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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손에 오기까지/감동글 & 감동 기도문

[스크랩] 사도신경해설

사도신경 해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사도(使徒)”는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열두 제자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의 주교들이 옛날 사도 무리에 속하는 분들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초대 교회의 첫 주교들이다.
신경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신앙 고백이기도 한 것이다.

“신경(信經)”은 라틴 말로는 “상징(Symbolum)표시 신분 증명서 계약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3세기 성 치프리아노가 처음으로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이 믿음 조항을 입으로 고백함으로 곧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신분 증명서 또는 상징으로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신경이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에서 쓰고 있는 것은 세 가지 신경뿐이다.
그 첫째는 “사도 신경”이요,
둘째의 것은 아타나시오 성인의, 성삼 교리(聖三敎理)가 골자로 되어 있는 “성 아타나시오 신경”이며,
셋째의 것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다.

여러 개의 신경이 생기게 된 까닭은, 옛날부터 가톨릭의 신앙 개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자,

이들을 거슬러 우리의 산 신앙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신경을 외우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가 된다.

"사도신경”에는 열두 개의 믿음 조항이 들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열두 사도가 하나씩 만든 것이므로 사도신경이라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배운 것을 그리고 그들이 믿고 그들이 전해준 교리 중에
가장 바탕이 되는 믿음 조항이 여기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 한다.
이것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교리이기 때문에,
성경과 성전(聖傳)에 그 토대를 두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와 함께,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던 기도문이며,
특히 신입 교우가 세례(洗禮)를 받을 때, 천주교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로서,
이것을 성세 예절 중에 공식적으로 바쳐 내려오고 있다. 오늘도 그러하다.
이것은 가톨릭의 믿을 교리 편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어야 한다.
교회는, 진심으로 “사도신경”을 한 번 외우는 사람에게 5년 은사를 베풀어 준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하늘과 땅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 세상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의미한다.
“창조주(創造主)”란 세상 만물을 아무 것도 없는데서 만드신 어른이란 뜻이다.
“나는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는다.
” 즉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또한 하느님께서 아무 것도 없던 거기에서,
재료도 없이 만물을 만드신 것을 믿는다.
물론 세 위를 가지신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나,
성부를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와 같이 생각해서 흔히 성부께서 창조 사업을 한 것으로
말한다. 집이 있으면 집을 지은 사람이 있고 그림이 있으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듯이,
이 넓은 우주, 해와 달, 별 그리고 온갖 식물 동물, 이것들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을 만드신 우주의 창조주, 조물주가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외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란 말이다.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세상을 구속하는 분(救世主)”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기름으로 거룩해진 임금 혹은 대사제(大司祭)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밖에 엇는 성부의 아들을 믿는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동정(童貞)”은 아이의 몸이란 뜻으로 처녀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천주 제삼위(第三位)이신 성령의 힘으로,
처녀인 마리아에게 잉태(孕胎)되어 사람이 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또한 사람이시다.
자녀의 잉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만 되는 것이 자연 법칙이지만,
예수는 하느님이시니까, 사람과 달리 천주스런 방법으로 즉 성령의 힘으로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다니, 도무지 알아듣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막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본시오 빌라도”는 그 때 그 지방 총독의 이름이다.
그가 총독의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잡혀 십자(†) 모양으로 된 형틀에서
죽으셨다. 그 때의 형법에는, 십자가형의 사형이 가장 중한 것이엇다.
어떤 이는 이르기를, 예수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하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고,
거룩한 시체는 땅에 묻혔었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다음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는 천당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양의 성조(聖祖:예컨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곳을 “저승(古聖所)”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분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분의 영혼은 저승에 가시어,
그 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양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죽으신지 사흘째 되던 날, “죽은 이들 가운데서”,
즉 죽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금요일에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금요일,토요일을 거쳐 주일 아침에 다시 사아나셨다.
이것이 예수 부활(復活)이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약을 가지고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글나죽어 땅에 묻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으므로,
이것은 곧 당신은 사람이 아니요 하느님이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즉시 부활하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죽으셧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나중에 부활될 수 잇다는
보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에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다.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오른편에 앉으시며”라 함은 성부님 바른편에 높은 자리를 정해 앉으신다는 말이다.
하느님이신 성부께는 바른편 왼편이 없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가득히 누림을, 그 때의 풍속대로 말했을 따름이다.
즉 제일 높은 사람의 바른편에 그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앉았었다. "앉으시며”라 함은,
예수님께서 마치 임금이 어좌에 앉음과, 심판관이 판석에 앉음같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시고 천국 어좌에 앉으시어,
공심판 때 심판관이 되실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에 하늘에 올라가시어 성부님 바른편에 앉으셨는데,
이것을 예수 승천(昇天)이라 한다.
하늘에 오르신 것은, 첫째, 세상에서 모든 고난을 받고,
그 보답으로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요, 둘째는,
천당에 우리 자리를 마련하시기 위함이요, 셋째는,
우리를 위해 성부께 도움을 구하시기 위해서이고,
넷째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기 위함이다.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성부의 영광을 누리시다가, 세상 마칠 때 하늘의 구름을 타고
세상 만민을 심판하러 오시겟다고 약속하셨다.
“그리로부터”라 함은 성부 바른편의 높은 어좌로부터 심판관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산 이”라 함은 세상이 끈나는 그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도 한번은 죽었다가 살아나게 마련이다.
“죽은 이”라 함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래 죽은 모든 선자, 약자를 다 말한다.
이 밖에 다른 뜻으로, “산 이”라 함은 은총 지위에 있어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뜻하고, 죽은 이라 함은 대죄(大罪) 중에 있어 지옥을 차지할 사람을 말한다.
심판관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만인 앞에서 각자의 선행과 악행을 판단하시어,
착한 이는 천당으로, 악한 이는 지옥으로 각각 판결하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되는 것이므로 공심판(公審判)이라 하고,
사람이 죽은 다음 하느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을 사심판(私審判)이라 한다.


