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에서 느헤미야를 공부 하기로 하였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느헤미야를 통해 배우기로 하였기에
그러기 위하여 느헤미야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먼저 알아야 하기에
느헤미야에 관한 잘정리된 글하나 퍼 왔다,
느헤미야, 그는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기도로 시작(1:4- )해서, 오직 기도로
살다가(2:4, 4:4-5,9, 5:19, 6:14, 13:14,22), 마침내 기도로 마친다(13:29-31). 대단한 평신도다.
거기에 비해 대제사장의 시작(3:1)은 좋았는데 그 끝은 꼴불견이다(28). 부끄럽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사역의
굽이굽이를 넘어가면서 그때마다 기도하는 자리를 양보해 본 적이 없다. 그는 기도가 단순히 무릎 꿇고 앉아서 하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발을 땅에 내리고 사는 생활과 분리된 그런 의미의 기도의 모델이 아니다. 그는 기도가 어떻게 삶이며, 삶이 어떤 기도를 요구하는가를
몸소 보여준 그런 사람이다.
기도는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부요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통로이다.
그는 초지일관(初志一貫) 자신이 한 일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사"(13:14,22,31)로
족한 사람이기를 원한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때문에 살았다. 이것은 기도의
열매였다. 그는 이방의 땅 바사의 수산궁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었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심었고,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부흥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물가에 심기운 나무로 자랐다(고전3:5-9).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을 주목하시며 그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기도를 원인(수단)으로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목적)를 성취하는 것으로 기도의 거룩성을 사유화하지 않는다.
기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느헤미야, 그에게서 기도의 영성을 배운다.
과거(8-12장)는
하려한데 지금(13장)은 영적으로 바싹 마른 고목나무처럼 살 수 있다. 느헤미야서에 비춰진 유다의 모습이 그렇다. 과연
유다 뿐일까.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바울의 탄식이 중첩된다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3:1-4,
6:8)
마른 아론의 지팡이에서도 싹이 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오늘(13장)의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부흥의
후예들은 13장의 파행으로 밖에 하나님을 대접해 드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다시금 그 13장에서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보도록
하신다. 은혜를 잃어버린 성도들 곁에 홀로 외롭게 서서, 그 공동체의 모든 짐을 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외로운 지도자 느헤미야, 그는 홀로 무릎 꿇고서 외치고 있다. 그의 무대는 여기까지다. 이제는 느헤미야 없이도 건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때가 되었다. 느헤미야 13장 이후는 우리의 몫으로 넘어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느헤미야下, 그 이야기 안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어져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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