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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보물을 생각하며/ceo 가 되고픈 아들에게

[스크랩] 4조원 소리없이 기부 … 아름다운 부자 [중앙일보]

4조원 소리없이 기부 … 아름다운 부자 [중앙일보]
`돈 많아도 두 켤레 신발 한꺼번에 신을 수 없다`
포브스 선정 세계 23위 부자였던 찰스 피니
집도 자동차도 없이 수십 년간 나누는 삶

1988년, 한 기업인이 13억 달러의 재산으로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부자 순위 23위에 올랐다.

그는 명단과 함께 실린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부호 명단에서 빠지고 싶다면 돈을 잃거나, 남에게 줘버리거나, 죽는 방법밖에 없다."

그는 변호사에게 이런 쪽지를 건넸다. "첫째 경우는 생길 것 같지 않고,

 셋째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둘째만 남는다."

이 둘째 방법을 실천에 옮긴 이가 세계적 면세점 체인 DFS의 공동 창립자인

찰스 피니(76.사진)다.

 

그는 지금까지 26억 달러(약 2조6000억원)를 학교와 병원에 기부하는 등

모두 40억 달러(약 4조원)를 자선재단에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본인 명의의 집도, 자동차도 없이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다.

팔뚝에는 15달러(약 1만4000원)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식사는 뉴욕의 허름한 식당에서 해결한다. 비행기도 이코노미 클래스만 탄다.

최근 한 언론인이 피니의 삶을 다룬 책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를 펴내면서

그의 '베푸는 삶'이 미국인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31년 뉴저지주의 아일랜드 이민자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남에게 잘 베풀며 살았으나 가난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제대한 뒤 코넬대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했다.

학교를 마치고 선원들에게 주류를 파는 사업을 시작한 그는

호텔에서 일하던 대학 동창 로버트 밀러와 함께 면세점 사업을 해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82년 피니는 보유 주식의 일부를 그가 남몰래 세운 애틀랜틱 자선재단에 넘겼고,

96년 프랑스 기업 LVMH로부터 면세점 인수 제안이 들어오자 본격적인 자선활동에 나서기 위해 일에서 손을 뗐다.

이를 계기로 피니의 자선활동은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97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는 모두 6억 달러(약 5600억원)를 자선단체에 익명으로 기부해

'얼굴 없는 천사'로만 알려졌지만, 면세점 체인을 인수한 업체 관계자가 회계장부에서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 내역을 발견하고 언론에 제보한 것이다.

그는 당시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기부 이유를 밝힌 뒤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본지 97년 1월 26일자).

피니는 그 뒤에도 미국은 물론 베트남.아일랜드 등의 자선단체에 기부를 계속했다.

그는 사후 기부가 대세이던 미국 사회에 '살아 있는 동안 기부하기'의 모델을 제시해

빌 게이츠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소리도 듣는다.

피니는 자신과 아내, 다섯 자녀에게 필요한 일정 액수의 돈만 남기고 모두 기부했다.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막내딸 다이앤은 자선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피니는 자신의 검소한 생활과 관련, "15달러짜리 시계도 잘 가는데 왜 비싼 게 필요한가"라며

"드넓은 저택이나 문이 여섯 개 달린 캐딜락은 나의 체질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설적 자선사업가인 앤드루 카네기가 했던 "부유한 죽음은 불명예스럽다"는 말을 늘 새긴다고 한다.

백일현 기자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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