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적으로 십일조는 율법시대에 주어진 것인데
지금은 율법이 완성된 복음의 시대요 은혜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십일조만 시행하고 할례는 시행하지 않나요?
여성들은 예배 시간에 왜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나요?
2. 교회는 성전이 아니고 예배는 제사가 아니며 헌금은 제물이 아닙니다.
요즘도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등을 하고 있나요?
3. 아브라함이 드린 것은 자신이 거둔 땅의 소산인 농작물이나
소유한 가축에서 드린 것이 아니고 전리품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드린 것은 결코 전리품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개인의 소유에서 나온 소득에 근거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은 오직 유일회적인 일이요
정기적으로 행한 구약시대의 십일조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4. 야곱의 서원은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 한 것이고 반드시 ‘If~’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대로 그가 실지로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는 성전도 제사장도 율법도 생기기 전이고요.
5. 구약시대에 드린 십일조 품목에 ‘돈’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돈만 받지요^^?
6. 구약시대에도 십일조 의무를 면제 받은 직업들이 있습니다.
수확을 위한 바구니를 만든 상인들, 들판에서 일하는 종들이 신는 신발을 만든 사람들,
추수 수확을 위해 마차를 만든 목수들, 들판에서 일하는 종들이 물을 길어 나르도록
물통을 만든 도자기 공들, 들판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외투를 만든 여인들,
임금을 받고 들에서 일한 종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였기 때문에 십일조 뿐 아니라 성전세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7. 헌금은 반드시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마 10:8하, 마 5:42, 롬 15:26-27, 눅 6:38 등)
즉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8.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유다가 쓴 성경에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전무 합니다.
즉 초대교회는 이미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유럽 교회들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영국 교회도 공식적으로 십일조는 언급조차 않고 있어요.
물론 아프리카나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 온 이들 중에 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도 사실은 위의 내용들을 잘 모르고 있지요.
유럽 성도들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십일조를 중심으로 헌금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 인건비, 유지비, 구제비 등 실질적인 재정관련 사항들은
‘십일조’를 강조함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목회자들이 구체적인 재정 필요 사항들을 교인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하는 데 한국 교회처럼 그렇게 강조하니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지요. 저희 교회는 십일조 강조 하나도 안하고
저도 지금 십일조 안 해도 할 일 다하는 교회랍니다.
구제와 선교를 위해 적극적으로 헌금을 하기 때문에 담임목사님은
제 기억으로 지난 5년 동안 꼭 한 차례
그것도 스쳐 지나가는 말로 헌금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님께서 참조하신 성경주석을 쓴 이는
위의 기본적인 사실을 모른 채 의례적인 논리를 따라 쓴 것 같습니다.
한국도 머지 않아 십일조 문제를 극복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영국 교회도 100여 년 전까지는 했으나 지금은 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태의연하게 대처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국 교우들은 유럽 교회는 죽었다고 하는 데 그런 측면도 있으나
영국은 ‘병든 한국 교회’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살아있는 교회랍니다.
십일조는 무조건 소득의 십 분을 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반드시 소출과 가축에서 드렸고
직업에 따라서 면제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어부와 목수가 그 대표적인 예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도 십일조를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십일조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으며 성전 제사가 있을 때 유효했던 제도로서
초대교회 때는 시행하지 않다가
중세에 들어 교회가 제도화 되면서 다시 시행된 제도입니다.
영국과 서구 교회는 더 이상 십일조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이는 믿음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성서적인 근거 문제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십일조의 근본 취지인 극빈자, 장애인, 노인, 어린이, 여성
그리고 사회보장 및 복지에 대해 깊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도 맹목적으로 십일조를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취지와 뜻을 밝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 한다고 복이 굴러 온다거나 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 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감언이설에 불과 합니다.
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십일조와 헌금에 대해서는 그토록 용감하신지......
아무리 가난하게 자라고 없이 살아와서 돈에 한이 맺혔다고 해도
성서를 정직하게 읽고 해석하고 교인들을 바르게 교육해야지
그처럼 혹세무민하니 참 답답하네.
차라리 사업을 하면 돈을 원없이 벌 수도 있을텐데
왜 하필이면 목회를 돈벌이의 수단 쯤으로 여기려 드는 지
팔짝 뛰고 뒤로 나자빠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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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득권의 욕심과 이익을 대변하는 왜곡된 성경해석이나 잘못된 설교를 지적하고
성경이 적시하고 있는 정확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참된 목회요,
진리말씀으로 영혼을 자유케하는 고귀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사제중심의 브로커 종교체제나
사제만 행세하고 공공연히 착취하는 노예종교에서 벗어나
진리안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거룩하게 개혁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만약 십일조를 강조한다면 초대교회(초대교회는 십일조가 없었슴)의 연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불완전한 사람이나..혹은 사제나 교주에게 무조건 아멘하는 것이나
덮어놓고 맹종하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뱀같이 지혜로와야 합니다. 무엇이 자유케하는 성경적 참진리인지
무엇이 율법과 제도와 사람에게 종 노릇하게 하는 사람의 계명인지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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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잘못하면 책임지고 물러나는 문화가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미친년’, ‘빤쓰’, ‘젖꼭지’ 이런 어휘를 쓰며 (전광훈 목사)
강단에서 저속한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 목사가 여전히 고개를 내밀고 다니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소재한 사랑제일교회 담임이다.
그는 예장대신총회 부서기요,
청교도신문 발행인, 청교도영성훈련원(청교도말씀학교)원장,
아세아신학대학원(임택권 총장) 교수, 한기총 이대위 부위원장,
청교도 콜 센터 운영자로서 소문난 부흥사이다.)
그리고 선교지 미성년자 여학생에게 수면제 먹여 강간한 목사가
‘그래도 선교사로 계속 일하고 싶다’며 떠들며 교단의 비호 속에 숨어 지내고 있고,
간통죄를 저질러놓고는 ‘그런 적 없다’며 말했다가
그것이 추후에 거짓말로 드러나 망신살을 산 목사도
전혀 문제 없이 목회직을 수행하고 있다.
잘못 저질러 놓고도 면피하면,
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 이렇게 될 경우 이 목사들은 목회직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할 기회가 사라진다.
목사도 잘못하면 쫓겨날 수 있다는 인식과 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관행이 확립될 때 한국교회는 개혁의 탄력을 받을 것이다.
국회의원도 취중 실수로 인해 정치적 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세상이다.
국회의원이 이 정도라면 목사는 그보다 더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종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 아닌가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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