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생각 저런 마음/가슴에 남는글들

[스크랩] 조용한 훈계

조용한 훈계


한적한 3호선 지하철 안. 갖가지 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바짝 세운 빨간 셔츠 깃, 끝이 뾰족한 구두에 착 달라붙는 교복.
학생다운 면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여학생 다섯 명이 큰 소리로 웃으며 떠들어댔습니다.

"야, 어제 한잔 꺾은 거 얼마냐? 뿜빠이 해야지?"
"얌마, 담에 네가 자리 또 만들면 되잖아,
뿜빠이는 뭐 얼어 죽을 뿜빠이?"
"그럴까? 야, 담에는 그 녀석들 불러내서 빼먹자."
"그래, 그래, 야후야! 와!!!!!!!!"

집중되는 주위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습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는
"에그그그, 철부지들 같으니......
저 부모들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작은 목소리로 혀를 찼습니다.

그때 칠십 전 후의 잠바차림을 한 할아버지께서
가까이 다가가시더니 한 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아주 조용하게 "학생, 정발산역이 아직도 멀었는가?" 묻자
매우 못마땅하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예." 한 여학생이 겨우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어르신네는
"초행이라 잘 몰라서 그래, 좀 가르쳐줄 수 없겠나?
학생은 어디까지 가지?"
"전 그 담에 내리는데요?"
"오, 그래? 잘 됐네. 정말 반갑네 그려,
학생 덕분에 이젠 맘 편히 갈 수 있어. 정말 고맙네.
나도 학생들 같은 손녀딸이 셋이나 있거든?"

할아버지는 곧 다른 학생들과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계속 이어지는 할아버지 말씀에
진지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숙이거나
끄덕거리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무척 아쉬웠지만 큰소리 한번 없이 다정하게 대하시던
그분이 내리려하자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야, 우리 오늘 당장 머리부터 바꾸자,
단발로. 염색도 빼고..."
"그래, 나도 내일부터 이 구두 안 신을 거야."
갑자기 지하철 안이 대낮같이 밝아졌습니다.

그 학생들에게도 누구나 갖고 있는 양면성은
있을 것이기에 내일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잠시 비뚤어진 것은 옳지 못한 어른들의
행동이나 주변 환경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 책임은 어른들 세계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