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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종교란?

[스크랩] "`한 손엔 칼, 한 손엔 꾸란?` 그것은 틀린 말"

 "'한 손엔 칼, 한 손엔 꾸란?' 그것은 틀린 말"

 

[우리 안의 편견과 오해 - 이슬람 ②]이희수 한양대 교수

 

'와장창' 깨진 편견과 상식



올해 1월, 인도로 떠났던 50일간의 배낭여행. 티베트 망명정부가 위치한 인도 북부 '맥그로간즈'에서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다고 소개하던 숙소 대리인 아민(25)을 만났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지역 카쉬미르 출신이라는 그는 무슬림이었다. 그의 장난기와 농담은 내가 생각하던 무슬림이 아니었다. 무슬림에 대한 내 편견의 창은 그 때 '와장창' 깨져버렸다. "'무슬림'하면 전쟁이 생각난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Don't misunderstand Islam. Muslim loves peace."


지난 20일, 중동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를 인터뷰했다. 아민과 마찬가지로 이 교수 역시 이슬람은 공존과 상생 즉, 평화의 종교임을 강조했다. 그는 "14억에 이르는 세계 최대 단일 문화권인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가히 '야만적' 수준"이라며 "진정으로 세계화를 외치려면 이슬람을 바라보는 서구 미디어의 이해와 관점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먼저 인식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이슬람은 무엇을 믿고 누구를 따르는가?

"이슬람에서 아담,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의 선지자들은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되고 추앙된다. 많은 사람들이 마호메트를 숭배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마호메트는 예수 이후 신에 의해 보내진 마지막 예언자로서, 앞선 복음의 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변질된 신의 말씀을 바로잡고 완성하는 사명을 가진 자로 여겨진다. 이슬람은 하나님, 아랍어로는 '알라'를 모시는 절대적 유일신의 종교다."



- 알라, 알라신의 차이는?

"하나님을 영어로는 GOD, 히브리어 말로는 야훼, 중국말로는 천주(天主)로 표현하듯, 하나님의 아랍어 표기가 바로 '알라'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아랍어의 알라는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알라신'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슬람의 알라는 유일신이 아니라 아랍민족의 민족신 또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생겨난 지역신이라는 인식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다."



 

   

▲ 알라와 알라신? 이태원에 위치한 서울 이슬람 중앙성원에 붙어있는 문구. '알라신'이란 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이슬람 역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  ⓒ 변태섭  


- 많은 사람들이 '아랍 = 이슬람'이라 알고 있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근친결혼, 여권탄압, 호전성 등은 이슬람과 거리가 먼 유목사회의 관습임에도 모두가 이슬람과 관련지어 생각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이슬람은 아랍인의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이 아랍에서 출발을 했지만 현재 가장 많이 뿌리 내리고 있는 곳은 아시아이기 때문이다. 14억 인구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아랍은 그의 1/4일을 차지할 뿐이다. 이슬람권의 70%는 아시아에 있으며, 최대 국가는 인도네시아, 두 번째 국가가 인도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피니언 리더조차 아랍인들의 유목적인 생활방식, 오아시스에서의 생태구조가 만들어낸 토착적 관습과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을 구분하지 못 하고 있다. 일부다처, 근친결혼, 여아살해, 침략과 호전성은 이슬람과 먼 아랍인의 유목적 생활방식이다. 유목민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잦은 충돌이 일어나는데, 때문에 부족 안에 남자의 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다처, 근친결혼, 여아살해의 경우는 잦은 충돌로 인한 남자의 부족이 사막의 생태구조와 맞물려 생겨난 유목민족의 관습일 뿐이다. 이는 이슬람의 교리와 전혀 무관하다."



 

  

▲ 평화의 종교? '무슬림 =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은 옳지 않다. 

ⓒ Cox&Forkum  이슬람



- 일부 나라에선 이슬람 원리주의가 기승이다. 테러와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부분인데, 알카에다나 헤즈블라, 하마스 등과 같은 이슬람의 급진단체의 등장배경과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타 문화에 대한 포용성과 이를 통한 다문화 공존의 가르침은 이슬람의 기본축이다. 하지만 중세의 황금기를 거쳐 근세까지 이슬람은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피지배자로 전락하였다. 이런 와중에 갑작스런 이스라엘의 등장, 이슬람의 삶을 위협하는 미국 등에 대한 반감은 지울 수 없는 증오심으로 변질되었다. 이슬람의 빼앗긴 자존심을 회복해 줄 종교적 지도자나 국가가 부재한 가운데, 급진주의자들이 자연스레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것이 하마스, 알카에다, 헤즈볼라 등 급진단체들의 등장배경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테러 조직은 아니다. 실제로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이슬람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저항단체로 보는 것이 맞다. 아랍권에서는 이들을 테러조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알카에다는 이와 다르다. 극렬한 반미 무장단체로 아랍권에서 지지기반이 미약하다.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은 보편적인 인도주의 측면에서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한 손엔 칼, 한 손엔 꾸란'이라 인식되고 있다. "무슬림은 호전적"이라 인식 역시 여기에 기인하는 듯하다.

