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테헤란 공항에서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권위와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페르세폴리스를 가기 위하여 쉬라즈로 가는 이란항공 국내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파사르가데(Pasargadae)란 말은 파사의 정원이란 뜻으로 넓은 평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멀리는 높은 산맥이 병풍을 두르듯 진을 치고 있었다.
파사르가데 입구에는 그 옛날 대제국을 호령하던 고레스 2세의 무덤이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있었다. 고레스대왕의 무덤은 장군총의 모습과 흡사한 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6개의 돌계단을 피라미드형식으로 쌓아올린 다음 그 위에 4각의 석실을 올려놓은 형태였다. 문은 석실 정면에만 뚫려 있고 나머지 3면은 모두 막혀 있었는데 밑변의 크기는 사방 10m, 높이는 9.5m정도였다. 고레스대왕은 바벨론을 정복한 후 그 곳에 우뚝 솟아 하나님을 대적한 상징처럼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바벨탑의 폐허를 보고 그 탑에 매료되어 바벨탑을 본떠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필자는 고레스대왕의 무덤 앞에서 깊은 감회에 젖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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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대에 있는 고레스 대왕의 무덤 생전에 그가 직접세운 피라미드식 석조묘 |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선하게 쓰셨을 뿐 아니라 그 역시 포용력 있는 어진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대왕을 지칭할 때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사 44:28)고 하였으며, 45:1에는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부음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서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고 덧붙이고 있다.
과연 그의 치세 동안 (BC 559-530) 일부 피지배 민족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이 부여되었으며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생활을 존중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BC 538년에는 칙령을 발표하여 유대들의 귀환을 허용하고 예루살렘성전 재건을 언급하였다(스 6:3-5).
고레스의 칙령이 공포된 후 페르시아 왕실은 유대인들이 공동체 재건을 위한 정치 작업을 하도록 허락하였으며(스 1:5-11, 5:13-15), 대왕은 느브갓네살이 약탈하여 갔던 성전 기물도 되돌려 주기도 하였다.
이 때 유대포로 42,000명의 대이동이 이루어져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 본토로의 귀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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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유대지도자는 다윗가의 귀족출신으로 바벨론식 이름을 가진
세스바살(Scheschbazzar)이었다. 1879년 바벨론에서 발견된 “고레스 실린더”에 새겨진 문자가 해독되었는데 놀라운 기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번역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고레스 실린더 |
“나는 고레스 세계의 왕,
위대한 왕, 정정당당한 왕, 사방의 왕이며 위대한 왕 안샨의 왕이신 캄비세스의 아들이며 …고레스의 손자이며… 테이스페스의 후손이며
(중략)" "나는 오랫동안 황폐되어온 성소들과 그 안에 있던 신상들을 티그리스강 저편에 신성한 도성들로 귀환시켰으며 그들을 위하여 영구적인 성소들을 지어 주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모아서 저들의 거주지로 귀환시켰다…(중략)” |
마케도냐의 정복자 알렉산더대왕이 이곳 파사르가대 입구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고레스 대왕의 무덤 앞에 당도했을 때 대왕의 지석을 발견하였고 그 지석의 글을 읽고 그의 망토를 벗어 대왕의 무덤에 덮어주며 머리를 숙여 경배하였다고 한다.
“그대가 오리라고 예상하고 오래 전부터 여기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나라는 내가 이룩한 것이니 너는 내 무덤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
시대를 초월한 두 영웅의 만남의 현장에 필자가 서 있었다. 고대 역사가 아리아누스(Arrianus)의 글에 의하면 “고레스의 무덤 내부는 금으로 된 관이 놓여 있던 옆자리에는 금으로 세공된 다리가 달린 침대가 있었으며 침대에는 바빌론산 이불과 자줏빛 망토가 깔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빌론에서 만든 페르시아식 의복과 소매달린 옷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알렉산더 대왕을 필로쿠로스(philokuros) 즉 고레스대왕의 친구란 별명도 이때부터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 파사르가데에서 약 40km 떨어진 페르세폴리스로 향했다. 1971년 팔레스 왕이 페르시아 왕조 창업 2,500주년을 기념하여 행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이며 이란 남서부 파르스 주의 수도인 쉬라즈에서 동북쪽으로 51km정도 떨어져 있고 이곳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다리우스(다리오)대왕 시절(BC 522-486)에 이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우리 일행은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위대한 도시의 흔적을 상상하며 차창 밖을 주시하고 있을 때 낙쉐로스탐의 웅장한 왕묘의 자태가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위대한 왕들의 무덤들이 십자형의 모습으로 절벽을 뚫어 안치해 놓은 곳이다.
