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신약 핵심공부

신약성서의 구약인용 구절들

신약성경의 구약인용 구절들

리챠드 프란스 (RICHARD FRANCE)
예수님의 말씀만 해도 실제로 40여건의 인용구절을 포함하고 있고 바울의 서신들은 거의 100건에 달하며 신약 전체에도 250건 정도의 인용구절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축자적인 인용구절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약에는 그 의미가 너무나 분명해서 아무도 그 의도적인 성격을 부인할 수 없는 암시적인 언급들이 훨씬 더 많다(예수님의 말씀에만 70건 정도 나오고 신약 전체에는 1,000여건에 달한다). 이 암시적인 언급들 역시 축자적인 인용구절들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 이상의 문제에 있어서는 학자들마다 그것들을 하나의 의도적인 언급으로 계산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광범위하게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신약 저작자들은 구약에 아주 깊이 파고 들어갔기 때문에 구약의 언어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전달되었다. 예를들면,팔복(마5:3-10)은 실제적인 구약인용구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나 거기에는 분명히 두건의 축자적인 구약의 언급들이 있고(3-4절은 사61:1-3을,5절은 시37:11을 비치고 있다) 또 실제적으로 각 문구들을 구약성경과 대강은 대조시킬 수가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공식적인 구약인용구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 계시록이 구약의 구절들,특히 다니엘서, 에스겔서,스가랴서 등의 구절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약의 내용에 대한 의도적인 언급과 무의식적인 사용의 사례들을 구분짓는 것은 주로 취미의 문제라 하겠다.

    구약의 예언들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은 BC 9세기의 예언자 스가랴. 산 프로포스트작. 프라도국립미술관 소장.

      신약 저자들은 어려서부터 구약을 알고 사랑하며 그것에 그들의 생각과 삶을 의지하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또 그 말씀은 그들의 일상적인 어휘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인용구절들과 언급들이 반드시 신학적인 의도의 결과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그러나 상당히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는 그 이상의 내용들이 문제가 된다. 신약 저자들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하는 것과 더 나아가 교회의 성장에서 계속 성취되어가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데서 기쁨을 찾고 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는 도입형식에 따른 일련의 인용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다(마 1:22-23,2:5-6,15,17-18,23 등).

      어떤 구절들은 신약 저자들이 특별히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예:시110:1,4; 사53;단7:13-14).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증언집"(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예언들을 모은 책)이 초대교회안에 나돌고 있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어떤 구절들이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그의 교회에 대한 예언들의 풍부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자료에 호소해서 설교도 하고 토론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장차 올 사건들에 관한 묘사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전혀 예언적인 내용이 아닌데도 신약 저작자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성취된" 것으로 간주한 구절들에 대한 언급도 못지 않게 흔하다 예수께서도 흔히 그와 같은 언급들을 여러번 하셨다(예로 마 12:3-6,40-42,13:13-14,막 7:6-7을 보라).그러나 그 방법은 히브리서에서 가장 완전한 발전을 보았다. 히브리서에 보면 모세 율법의 전체 의식이 다 참 대제사장이시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원리는 "예표론"으로 알려저 있다. 이 예표론에 의해서 구약의 인물들이나 제도를 혹은 사건들이 장차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실 결정적인 사역의 "예표들"로 해석이 된다. 예표론의 목적은 예수께서 구약의 명백한 예언들만 아니라 그 전체의 구조까지 어떻게 성취하셨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수세기에 걸쳐 진행시켜 오신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실현으로 확정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참 이스라엘이시요 따라서 그의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 안에서 이스라엘의 소망과 목적이 성취를 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이용된다.

      그러므로 신약의 구약인용 목적으로 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에서 모든 것이 다 성취를 보았고 구약이 내어다 보던 "마지말 날들"이 이미 이르렀으며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인용의 정확도

      신약의 인용구절들을 구약의 본문들과 면밀히 대조해보면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어법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개는 미미하나 때로는 큰 차이가 난다. 몇몇 경우들에 있어서는 그 원인을 우리에게 전하여진 구약의 본문이 그 점에서 잘못된 반면에 신약은 바른 본문을 보존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는 신약의 저작자들이 그 원인을 찾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본문들이 아람어 탈굼 (Targums)을 반영시켜주기도 한다. 본문과 자주 차이가 나는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경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경우들에 있어서는 신약 저작자들이 그들의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하여 서슴없이 원문의 어법을 바꾸었다는 것이 그 설명이다. 그 목적은 본질적인 의미를 바꾸는 데에 있지 않고 필요할 경우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자주 청중들에게 "확실히 깨우쳐 주고"또 그것을 그들의 특정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의 본문을 풀어서 전달하듯이 그 뜻을 보다 분명히 밝혀주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바 자유스러운 성경본문의 인용을 그들이 서슴없이 행한 이유는 그들이 성경의 감동으로 구약을 특히 그들의 상황에 철저히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고 또 그들의 독자들에게 이 사실을 깨우쳐 주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