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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와 다운증후군] 다운증후군을 이기는 사람들

위클리조선 | 기사입력 2008.06.03 10:06

 


바리스타 꿈꾸는 카페의 마스코트 최승미
해맑은 얼굴로 라테 아트도 척척… "다 제게 맡기세요"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그라나다 카페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다양한 직무 서비스를 익히면서 당당한 홀로서기를 꿈꾸는 직업 재활의 장이다. 허준박물관 뒤쪽의 늘푸른나무복지관 1층에 자리잡은 카페를 5월 16일 오후 찾았다.

임유진(왼쪽)양과 어머니 조성금씨.

↑ 그라나다 카페의 최승미(왼쪽)·추종천씨.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테이블은 10여개. 깔끔한 내부 시설이 강남 어느 거리의 찻집을 연상시켰다. 붉은색 꽃무늬로 곱게 장식한 벽면이 인상적이다. 분홍 줄무늬 와이셔츠에 넥타이, 검정 바지 차림의 종업원들이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다운증후군 장애인 최승미(34)·추종천(21)씨다. 주방에는 다른 장애인 두 명의 모습도 보였다.

카페의 살림꾼으로 일류 바리스타를 꿈꾸는 최씨는 "커피 제조 기술을 3년째 익히고 있다"면서 "일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활짝 웃었다. 앞서 복지관 안에 있는 매점에서 일한 적은 있지만 직접 손님을 맞아 커피를 뽑아내고 서빙하는 일은 그에게는 첫 경험이다. 최씨는 조금 전 손님이 주문한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를 정성스럽게 만들어냈다.

"맛있고 향기롭게. 항상 손님이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해 드려야죠. 종천씨, 1번 테이블에 이것 좀 갖다 드리세요."

최씨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작품'은 녹차라테. 우유 거품을 이용해 커피 위에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내는 라테아트(Latte Art) 기술도 갖고 있다. 매달 받는 월급은 70여만원. 노트북을 하나 갖는 것이 최씨의 바람이다.

잠시 후 '단체 손님'이 찾아왔다. 수서 성모자애복지관의 장애인 10여명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자활 사업장으로 널리 알려져 다른 사회복지관이나 장애인들의 단골 견학 코스가 됐다. 말쑥한 양복 차림이지만 눈을 굴리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손님들. 함께 온 곽지혜(34) 사회복지사는 "사회적 직업 능력을 키우기 위한 장애인 현장 실습 과정의 하나"라고 했다.

갑자기 주문이 밀리자 추씨가 약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데 실수가 나왔다. "천천히. 긴장하지 말고요. 5000원에 5000원을 더하면 얼마죠?" 카페 매니저인 설윤경(31) 사회복지사가 추씨를 다독였다. 10여명이 음료를 주문하고 계산하고 마시고 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안팎. 비장애인들이라면 10여분에 끝날 수 있었겠지만 음료를 주문하는 쪽이나 차려내는 쪽이나 모두 코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설윤경 사회복지사는 "단계별 교육이 중요하다"면서 "설거지부터 시작해 서빙과 카운터 계산, 커피 교육으로 차근차근 가르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손님에게 물을 엎지르기도 하고, 주문을 잘못 받아 허둥대기도 했어요. 지금도 100%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요. 그래도 오늘처럼 한꺼번에 손님이 많이 찾아오시면 좀 버거워 합니다. 주문을 바꾸거나 돌발질문을 던질 때도 그렇죠. 오시는 손님들이 너그러이 이해하고 배려해 주시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아직 명확한 근로의식이 없고 경제적 관념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잘 되고 있고 앞으로도 잘 될 거라 믿어요."

병원 로비서 매달 피아노 콘서트 임유진
반복 또 반복… "포기하자" 엄마 말에 "꼭 성공할래요"
5월 20일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로비. 검정색 그랜드 피아노 옆에 '한낮의 아름다운 휴식'이라는 연주회 안내 푯말이 서 있다. 정오가 되자 다운증후군 장애인 임유진(20·백석예술대2)양이 다가왔다.

특별한 소개는 없었다. 피아노 주변에 앉아 있는 환자와 보호자 10여명에게 유진양이 꾸벅 인사를 했고, 연주를 시작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성가곡이 감미롭게 흘러나왔다. '주를 구하리라'는 성가곡에 이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과 23번 '열정' 1악장이 이어졌다. 건반을 응시하는 얼굴이 진지했다.

곡이 끝날 때마다 간간이 박수가 터졌다. 하얀 마스크를 하고 링거를 꽂은 어린이 환자의 눈은 유진양의 손끝을 쳐다보고 있었다. 건너편 에스컬레이터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던 사람들은 임양을 쳐다보더니 조용히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혹시 다운이 아니야?"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맞은편에 있던 임양의 어머니 조성금(47)씨는 손가락으로 연방 박자를 맞췄다. 마지막 '내 구주 예수님'을 끝으로 1시간의 작은 연주회는 끝났다.
"엄마, 나 잘했어? 조금 틀렸는데…."

"괜찮아, 지난 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연습이 좀 부족했잖아. 그래도 잘했어. 그만 학교에 수업 받으러 가야지."

