신지옥" 입니다. 하지만 이 전도 방법이 과연 좋은 믿음의 열매를 거두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분명한 진리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불신자들 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도 조롱하며 욕합니다. 너무 과하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마음에 우러나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 마음에 있는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천국 상급만을 노리며 입으로만 외치는 전도가 대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 상태로는 가족도 전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을 전도 했나요?
무조건 진리만을 외친다고 주님이 기뻐하실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길거리에서 외쳐서 그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 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죄가 될 것 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도의 실패에서 오는 우리의 마음 상태는 가끔 어떤가요? 그 사람 지옥에나 떨어지길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것은 죄가 아닐까요? 우린 교회에서 가르침 받은대로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니 사람을 함부로 저주해도 되는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욕해도 우리는 그들과 같아지면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를 바꿨다면 그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계명 "사랑"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과하게 말세를 두려움으로 전함으로 성도들을 두려움으로 믿게 만든다면 분명한 죄가 될 것 입니다. 두려움에 근거한 믿음은 그 뿌리가 약하여 금방 뽑히고 맙니다. 하나님도 두렵고 사단도 두렵기만 한데 내 주위에는 의지 할 곳이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보통 행위에 집착하게 되고 신앙생활은 그야말로 스트레스 그 자체 일 것 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말세 이야기를 접한 제 주위에 한 자매는 하나님은 인간을 왜 만들어서 이런 고통을 주냐고 울며 하소연 하는 것 까지 들어봤습니다. 이 자매는 하나님과 가까워 지고 싶어서 그것을 언제나 구하길 원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길 원하는 자매가 저런 고통을 당한 것 입니다. 너무 안타까워으며 보는 저도 힘이 들었습니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라도 잡고 있음을 감사하며 주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깊게 받아 들여야 한다. 이야기 하며 겨우 달래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건 제 이야기 입니다. 이야기 했던 사람은 저였고 두려워 하는 사람은 제 와이프 였습니다. 저는 별 이야기 하지 않은듯 생각 했지만 제 와이프는 악몽을 꿀 정도로 무서웠던 모양 입니다. 그 후로 저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기쁜지 그것을 이야기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으로 생각했고 과하지 않았다 생각 했지만 와이프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 분들께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그리고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세요. 빨리 결론에 이르려 하지 마시고 믿음의 과정을 오랫동안 심어주세요. 믿음의 뿌리가 약한 성도들은 혼란이나 두려움에 약하고 쉽게 요동합니다. 하나님께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것이 과연 그분이 원하시는 순종일까요. 우리의 순종은 사랑에서 비롯 되어야 옳은 줄 압니다. 교회에는 믿음의 사람들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정말 마음으로 믿기 원하는 성도들이 더 많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랜 과정을 거친 믿음의 뿌리는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단단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행위에 집착이 아닌 자연스러운 행함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해 갈 것입니다. 또 세상 환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진짜 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 입니다.
어떤 직분의 사람이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면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1순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너무 어렵습니다.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니 그게 쉽지 않고 불신자들의 공격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회자 분들께 하나 더 부탁 드립니다. 부디 성도들 한분 한분 하나님의 사랑이 진정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세요.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올바른 전도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길잡이라 생각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막중한 직책입니다. 누구보다 고민이 많아야 할 직책이지요. 말씀을 전함에 있어 항상 신중 하셔야 합니다. 교회안에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목회자가 그만큼 성도들을 잘 이끌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내가 높은사람 이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점차 교회안에서 성령님은 떠나실 것이고 결국 높은 곳에 서있는 목회자와 하나님이 아닌 그를 따르는 성도만이 남을 것 입니다. 이런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 목회자를 높일 것 이고 사랑이 아닌 두려움으로 목회자를 섬길 것 입니다.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성도가 목회자를 섬기는 이유는 그를 진정 사랑하고 도움을 감사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쓰자면 저는 말세를 전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보는 눈을 기르고 재림하실 예수님 맞을 준비를 기쁘게 깨어 준비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부탁 드릴것은 전하실 때 그 안에 본인이 세상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심이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이것이 힘들다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는 경각심을 키우고 믿음을 재점검 하고 다시 굳건히 하겠지만 누구는 두려움에 떨며 악몽을 꾸며 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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