성령을 믿으며
천주 삼위(三位)의 한 분이신 성령께서 참으로 계심과,
성부 성자와 같이 하느님이심을 믿는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보편된 교회(敎會)”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믿을 수 있는 천주교회를 말한다.
천주교회는 거룩하신 하느님이 세우신 것이니까 거룩한 교회이며,
하느님은 또한 모든사람의 아버지이시므로, 이 교회는 모든 이가 믿어야 하는
보편된 교회임을 우리는 믿는다.
“성인”이라 함은, 세상에서 하느님을 열심히 공경하고, 남에게 좋은 표양을 주어
거룩하게 산 분들이, 죽은 다음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
그가 확실히 천국에 있다는 것이 판명된 다음, 교회에서 “성인”이라고 특별히
선언한 분을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성인은 천당, 연옥, 은총 지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킨다.
“통공(通功)”은 공(功)을 서로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는, 공이 많은 자가 공이 적은 자를 공으로 도와줄 수 있고,
힘이 모자라 공이 적은 자는 힘 있는 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교회”, 즉“모임”은 넓은 뜻으로 천당, 연옥, 세상
이 세 가지 모임을 말한다. 그러니까, 천당에 있는 영혼은 불쌍한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 주고, 연옥에서 보속하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이리하여 이 세 모임은 서로서로 도와 주고 있는데, 이것을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 한다.

죄의 용서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첫째 이유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고자 함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 사업을 세상 마칠 때까지 맡아 보는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 안에 죄를 용서하여 주는 권리를 주시지 않앗다면,
예수님의 구속 사업은 헛된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바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하시면서
똑똑히 죄를 용서하는 권리를 주셨다. 이것을 모르는 이들은 흔히,
천주교회에서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고 한다.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리로써 죄를 용서하여 줌을 믿는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한 평생 산 다음 그 육신이 죽지만, 나중에 세상이 끝나는 날,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 자기의 영혼과 결합한다. 이것이 육신 부활이다.
의학 박사는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 생명을 만드신 그분은 없었던 생명을 만드신 분이기에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육신과 영혼이 다시 결합된 사람은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기를 싫어하낟.
그런데 이 세상에서 죽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바람은,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이 마친 다음 참으로 이루어진다. “이리하여 그들은(악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마태 25,46) 하셨으니, 그 때 죄인은 지옥에서 영원한 벌 중에서 살 것이고,
선인은 천당에서 영원한 복락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또 이르시기를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16) 하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희망으로 삼고 하느님을 공경한다.
우리가 마땅히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할진데,
이 모든 것이 착하신 하느님의 말씀이고 보니, 굳이 믿을 따름이다.