다리오 2세의 무덤비문에는 “왕 다리우스는 말하도다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의 후의에 따라서 나는 내가 선을 행하는 친구이지 나는 악행하는 친구가 아닌 것을 이것으로 알 수 있다. 약한 사람이 강한 자에 의해서 악을 당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으며 강한 자가 약한 자에 대하여 악행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아니하도다.” 라고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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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오의 정통성을 천명한 베이스툰 석비 그 중앙에 있는 다리오와 그의 포로된 반란 와들의 부조상 다리오 발 밑에는 와위 찬탈자였던 가우마타가 밟혀있다. |
그리고 무덤들 아래쪽에는 사산왕조의 신화적 영웅 로스탐(Rustam)을 상징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우리 일행은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유서 깊은 페르세폴리스를 둘러보게 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주로 봄에만 사용하는 궁전이었고 실제
집무는 수사나 바빌론 혹은 엑바타나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침략하여 파괴한 뒤에야 헬라인들에 알려졌던
지역이다.
페르세폴리스 동편에는 쿠에라카트(자비의 산)라고 불리우는 산이 우뚝솟아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방향에는 산사태를 막기 위한 4∼12m높이의 웅벽이 쌓여있으며 서편으로는 이중계단이 있어 111단의 완만한 돌계단을 두 번 오르면 근처 산에서
떠온 암회색의 화산암으로 건축한 웅장한 건물 터가 오랜 세월의 연륜에도 그때의 영화를 반영하듯 순례객을 맞아준다.
대왕의 접견실인
아파다나(Apadana) 72개의 대원기둥이 떠 바치고 있었는데 주두(柱頭)는 황소와 뿔난 사자머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계단측면 벽에는
23개국에서 조공을 드리러 오는 사신들의 부조가 조각되어져 있어 당시 제국의 힘과 영화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
또한 기록 보존소에서
발굴한 점토문서들은 약 2만개가 발굴되었는데 당시 사회, 경제적 시대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 접견실 큰 방에는 다리우스대왕의 치적을
새긴 비문이 다음과 같이 해독이 되었다.
“나는 대왕이며 왕 중의 왕이다. 모든 땅의
왕이며 이 왕궁을 건축한 아케메니안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인 다리우스이다.”
크세르크세스 관문 입구에는 2개의
원기둥이 서 있고 3번째 원기둥은 깨어진 조각들을 모아서 그곳에 다시 복원하여 놓았다. 아파다나(접견실) 오른쪽에는 100개의 기둥이 지붕을
바치고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던 중앙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입구에는 황소를 새긴 기둥들이 서 있고 그곳에 새긴 비문은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왕은 말하노라 아후라마즈다(주신)의 은혜로 나는 모든 나라들을 초빙하기 위하여 이 대문을 건축하였노라”라고 쐐기문자로
쓰여져 있다. 바로 옆 보물창고에서 알렉산더대왕은 엄청난 금은보화를 약탈하였다 동쪽 산 언덕의 무덤은 아르닥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3세 (BC
359-338)의 무덤이다. 보물창고 옆에는 아르닥크세르크세스 3세의 궁전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옆에는 후궁들의 궁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르왕은 바사제국의 4대왕으로 약 21년간 페르시아를 통치한 크세르크세스(BC 486-456)이다.
127도의 영토를 다스리던 제국의 영광도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의 그리스 침공인 살라미스해전 참패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 후 알렉산더에 의해
역사의 무대로 사라져 갔는데 BC 330년의 일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사에서 시작하여 아나톨리아를
거쳐 에게해에 이르는 왕의 대로는 총연장 2,400km였는데 이 구간을 왕의 전령은 9일만에 달렸다고 한다.
우리는 이 웅장한 고도를
순례한 후 다음 지역인 야즈드를 향해 이란의 사막지대를 달려갔다. 그 옛날 고레스의 영광과 이스라엘 포로들의 애환을 역사 속에 파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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