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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세계 의 역사 속으로

교회사학교 38

삼위일체론과 관련된 신학논쟁 ‘3명의 캅파도키안들’
국제신대 라은성 교수의 재미있게 배우는 교회사학교 38
 
1.1. 삼위일체론

1.1.1. 3명의 캅파도키안들

“3명의 캅파도키안들은 바실과 두 명의 그레고리입니다. 그들을 가리켜 각각 ‘대 바실(330~379)’, 그의 동생 ‘닛사의 그레고리’(약 386년경 사망), 그리고 바실의 평생 친구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약 390년경 사망)라고 부릅니다. 먼저 바실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1.1. 바실

▲대 바실의 모습
“바실은 동방교회의 수도원 운동의 규율을 정한 분으로, 그의 누님인 마크리나의 신앙의 도움으로 탁월한 신학자로서 정통 신앙을 지켰고 신실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329년 터키 지역의 카이사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바실은 조모 마크리나, 부친 바실, 모친 엠멜리아, 남동생 닛사의 그레고리, 세바스테의 피터, 그리고 나우크라티우스, 그리고 누님 마크리나로 구성된 정말 환상적인 가족을 지닌 자입니다.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수사학을 배웠고, 카이사리아에서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를 만났고, 그리고 아테네로 건너가서 앞으로 황제가 될 율리안을 사귀기도 했습니다. 다시금 카이사리아로 되돌아온 바실은 수 년에 걸쳐 그동안 배웠던 수사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인생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누님 마크리나의 신앙의 모범과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권면을 받아들여 수도원적이고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마크리나에 관해서는 ‘3명의 캅파도키안들’에 이어서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수도사들의 기본적 삶을 위해 55개항의 ‘대규율’과 313개항의 ‘소규율’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그에 대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통 삼위일체론과 성육신 신앙을 고수했고 우리들에게 전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저술활동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또 서방교회의 수도원 운동을 시작한 베네딕트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370년 그는 카이사리아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아리안 이단은 교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황제 발렌스 역시 아리안을 지지하고 정통 니케안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실은 자신의 최우선 임무는 정통 니케아 신앙을 고수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의 타협하지 않는 완고한 자세는 동방의 장관 모데스투스와 황제 발렌스에게 위협적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와 자신의 교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모데스투스는 바실에게 공갈협박하며 뜻을 굽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관련된 내용을 그의 남동생인 닛사의 그레고리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내용을 두 분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치 연극 대사를 읽는 것처럼 말입니다.”

“너의 주권자의 종교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에 굴복하고 순종하겠느냐?”

“그것은 나의 진짜 주권자의 뜻이 아닙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께 보잘 것 없는 자인 나 역시 어떤 피조물에게도 경배를 드릴 수 없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너 보기에 내가 어떤 존재냐? 이런 명령을 내리는 우리가 네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느냐? 너의 친구보다도 못한 자로 보이느냐?”

“당신이 장관이고 존경받는 자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하나님과는 비교될 수 없는 자입니다. 당신과 사귀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신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친구로 사귈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믿음은 개인적이기 이전에 기독교의 독특한 표시입니다.”

이 말은 들은 장관은 매우 분개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쓴 말을 내뱉는다. “네가 나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두려워한다니요? 당신의 말대로 무엇이 저를 두렵게 할 수 있을까요? 재산 몰수, 추방, 고문, 죽음이 나를 두렵게 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그러면 이런 것들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물론 그렇습니다. 재산 몰수라 하셨는데,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은 빼앗길 것이 없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 있는 것이란 다 떨어진 누더기 옷과 몇 권의 책뿐입니다. 추방이라고 하셨는데, 갈 곳도 없고 거할 곳도 없는 나에게 추방이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나그네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고문이라 하셨는데, 곧 땅에 묻힐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죽음이라고 하셨는데, 죽음은 저의 은인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으로 인해 저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을 위해 살고 그분을 위해 존재하고, 그리고 그분에게 되돌아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에 놀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에 관해 말한 사람을 만난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제대로 살아가는 감독을 만나지 못한 셈입니다. 언행심사가 일치되는 감독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정통 니케아 신앙을 지키는 일에 있어 결코 타협하지 않은 바실은 자신의 교구를 자주 방문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가르쳤습니다. 어떤 때는 설교로, 어떤 때는 글을 써서 자신의 사상을 알렸습니다. 단호한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마음이 굳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행동가로서 학교, 병원, 그리고 자선 단체들을 설립하고 운영했습니다. 특별히 캅바도키아에 있는 수많은 문둥병자들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가리켜 ‘대(大)’ 바실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전에 로마제국 황제 발렌스의 죽음을 보았는데 이것은 곧 아리안 핍박의 종결을 의미했습니다. 379년 1월 1일 49세의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