 

 

 

사도신경

 

 

1. 사도적 기원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를 요약하고 있는 기도문이며 동시에 신앙고백문이다. 우리는 매 주일과 대축일미사에서 <사도신경>을 공동으로 고백하며, 특히 세례성사에서 이 신경을 토대로 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사도신경>의 명칭에서 '사도'란 표현은 이 신경이 주님의 12사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인가? 4세기 말경에 루피누스는 <사도신경>을 주석하면서 사도적 기원을 주장하였다.

 

즉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러 떠나기에 앞서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신앙의 기본 골격을 정했다는 것이다. 성 암브로시오도 이에 동조하면서,한 걸음더 나아가 신경의 12항목과 12사도를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미 6세기 경에는 12사도가 각각 한 항목의 신조를 고백하였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중세기의 서방교회에 별다른 이의 없이 전해져 왔는데, 페라라 공의회(1438년)에서 에페소의 대주교 말쿠스 에우제니쿠스는 그러한 사도신경과 그 사도적 기원에 대해 동방교회에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하여 서방교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근세기에 와서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그 결과들에 의하면, 사도신경에 나타난 신조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사도신경은 여러세기에 걸쳐 신앙공동체의 전례기도문과 세례예식의 발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문과 성삼에 대한 신앙고백문이 종합되는 과정을 거쳐 6세기에 와서 비로서 오늘의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2.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핵심 내용은 ’나자렛의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세상에 태어나신 천주 성자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선포한 핵심내용은 나자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는 빠스까 사건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이 빠스까 신비에 부언하며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선포하였다. 『그것은 당신의 아드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태어나셨으며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이후 권능을 지닌 하느님 아들로 책봉되신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1,3-4) 신약성서 안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이 찬미가 형식으로 발전되어 여러번 표현되어 있는데,필립 2,6-11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미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찬미가들은 대부분 당시의 교회공동체가 전례기도 안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과 세례와의 연결은 사도8,27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에티오피아 여왕의 고관내시가 필립보 사도로부터 세례를 받기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예수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나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했다. 한편 박해시대에는 희랍계 신도들 사이에 ’물고기’암호가 사용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랍어 표현에서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을 모으면 ’물고기’란 단어가 되기때문에 이 약어는 하나의 휼륭한 신앙고백이 되었다. 2세기말의 신자들사이에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며, 요즈음에도 제대나 제의에 물고기가 그려져있는데 우리는 그 안에 담겨있는 신앙고백의 깊은 뜻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3. 신경과 세례와의 관계

 

마태오 복음서 끝에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푸시오.』(마태 28,19)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초대교회부터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왔다. 성 유스티노 순교자는 152년에 쓴 [제 1 호교론] 61장에서 세례 지원자는 『만물의 주인이신 성부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성삼위의 이름에 각기 주된 역사하심의 내용이 첨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215년 경에 로마에서 편집된 [사도전승] 21장을 보면 예비자는 성삼위께 대한 신앙고백과 함께 세번의 침수(侵水)로 세례를 받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매번 침수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신앙고백문은 오늘의 사도신경과 비교해 볼 때 몇가지 단어가 빠져있을 뿐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또 떼르뚤리아노가 2백년 경에 저술한 [이단자 규정론] 13-14에도 [사도전승]에 나오는 신앙신조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삼위께 대한 신앙고백문 중에 성자께 관한 대목에는 성자의 강생,수난,죽으심,부활,승천,성부 오른편에 오르심,세상종말에 심판하려 오심등 이미 독자적으로 발전되어온 고백문이 삽입되었고 이렇게 하여 종합적인 신앙고백문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종합적인 고백문은 특히 세례성사에서 핵심인 침수예식과 연관되어 발전되었는데 이것은 수세자가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되는 역할 외에 가장 기본적인 신조(信條)를 받아들이고 공적으로 고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매 주일에, 그리고 특별히 부활밤 전례의 세례갱신식에서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은 우리의 세례은총을 기억하고, 그 때 고백한 내용을 충실히 믿고 생활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출처 : 사도신경해설
글쓴이 : 항가리부다페스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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