조용히 속삭이던 모녀는 가방을 챙겨 들고 병원 로비를 떠났다. 아쉬움과 고마움의 박수가 이어졌다. 임양은 고3 때인 2006년부터 매달 한 차례 이곳을 찾아 작은 연주회를 갖고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강남구민회관에서 독주회를 열었는데, 리허설 장소로 그랜드 피아노가 있던 건국대병원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됐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또 고교를 졸업할 무렵 엄마는 유진양의 연주회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하나의 시기가 지날 때마다 그동안 이룬 발전을 절대자에게 '바친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엄마는 말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며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고 엄마 역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운 유진양은 조금씩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엄마는 유진양에게 음악을 제대로 가르쳐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손가락이 짧고 체력도 약했지만 '한번 해 보자'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중학교에 올라간 유진양은 정식으로 개인 레슨도 받았다. 열정의 피아니스트 서혜경씨가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유진양의 꿈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딱 고정됐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열정적인 베토벤의 작품. 낭만주의 소품과 복음 성가곡도 즐겨 연주한다. 좋아하는 곡을 연주할 때면 몇 시간씩 식사도 거르고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올라오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 지도 받은 내용을 잊어버리고, 대회 준비를 하느라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해야 할 때면 유진양도 엄마도 지쳐갔다. "내가 너에게 피아노를 시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제 피아노도 팔아버리고 그만 접자"는 엄마의 말에 유진양은 피아노를 감싸 안으며 "꼭 피아노로 성공하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엄마가 지치면 유진양이 끌고, 또 유진양이 지치면 엄마가 다독거리며 작년 3월 백석예술대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유진양은 학교를 졸업한 뒤 4년제 음악대학에 학사편입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내일은 나도 스타" 영화·연극서 활약 장민휘
종일 춤·노래·대사 연습 "그래도 행복해"
강민휘(27)씨에겐 '국내 첫 다운증후군 영화배우'라는 별칭이 항상 따라다닌다. 2005년 개봉된 영화 '사랑해 말순씨(감독 박흥식)'에서 스크린에 데뷔했다. '사랑해 말순씨'는 열네 살 사춘기 소년 '광호'의 슬프지만 따뜻한 성장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강씨는 당시 극중 광호의 이웃집 다운증후군 소년 '재명' 역할로 출연했다. 엄마 말순씨는 영화배우 문소리, 광호 역은 이재응이 맡았다. 강씨는 이밖에도 '안녕하세요 하느님' '달자의 봄' '피아노가 있는 풍경' 등 드라마 세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노원예술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연극 '날개 잃은 천사들'에도 출연했다. 가나엔터테인먼트 소속사 형과 서울에서 생활하는 강씨는 6월 부산 공연을 앞두고 있다.

연기와 댄스 공부, 공연 연습에 시간을 쪼개 쓰던 강씨는 최근 소속사로부터 1주일 휴가를 얻어 김해시 장유의 집에서 달콤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5월 22일 밤 어머니와 함께 있는 강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엄마 이경숙(49)씨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강씨가 부른 최병걸의 히트곡 '진정 난 몰랐었네'였다.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데로 걸어도…." 이씨는 아들이 '사랑해 말순씨'에서 부른 노래라면서 "잘 하지예?" 하고 되물었다.

강씨의 지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타고난 열정과 끼는 숨길 수 없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특유의 해맑은 미소. 하지만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연기와 춤, 대사 연습을 기쁜 마음으로 소화하는 끈기와 집요함이 오늘의 강씨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강씨는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는 TV에 나오는 스타들 따라하기를 좋아했고 피아노, 플루트 연주, 태권도, 요가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던 아이였다. 주변에서는 강씨의 '야무진' 꿈에 대해 "가당치 않은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강씨는 "두고 봅시다" 하는 심정으로 희망을 키워왔다.

2001년 천안 나사렛대 기독교 교육학과에 입학해 인간재활학과에 편입, 2005년 졸업했다. 대학 3학년인 2003년 학교 축제의 공연 중간에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춘 것이 그의 일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 광경을 본 나사렛대의 김종인 교수가 연예 기획사에 강씨를 소개한 것.

밝게 성장한 강씨의 뒤에는 외아들을 구김없이 키운 어머니 이씨의 낙천적인 성격도 한몫 했다. "민휘가 어렸을 적엔 창원에 살았어요. 그 시절만 해도 동네에 다운 아이들을 볼 수 없었죠. 몇 달 동안은 다운인지도 몰랐고…. 좀 애가 늦된다 했지만 열심히 가르치면 될 줄 알았죠. 요즘처럼 정보가 많아서 그때부터 안달복달했으면 지금보다 더 안 좋았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해요. 참 그리고, 우리 민휘가 인복(人福) 하나는 확실히 있어요. 학교에 들어가도 자식처럼 챙겨주시는 선생님들을 꼭 만났죠.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자립심도 길렀고. 예전에는 '엄마'하고 제대로 불러주기만 하면 주변에 떡 돌리겠다는 얘기도 했는데, 영화배우가 됐어요. 주변과 비교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키운 것이 결과가 좋았네…."

강씨는 "나에겐 행복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다운증후군 친구들이 나를 자신들의 꿈과 희망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더 열심히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