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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위해 온것들/성경을 쉽게 이해 시키자,

[스크랩]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

 

 

열왕기하 1장에는 엘리야 선지자의 마지막 사역에 대하여 나온다.

아합왕의 대를 이어 왕이 된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병에 걸렸다.

그는 자기 병이 나을지를 에글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묻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엘리야 선지자는 길을 가는 사신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을 만나러 가느냐? 그러므로 네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

사신을 아하시야에게 돌아와서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전했다.

당황한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불러오려고 오십부장과 오십인의 군사를 사신으로 보냈다. 오십부장은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엘리야에게 외쳤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내려와 너와 네 부하를 사를것이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태워버렸다.

아하시야는 다른 오십부장과 오십인의 군사를 보냈다. 그가 엘리야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내려와 너와 네 부하를 사를 것이다."

그러자 하나남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렸다.

아하시야는 세번째 오십부장과 오십인의 군사를 보냈다. 세번째 오십부장은 산 위에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다.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여기소서.

"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말했다.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엘리야는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가서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하셨다 하니라."

 

위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듣기에 대한 2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한다.

아하시야는 문제가 생겼을 때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믈으려 하였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아하시야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묻지를 않고 우상인 바알세불에게 물으 려 하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점쟁이를 찾아간다. 그를 통해 귀신의 말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소수이고 도리어 그런 사람들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예수 점쟁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나는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이고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 속에는 진리의 성령이 계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거듭났다고 믿고, 자신의 마음 속에는 진리의 성령이 계시다고 믿으면서, 그 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성령의 칭호인 '보혜사'는 상담자라는 뜻이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이 우리의 친구라고 하셨다.

성령은 우리 속에 친구로 오신 상담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하면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내 안에 계신 상담자이신 성령과 의논하고 그분의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듣기의 핵심이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자세가 중요하다.

엘리야로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말씀을 들은 아하시야는 오십부장과 오십인의 군사 를 보내어 엘리야를 불러오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이 불에 타죽는 일을 두번이나 당한다.

왜 아하시야왕은 에글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으러 갈 때에는 사신을 보냈는데, 엘리야를 불러오는데 오십부장과 오십인의 군사를 보내려 했는가?

한 마디로 엘리야를 얕잡아 보았으며,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을 가볍게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물어본 점쟁이의 말이나, 또는 병이 들었을 때에 자기를 진찰 한 의사의 말을 마치 하나님 말씀처럼 믿고 지키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매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그 말씀을 정말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믿고 지키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왜 그런가? 세상사람들이 점쟁이나 의사를 경외하는 것만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리라."(렘12:16)고 하셨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성령께 나아갈 때에도 그 자세가 중요하다.

성령으로 우리 속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대하시지만 우리는 그분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대해야 한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듣고자 하는 성령의 말씀(음성)은 단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인격이신 하나님 이시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0 0 에게 임하니라."는 구절을 종종 본다. 이것은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음성)을 인격이신 하나님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함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더라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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