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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손에 오기까지/아모스

아모스

저자

이 책의 저자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이라고 기록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약 20km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9.7km 가량 떨어진 곳이다(대하11:6). 지중해를 기준할 때는 해발 780m요, 사해를 기준할 때는 1,140m의 고지대이다.

그는 평민 출신의 선지자였는데, 그가 부유한 자였는지 가난한 자였는지 확답하기 어렵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암7:14에 본래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였다고 한다. 자신이 목자였다고 했기에 거처하는 곳이 약간의 고지대임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이므로 저지대에 거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역의 뽕나무는 누에를 위한 뽕나무가 아니고 열매를 얻고자 심는 무화과나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지대와 고지대를 왕래해야 하는 직업으로 봐서 상당히 일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이 추측이 옳다면 일을 열심히 하는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만으로 그의 부유함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한 자로도 평가되고 있다.

2. 역사·지리·시대적 배경

암1:1의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2년"은 아모서의 기록 연대를 가늠케 한다. 그는 남방의 이사야와 미가보다는 훨씬 빠른 시대의 인물이며, 호세아와는 동시대 인물이다. 여기 여로보암(Jeroboam)은 여로보암 2세를 말한다. 그리고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이때의 지진이 주전 763년 6월 15일에 일어났다고 계산한다. 이렇게 보면 아모스의 활동 시기는 대략 주전 760년경으로 확정된다.

왕하14:25에 의하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여로보암2세가 통치했다고 한다. 이는 통일 왕국의 전성 시대인 솔로몬 왕 당시와 같은 것이다(왕상8:65). 또한 이것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약속했던 이스라엘의 전영역이었다(신32:36).

그러나 나라의 부강과 더불어 국민의 사치와 죄악은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암6:4은 그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여 암2:6,7은 빈부의 격차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암4:1은 여성의 타락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대는 부요함과 더불어 죄악이 관영한 시대임을 알 수 있다.

3. 전체 내용 요약

본 서는 전체적으로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분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의 구분이 확실하다.

서론 부분(암1,2장)에서 저자는 주변 강국들의 죄악과 심판을 선포한 후에 남방 유다의 죄를 지적하며 심판할 것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주변 강국들의 죄악보다 더 심하게 타락하였기에 이스라엘의 심판은 피할 길이 없음을 선포한다(암2:6-16).

본론(암3:1-9:6)에 들어가면, 먼저 3개의 설교(암3:1-15; 암4:1-13; 암5:1-6:14)와 4개의 환상(암7:1-3; 암4-6; 암7-14; 암8:1-3)을 보게 되며, 최후의 설교(암8:4-14)와 최후의 환상(암9:1-4)을 보게 된다. 이 마지막 설교와 환상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확정적임을 알린다. 저자의 설교와 환상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적임을 선포하지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6,8)는 말씀으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간곡히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심판을 면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며"(암5:15),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것"(암5:24)임을 가르치고 있다. 아모스가 지적한 이스라엘의 죄악들은 다음과 같다. 안일함, 사치,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가난한 자의 학대와 착취, 도덕적인 부패(암2:6-8; 암4:1; 암6:1,4-6; 암8:5,6)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락의 근원이 되는 것은 신앙적 부패에 있음을 탄식했다(암2:1; 암5:21-23; 암8:5,14).

결론 부분(암9:11-15)에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호세아의 메시지와 같은 맥을 이루는 것으로 남은 자들이 돌아오며 황무해진 성읍이 재건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4. 구속사적 의미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의 친구요,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창조자요, 우리의 구주 되심만응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아모스서는 하나님의 포효하는 사자와 같은 이미지를 남게 해준다. 이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을 심판하시게 된 것이다. 이 심판의 정당성을 살려 주고 있는 책이 아모스서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심판의 이유를 모른다면 심판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모스서는 심판의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으로서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더욱 빛내고 있는 것이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작던 빛도 그 광채가 드러나듯이 심판이 강하면 강할수록 구속함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절실한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은혜만이 모든 것을 올바로 고칠 수 있음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5. 타성경과의 연관성

아모스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암1:3,6,9,11,13). 이는 아모스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좋은 단서가 되며, 모든 예언서가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욜1:1; 호1:2).