 

"이슬람의 출발이 유목사회다. 유목사회는 생태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는 삶의 기본적 패턴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렀던 것이 이슬람 전파를 위한 전쟁으로 호도된 것이다.


최초에 유목민이 주축이 됐던 이슬람 세력은 수적인 열세 때문에 다른 정복지의 농경사회를 직접 통치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생겨난 것이 일정한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다른 종교와 소수문화를 포용한 이슬람의 딤미(Dimmi) 제도다. 680년대에 이슬람은 '개종금지백서'를 발행하는데, 이는 무분별한 개종으로 세수의 감소를 우려한 결과였다. 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믿지 않으면 죽인다는 '한 손엔 칼, 한 손엔 꾸란'이란 말은 완벽한 허구다. 오히려 이것은 중세 시대에 급속히 전파된 이슬람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서구 세계의 주장이다."


- 이슬람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하나?

 

"결혼에 대한 이슬람의 기본 원칙은 일부일처이다. 하지만 유목에 기반을 둔 이슬람 국가 건설 초기에는 오랜 전쟁으로 남자가 부족했다. 또한 사냥과 전쟁이 생존의 수단이 되는 사막에서 여성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일처의 고수는 그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했다. 암낙타 한 마리가 건강한 여자 두 명과 맞교환 되던 시대에 이슬람은 여성을 보호하고 공동체 와해를 막기 위해 일부다처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당시 삶의 환경을 함께 고려해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최대 네 명의 부인을 허락하는데, 모두가 정실부인이다. 그리고 새로운 부인을 얻기 위해서는 전 부인들의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한다. 또한 네 아내의 자식들은 차별 없이 모두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슬람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를 금하고 있다. 하지만 아랍의 일부 국가에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거나 성적충족을 위해 다처제도가 본래의 목적과 어긋나게 악용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 일부에선 이슬람 교리를 내세워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한다는 지적이다.

 

"이슬람을 두고 여성억압 사회라 말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오히려 활발하다. 인도네시아에선 메가와티 여성 대통령이 나왔고, 이란의 여성 국회의원 수는 한국의 3.5배임을 우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히잡이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한다는 주장은 시대의 변화를 간과하고 30년 전의 가치관으로 오늘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히잡이 여성 정치적 강제, 남성중심사회를 위한 억압기제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등장한 이슬람의신여성들은 히잡을 벗고, 담배를 피며, 사회생활을 영위했다. 하지만 구(舊) 소련이 무너지면서 여성들은 스스로 히잡을 다시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히잡은 반(反) 서구적 상징, 자기문화와 종교의 상징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히잡은 패션이 되었다. 종래의 검은, 하얀 색의 히잡이 아니라 화려한 색으로 디자인되었다. 세계적 명품회사인 구찌나 프라다가 히잡을 만드는 것 역시 시대의 변화를 나타내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또한 탈레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는 히잡은 강요되지 않는다. 쓰고 싶은 사람은 쓰고 벗을 사람은 벗는다. 30년 전의 가치관으로 오늘을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이슬람 국가는 상대적으로 낙후되거나 아직까지 왕정인 나라도 있다. 이슬람 사회의 후진성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천문학, 0의 개념, 화학 등 이슬람이 한때 1000년 이상 인류의 역사를 주도해 왔다. 때문에 이슬람이 문명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슬람 세계의 낙후성은 종교적 요인보다는 반서구 노선으로 인한 산업화와 근대화의 실패로 봐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가 물질적 발전을 이룩할 때 이슬람은 아직도 정신적인 면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서구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이슬람의 적절한 해석을 통해 글로벌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 역시 이슬람의 한 모습이다."



- 세계가 많이 다원화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슬람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이슬람의 자동차 40%, IT산업의 38%, 에어컨 90%가 한국제품이다. 또한 <겨울연가>는 이집트에서 종영 2주 만에 재방영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대장금>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를 좋아하는데, 우린 왜 새카만 색안경을 끼고 적대적 이해당사자로 이슬람을 보는가. 이런 사고방식으로 글로벌, 세계화 등을 외치는 것은 허구다. 서구가 만들어낸 조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인식의 주체가 되어 이슬람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은 적이 아니라 둘도 없는 친구다."



"이슬람에 대한 우리 상식은 화석화되었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에 대한 지적인 편견이 그 사회의 실체적 진실을 볼 수 없게끔 걸림돌로 작용했고, 이러한 편견이 해방 후 50년 동안 고착·화석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도 모르는 우리의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에 의문을 던졌다.


그를 인터뷰하고 나오면서 문득 아인슈타인이 세상에 되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Common sense is the collection of prejudices acquired by age 18."


상식은 후천적으로 얻은 편견의 집합이라는 그의 말, 우리는 이른바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로부터 과연 자유로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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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는 누구?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이슬람 전문가다. 한국외국어대에서 터키어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중동지역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 터키 국립 이스탄불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스탄불 마르마라대학에서 2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93년부터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고,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07.11.22 14:05 ⓒ 2007 OhmyNews


출처 : 죽장망혜
글쓴이 : 죽장망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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