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착각의 연속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긍정을 최대화함으로써 자기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지요. 따라서 착각은 자기존재가 있게 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긍심을 가져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착각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물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주관적 심리현상 즉 동일시 현상입니다. 인기스타들의 오빠부대가 바로 동일시 현상의 반응이고, 생활고로 동반자살하게 되는 이유도, 부모가 자식을 자기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릴 때 특히 사춘기에 누구나 경험하는 현상이지만 자기 얼굴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 등의 스타와 동일시하여 예쁘고 잘났다고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점점 성장하면서 그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에는 다행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스타와 동일시한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인기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착용했던 옷, 액세서리, 유행하는 말과 행동 등을 따라하게 됩니다. 이를 정서공유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은 기업대로 이런 동일시현상을 이용하여 TV 협찬과 스타마케팅 기법을 상술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착각을 보편화하고 일종의 사회적 문화로 정착하여 병리적 현상이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육군 병장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줄 알고, 아가씨들은 절대 아줌마가 안 될 줄 알고, 연애하는 미혼남녀는 결혼만 하면 깨가 쏟아질 줄 알고, 시어머니들은 아들이 결혼하고도 며느리보다 자기를 먼저 챙기는 줄 알고, 장인 장모들은 사위들이 처가 집 재산에 관심 없는 줄 알고, 아내는 자기 남편은 젊고 예쁜 여자에 관심 없는 줄 알고, 꼬마들은 울고 떼쓰면 다 되는 줄 알고, 엄마들은 자기애는 머리는 좋은데 열심히 하지 않아서 공부 못하는 줄 안다는 이야기. 이는 웃고 넘어가는 정도의 가벼운 우스갯소리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일과성으로 넘어가기에는 아깝습니다. 착각합니다. 자신이 국회의원과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군사 독재정치시절 대통령은 대통령의 생각이 헌법보다 우선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를 자기 것인 냥 생각하여 국가경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가 돈을 마음대로 횡령하여 지금도 그 돈을 반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무원도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상전으로 착각하여 비리와 부패의 병리적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이사가 회사공금이 자기 것인 냥 마음대로 다루다가 횡령혐의로 구속되는 것은 회사공금을 개인 돈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두고 의과대학과 신학대학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으니까요? 목사가 되기 위한 코스로 신학교가 여기저기 설립되고 그 결과 신학생 또한 과잉 공급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종으로 쓰여 지겠다고 서원하고서는 그런 신학생들이 낮은 곳으로 가지 않고 모두들 도시 교회, 대형 교회 안에서 거룩한 목사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공급은 과잉인데 수요는 없으니 목사실업자가 많은 건 당연하겠지요.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농촌 교회에서는 교육전도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농촌 교회도 3D 업종처럼 취급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목회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목양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아 예배를 주관하는 것은 거룩한 직분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목사란 사람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목사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이고,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는 직무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대신 성도를 섬기며 발을 씻도록 머슴으로 세워졌습니다. 잘 나서 마치 하나님 대변인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동일시한다는 것이지요. 목사의 착각 중에 가장 심한 착각이 바로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공식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일시 현상이 관습화, 교리화되어 버렸습니다. 어찌 목사가 생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는지 참으로 이상합니다. 뜻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착각의 정도는 목사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납니다. 목사의 의식구조 속에는 성도들과 다른 소명의식이 있고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는 선민의식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할 때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강력한 최면에 휩싸여 메시지를 선포하게 됩니다. 물론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적인 메시지로 선포되는 것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것입니다. 마치 알곡 속에 가라지가 있듯이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알곡보다 가라지가 더 많아 공중에 날리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목사들의 의식구조에는 어떤 성도에 대한 축복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목사의 생각이 곧 그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주스런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저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을 줄 압니다. 대신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다는 아주 강한 착각현상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지만 성경의 메시지를 오남용 하여 설교를 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처럼 협박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메시지이기보다는 평소에 그 성도에 대한 호감과 미워함의 결과인 목사의 사사로운 생각일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목사의 목회방침에 협조하지 아니하면 목사들은 불순종했다고 하여 그를 멀리하거나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처럼 설교하고, 목사의 말에 잘 따르는 성도는 자기측근으로 인식하여 가깝게 대하고 칭찬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으로 설교를 하는 것. 이것은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이자 보편적 정서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세상의 조직이지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적 조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매스컴에 등장되는 교회 문제는 바로 그렇게 해서 발생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마케팅, 다단계조직이나 더군다나 조폭조직이 아닙니다. 조폭의 보스가 육적 폭력과 공갈협박으로 똘마니들을 군기 잡는다면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교인들에게 영적 폭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이런 영적 폭력으로 교인 길들이기도 하고 교회정치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회 세계에서는 성질 있는 목사가 목회를 성공한다고 합니다. 실제 성질로 목회 성공한 케이스가 있기도 하고요. 왜 교회가 복음으로 공동체가 되려 하지 않고 온갖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죄성이 가득 찬 테크닉으로 조직의 효율성만 높이고 성질로 자신만의 목회아성을 쌓으려하는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감격처럼, 즉 초심으로 목회할 수는 없는지요. 교회와 성도를 소유하려기보다는 구원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하나님나라가 확장되어지는데 함께 동역할 동역자 목회를 할 수는 없는지요. 나를 따르라는 일방적인 전투 목회를 지양할 수는 없는지요. 장애물만 됩니다.. 제발 목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내편으로만 착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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