그리고 이 예언서의 내용은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신30:19)에서와 같이 자신의 행할 일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근거하여 이 책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설교와 환상의 형식이 다른 예언서와 같고(렘24:1-3; 겔20:3; 암8:1,11,12), 마지막 결론의 회복에 대한 약속은 메시야의 왕국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신약의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땅의 진정한 평화의 의미가 살아남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든 신약서들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아모스 시대의 사회적 특징

1) 빈부의 격차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에 사회적으로 주목할 만한 특징은 부자들은 풍요하게 생활하고 빈한 자들은 가진 것까지도 착취 당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부자들은 매우 부요하여 별장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고(암3:15), 화려하고 값비싼 장식들에 관심을 쏟고 있었고(암6:4), 육체적인 만족을 즐기는 이도 많이 있었다(암3:12; 암4:1; 암6:6). 이와는 반대로 가난한 자들은 가난으로 인한 시련(암8:5), 법적인 시련(암5:10,12), 상업상의 시련(암8:5) 등을 당하면서 자신들을 방어할 여력도 없이 버려진 상태였다. 또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이들의 필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보다 어려운 중에 내버려 두었다(암6:6). 그리고 남자들은 돈벌이를 위하여 살았고(암8:5), 여자들은 쾌락을 위하여 살았으며(암4:1), 통치자들은 잘못된 일에 관심을 쏟고 살았다(암6:1-6).

2) 종교적 외식

북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는 이스라엘 국가의 분열 후 북이스라엘의 첫 왕인 여로보암이 세운 제단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분향하고 제사를 드렸다. 당시의 교회 모습은 진정한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저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였다. 외형상으로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과 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고, 희생 제물들도 이스라엘 절기의 때에 맞추어 드려졌고, 종교적인 음악에 대한 찬양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북이스라엘의 패역한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에서 멀어졌다. 다만 그 백성들의 기분만을 기쁘게 하는 제사일 뿐이었다.

3) 공의가 파괴됨

외식적인 신자의 특징으로 종교적인 타락과 함께 사회의 공의가 무너졌다. 공정한 법의 권위와 규칙이 상실되었고(암5:10,12), 사람들의 관심은 높은 지위와 사람의 평판에만 기울어졌으며(암6:1), 국가의 지도자들은 실제적인 쟁점에는 상관이 없는 문제들로 그들의 정력을 소비하고 있었고(암6:2,3), 도덕적으로는 참된 도덕성이 상실되고 성적인 탐닉에 열중하였으며(암2:7), 상술에도 간교한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였다(암8:5,6). 즉 여로보암 2세의 시대 모습은 겉으로는 번영과 안정이 있었으나, 그 속의 실제적인 국민들의 모습은 불의, 불법, 폭력, 음란에 가득찬 패역한 모습이었다.

 

2. 현대교회의 적용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하여 있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여 여호와의 유일 신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말하고자 하는 비판은 이러한 관점에 있는 교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1) 종교적인 특권의식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특권의식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이 분명히 구별하여 부르신 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이러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준엄한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이 구원에 이르는 방편 역시 아니다. 도리어 이러한 특권으로 교회는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하나님 공의에 대한 선포자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섬김으로 개인적인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2) 역사적인 특권의식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적인 섭리가 현재의 사람들에 대한 영적, 도덕적 축복을 대신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 시대의 그 개인과 집단에게 올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를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 안에서 개인과 집단은 도덕적인 정숙함(암5:14,15), 사회적인 요구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과거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조들에 대한 역사는 다른 이방 민족들에게는 그러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현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점에서 분명한 축복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릴 뿐이다.

3) 외식적인 종교 의식

선지자 아모스는 또한 교회에 참석하여 형식적인 신앙고백과 신앙 행위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외양과 인원은 많아졌으나 참다운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 앞에게 신령한 모습으로 거듭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